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163화. 쪽지 시험(2)
“음, 잘하네. 이 정도면 감은 잡은 것 같고…… 연습만 꾸준히 하면 되겠는걸?”
“가, 감사합니다아…….”
루시아의 도움 아래 훈련을 마친 레제가 숨을 헐떡였다.
동시에 머리 위에 난 바보털이 축 늘어졌다. 임무를 끝마쳤다는 것처럼 말이다.
‘……저건 대체 뭘까?’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참 신기한 머리카락이다.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만약, 탈부착이 가능한 거라면 내가 장착해서 위험을 회피…….
“너 지금 무슨 생각하냐?”
서늘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루나의 목소리다. 저 멀리서 훈련을 하고 있던 애가 언제 내가 있는 곳까지 온 걸까.
턱-.
“응? 응?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렇게 음흉한 눈빛을 보낸 걸까? 나도 좀 알자.”
내 오른쪽 어깨에 고개를 올린 루나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주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후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아주 변태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던데. 그것도 내 친구를 바라보면서 말이야.”
“오해입니다. 제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선량한 눈망울을 보십시오!”
이래 봬도 대한민국에서 순수함의 대명사로 불린 나다.
어느 여자나 나를 보면 경계를 풀고 몸과 마음을 의지했달까?
별명도 무려 ‘안전한 남자’.
그 정도로 순수하고 순박한 나였다.
뭐? 저 별명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안전한 남자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 리 없다.
아무튼, 순수함이 가득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을 때였다.
“……뭐가 보여야 선량한지 더러운지 판단을 하지.”
맞다, 나 실눈캐지.
하여튼 이 빌어먹을 실눈이 문제다.
실눈만 아니었더라도 내 무죄를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토로하던 때였다.
잠시 생각하던 루나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일단 물어뜯을게.”
“예?”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변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거라면 미수범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은 거잖아? 그럴 수는 없지.”
아하, 그렇구나. 죄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물어뜯고 보겠다는 거구나?
솔로몬도 울고 갈 명쾌한 판결이다.
물론, 다른 의미로 운다는 뜻이다. 이런 무지성한 판결이라니.
솔로몬이 울거나 말거나. 루나는 입을 오물거리기 바빴다.
나를 물어뜯기 위한 밑 준비를 시작한 거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루나는 나를 이갈이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요새는 좀 잠잠하다 싶었는데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뭐, 마음대로 하라지.’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된 나다.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이 정도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앙.”
“……?”
하지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루나가 살살 깨물었다. 간지럽다고 느낄 정도로.
내가 당황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왜 귀를 무는 거야?’
정상인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물었다.
“후후, 루나 양?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응? 깨물고 있잖아. 왜? 이 정도도 아파?”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네. 앞으로 네가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이렇게 귀를 깨물 거야. 물론, 큰 잘못을 했을 때는 내 주먹이 가만있지 않겠지만.”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루나가 나름대로 생각해 낸 해결책이라는 걸.
‘가문이 멸문한 이후 루나는 쭉 혼자였지.’
그래서일까.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할 줄 아는 애정 표현이라고는 때리고 욕하는 것밖에 없는데, 친구 사이에 계속 그러다간 언젠가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걸 깨달았을 거다.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미움받기는 싫고.
그래서 해결책으로 가져온 게 바로.
“앙.”
……귀를 살살 깨무는 폭력(?)인 모양이다.
‘나 잘했지? 칭찬해 줘’라는 표정을 짓는 건 덤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귀엽기 짝이 없는 생각과 행동이다.
하지만 이런 꼴을 다른 사람 앞에서 보였다간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터.
‘특히, 유리디아 앞에서는 절대로 보이면 안 된다!’
소문,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는 걸 보고 있자면 기가 찬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라는 속담을 ‘유리디아’로 대체해도 좋을 정도랄까.
고개를 흔들어 루나를 떨쳐 낸 후,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방법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고민했다는 건 칭찬해 줄 만한 일이니까.
본디 아이란 칭찬을 먹고 자라는 법.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고 칭찬할 때였다.
까득-.
……손가락을 물렸다. 그것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프게.
“후후, 이번에는 왜 아프게 깨무십니까?”
“건방지잖아. 감히 내 머리를 쓰다듬다니. 어딘가 뿌듯한 미소도 마음에 안 들고.”
“깨문 채 말하지 마십시오. 아픕니다.”
“지금 건 아프라고 깨문 거니까 당연하지.”
손가락을 빼내려고 애썼지만, 루나의 머리가 딸려 올 뿐. 빠질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하늘 높이 치켜들어도 대롱대롱 매달릴 기세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내 손가락이 뚝 떨어져 나갈 테니까.
설마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새 훈련을 시작한 루시아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놀랍네.’
평소라면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며 놀렸을 루시아다.
그런데 놀리기는커녕 진지하게 수련에 임하다니.
‘어쩌면…… 생각보다 큰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도?’
루시아의 심경이 변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변화라는 건 분명하다.
운이 좋다면 1장에서 사천왕 중 한 명을 처치, 안 그래도 강한 루시아가 계속해서 강해지며 적을 하나둘 쓰러뜨려 나간다면…….
‘클리어가 꿈이 아닐지도 몰라.’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강해져야 한다. 나비효과에 쓸려 나가지 않도록.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잘근잘근-.
내 손가락을 이갈이 대용으로 사용하는 미친 고양이…… 아니, 루나.
이 아이와 함께 최종 보스전까지 가야 한다니.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루나 양, 그만 놓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제가 잘못한 게 없는 건 사실이니까요.”
“잘못한 게 없긴 왜 없어!”
“후후, 그럼 제가 뭘 잘못했죠?”
“그야…….”
루나의 눈동자가 옆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잠시 우물거리던 루나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친구니까.”
“예?”
“친구니까 손가락 정도는 물 수 있는 거잖아!”
……그건 대체 어느 나라에 존재하는 친구 사이니?
친구도 하루 만에 멀어지겠다!
꽈득!
자기가 말해 놓고도 민망했던 걸까.
얼굴이 시뻘게진 루나가 이에 더욱 힘을 줬다.
“잘못했다고 말해!”
“아아아! 아까 말했잖습니까! 아픕니다! 진짜로 아파요!”
“진심이 안 담겨 있어!”
큰일이다. 이러다 진짜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게 생겼다.
그때였다.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레제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레제의 손을 잡아 올린 후, 검지를 깨물었다. 입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의 세기.
힘 스탯이 낮은 레제로서는 내 이를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이, 이 변태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친구끼리 손가락 정도는 물 수 있는 거라면서요?”
“레제는 너랑 친구가 아니잖아! 나랑 친구라고!”
“후후, 지금부터 친구 하기로 했습니다.”
“이, 이 변태 자식이! 당장 그 더러운 입 떼!”
계획대로다. 레제를 지키기 위해 루나는 내 손가락을 놓을 거고, 그때 빠르게 도망치면 된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그런데.
덥석!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제가 느닷없이 루나의 검지를 물었기 때문이다.
당황을 넘어 황당한 상황.
의문은 레제가 직접 풀어 주었다.
“루, 루나 양은 제 친구예요!”
그제야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니까 손가락 정도는 물 수 있는 거잖아!’라는 루나의 황당한 주장.
그걸 진짜로 받아들인 거다.
그렇게 셋이 서로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문제는 그중 한 명이 나라는 거?
“내 친구 손가락 당장 놔! 안 그러면 이거 잘라 버린다!”
“후후, 먼저 놓으십시오.”
“치, 친구니까요!”
셋이서 서로의 손가락을 문 채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드르륵-.
훈련장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진짜 누군지 모르겠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
정체불명의 사람이 우리의 곁에 섰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빙글빙글 도는 것뿐.
설마 저 사람도 끼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때였다.
퍽!
“쿠웩!”
내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누군가가 내 몸을 걷어찼기 때문이다.
쿠당탕!
동시에 우리는 원심력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손가락이 자유를 되찾은 거다.
해롱해롱한 와중에도 꾸벅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후후,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덕분에 악귀에게 손가락을 빼앗기지 않았군요.”
“난 그쪽이 아니라 이쪽에 있다. 그리고 누가 악귀라는 거냐? 설마 저 아이는 아니겠지?”
나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워낙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제국의 시궁쥐 카론. 그가 내 앞에…… 아니, 뒤에 서 있었다.
“후후, 손가락을 물어뜯는 게 악귀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
따악!
카론이 곧장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진짜 억울하다.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후후,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시다니. 그리고 왜 저만 때리십니까?”
“쯧, 보나 마나 네놈이 원흉일 게 뻔하지 않느냐.”
이건 명백한 차별이다. 잘못은 쟤네들이 했단 말이다.
나는 그에 휘말린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고.
“응? 뭐야? 여기까진 웬일?”
카론을 발견한 루시아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단순한 물음이지만, 루시아의 태도가 변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순해졌네? 저번까지만 해도 당장 죽일 것처럼 굴더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럴 때는 게임이 아닌 게 아쉽다.
게임이었다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공유할 정보가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벌건 대낮에 찾아오다니. 너무 티 내는 거 아니야? 기밀이라며?”
“눈은 지워 뒀다. 우리가 지금 만났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다.”
“흐응~ 그런 것치고는 보는 눈이 많은데? 뭐, 한 명은 기절한 것 같지만.”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의 토벌전을 앞둔 상황.
루시아에게 토벌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목적으로 온 모양이다.
“2주일밖에 안 남았잖아? 그런데 아직도 토벌대 인원이 확정되지 않았단 말이야?”
“어쩔 수 없다. 어중이떠중이는 데려가 봤자 방해일 테고, 당장 합류할 수 있는 실력자도 흔치 않으니.”
“그럼 소수 정예인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런데…… 공유할 정보는 이것뿐?”
“그렇다.”
“뭐야. 정보라고 할 것도 없잖아? 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거슬리니까 빨리 가. 집중에 방해되니까.”
투덜거린 루시아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루시아는 모르는 듯하지만, 나는 카론이 여기까지 온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정보도 아닌 정보를 알려 주는 것, 그리고 겸사겸사.
루나를 보러온 거겠지.
“카론 선생님, 안녕하세요!”
루나의 인사가 너무 밝았던 탓일까. 카론이 헛기침을 했다.
“으, 으흠, 으흠! 그래. 오늘도 열심이구나.”
“예, 쪽지 시험이 있잖아요? 뭐, 루시아 님이 떠나기 전에 한 가지라도 더 배우고 싶은 탓도 있지만요.”
“쪽지 시험이라…… 말했지만, 3단계의 시험이다. 하루 만에 끝나기도 하고.”
“예, 알고 있어요. 우수반에 꼭 들어서 카론 선생님의 수업을 계속 들을 테니 걱정 마세요.”
뒷짐을 지고 있는 카론.
그의 뒤에 서 있었기에 볼 수 있었다.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이놈 설마…….
“흠흠, 단계별로 나뉘어 있는 데다가 하루 만에 끝나는 시험이라니. 어디서 해 본 것 같지 않니?”
“뭐, 보통 시험이 다 그렇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하다만.”
나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했듯, 쪽지 시험은 입학시험의 진화판이다.
그런데 그걸 공개하다니.
힌트를 얻은 유리디아와 멋지게 아이들을 통솔한 테르온이 뭐가 된단 말인가?
‘……역시 로리콘인가?’
카론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미소년인 나도 그의 공격 범위(?)에 들어갈 테니까.
그 뒤로도 카론이 열렬히 노력했지만, 루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우리 루나에게 ‘눈치’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결국 카론은.
“시, 시험은 공부했던 것에서 나오는 법이지! 예를 들면…… 이, 입학시험 때라든가?”
“입학시험……?”
힌트가 아닌, 정답을 알려 줬다.
하지만.
“아! 입학시험만큼 힘들다는 거군요! 준비를 아주 철저히 해야겠네요!”
“그, 그게 아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카론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루나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아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