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53)
제153화
153화. 악연(1)
“쿨럭! 쿨럭!”
스칼렛이 되살아났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점을 잃은 채 끙끙 앓는 것으로 보아 회복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오신 겁니까?”
“확인할 게 있어서 돌아왔지.”
“확인이요?”
“이놈이 너한테 나이프를 던진 거 말이야.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라 넘어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워낙 많은 일이 있었던 터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날아오던 나이프를 루시아가 잡아 내던 모습은 분명히 기억난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너를 찌르려고 하고 있더라. 그래서 바로 진입한 거야.”
창문에 달린 커튼이 바람을 타고 나부꼈다.
루시아는 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듯했다.
‘낌새는커녕, 들어왔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지.’
창문을 통해 슬쩍 밖을 바라보자, 루나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레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루나의 시선은 이쪽을 향해 있었지만,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루시아가 술집으로 되돌아왔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다.
‘귀신 같은 움직임이네.’
나도 레벨이 높아지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해지는 것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놈은 왜 너를 노린 걸까? 뭐 아는 거 있어?”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상태랄까요.”
“뭐야. 그 애매모호한 대답은. 뭐, 됐어.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눈치를 보던 스칼렛.
루시아가 그런 스칼렛의 멱살을 잡더니,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너, 왜 제로한테 나이프를 던진 거야?”
“그, 그러니까…… 시, 실수라고.”
“이거 놀랍네.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줄이야.”
멱살을 쥐고 있던 루시아의 손이 스칼렛의 목으로 번개처럼 이동했다.
중력으로 인해 목이 자연히 졸리게 되자, 스칼렛의 얼굴이 붉어지며 핏발이 곤두섰다.
스칼렛이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루시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실수랑 의도도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보였나 봐?”
“커, 커헉……!”
“제로를 노린 이유가 뭐야? 죽기 싫으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걸?”
“컥!!”
실핏줄이 터지며 스칼렛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말단이긴 하지만, 스칼렛도 엄연한 시궁쥐.
이런 협박에 굴복해 자신이 시궁쥐라는 걸 밝히지는 않을 거다.
이대로 스칼렛이 죽어도 내가 손해 볼 일은 거의 없지만,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존재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스칼렛이 휘말리게 된 건 내 탓이니까.’
평소처럼 게임이 진행됐다면 한가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스칼렛이다.
그런데 내가 한 날갯짓이 루시아라는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 냈고, 거기에 빨려 들어가 죽게 생겼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개입하는 수밖에.
“루시아 님.”
“왜.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시궁쥐입니다.”
“뭐?”
“카론 선생의 시궁쥐입니다. 그것도 말단이요. 죽이면 여러모로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쯧!”
잠시 생각하던 루시아가 스칼렛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눈물을 쏟으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스칼렛.
그를 바라보던 루시아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시궁쥐 리스트는 기밀일 텐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맞을 겁니다. 카론 선생이 절 이쪽으로 보냈거든요.”
“뭐? 그건 또 뭔 소리야? 그놈이 널 여기로 보낸 거랑 시궁쥐랑 뭔 상관인데?”
“카론 선생과 거래를 했거든요. 어쩌다 보니 저 사람이 엮이게 된 것 같고요.”
“……그 새끼랑 거래를 했다고?”
그놈, 그 새끼.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지칭어다.
‘카론과 무슨 일이 있었나?’
게임에는 없던 정보다. 루시아와 카론이 엮이는 에피소드는 없다시피 하니까.
고인물로서의 궁금증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칼렛이 최우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알아봐도 충분하리라.
“예, 그래서 알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던 건데? 그 새끼가 이곳으로 널 보냈다면 이놈이 널 공격할 이유가 없잖아?”
루시아의 말대로다. 거래를 하기로 했다면 동맹관계나 마찬가지.
스칼렛이 나를 공격할 이유가 없고, 변명거리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내 주특기를 발휘하면 되니까.
스칼렛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후후, 친구를 하기로 했거든요.”
“쿨럭, 쿨럭! 그게 뭔 개소리…….”
고통 가득한 기침을 내뱉으면서도 날을 세우는 스칼렛.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눈빛으로 말했다.
‘야, 웃어. 웃어. 또 처맞을래?’
내 마음이 닿은 것일까. 아니면 루시아한테 또 얻어맞기는 싫었던 것일까.
“하, 하하하…….”
스칼렛이 어깨동무를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변명.
우리를 바라보던 루시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요즘은 친구가 되려면 서로의 몸에 칼을 박아 넣어야 하니?”
“잘 알고 계시는군요. 우정 문신…… 아니, 우정 흉터. 뭐 그런 겁니다.”
“흐응~ 요즘 애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깐?”
루시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스칼렛은 이미 그녀의 관심을 떠났다.
그보다는 나와 카론이 했다는 거래.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눈치다.
카론과 거래를 했다는 건, 그에게 내어 줄 만한 무언가가 나에게 있다는 뜻.
‘가치가 생각보다 높은 놈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후후, 저희의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시죠. 시간은 많으니까요.”
“……네가 그 더러운 놈이랑 뭔 거래를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걸? 태도도 짜증 나지만, 뒤통수를 기가 막히게 치는 놈이거든.”
“조심하도록 하죠.”
“죽지 말고 내일 보자. 궁금한 게 많아졌으니까.”
선수를 친 덕일까. 루시아가 순순히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기척을 숨기고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 수도 있으니까.’
[초감각]은 함정이나 암살 등.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에만 반응하는 스킬.단순히 정보를 얻으려는 루시아에게는 반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끼를 던진다. 로델린이라는 루시아 전용 미끼를.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었군요.”
“가지가지 한다. 뭔데?”
“로델린 선배가 단단히 삐졌습니다. 저 대신 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델린이가 삐졌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여덟 살 이후로 삐진 적이 없었는걸.”
음, 로델린답다. 여덟 살 이후로 삐지지 않았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시스콘인 루시아라면 참을 수 없을 테니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루시아를 향해 말했다.
“후후,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똑똑히 봤거든요. 아…… 하지만 못 보게 되실지도 모르겠군요. 로델린 선배는 감정 컨트롤에 능하니까요.”
후웅-!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
곧바로 눈을 떴지만, 이미 루시아는 사라지고 없었다.
한 줄기 바람만이 술집에 감돌 뿐이었다.
‘로델린도 고생이 많겠군.’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보이는 중증의 시스콘…… 아니, 변태를 언니로 두다니.
뭐, 내 알 바는 아니다.
변태를 처리하는 건 로델린 전문이니, 알아서 잘할 거다.
나는 내 일을 하면 된다.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는 스칼렛을 향해 말했다.
“후후, 이제야 정리가 됐군요. 어떻습니까, 친구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죠.”
“……누가 네 친구인데?”
“당연히 저죠. 목숨을 구해 주지 않았습니까.”
스칼렛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음, 크고 아름답다. 내 것보다는 못하지만.
물론, 손가락 얘기다.
‘로델린과 루시아 때문에 시간을 너무 허비했군.’
혼자라면 느긋이 대화하겠지만, 밖에서 루나와 레제가 기다리는 상태.
더 이상 스칼렛과 농담 따먹기를 할 시간은 없다.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우선…… 전 시궁쥐가 아닙니다.”
“뭐? 그럼 뭐지?”
“아까 듣지 않았습니까. 카론 선생과 거래하는 사이라고요.”
“……그럼 그 말이 진짜란 말이냐?”
“후후, 루시아 님도 수긍하고 바로 넘어가시는 걸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스칼렛의 눈빛이 변했다. 의심이 가득한 눈빛에서 경외와 감탄이 섞인 눈빛으로.
카론과 거래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어쩌면.
‘자신과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시궁쥐의 말단에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시궁쥐의 최정점에 있는 카론과 거래하는 나의 모습.
심지어 내 나이가 더 어리니, 지금쯤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너무 티 나는 거짓말이군. 그냥 정보를 얻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지 그래?”
“후후, 제 눈에는 똑똑히 보입니다. 카론 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그보다 높이 올라가 있는 당신의 모습이요.”
제국의 시궁쥐를 총괄하는 카론.
하지만 그 카론조차도 만물상이라 불리는 스칼렛을 애용하곤 했다.
정보도 정보지만, 특이한 물건들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칼렛이 카론보다 높이 올라갈 거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보인다니. 실눈이라 영 신용이 안 가는데.”
“후후, 그런가요?”
“어떻게든 내 입을 열려는 모양인데……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아까도 봤겠지만, 난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거니까.”
루시아의 힘에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스칼렛이다.
그가 충성스러운 시궁쥐라서? 아니다.
스칼렛이 끝까지 굴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카론의 밑에 있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정보를 줄 수 있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생명의 은인이 될 사람한테 이런 푸대접이라니.”
“크큭, 생명의 은인이라? 이렇게 되기 전에 구해 줬으면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겠군.”
“아, 물론 당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
스칼렛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좋은 표정이다.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며 말했다.
“당신의 여동생을 말하는 것이죠.”
“네놈이 그걸 어떻게……!”
스칼렛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건 카론도 모르는 비밀이다.
그걸 내가 알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스칼렛이 내 멱살을 휘어잡았다.
“네놈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내가 여동생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건 인질을 잡고 있다는 것과도 마찬가지.
멱살을 휘어잡기보다는 무릎을 꿇는 게 올바른 판단이다.
하지만 스칼렛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거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영원한 눈꽃. 그걸 찾고 계시죠?”
“……!”
스칼렛의 눈이 커졌다.
그게 바로 그가 시궁쥐가 된 이유.
그리고 미래에 ‘만물상’이라 불리며 세계의 모든 신비로운 물품과 정보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조각병’.
발가락부터 조금씩 몸이 굳으며, 마지막에는 머리까지 굳어 조각상처럼 변하는.
역사상 다섯 명밖에 걸리지 않은 희귀병 중의 희귀병이다.
또한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기도 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치병은 아니다.
약 2세기 전, 한 제국의 황제. 그의 손녀딸이 치료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치료를 위한 재료가 바로.
내가 조금 전 언급한 ‘영원한 눈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