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62)
제162화
162화. 쪽지 시험(1)
“중간고사가 미뤄졌다고요?”
“어, 어째서죠?”
“쪽지 시험은 또 무슨…….”
“날짜는요? 설마 내일은 아니겠죠?”
혼란에 빠진 아이들이 제각기 질문을 쏟아 냈다.
이에 대한 카론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쪽지 시험은 일주일 뒤, 어떤 시험을 보는지는 비밀이다.”
“그, 그게 무슨……!”
“시끄럽군.”
서늘함을 넘어 섬뜩한 카론의 목소리.
시끄러웠던 훈련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소음을 틈타 제각기 불만을 토로하던 아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문 거다.
“시험의 의미가 뭐냐.”
“……재능, 실력, 지식의 수준이나 정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알아보는 것이죠.”
“그런데 내용을 미리 알려 주면 무슨 의미가 있지?”
“하, 하지만…….”
“불만이 있다면 손을 들고 얘기해라. 비겁하게 군중 사이에 숨어 떠들지 말고.”
이쯤 되자 훈련장이 조용함을 넘어 고요해졌다.
나 또한 조용히 있었다.
‘쪽지 시험을 보는 이유와 어떤 시험을 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연이 활약하는 스토리가.
번쩍!
유리디아가 손을 들었다. ‘번쩍’이라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당당하게.
아이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카론에게 반기를 들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어디 한번 지껄여 봐라. 벌점이란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유리디아 앞에 자리한 카론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마주하는 것조차 벅찬,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다.
하지만 시선을 마주한 유리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상하네요. 지금 저희가 묻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 그럼 무슨 의미지?”
“지금까지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중간고사가 미뤄진 건 딱 세 번뿐입니다.”
유리디아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군단장 강림, 아카데미 암살자 습격 사건, 그리고 도론 왕국과의 전쟁.
긴 역사만큼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던 아카데미이지만, 중간고사가 미뤄진 건 유리디아가 말한 세 가지 사건뿐이다.
웬만한 일로는 앤우드 아카데미의 일정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중간고사가 미뤄졌다는 건 저만한 일이 터질 조짐…… 또는.
“이미 터졌다는 뜻이죠. 저희가 모르는 대형 사고가.”
“…….”
“그러니 학우들이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희에게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번에 치르는 쪽지 시험이…….”
국가의 위기, 그를 넘어선 대륙의 위기라면.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니까요.”
훈련장이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쪽지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본디 공포는 전염되기 마련인 법.
“저, 전쟁이라고?”
“겁 없이 제국을 노리는 곳이 있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현재 제국은 대륙을 통일하고도 남을 전력이라고 모두가 평가하는데!”
“남은 건 악마뿐인데…… 설마 군단장이 강림했다거나?”
“그, 그러고 보니 최근에 악마가 습격하는 일도 있지 않았어?”
아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약 40년 전, 로한 왕국에 강림했던 5군단장 크롤리.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지만, 군단장이 위험하다는 건 똑똑히 알고 있었다.
군단장의 위엄은 그 정도였다.
전쟁을 겪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 정도로.
“쯧, 아직도 답답한 놈들 천지구나.”
그런 그들을 진정시킨 건 카론의 혀 차는 소리였다.
“우수반이라고 좀 다를 줄 알았더니…… 일반반 아이들과 다를 게 없군. 유리디아!”
“네, 듣고 있습니다.”
모두가 유리디아가 벌점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에게 상점 2점을 부여하겠다.”
“……?”
유리디아가 받은 건 벌점이 아닌 상점이었다.
“제가요? 어째서죠?”
“자기 목숨줄을 남에게 내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숨줄?”
“그렇다. 임무가 무엇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는 법이다. 명령이라고 무조건 따랐다간 죽기 십상이니.”
“하지만 선생님께서 윽박지르며 질문을 막으셨잖아요?”
“그래, 목숨줄을 다 버렸지. 유리디아, 너만 빼고 말이다.”
몇몇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의 말을 이해한 거다. 물론,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목숨줄을 함부로 남에게 맡기지 마라. 이번에는 유리디아가 너희들이 버린 목숨줄까지 다 주워 들어서 살 수 있겠지만…… 이런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을 거다.”
카론의 말을 듣던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사가 추가됐네?’
게임에서는 ‘그래. 목숨줄을 다 버렸지. 유리디아, 너만 빼고 말이다’로 끝내는 카론의 혀가 제법 길어졌다.
‘사실 이 부분에서 카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저들도 많았지.’
카론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찾는 유저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료에게 도움받는 것도 좋지만, 동료 한 명이 수십, 수백 명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면 그만큼 부담이 심해지기 마련이지.”
“…….”
“적어도 우수반의 아이라면, 자기 목숨줄은 자기가 챙기란 말이다! 전쟁터에서도 이럴 거냐?”
잘못을 깨달은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나는 그 와중에도 감탄하기 바빴다.
‘엄청 친절해졌네? 뭘 잘못했는지까지 다 알려 주고.’
나를 통해 사천왕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탓일까, 아니면 볼칸과의 싸움을 앞둔 탓일까.
카론치고 엄청나게 친절해졌다.
물론, 아이들은 느끼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그리고 바뀐 건 대사뿐만이 아니었다.
“유리디아가 부담을 지게 된 만큼, 그만한 대가는 제공해야겠지. 유리디아!”
“네, 선생님.”
“3단계의 쪽지 시험 중 1단계에 대한 힌트를 주겠다. 수업이 끝난 뒤 나에게 오도록.”
훈련장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쪽지 시험이 무려 3단계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중 1단계 시험에 대한 힌트를 유리디아가 받게 됐기 때문이다.
‘유리디아가 받게 됐다는 건, 유리디아파 전원이 알게 됐다는 말과도 같지.’
테르온파와의 경쟁에서 월등히 앞설 수 있는 기회.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테르온이 곧장 손을 들며 물었다.
“3단계라니. 쪽지 시험 치고는 규모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렇지는 않다. 하루 만에 끝날 시험이니까.”
“……3단계의 시험이 하루 만에 끝난단 말입니까?”
아이들이 더욱 혼란에 빠졌다.
엄청나게 어려울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싫은 사람은 빠져라. 성적에는 포함되지 않는 시험이니. 다만…….”
다만?
“우수반의 인원이 바뀔 뿐이다.”
“빠질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거잖아요!!”
결국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우수반이 받는 혜택이 크기 때문이지.’
장학금부터 시작해서 품위 유지비, 귀족, 정계, 재계, 상업계 인사들과의 만남, 파티장 초대, 졸업 이후 취업과 창업 지원까지.
지금은 1학년 1학기라 관련 에피소드가 없지만, 2학년 이후부터는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수반 인원이 바뀌는 건 기말고사 이후잖아요? 그런데 중간고사 이전에 바꾸겠다니! 이건 불공평합니다!”
카론에게 대놓고 불평을 토로할 정도이니, 우수반의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카론은 가볍게 그들을 무시할 뿐이었다.
“쪽지 시험을 잘 보면 그만 아니냐?”
“그, 그렇긴 하지만…….”
“입학시험 때처럼 열심히 응하면 계속 남아있을 수 있을 거다. 이상,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교실을 떠나는 카론의 뒤를 유리디아가 따라나섰다.
쪽지 시험의 1단계 힌트를 듣기 위해서다.
동시에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특히, 테르온이 있는 곳이.
“어쩌죠? 유리디아파가 앞서게 생겼습니다.”
“쪽지 시험이지만 카론답게 실전이겠죠?”
“3단계 전부가 실전이라니…… 큰일이군요.”
“유리디아파에 속한 아이들 중 상당수가 일반반이죠. 만약 그들이 올라온다면…….”
테르온파가 전체적으로 뛰어나다고는 하나, 우수반에서 숫자가 밀린다면 앞으로의 싸움은 순탄치 않을 터.
분위기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마라. 고작 1단계 아니냐.”
“그,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정보가 아닌, 힌트를 준다고 했다. 카론 선생의 힌트가 쉬울 리 없지.”
한 에피소드를 맡는 주연급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추리력이 비상하다.
“그렇군요. 테르온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오히려 이번 시험은 우리의 세력을 불리는 계기가 되겠지. 일반반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하도록. 오늘부터 훈련에 들어간다.”
“넵!”
아이들의 불안감을 순식간에 걷어낸 테르온이 위풍당당하게 교실을 나섰다.
상당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걸? 카론은 이미 모든 정보를 내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3단계, 하루 만에 끝나는 시험, 그리고 입학시험 때처럼 응하라는 것.
그렇다. 쪽지 시험의 정체는 바로…….
‘입학시험의 진화 버전.’
미궁, 환상 마법, 그리고 단체 결투.
비밀 시험과 필기시험을 제외한 3종목의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카론은 쪽지 시험에 관한 모든 내용을 알려준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유리디아가 어떤 힌트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히든 피스가 발동한 것으로 보아 유리디아에게 유리한 쪽으로 스토리가 전개될 터.
테르온은 생각보다 훨씬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뭐, 지금은 저쪽을 걱정할 때가 아니야.’
미궁과 환상 마법 시험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체 결투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래대로’ 스토리를 진행했다면 말이다.
‘루시아의 히든 피스. 이것과 연계될 확률이 높다.’
루시아가 떠나기까지 앞으로 8일, 그리고 쪽지 시험까지 7일.
기가 막힌 우연이다. 아니, 이 정도면 의도됐다고 봐야 한다.
미궁과 환상 마법에서 루시아가 나올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세 번째인 단체 결투에서 루시아가 등장한다는 얘기인데…….’
스탯이 오르긴 했지만, 루시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아니, 솔직히 말해 0이다.
미지수라는 단어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암담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후후, 미치겠군요.”
“새삼스럽긴. 너 원래 미쳐 있었잖아. 더 미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
……그래.
고맙다, 루나야.
* * *
식사 이후 도착한 훈련장.
평소와 다른 게 두 가지 있었다.
주말에 휴식을 취한 레제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는 것, 그리고.
“끄응…….”
루시아가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
이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 있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다니.
“후후, 오늘은 서쪽에서 해가 떴나 보군요.”
“실례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러다 맞으면 안 아프니?”
루시아가 땀을 닦아 내며 다가왔다.
“왔니? 알아서 훈련하고 있어. 내가 한 명씩 봐 줄 테니까.”
“후후, 갑자기 웬 훈련이십니까?”
“아아, 긴급 토벌 임무가 생겼거든.”
“토벌이요?”
“응, 뭔지는 비밀. 그래도 너희 훈련은 다 봐 주고 갈 거니 걱정 말고.”
이 시기에 있는 토벌이라면 단 하나뿐이다.
카론을 통해 내가 만들어 낸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 토벌전.
‘루시아가 합류하기로 했나? 절대 안 한다더니…….’
어제 헤어진 후, 카론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지도 모른다.
상처 하나 없는 몸과 분위기를 보니 그렇게 나쁘게 끝난 것 같지도 않아 보이고.
‘진짜로 사천왕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토벌대의 전력은 모르지만, 엘레스터, 카론, 루시아 만으로도 1개 군단급의 전력이다.
준비가 부족한 네크로맨서만큼 쉬운 존재도 없을 터.
클리어에 대한 희망이 쑥쑥 자라날 때였다.
“아, 그리고 너희 둘의 시험은 내가 직접 볼 거야.”
“예?”
“쪽지 시험 말이야. 각오해 두라고. 최상의 몸 상태로 임할 생각이니.”
……돼지 루시아에게 인정받기도 힘든데 전력을 회복한 루시아에게 인정받으라니.
돼지 루시아를 사람 루시아로 만드는, 또 하나의 히든 피스를 찾았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