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56)
제156화
156화. 악연(4)
카론의 얼굴이 높다.
내가 무릎을 꿇고 있기 때문이다.
굴욕적이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진실한 자세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그때…….”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쿵떡쿵떡(?).
대화는 길었지만, 요점은 간단했다.
루시아 앞에서 [일섬]을 사용했다는 것, 한 달간 지도를 받기로 했다는 것, 술집을 기습 방문했을 때 스칼렛이 죽을 뻔했다는 것 등.
그간 있었던 일을 상세히 고했다.
물론, 몇 가지는 숨겼다.
루시드 가에 내린 악마의 저주, 하늘 가르기를 사용했다는 것, 루시아와의 동맹, 소원권 세 개, 가문과의 동맹 제의 등.
이 모든 걸 빼니 루시아가 우리를 가르치기로 한 이유가 비교적 빈약해졌지만…….
“루시아 앞에서 일섬을 사용하다니. 미친 게냐?”
“후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르침을 꼭 받고 싶었거든요.”
“……미친놈.”
[일섬]을 선보이자 루시아가 우리를 가르치기로 했다.이 정도로도 카론은 수긍했다.
루시드 가문이 레스터 가문과 내적 친밀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거래한다는 걸 루시아가 알았다고?”
“후후, 그렇습니다. 내용은 비밀에 부쳤지만, 내일 찾아오신다 했으니 어찌 될지 모르겠군요.”
“네놈이 사고 쳐 놓고 모른다고 하면 어쩌란 말이냐?”
쿠구구구구-!
카론이 또다시 짜증 가득한 기세를 내뿜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내 잘못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카론 선생님이 숨기신 시궁쥐가 죽기 직전이었거든요.”
“……쯧!”
그렇다. 내가 카론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걸 밝힌 이유.
스칼렛이 죽을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카론이 그곳에 시궁쥐가 있다며 귀띔을 해 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즉, 나는 무죄!
무릎에 힘을 주며 일어설 자세를 취했다.
사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
“앉아라.”
“예.”
다소곳이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카론은 추진력을 위한 무릎을 부수고도 남을 존재이기 때문이다.
“……좋지 않군.”
뭐가 좋지 않다는 걸까.
잠시 생각하던 카론이 입을 열었다.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꿨다는 것까지는 밝혔다고 했지. 그럼 나한테 시궁쥐 교육을 받고 있다고 변명하면 되겠군.”
“후후, 루시아 님은 믿지 않으실 겁니다. 거래라면 대가가 있기 마련인데, 제가 카론 선생님께 지급하는 대가가 없잖아요?”
“교육이 끝날 시, 시궁쥐가 되기로 했다. 이 정도면 루시아도 수긍할 거다.”
네 밑에서 일을 배우는 걸로도 모자라, 평생 부려 먹겠다니.
그것도 내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거라고 말하라니.
아무리 거짓말이라지만,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후후, 그런 미친놈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지금 내 앞에 있지 않느냐.”
“……?”
“걱정 마라. 그 빌어먹을 주둥이만 영입할 생각이니.”
……농담이겠지?
농담일 거다. 극악무도한 카론식 농담. 뭐 그런 거일 거다.
재미라곤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후후, 오늘 볼일은 이게 끝입니까?”
“……시건방진 놈.”
카론이 내게 뭔가를 던졌다.
작은 반지다. 곧장 [정보창]을 사용했다.
[이름 없는 신도의 반지 : B]이름 없는 한 신도가 기도를 할 때마다 착용하고 있던 반지.
신실한 기도에 감격한 신이 작은 기적을 내렸다.
6서클 급의 ‘실드’ 사용 가능.
재사용 대기시간 : 5분
‘훌륭한 보상이군.’
이전에 받은 것들에 비하면 아쉽긴 하지만, 방어가 가능한 아티팩트, 특히 ‘실드’는 가치가 높다.
목숨이 하나뿐인 나라면 더더욱.
그리고 보상이 주어졌다는 건…….
“칼로스에서 움직이는 시체의 존재를 확인했다. 빠르고 강하더군. 현시점에서는 장정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판단 중이다.”
“시궁쥐는 무사합니까?”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다. 인정하긴 싫지만, 네 덕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군.”
“후후, 그럼 부담 없이 받아도 되겠군요.”
“건방진 놈.”
하지만 내가 잘난 놈인 건 분명한 사실인걸?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내 손가락 크기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지구의 과학자들은 뭐하나. 이런 거 개발 안 하고.
돌아간다면 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특허를 내야겠다.
문과인 내가 분석하건대, 충분히 가능한 기술이다.
만드는 건 뭐…… 이과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토벌대를 구축 중이다. 조만간 출발할 예정이고.”
“빠르군요.”
“시간이 흐를수록 놈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적들의 전력을 모르니, 이쪽도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훌륭한 판단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현재 제국을 운영하는 자들은 생각하는 게 남다르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그런 뼈다귀 같은 것들을 왜 걱정한단 말이냐? 케헤헤!’라며 무시하다가 털리는 게 클리셰인데.
그러기는커녕 가용 가능한 전력을 투입하겠다니.
‘괜히 대륙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
기쁘면서도 나쁘다.
미래에 내가 상대해야 할 존재 중 하나가 바로, 이 ‘앤스우드 제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이 순탄치는 않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나도 토벌대에 합류할 예정이다. 아마 엘레스터 님도 자리를 비우게 되겠지.”
사실 나는 현재 칼로스에 얼마나 많은 언데드가 있는지 모른다.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이 이 시기쯤 그곳에서 병력을 만들고 있었다. 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하지만.
‘카론과 엘레스터까지 합류한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사천왕 중 한 명인 볼칸을 죽이는 거다. 그것도 2장 초반부에서!
물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카론과 엘레스터, 그리고 내가 모르는 인물들까지 칼로스에 뼈를 묻는다면?
‘최악의 난이도로 2장을 시작하겠군.’
그렇다. 아프긴 하겠지만, 게임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 도박은 충분히 해 볼 만한 도박이라는 뜻이다.
애초에 카론과 엘레스터가 죽게 내버려 둘 제국이 아니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안전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 못지않은 강자를 투입하는 것.
이게 베스트다.
“후후, 그럼 루시아 님도 함께하겠군요. 마침 이곳에 계시니까요.”
“아니, 루시아는 함께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보고를 올렸다.”
“……예?”
“우리끼리도 충분하다.”
뭐지. 미친놈인가?
루시아가 거절한다면, 내가 가진 소원권 중 하나를 사용해서라도 합류시키려 했다.
그런데 카론 쪽에서 거절하다니?
수상한 냄새가 가득 풍겼다.
“후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냐?”
“루시아 님과 무슨 사이이십니까?”
“……아무 사이도 아니다.”
와~ 한 살짜리 아기가 와도 거짓말이라며 손가락질하겠는걸?
호기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카론 곁으로 다가가 은근슬쩍 몸을 기댔다.
“후후, 루시아 님과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카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강하게 째려볼 뿐.
가슴이 아주 두근두근해질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다.
물론.
‘네가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호기심으로 인한 두근거림이지만 말이다.
“입이 근질거리는군요. 어쩌면 루나 양에게 카론 선생님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지도?”
쯧!
골목길을 넘어 기숙사까지 들릴 정도로 큰 혀 차는 소리.
카론이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말했다.
“……악연이다.”
“악연이요?”
“그래, 그것도 지독한 악연이지. 이제 됐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 난다는 듯 치를 떠는 카론.
하지만 그럴수록 내 호기심은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
“후후, 이건 모두 카론 선생님을 위해서라는 거,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나를 위해서라고?”
“예, 저에게 털어놓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구나. 조금만 더 있으면 입이 아주 찢어지겠어.”
이런, 아무래도 표정 관리에 실패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카론과 루시아가 악연이라는 건 게임에서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니까.
고인물인 나에게 있어 캐릭터들 간에 있었던 일을, 새로운 스토리를 궁금해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 카론이 대놓고 짜증 낼 정도라니.
내 직감이 외치고 있다.
둘 사이에 뭔가 엄청난(?) 게 숨겨져 있다고!
‘서, 설마!’
뜨거운 연인 사이였던 건 아닐까?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시대에 10~20살 나이 차이는 무난한 편에 속한다.
둘이 연인 관계였고, 한바탕 칼부림을 벌인 후 헤어진 거라면?
‘악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관계지.’
모든 퍼즐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 카론도 남자였던 거다!
‘뭐, 우리 루시아가 좀 예쁘긴 하지.’
제국의 시궁쥐가 여자 앞에서 쩔쩔매는 꼴이라니.
웃음이 절로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가뜩이나 안 되던 표정 관리가 더 힘들어지고 말았다.
계속해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갔다.
“후후.”
“…….”
“후후후후후후!”
“이리 오거라. 어차피 웃다가 찢어질 입. 내가 먼저 찢어 줄 테니.”
“후후,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정중히 거절하도록 하죠.”
“네게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아하, 그렇구나. 내 몸인데 권한은 너한테 있는 거구나?
그것참 신기한 일이네.
하지만 카론은 내 입을 찢을 수 없었다.
저벅-.
“하, 어디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 했더니만…… 더러운 쥐새끼가 돌아다니고 있었네?”
골목 입구에서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
조금 놀라긴 했지만, 경계 태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내가 잘 아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루시아 님?”
어두운 골목이기 때문일까. 불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루시아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 아이한테서 떨어져.”
짓씹듯 내뱉은 목소리. 그러자 카론이 곧장 나와 거리를 벌렸다.
카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순한 태도다.
역시 두 사람은 불타던 연인 관계…….
“뒤로 물러나렴.”
카론의 빈자리는 루시아가 차지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내 곁에 선 거다.
정확히는 내 앞에 선 채 카론을 경계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 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서로 마주치는 일 없도록 하자고.”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온 것이다만?”
“닥쳐.”
신기한 상황이다.
맞는 말을 했을 뿐인 카론에게 도리어 화를 내는 루시아의 모습도 그렇지만.
‘단순한 연인 관계였다기에는 너무 살벌한데.’
이 정도면 불타는 연인 관계가 아니라, 진짜로 주변에 불을 지르는 연인이 될 기세다.
그만큼 끝이 안 좋았던 걸까?
“얘한테 접근하는 이유가 뭐야?”
“나도 이 아카데미의 선생이다. 학생에게 신경 쓰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런 이유가 아니잖아? 늦은 밤에 이런 곳에서 만나는 것도 그렇고. 둘 사이에 했다는 거래 때문이지? 무슨 거래이길래 이런 곳에서 은밀히 대화를 하나?”
“……합법적인 거래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그래? 그럼 말해 주면 되겠네. 떳떳한 거래라면 내가 들어도 상관없잖아?”
“……그럴 이유는 없다.”
“하!”
루시아의 헛웃음이 골목길에 울렸다.
공기가 일렁거렸다. 마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큰 마나가 담겨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을 걸고 경고하겠는데, 이 아이한테 접근하지 마. 거래라는 것도 당장 때려치우고.”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있게 만들어 줘?”
빠지직-!
루시아의 온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찌릿찌릿하다. 온몸에 바늘이 박힌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루시아와 시선을 마주하던 카론이 몸을 돌렸다.
“……시간을 너무 허비했군.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다.”
“야! 내 말 들었어? 두 번 다시 접근하지 마! 이 더러운 자식!”
루시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론이 자취를 감췄다.
루시아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씩씩거리며 분노를 삭이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카론을 상대하는 것보다, 루시아를 상대하는 게 백만 배는 더 편하니까.
“후후, 뜨겁군요. 옆에 있던 저까지 불타 버릴 뻔했지 뭡니까.”
“장난칠 기분 아니거든? 마침 잘 됐다. 너 혼 좀 나야겠어.”
“예?”
“무슨 거래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그만둬. 단둘이 만나는 걸로도 모자라 저런 놈이랑 거래를 한다니. 제정신이니?”
단둘이 만나는 것조차 경계하다니.
참사랑이네, 참사랑이야.
“사랑 앞에서는 나이 따위,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하죠. 제가 항상 두 분을 응원하고 있다는 거, 말씀드렸던가요?”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쪽은 절대 아니거든? 저런 새끼랑 사랑이라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그럼 이제 누가 훈련시켜 주냐.
아무튼, 루시아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 추측이 틀린 모양이다.
과거에 헤어진 연인 사이가 아니라니.
그럼 왜 서로에게 악연이 된 걸까?
“왜 그렇게 카론 선생을 싫어하는 겁니까?”
“시궁쥐니까. 재수 없잖아.”
“후후,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던데요.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꾸는 저에게도 별말씀 안 하시지 않았습니까?”
“……레스터 가문. 그러고 보니 그 이유도 있긴 하네.”
카론을 싫어하는 이유에 레스터 가문이 포함된다고?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튀어나오다니.
아무리 히든 피스라지만, 이건 심하다.
삽으로 퍼서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친절한 게임이었던가?’
갑자기 불안해졌다.
보통 이런 행운이 연달아 온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찾아온 기회를 마다하지는 않을 거다.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그것도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니까.
“뭐야, 너 진짜 모르는 거야? 이건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정보인데. 너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지.”
그러니까 그게 뭔데. 이 여자야.
너희들끼리만 재밌는 거 알고 있지 말라고!
“괜찮겠어? 알면 엄청 충격받을 텐데. 뭐, 너랑 카론을 떨어뜨리는 게 목표니까 나는 말해 주는 게 더 좋긴 해.”
“후후, 지금까지 절 충격에 빠뜨린 건 루나 양의 얼굴뿐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군요.”
우리 루나가 한 얼굴(?)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루시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도 그녀를 따라 마주 웃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놀라게 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 루시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레스터 가문의 가주인 레니아 님의 목을 황제에게 진상한 놈…….”
루시아가 짓씹듯 내뱉었다.
“그게 바로 카론, 저 새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