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154화. 악연(2)
“여, 영원한 눈꽃! 혹시 그걸 갖고 있나?”
내 멱살을 움켜쥔 스칼렛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전처럼 우악스러운 손길은 아니다.
간절함이 가득 담긴 단단한 손.
스칼렛의 간절함이 그 손을 통해 전해져 왔다.
“나에게 팔아! 대가는 무엇이든 치를 테니까!”
내가 여동생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조각병에 걸렸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그 치료제가 영원한 눈꽃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전부 다 상관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후후, 없습니다.”
“젠장! 그럼 그렇지! 너 같은 놈이 갖고 있을 리가 없지!”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말이죠.”
“……?”
“이번 겨울을 지나고 돌아오는 봄. 그때 제 손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조금 무리를 해야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스칼렛이 그동안 날 성실히 돕는다면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때 나한테 넘겨준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절 위해서 일해 주신다면, 대가 없이 넘기도록 하죠.”
“하! 내가 바보인 줄 아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영원한 눈꽃은…….”
“설화나 동화에서 나올 법한 신비한 꽃, 진짜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인 꽃. 그래서 제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셨던 거죠?”
“…….”
스칼렛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내 멱살을 쥐고 있는 스칼렛의 손을 가볍게 밀어내며 말했다.
“영원한 눈꽃은 실재합니다. 구하기 어렵긴 합니다만, 불가능한 건 아니죠.”
“……그렇다면 내가 구하면 된다. 네 도움은 필요 없어.”
“후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얻은 소득이 아무것도 없으실 텐데요.”
“네놈이 할 수 있다는데 나라고 못 할 게 없지. 실재한다는 정보를 준 건 고맙게 생각하마. 이제 그만 꺼져.”
아니, 스칼렛은 구하지 못한다.
영원한 눈꽃도, 여동생도, 그리고.
그 자신의 목숨도.
“후후, 현재 진행 상태는 어떻죠?”
“진행 상태?”
“조각병 말입니다. 어디까지 조각화 되었습니까?”
“……배 언저리다.”
“1년 정도 남았겠군요.”
“충분한 시간이지. 그깟 눈꽃 따위 구하고도 남는다. 카론 님께 분명 정보가 있을 거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얻지 못한다 해도 사정을 말한다면…….”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겁니다. 카론 선생에게는 없는 정보거든요.”
“뭐……?”
단언컨대, 카론은 영원한 눈꽃이 있는 위치를 모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아주 간단한 추리다.
스칼렛이 시궁쥐였다는 건 게임에 없던 정보다.
즉, 어떤 일로 인해 카론을 배신하고 시궁쥐를 그만뒀다는 건데.
그 이유는 스칼렛이 찾고 있는 영원한 눈꽃일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촉박해진 스칼렛은 결국 카론에게 사실을 말하며 여동생을 살려 달라 했을 것이고.
카론은 그런 정보는 모른다는 대답을 했을 거다.
그 대답을 들은 스칼렛이 시궁쥐를 그만두는 건 당연한 처사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여동생을 살리는 일이니까.
‘그 과정에서 카론이 스칼렛을 그냥 놔뒀는지, 불구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스칼렛은 살아남아 대륙을 떠돌았고 마침내 영원한 눈꽃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딱딱하게 굳은 여동생의 조각상뿐.
그렇게 스칼렛은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린 채 대륙을 떠돈다.
죽지 못해 살아가던 스칼렛.
부족한 정보 때문에 여동생을 구하지 못했던 게 한이 됐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정보와 ‘신비(神祕)’에 집착하는 광기를 보여 준다.
특히, 신비를 얻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스칼렛이 ‘악마’와의 거래도 서슴지 않았다는 거다.
악마에게도 자신과 같은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면 정보를 통제한 인간들에게 복수하려 한 것일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내줬다.
그 결과 악마 군단의 힘이 더욱 강대해지게 되었고, 인간 연합군 측에서는 그 죄를 물어 스칼렛을 처형한다.
죽지 못해 살던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할 리 없다.
스칼렛은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을 슬퍼했을 뿐.
‘이게 바로 만물상, 스칼렛의 스토리지.’
처형당하기 직전에도 희귀한 물건들을 팔았다는 전설적인 일화는 덤.
아무튼, 스칼렛은 여동생을 구하지 못할 거다.
내가 돕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칼렛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기는군. 나는 물론, 카론 님조차 모르는 정보를 네가 갖고 있다니. 너 같은 꼬맹이한테 그런 정보가 있을 리 없다!”
“후후, 그러니 카론 선생과 거래가 가능한 거지요. 당신과 달리.”
“…….”
“지금까지 구하지 못했고, 카론 선생한테는 정보가 없고, 남은 기간은 1년 남짓.”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며 스칼렛을 압박했다.“후후, 당신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궁금해지는군요.”
“…….”
스칼렛이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카론과 시궁쥐, 그리고 나와 영원한 눈꽃. 그 둘을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는 중일 거다.
‘하지만 결국, 내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겠지.’
자칫 잘못하면 협박으로 들렸겠지만, 루시아와 카론이 나를 비호하는 걸 알게 됐으니 거물로 보일 터.
거물이 내미는 손은 협박이 아니다.
불운한 자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지.
“……널 위해서 일하라고 했었지. 정확히 어떤 종류의 일이지?”
“카론 선생에 대한 정보의 통제, 그리고 간단한 심부름 정도? 후후, 어때요. 별거 아니죠? 이야~ 고작 이런 일을 하고 여동생을 살릴 수 있다니. 저라면 백만 번은 더 했을 겁니다.”
찌릿-.
스칼렛이 눈을 흘겼다. 나도 마주 흘겨 주었다.
실눈이라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우…….”
스칼렛이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 정리를 끝마친 모양이다. 그의 선택은 당연히.
“……뒤처리가 쉽지 않겠군. 카론 님을 배신해야 하다니.”
“후후, 배신이 아닙니다. 저에 대해서 말할 게 생겼을 때, 제게 확인을 먼저 거치라는 뜻이죠.”
“그게 바로 배신이란 거다만?”
그런가? 뭐, 내 알 바는 아니다.
저건 스칼렛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
“내가 뭘 하면 되지? 아, 아니. 뭘 하면 되겠습니까?”
“말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이건 거래이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지. 자, 이제부터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지?”
“우선 저희가 거래를 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영원한 눈꽃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는 것도 당연히 비밀이 되겠죠.”
“내가 사적으로 영원한 눈꽃에 관해 묻는 건 괜찮다는 건가?”
역시 미래의 만물상. 눈치가 빠르다.
고개를 끄덕이자, 스칼렛이 만족하는 눈치를 보임과 동시에 감탄 어린 눈빛을 보냈다.
카론에게 물어보는 루트가 살아 있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
그리고 카론이 영원한 눈꽃에 관한 정보를 모르고 있을 거라는 걸 확신하는 나에 대한 감탄이다.
“되도록 실력을 숨겼으면 좋겠습니다. 1년 안에 시궁쥐에서 잘릴 수 있도록 자잘한 실수도 하시면 좋고요.”
“무능력한 척하라는 건가?”
“예, 아까 추리하셨던 걸 그대로 말하는 게 좋겠군요.”
“추리? 관리자급의 시궁쥐가 너와 끈이 있다는 것 말인가?”
“예, 당신의 이름은 다른 루트로 알아낸 거거든요. 애초에 그들이 저에게 정보를 팔 리도 없지만요.”
“……멍청한 추리였단 말인가. 뭐, 됐다. 변명거리를 안 만들어도 되니 도리어 편해.”
그 외에도 몇 가지를 얘기하며 입을 맞췄다.
카론은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니까 말이다.
“어수룩한 척, 카론 님의 눈에 들지 말 것. 그리고 다른 건 없나?”
물론, 스칼렛이 당장 해 주면 좋은 게 몇 가지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믿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야.’
이제 막 첫 번째 연결고리가 생겼을 뿐이다.
스칼렛에게 여동생이 소중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어마어마한 힘이나 보상이 눈앞에 있다면 그걸 취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이 힘을 이용해 영원한 눈꽃을 찾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란 원래 욕망에 충실한 존재니까.’
스칼렛이란 캐릭터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는 알지만, 성격과 성향을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막 첫 합을 맞추려는 관계.
어떤 면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이일 때보다 더 불안한 관계다.
그리고 이건.
‘스칼렛 쪽도 마찬가지겠지.’
신뢰를 쌓아야 한다.
영원한 눈꽃은 마법, 공학, 신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의 일종.
즉, 스칼렛의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신비’를 보여 주는 거다.
“동남쪽으로 약 3km 지점. 작은 신당이 하나 있을 겁니다.”
“신당?”
“예, 그 앞에서 삼백 번 절한 후 신당을 부수십시오. 그러면 작은 비석이 하나 나올 겁니다. 그걸 가져다주십시오.”
“……꺼림칙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카론 님의 눈길을 피해야 하니 시간은 좀 걸릴지도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그 비석에는 신비의 힘이 담겨 있다.
좀처럼 찾기 힘든 신비의 위치를 알고 있다?
스칼렛은 내게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낄 것이고, 영원한 눈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자연스레 올라가게 될 거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스칼렛을 영입한 이유다.
사사건건 의심하는 카론과 달리, 부담 없이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으니까.
‘중간중간 뺏기면 뼈 아픈 신비도 몇 개 있어. 만약 스칼렛이 그것을 빼돌린다면…….’
죽이고 뺏으면 된다.
그가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면 카론을 이용해 되찾을 거고.
스칼렛의 여동생은 어떻게 하냐고?
……알 게 뭐냐.
‘배신자의 여동생을 돌봐 줄 정도로 난 착하지 않거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스칼렛이 카론을 등진 건 그가 한 선택이며, 내가 그를 고용하기로 한 것 또한 나의 선택.
앞으로 서로를 배신하는 것 또한 선택의 일종이다.
서로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랄 뿐.
내 지시사항을 끄적이고 있는 스칼렛을 향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카론 선생이 지시한 게 있습니까?”
“지시?”
“예, 절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도통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그런 거 없다. 난 그저 너희들에게 맛있는 걸 먹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거든.”
카론이 그냥 한 끼 식사를 위해 시궁쥐를 이용했다고?
그럴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럼 절 공격한 이유는 뭡니까?”
“아아, 맞다. 깜빡했네. 네가 루나라는 애한테 손을 대려고 할 때마다 본때를 보여 주라고 하셨거든. 뭐, 내가 너를 신입 시궁쥐라고 오해한 탓도 있긴 하지만.”
루나라고? 하지만 스칼렛은 내가 레제에게 접근할 때마다 공격을 하지 않았었나?
“루나 양이 누구죠?”
“응? 귀엽고, 인기 많고, 매력적이고. 그런 애는 걔밖에 없잖아. 한 명은 군인 흉내를 내고, 한 명은 짐승이나 다름없었으니.”
그제야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야…… 그럼 루나에게 맛있는 한 끼를 먹이려고 시궁쥐를 이용한 거야?’
카론이라는 남자.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남자다.
스칼렛이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재밌어 보이니 그냥 두자.’
살짝 웃음을 흘리며 술집을 나섰다.
* * *
밖에 나오자마자 나를 마주해 준 건, 루나와 올챙이 배를 한 채 누워 있는 레제의 모습이었다.
루나가 나를 쏘아보았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다.
“후후, 루나 양?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아니, 한 놈 더 안 튀어나오나 해서.”
“예?”
“여자 셋을 튀어나오게 했잖아. 그래서 주인장도 튀어나올 줄 알았지.”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유리디아, 로델린, 시스콘 루시아까지.
진짜 나 빼고는 다 비정상인 세상이다.
“변태 짓은 여자로 충분하다는 건가…… 새로운 정보네. 남자에게도 당연히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사람을 대체 뭐로 보고! 난 여자가 좋단 말이다! 그것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후후, 변태 짓이라뇨. 전 그저 대화한 죄밖에 없습니다.”
“글쎄? 알렉스, 레이몬, 테르온, 다이크. 모두 너를 쳐다보기 바쁘잖아? 카론 선생님도 그렇고.”
루나가 힘차게 이어 말했다.
“특히 카론 선생님이 그래. 내 직감이 외치고 있어! 너한테 엄청난 관심이 있다고!”
제발 그 직감 좀 갖다 버렸으면 좋겠다. 하나도 안 맞으니까.
“이렇게 남녀 모두한테 변태 짓을 하다 잡혀가면 큰일인데…… 어떡하지? 족쇄라도 채워야 하나?”
“후후, 걱정 마십시오. 전 여자가 좋으니까. 물론, 루나 양은 빼고요.”
“날 왜 빼? 당장 다시 넣어.”
“예, 알겠습니다. 루나 양도 많이 좋아합니다.”
“흥! 나한테 빠지지 말라고 전에 말했을 텐데? 하여튼 너무 예뻐도 문제라니깐?”
“…….”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술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스칼렛이 소리쳤다.
“항상 몸조심해라!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내 몸과 마음, 모두 너한테 바칠 테니까!”
그러더니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간다.
뭘까. 민망함에 감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던 걸 지금 한 걸까?
볼을 긁적거린 후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루나와 레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루나의 눈동자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고 있다는 거다.
“루나 양?”
사사삭-.
그들을 향해 한 발짝 내딛자, 루나와 레제가 황급히 뒤로 멀어졌다.
“괘, 괜찮아, 제로. 난 친구의 취향은 얼마든지 존중하는 사람이거든.”
“예? 그게 무슨…….”
사사삭-.
한 발짝 걷자, 또 그만큼 거리가 벌어졌다.
뭐야. 이 거리는 뭔데!? 존중해 준다며! 아, 아니. 그렇다고 내가 그런 취향(?)이라는 건 아니지만!
“처, 천천히 와! 우리는 조금 앞에서 걸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기숙사로 향했다.
울고 싶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