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61)
제161화
161화. 악연(9)
제국의 탄생일을 맞아 열린 파티.
제국의 귀족들은 물론, 성국, 왕국, 공국에서 보낸 사절단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파티장을 돌아다녔다.
카론 또한 그들 못지않게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론 왕국의 재무대신인 도노반이군.’
요주의 인물 중 하나다.
“칵테일 한잔 드시겠습니까?”
“음, 고맙군.”
“테이블이 더럽군요. 치워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아무튼, 그게 바로 저희가 최근 개발하는 품목입니다. 공국 측에서 달란 항구를 개방해 주신다면…….”
카론이 테이블을 정리하는 척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카론이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그들은 카론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 달 동안 30kg을 빼고 어깨뼈를 탈골시키며 체구를 줄이고.
여기에 특수 분장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평범한 시종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역시 달란 항구인가. 저번에 입수했던 정보가 맞는 것 같군.’
제국이 관리하는 항구의 세금이 비싼 탓에 새로운 교역 루트를 찾는 거다.
달란 항구가 작긴 하지만, 1~2년 정도 땅을 다진다면 충분히 교역로서의 기능은 가능한 곳.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당분간 항구의 세금을 인하해야겠군. 공국의 개발 의지를 완전히 꺾으려면 몇 달 정도는 면세 혜택을 줘야 할지도.’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세금을 어느 정도나 깎아 줘야 할지, 면세 혜택을 줄지 말지, 한다면 몇 개월을 지속할 것인지.
이런 건 전문가들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정보를 습득, 진위를 판별해서 넘기는 일을 할 뿐.
카론은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지금처럼 영양가 있는 정보를 얻을 때도 있지만, 90% 이상은 쓸모없는 정보였다.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입을 조심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다른 나라에서 보낸 쥐새끼들의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처리하지 못한다.
파티가 끝난 이후에도 제국에 남아 있다면, 그때 처리할 뿐.
‘작년보다 더 많이 온 것 같군. 거짓 정보를 더 많이 뿌려야겠어. 시궁쥐를 몇 놈 더 투입하자고 보고를 올려야…….’
카론이라고 처음부터 시궁쥐의 정점에 섰던 건 아니다.
이제 막 초짜 티를 벗고 중간 관리자로 임명된 상태.
아직 한창 뛰어야 할 때라는 뜻이다.
문득, 누군가가 그런 카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인글라스를 든 채 수십 명의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여자.
레스터 가문의 가주, 레니아다.
“…….”
카론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레니아를 처음 본 건 아니다.
레스터 가문 사람들이 폐쇄적이라고는 하지만, 몇몇 파티에는 꼭 얼굴을 비추곤 했다.
게다가 레니아는 스무 살 때부터 가주의 자리에 올랐으며, 당대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히던 사람 중 하나.
귀족회의, 파견, 임무, 파티 등.
간간이 레니아의 얼굴을 본 카론이다.
하지만 오늘도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임무를 수행 중이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을 계속 바라보다니.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주변 사람들은 그런 카론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카론의 행위에 동참하는 이가 많았다.
멍하니 레니아를 바라보는 일 말이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최고로 손꼽히는 검술가, 빼어난 외모, 쉽게 만날 수 없는 탓에 생긴 신비한 이미지까지.
안 쳐다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때문에 카론의 이러한 행위는 지적받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받았다.
‘자연스러운 연기’였다면서.
오히려 다른 시궁쥐들이 크게 혼이 났다.
정보를 얻는 것에만 급급한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쩍은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고생했다. 조금 쉬고 오도록.”
그 덕분일까.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카론은 조용한 곳을 찾아 헤맸다. 파티장의 소음 때문에 피곤해진 귀를 쉬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적절한 곳을 찾아냈다.
휘영청 한 달빛이 내리쬐는 기나긴 복도.
파티장에 온 사람이 모여 있는 탓일까.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문제라면 오늘이 만월이라는 거?
창문이 나 있는 곳마다 새하얀 달빛이 들어오며 복도를 밝게 비췄다.
‘너무 밝군.’
시궁쥐에게, 더러운 일을 하는 자신에게 빛은 어울리지 않는다.
카론이 선택한 곳은 기둥 뒤였다. 기둥 뒤로 난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췄다.
기둥에 기댄 채 잠시 휴식을 취하던 때였다.
또각-.
옆에 있는 창문 쪽에서 난 소리.
카론은 저 소리가 굽이 높은 구두, 하이힐이 만들어 낸 소리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여긴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파티에 지친 사람이 쉴 공간을 찾다가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게 풀릴 문제다.
순식간에 한 건의 사건을 해결한 카론.
이내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긴 3층인데.’
반대편 복도 쪽에서 걸어온 건 아니다.
인기척이 없었기도 하지만,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긴 복도에서 하이힐 소리를 숨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귀신 같은 건 믿지 않는 카론이다.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침입자인가?’
3층에 있는 창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레이디는 흔치 않다.
레이디로 위장해 파티에 잠입한 침입자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게 이치에 맞았다.
기둥 뒤에 숨은 채 슬쩍 눈을 내밀었다. 그리고.
……침입자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음? 시궁쥐셨구나. 나 누군지 알죠?”
놀람은 잠시뿐이었다. 침입자가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스터 가문의 가주, 레니아 드 레스터.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카론은 이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존재.
그런 사람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것도 모자라, 말까지 섞다니.
“아아, 잠시 쉬러 왔어요. ‘레니아가 농땡이를 쳤다, 엄한 벌을 내리는 게 좋아 보인다’라는 보고는 안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어색한 상황을 풀기 위한 레니아의 가벼운 농담.
이에 대한 카론의 답변은…….
“부, 불가합니다.”
거절이었다. 사실 레니아가 농담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 정도는 농땡이에 속하지도 않고.
하지만 카론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바보 같은 대답을 하는 것도 모자라 말까지 더듬다니!’
감정이 없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 카론이다.
그런 자신이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카론 그 자신조차 놀랄 정도였다.
“에? 너무하시네요. 같은 일하는 사람끼리 좀 봐주시지…….”
레니아가 울상을 지었다.
그제야 카론의 정신이 돌아왔다.
적응했기 때문이 아니다. 레니아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같은 일이요?”
“예, 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잖아요. 시궁쥐들은 정말 대단하단 말이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의욕적으로 달려드시니. 음음! 최고예요.”
기본적으로 시궁쥐란 존재는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존재다.
전투보다는 잠입, 위장, 선동, 암살 등. 불명예스러운 일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부끄러운 일을 할 뿐입니다.”
“어째서 부끄러운 일이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충성을 다하는 거잖아요.”
“…….”
“심지어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항상 최선을 다한다니. 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카론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피하려 한 게 달빛인지, 레니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본 레니아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뭐야, 직업병이에요? 왜 어두운 곳에 들어가고 그래요?”
직업병.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레니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감화되었다는 게.
황제의 도구로 사는 자신이 어쩌면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은 그럴 필요 없잖아요. 이리 나와서 같이 쉬어요.”
레니아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새하얀 달빛으로 반, 어둠으로 반씩 물들어 있었다.
빛과 어둠, 양지와 음지.
섞일 수 없는 두 관계를 레니아는 너무나도 쉽게 뚫고 들어왔다.
카론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이 만남은 악연일까, 아니면 인연일까.
조심스레 레니아의 손을 잡았다.
빛을 향해서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어둠.
빛을 갈구하며 살아온 자신에게.
빛이 먼저 다가온 날이었다.
* * *
웅성웅성-.
수군수군-.
자와자와(?).
주말이 지나고,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온 교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이 아닌, 짐승을 보는 듯한 눈빛이랄까?
“아니, 글쎄 루나 양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지 뭐예요?”
“어머, 어머!”
“하여튼 남자는 다 똑같다니까요? 현모양처를 몰라본단 말이죠!”
소문의 근원지는 안 봐도 뻔했다.
유리디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그녀가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맛 좀 보라는 태도다.
“문어발이라니. 최악이에요.”
“문어발도 적죠. 소문에 의하면 스무 명에게 마수를 뻗쳤다고 해요.”
“스, 스무 명이나요?”
“그렇다니까요.”
“그렇다면 저건 문어가 아니네요. 그래요, 크라켄! 크라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어요!”
“크라켄 제로! 얼굴처럼 무시무시하네요!”
수군수군-!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다들 너무하네. 크라켄이 뭐람?”
그게 거슬렸던 걸까. 옆에 있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오오, 루나야. 나를 위해서 화를 내 주겠다는 거구나?
역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러운 법이다.
저 나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라고!
“아무리 네 얼굴이 엉망진창이어도 그렇지. 못나긴 했지만, 그래도 오징어 정도는 된다고!”
……음, 아무래도 내 자식 농사는 실패한 것 같다.
언제 한번 갖다 버리든가 해야지.
“온다!”
소란스러웠던 반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카론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갑작스럽지만, 오늘은 기초 체력 테스트를 보겠다.”
“에에?”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대충하지는 말도록.”
평소 실전과도 같은 훈련을 지향하는 카론이다.
그런데 갑자기 체력 테스트라니?
“격투가 포함된 테스트일지도 몰라.”
“기사 5종 경기일지도.”
“설마 장애물 경주라든가?”
하지만 카론이 준비한 테스트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교관들의 지휘 아래 코스를 가볍게 돌뿐이었다.
심지어 점수도 기록하지 않았다.
‘숨어 있는 부상자를 가려내기 위함일 뿐이니까.’
그렇다. 게임 속에 있는 에피소드다.
‘그걸’하기 전, 평균을 깎아 먹는 아이들을 골라내기 위한 밑 준비.
‘이번에는 달리기인가.’
두 명이 함께 달리며 경쟁하는 달리기.
준비를 하던 내 옆에 테르온이 자리했다.
“쿡쿡! 요즘 바빠 보이시는군.”
“후후, 테르온 군만 하겠습니까.”
“아니, 연애를 하는 사람이 가장 바쁘지. 안 그런가? 크라켄 제로.”
……이 빌어먹을 놈이?
“후후, 당장 유리디아파로 가고 싶어지는 별명이로군요.”
“그런 별명을 지어 준 쪽으로 가겠다니. 매도하는 별명을 좋아하나?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더 심한 걸로 정해 줄 수 있는데.”
“예를 들면요?”
“글쎄. 더블 크라켄은 어떤가?”
결정했다. 난 오늘부터 유리디아파의 선봉에 선다.
테르온파를 분쇄하는 데 온 힘을 다할 거다.
“장난이라고, 친구.”
“후후, 저도 장난으로 테르온파를 분쇄하려고 합니다만?”
“그거 무섭군. 기대하겠네. 물론, 크라켄으로서의 활약을 말이야.”
호각이 울리자마자 테르온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거 보이세요?”
“네, 엄청 친해 보이네요.”
“크라켄의 다리에는 남자도 예외가 없다는 걸까요!”
“어머 어머!”
……하여튼 이놈의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정상인이라곤 나 하나뿐이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00m 달리기 기록, 45초.
음, 걸은 것치고 잘 나왔다.
“뭐야? 진짜 이걸로 끝?”
“상점도 없네. 괜히 열심히 했나?”
카론의 의도를 모르겠다며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당황스러운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시작됐군. 성국의 아이들이 곧 도착하겠어.’
그뿐만이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중간고사가 미뤄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성국의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한 가지 사건이 더 존재한다.
“중간고사가 미뤄졌다. 그리고…….”
우수반을 재정비하기 위한.
“쪽지 시험을 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