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57)
제157화
157화. 악연(5)
‘미친.’
속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레스터 가문의 가주이자, 루나의 엄마.
레니아를 죽인 게 카론이었다니. 심지어 그 목을 황제에게 바치기까지 했다고?
K-드라마, 영화, 웹툰, 웹소설 등.
수많은 K시리즈로 단련된 나지만, 이번만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급이랄까.
“믿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야. 나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 진짜…… 참고 있기 힘들었지.”
루시아가 말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존경하던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도 화가 나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목을 들고 오다니.
루시아의 성격상 참은 게 용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내가 알던 게임 속 카론이라면 ‘당연히 그랬겠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각보다 정이 많고, 생각이 깊은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성질은 더럽지만 나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놈이랄까.
‘게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시궁쥐의 정점에 서 있지. 처음부터 레스터 가문이 누명을 썼다는 건 어렴풋이 눈치챘을 거야.’
물자, 병력, 작전, 혈맹 가문의 협력 등등.
반역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밑 준비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정보를 관리하는 카론이라면 이런 부분을 유심히 관찰했을 거고, 레스터 가문에서는 그런 낌새가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
게다가 레스터 가문은 앤스우드 왕국이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전부터 충성을 바친 가문이다.
그런 가문이 갑자기 반역을 도모한다?
카론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레스터 가문은 누명을 썼다는 걸.
‘레스터 가문이 그렇게 된 이유는 게임에서 공개됐어. 하지만 카론은 모르겠지.’
카론은 물론, 일을 주도한 아시즈 후작도 모를 거다.
아시즈 후작에게 명령을 내린, ‘그’가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의 정체와 레스터 가문을 멸문시킨 이유가 독백으로 공개되며 유저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지만, 일단 넘어가자.
지금 이 사건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아무튼, 무죄라는 걸 알고 있는 카론이 레니아를 죽인다?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야.’
즉, 카론이 레니아를 죽였을 확률은 낮다.
설사 그렇다 해도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다.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거나.
‘이유가 뭐가 됐든 조각을 모아야 한다.’
레니아, 카론, 루나, 그리고 미래에 밝혀지는 정보들.
카론이라는 거대한 퍼즐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나름 채우려고 애써 왔지만, 아직도 빈 곳투성이다.
한 70%는 빈 상태랄까?
카론이 워낙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만날 때마다 목을 꺾어대니 정보를 얻을 수 없는 탓이 더 컸다.
‘즉, 지금이야말로 퍼즐 조각을 수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루시아는 카론을 싫어한다.
조금만 호응해 주면 신나게 뒷담을 하며 정보를 뱉어 내지 않을까?
“레니아 님을 죽였다니. 아주 고얀 놈이로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아주 음험하고 음흉한 놈이라니깐?”
“성깔도 더럽고요.”
“말도 잘 안 통해! 진짜 답답한 인간이지.”
“후후, 아쉽게도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군요. 아직 카론 선생에 대해 잘 몰라서 말입니다.”
“그래? 아쉽네.”
루시아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음, 보아하니 10시간 정도는 거뜬히 뒷담화를 할 기세다.
“그래서 말인데…… 그때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좋아. 뭐, 이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니까.”
조금 더 뒷담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내가 카론을 멀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걸까.
루시아가 곧장 화답했다.
“카론은 레니아 님의 수급을 폐하에게 직접 바쳤어. 모두가 충격에 빠졌지. 그 레스터 가문이 멸문했다는 거니까.”
제국의 여덟 기둥 중 하나, 그것도 앤스우드 제국이 왕국일 때부터 헌신해 온 가문이니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레스터 가문의 친인척들은 순식간에 처형당했어. 귀족 재판이 있긴 했지만, 약식으로 처리됐지. 혈맹은 살아남긴 했지만…… 그 대가로 막대한 이권을 내어줬으니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아니,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
“예, 레니아 님은 당대 최강이라 일컫지 않았습니까? 카론 선생도 대단하긴 하지만, 비견되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레니아 님도 사람이야. 수백 명, 그것도 실력자들이 계속해서 몰려오는데 당해 낼 도리가 있나.”
그런 와중 카론이 기습을 가해 목숨을 빼앗았다?
딱히 지적할 게 없다. 조금 어설프긴 하지만.
“전투 현장에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듣기로는 현장이 엄청 지저분했다고 해. 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당연한 결과지만.”
반역자로 몰린 레스터 가문.
그들은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당당히 몰려오는 자들에게 맞섰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삼류 귀족들이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레스터 가문의 명망이 높기도 하지만, 가주인 레니아는 당대 최강이라 거론되던 사람 중 하나.
그런 레니아를 제압하고 목을 가져간다?
단숨에 유망한 귀족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내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멍청한 생각으로 갔다가 최후를 맞이한 거다.
멍청이다운 결말이라 말할 수 있겠다.
“포상을 노린 용병들도 많았겠지. 저택의 문밖으로 피와 정체 모를 신체 부위가 나뒹굴었다고 하니…… 아무튼, 굉장히 지저분했다고 해. 난도질당한 시체도 많다고 하더라고.”
“이상하군요.”
“뭐가?”
“일섬은 그런 기술이 아니잖습니까?”
일섬이란 기술은 기본적으로 공기의 압축 파동을 날리는 것.
그렇다면 깔끔하게 절단되거나 맞은 부위 전체가 없어져야 맞다.
그런데 난도질이라니.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실전은 그렇게 녹록지 않거든? 내가 원하는 기술만 펑펑 사용할 수 없단 말이야. 수백 명이랑 싸운다면 더더욱 그렇고.”
“흐음…….”
“그리고 자기네들끼리도 싸웠을걸? 가져갈 수 있는 목은 하나뿐이니까.”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느껴진 이질감의 정체를.
‘듣기로는’, ‘많았겠지’, ‘하더라고’, ‘싸웠을걸’.
그렇다. 지금 루시아의 증언은…….
‘추측, 추측, 그리고 또 추측이야.’
루시아가 직접 본 거라곤 ‘카론이 레니아의 목을 가져왔다’라는 것 하나뿐.
소문에 의존한 진술은 믿을 수 없다.
카론을 싫어하는 루시아라면 더더욱.
“그럼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군요.”
“생존자가 카론뿐이니까. 뭐, 다들 쉬쉬하면서 그렇게 추측한 거지.”
“흐음…… 이상하군요.”
“이상하다니? 야, 네가 더 이상하거든? 당당히 목을 들고 왔어. 그럼 죽인 게 누구겠니? 뻔한 거 아니야?”
루시아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누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레니아를 죽였다, 죄책감으로 인해 진범을 찾는 중이며, 최후의 생존자인 루나를 발견, 돌봐 주는 중이다?’
카론이 단순히 죄책감만으로 한 아이를 돌볼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가 죽인 사람들의 후손들을 모두 돌봐야 이치에 맞다.
임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죄 없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카론이 뒤를 봐주는 건 오직 루나 한 명뿐이다.
즉.
‘뭔가가 더 있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죄책감. 그런 건 부가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직감이.
루나를 챙겨 주는 ‘진짜 이유’.
이게 바로 카론을 공략하는 열쇠가 될 거다.
“아, 특이한 게 하나 더 있긴 하다.”
“뭐죠?”
“현장에 레니아 님의 시체가 없었다고 해. 카론이 가져온 목도 처형장으로 옮기던 와중에 사라졌고.”
시체가 사라졌다? 그것도 반역자의 시체가?
“뭐, 레스터 가문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빼돌린 거겠지. 워낙 사람들이 좋아하던 가문이니까.”
“……이번에도 추측이군요.”
“그럼 뭘 어떡하니? 하지만 시체가 사라졌다는 건 진짜야.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 관계자들도 처벌받았고.”
그나마 쓸 만한 퍼즐 조각을 얻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디다 끼워 넣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조각이기 때문이다.
“궁금한 건 다 물어봤지? 이제 내 차례야.”
“예?”
“궁금한 걸 알려 줬으니 너도 내 궁금증을 풀어 줘야지.”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죠.”
“치사하게 이러기야? 내일 대련할 때 안 봐준다?”
“후후, 얼마든지 하십시오. 성실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곤란한 질문을 해도 상관없다. 거짓말을 하면 되니까.
뭐, 애초에 루시아의 질문이 예상되기도 하고.
“저 새끼와 무슨 거래를 한 거야?”
카론과 무슨 거래를 했냐는 질문.
예상대로다. 심지어 조금 전 카론과 입을 맞춰 두기까지 한 질문 아닌가.
시궁쥐 교육을 받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아카데미를 졸업했을 때 시궁쥐가 되겠다는 것.
차분히 카론과의 거래를 설명했다. 그러자.
“저놈 밑에서 일하겠다고? 미쳤니?”
“후후, 전혀 안 미쳤습니다만.”
“아니, 전에는 그랬더라도 지금은 바뀌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가 되는 게 꿈이었다며? 그런데 레니아 님을 죽인 카론의 밑에서 일하겠다니! 이상하잖아!”
루시아의 말대로다.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후후, 오해일 수도 있잖습니까?”
“목을 들고 나타나 자기가 벴다고 자랑까지 했는데 오해는 무슨 오해!”
카론의 쿨한 성격상 자랑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즉, 저건 루시아의 뇌내망상으로 이루어진 거짓.
이쯤 되니 신빙성이 더욱 떨어진다.
‘뭐, 카론이 레니아의 목을 진상한 건 사실인 것 같지만.’
루시아가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 진짜 정신을 못 차렸네? 안 되겠어. 내가 카론이랑 한판 떠서 거래를 무효로 만들든가 해야지.”
“후후, 이길 자신은 있으신 겁니까?”
“쉽진 않겠지. 비장의 무기도 한두 개쯤 숨기고 있을 거고.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거든. 충분히 해 볼 만해.”
암살과 대인전에 특화된 제국의 시궁쥐 카론.
제국이 인정한 영웅이자, 제국 십검 루시아.
‘누가 이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긴 하지만…….’
둘이 싸우면 곤란하다.
둘 다 내 사람이니까.
“그 사람과는 싸우지 마십시오.”
“왜?”
“걱정되니까요.”
루시아가 움찔 몸을 떨었다.
왜 저러는 걸까? 순수한 걱정일 뿐인데.
“흐, 흐응…… 그래도 가르친 보람은 있네. 하지만 신경 꺼.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꿍얼꿍얼.
루시아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계속 중얼거렸지만, 내 관심은 이미 저 멀리 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조금 곤란한 상황이긴 하네.’
루나가 문제다.
그날 카론과 레니아에게 있었던 일을 알아내는 시간보다, 카론이 원수라는 사실을 루나가 알아차리는 시간이 더 빠를 테니까.
다른 걸 제쳐 두더라도, 레니아의 목을 카론이 황제에게 진상한 건 분명한 사실.
루나를 분노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할 거다.
‘원수…… 인가.’
카론이 루나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뒤에서만 바라보는 이유.
이렇게 퍼즐이 한 조각 맞춰졌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참 이상하게도.
“참,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가 누구인지 알려 줘야지.”
“예?”
“거래 조건 중 하나잖아!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마! 이건 반드시 알아야겠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랬지.
훈련, 소원권 세 개, 루시아와의 동맹까지.
그 대가로 루시드 가의 비밀을 함구하고,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를 알려 주기로 했었다.
원래라면 지금 말해 줬겠지만…….
‘곤란하네.’
등 뒤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루나가 레니아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루나! 저기 네 원수가 있다!’라고 외칠 것이고, 루나는 곧장 카론을 들이박을 것이다.
그사이에 낀 나는 개고생을 하게 될 거고, 최악의 경우 둘 모두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넘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까…….
“떠나기 직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어째서?”
“제가 실질적으로 얻은 게 없지 않습니까.”
훈련은 진행 중이지, 소원권은 나중에 쓸 거지, 동맹은 티도 안 나지.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가진 걸 내어드릴 수는 없지요. 그러니 훈련을 다 끝마친 후, 떠나기 직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 진짜 죽을래?”
루시아가 내 머리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뒤로 미룬 뒤 마지막 날 루시아와 루나의 접근을 막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말해, 말하라고!”
탈탈탈-.
물론, 그 대가는 내 소중한 머리털이었다.
* * *
제로의 머리털을 한 줌 뽑아 온 루시아.
그녀가 그걸 허공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아오, 짜증 나! 하여튼 시궁쥐란 것들은…… 아니, 저놈이 시궁쥐는 아니지만……!”
자질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걸 이번 대화를 통해 깨달은 루시아였다.
“인정하면 어떡해! 기분이 더 나빠졌잖아!”
“후후, 분노는 피부에 좋지 않습니다만?”
루시아가 눈을 흘겼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 준 유모. 그녀가 어느새 자신의 곁에 서 있었다.
“유모, 그 말투 좀 그만 써 주지 않을래?”
“후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매력적인 말투더군요. 제가 완벽하게 익혀 가겠습니다. 이곳을 떠난 뒤에도 제로 군을 잊지 못하도록 말이죠.”
“……하아.”
루시아는 그냥 두기로 했다.
카론과 제로를 떼어 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제로 군과 잘 지내고 계신 것 같던데. 진전은 좀 있으신지?”
“진전은 무슨 진전. 나이도 나이지만, 그런 수상쩍은 놈은 절대 안 된다고.”
“제로 군이 대체 어디가 수상쩍죠?”
“그야…….”
잠시 생각하던 루시아.
이내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제로가 우리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어’라고 한다면?
유모의 걱정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루크 후작에게 보고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결국, 루시아의 선택은…….
“비밀이야.”
유모의 눈이 옆으로 쫙 찢어졌다. 동시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흥미로운 걸 발견한 눈치다.
“호호, 유모인 저에게까지 비밀이라니. 벌써 그런 걸 가지는 사이가 되신 겁니까?”
“그런 비밀이 아니라…….”
“더 많은 비밀을 가지세요. 예를 들면…… @#$%라든가?”
“꺄, 꺄악! 유모!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루시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너무 엄청난(?) 말이라서 그런 걸까. 머리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이만 귀가하실 겁니까?”
“음…….”
루시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라면 침대에 드러누운 채 귀여운 델린이를 괴롭힐 시간.
하지만.
-후후, 오해일 수도 있잖습니까?
문득, 제로의 말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유모, 카론이 지금 어딨는지 알아?”
“……!”
유모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했다.
루시아가 카론을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유순한 태도를 보이는 걸로도 모자라 만나기까지 하겠다니.
“주변에 있는 시궁쥐를 한 놈 잡으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카론의 위치를 말하는 건 금기사항.
하지만 엘레스터 급의 강자에게는 말해도 상관없다는 게 카론의 지시사항이다.
강자가 카론을 찾는다면, 그만큼 긴급한 상황이라는 거니까.
그리고 그건 루시아에게도 통용되는 규칙이라는 걸 유모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설사 안 된다 해도 강제로 입을 열게 할 생각이다.
루시아가 정신적인 성장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카론을 만나 봐야겠어.”
“함께하겠습니다.”
“혼자 가도 되는데?”
“아가씨를 지키는 것. 그게 제 존재 의의니까요.”
유모가 싱긋 웃음을 흘리더니 사라졌다.
시궁쥐를 잡으러 간 것이리라.
‘나를 지키는 게 유모의 존재 의의라…….’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쁜 말이다.
유모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루시아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유모, 그거 알아?
가족을 지키는 게 내 존재 의의야. 그러니까.
유모를 지키는 것 또한.
“내 존재 의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