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55)
제155화
155화. 악연(3)
제로 일행이 떠난 후, 술집을 원래 상태로 복구하던 스칼렛.
커튼을 치던 그는 문득 깨달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동자. 누군지는 안 봐도 뻔했다.
시궁쥐의 수장이자, 황제의 그림자, 그리고 자신에게 이번 임무를 준 자.
카론이다.
“오셨습니까.”
스칼렛의 인사에 카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스칼렛은 무언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밤이 되기도 전에 오셨네?’
그렇다. 마을은 현재 짙은 노을로 물든 상태.
이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다.
보통 시궁쥐가 활동하는 건 마을에 어둠이 내린 이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을 때부터이기 때문이다.
카론이라고 다를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얼굴이 흉터로 가득해 이목을 끌기도 하지만,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지. 저번에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을 보내도 충분했을 텐데…….’
그런데도 굳이 어둠이 깔리기도 전에, 그것도 직접 찾아왔다?
이게 의미하는 건 둘 중 하나다.
카론이 딱히 할 일이 없었거나, 아니면…….
‘이번 임무가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거나.’
보고를 빨리 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
스칼렛이 속으로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카론이 내 준 임무도 임무지만, 제로와 함께하기로 한 스칼렛이다.
이 사실을 들키게 된다면 영원한 눈꽃은 저 멀리 사라지는 건 물론,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터.
‘물론 아직 완벽하게 마음을 돌린 건 아니야.’
영원한 눈꽃에 대한 정보를 카론이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이게 자신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 줄 것이다.
문제라면 카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는 거?
스칼렛이 꼴깍 침을 삼켰을 때, 카론의 입이 열렸다.
“그래, 임무는 잘 수행했겠지?”
“헤헤, 제가 누굽니까? 당연히 완벽하게 수행했죠.”
“호오…….”
카론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루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건 물론, 제로에 대한 정보도 알아냈단 말인가?
‘루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건 쉬웠을 테지만…… 그 음흉한 놈에 대한 정보를 얻어 냈다?’
그렇다면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스칼렛의 실력이 출중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겠지.’
스칼렛이 너무 허접한 나머지, 방심하다가 말실수를 한 것.
그럴 확률이 높았다. 뭐, 어찌 됐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그래, 어떤 정보지?”
“제가 시궁쥐인 건 물론, 이름까지 알고 있더군요. 관리자급의 시궁쥐와 연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뭐라고?”
시궁쥐의 인원과 이름은 관리자급들만 알고 있는 최상위 정보.
스칼렛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누군가가 제로와 내통하고 있다는 거니까.
카론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현재 시궁쥐의 인적 사항에 접근할 수 있는 인원은 다섯 명뿐이다.’
그중 배신할 만한 시궁쥐는 없다.
있다면 자신처럼 거래를 하는 경우인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국에 없는 상태.
‘스칼렛에게 임무를 준 건 2주쯤 전이지. 그러니 멀리 있는 자들이 제로에게 정보를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게다가 이 한 명은 자신과 동고동락한 초창기 멤버이며 가족이 없으니 제로가 협박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나도 루나가 없었다면 그런 놈과 거래를 하지 않았을 테지.’
애초에 밖을 잘 나돌아다니지도 않으니 제로와 엮일 일도 없다.
잠시 이런저런 가정을 해 봤지만, 결론은 하나뿐이다.
카론이 스칼렛을 쓱 훑었다.
임무를 완벽히 해냈다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카론이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가 실수를 해 놓고, 그걸 모르는 거지.’
초짜 시궁쥐가 활동하다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본인 입으로 이름을 밝혀 놓고, ‘아니, 어떻게 알았지!?’하는 일이.
매 기수마다 한둘은 나오는데, 하필이면 그게 자신이 임무를 준 스칼렛일 줄이야.
카론은 두통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관리자급 놈들에게 확인은 해 보겠지만…….’
그 다섯 명이 자신을 배신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실수해 놓고 그걸 엄청난 정보라고 하며 들이미는 꼴이라니.
‘애초에 기대한 내가 멍청이지. 그놈한테서 정보를 빼내는 게 얼마나 힘든데.’
말단이 해내기에는 벅찬 임무였다.
스칼렛을 가볍게 흘겨봐 준 후, 다음 임무에 대해 물었다.
“……내가 직접 내부를 점검하도록 하겠다. 다른 임무는 성공적으로 수행했겠지?”
“루나라는 아이한테 맛있는 식사를 접대하는 것 말이죠? 당연히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카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건 힘든 임무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시궁쥐에게 맡길 만한 임무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보상으로 다음에는 좋은 임무를 줘야겠군.’
돈이 없는 탓에 아카데미에서 주는 급식으로만 생활하는 루나다.
질이 나쁜 건 아니지만, 비싼 음식을 먹지 못하는 건 분명한 사실.
그런 루나에게 고급 음식을 제공하다니.
카론이 속으로 만족의 미소를 띨 때였다.
“참, 앞머리 좀 자르고 다니라고 전해 주십시오.”
“음?”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더군요. 귀여운 외모가 빛이 바래는 것도 그렇지만, 눈이 보여야 무슨 대화를 할 것 아닙니까.”
“……?”
카론은 문득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자식 설마…….
“……루나라는 아이가 어떻게 생겼지?”
“예? 앞머리를 가리고 있는 아이잖습니까?”
“……!”
“귀엽고, 인기 있고,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곧잘 챙겨 주더군요. 그 음흉한 놈의 손길을 막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래, 네놈에게 향하는 내 손길도 막느라 힘들 것 같구나.
카론의 손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났다.
“……다른 아이다.”
“예?”
“그 아이는 레제, 그리고 분홍 머리의 트윈 테일을 한 아이가 루나다.”
“그, 그 왈가닥이 루나라고요?”
왈가닥이 아니다. 귀여운 아이지!
결국 참지 못한 카론이 스칼렛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임무를 수행하기는 뭘 수행했단 말이냐! 하나도 해내지 못했으면서!”
“끄, 끄아아아악!!”
카론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는커녕 두 임무 모두 실패. 그것도 대실패를 하다니.
‘이렇게 무능한 놈일 줄은 몰랐군. 물론 상대가 쉽지 않은 놈이긴 했지만…….’
카론이 ‘쯧’하고 혀를 찼다.
단 한 번의 임무로 사람을 평가할 만큼 카론은 박하지 않다.
시궁쥐의 임무가 워낙 까다로운 탓도 있지만, 성장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놈들도 많으니까.
‘세 번의 기회.’
그게 바로 카론이 인내할 수 있는 숫자이자, 스칼렛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첫 번째 기회는 완벽하게 날아간 상태.
앞으로 두 번 더 임무를 실패한다면, 스칼렛은 시궁쥐로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적당한 술집이나 하나 내어 줘야지.’
잠시나마 시궁쥐로 살아온 사람에게 보내는 예의이기도 하지만, 정보 수집을 위한 탓이 더 크다.
강제로 은퇴당한 시궁쥐는 정보 열람은 물론, 승진할 수조차 없다.
시궁쥐에게 정보만 제공하는 존재가 되는 거다.
“후우…… 아무튼 고생 많았다. 다음 임무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도록.”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회복하던 스칼렛이 눈을 빛냈다.
‘제로라는 놈의 말대로군.’
어수룩한 척하기에 성공했다. 이제 카론은 자신에게 관심이 조금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레제라고 알고 있던 아이가 루나고, 루나라고 알고 있던 아이가 레제라는 건 지금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제 자신에게 남은 일은 한 가지뿐.
당장이라도 떠날 듯한 카론에게 말했다.
“혹시…… 영원한 눈꽃에 대한 정보를 갖고 계십니까?”
“영원한 눈꽃? 내가 알기로는 없다.”
카론은 너무나도 쉽게 답을 내 줬다.
너무 실망이 큰 탓도 있었지만, 영원한 눈꽃은…….
“게다가 그게 실재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설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꽃 아니냐?”
“역시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스칼렛의 어물거리는 입.
그 모습을 본 카론이 눈을 빛냈다.
“혹시 제로, 그놈이 그걸 찾고 있더냐?”
“예,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참고로 이건 제로와 협의한 사항이다.
카론에게는 영원한 눈꽃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확인을 함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제로의 술책.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카론과 스칼렛은 제로의 술책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눈꽃이라…… 그게 실재했단 말인가? 한번 알아볼 가치는 있겠군.”
스칼렛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론이 모르는 정보를 제로가 갖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카론은 모르고 있을 거라는 걸 유추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말했을 때는 설화라며 웃어넘겼지만, 제로가 찾고 있다고 하니 바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라니…….’
그제야 스칼렛은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카론의 밑에서 일하며 제로에게 협조한다.
‘카론을 배신하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조각병에 걸린 여동생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스칼렛이 주먹을 꽉 말아 쥐며 다짐했다.
눈치가 비상한 카론이지만, 이러한 스칼렛의 생각은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막 초짜 시궁쥐가 된 놈이기도 하지만, 카론의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탓이 더 컸다.
‘내가 아닌 스칼렛에게 정보를 물었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다.
‘나에게 영원한 눈꽃을 찾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영원한 눈꽃이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손에 넣는다면…… 좋은 값으로 넘길 수 있겠군.’
물론, 제로의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알아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 스칼렛. 바로 이런 거다.”
“예?”
“이런 게 바로 내가 원했던 정보다. 임무는 성공한 걸로 쳐주마.”
정작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개판을 치긴 했지만, 제로에게 첩자를 심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내게 말했다는 건 그놈에게 알리지 말도록.”
“예, 물론입니다. 애초에 이제부터는 만날 일도 없을 것 같지만요.”
“말단이라 그런지 널 우습게 보는 것 같군. 종종 기회를 마련하도록 하겠다. 제로에게 정보를 얻어 내도록.”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론이 떠났다.
술집에 홀로 남은 그가 중얼거렸다.
“……개판이네.”
그렇게 스칼렛은.
본의 아니게 이중 첩자가 되고 말았다.
* * *
“우리 먼저 간다.”
“후후, 들어가십시오.”
여전히 올챙이 배를 유지한 채 힘겹게 소화를 시키고 있던 레제.
루나가 그런 그녀를 짐짝처럼 등에 업고 기숙사로 향했다.
‘늦었네.’
하늘이 별로 가득 찰 정도로 늦은 밤.
오랜만의 휴식이라며 떠들어 대는 루나 때문에 귀가가 늦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기숙사로 향하던 때였다. 기숙사 건물 구석, 으슥한 뒷골목.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곳에 있는 사람은.
쿠구구구구-.
……카론이었다.
왜 저렇게 강렬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후, 오늘따라 몸이 좋지 않군요. 어서 기숙사에서 쉬어야…….”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론이 내 뒷덜미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터억!
어두운 뒷골목에서 벽치기를 당한 나.
잠시나마 로델린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후후, 제가 아무리 미소년이라지만, 이런 고백은 곤란한데요.”
“내 고백은 머리에 단검을 쑤셔 넣는 건데, 그걸 원하나 보지?”
와, 놀라워라.
내가 알기로 사회에서는 그런 걸 살인이라고 말하기로 합의를 봤는데.
카론의 사회는 좀 많이 다른 모양이다.
“아주 재밌는 짓을 했더구나.”
레제를 루나로 착각한 스칼렛의 오해.
그걸 왜 안 풀어 줬냐는 말일 거다. 하지만.
“후후, 제 알 바입니까? 그놈이 멍청한 탓이죠.”
“그건 그렇지.”
카론은 빠르게 수긍했다.
루나와 레제를 착각하다니. 카론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거다.
“그동안 왜 보고를 하지 않은 거냐?”
“보고할 게 없었으니까요.”
“루시아에 대한 건?”
나는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카론이 오늘 온 건, 단순히 스칼렛 때문만이 아니라고.
“훈련한다는 건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보고할 가치가 없죠.”
“잘 알지. 하지만 루시아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이유를 모르지 않느냐. 그 루시아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라. 있을 수 없는 얘기지.”
“후후, 제가 귀여워서는 아닐까요?”
뿌잉뿌잉.
볼을 부풀리며 귀여움을 뽐냈다. 그러자.
뚜둑-.
카론의 머리에서 뭔가 끊기는 소리가 났다.
어라라. 너무 귀여웠나?
“……내 인내심의 한계를 보려는 모양인데, 방금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걸 알려주고 싶군.”
“실은 말입니다…….”
그동안 있던 일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아주 착한 학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