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64)
제164화
164화. 쪽지 시험(3)
어떻게든 정보를 알려 주려는 사람과 눈치라곤 1도 없는 사람의 싸움.
승자는 당연히.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
“……그래.”
루나였다. 카론과 대화를 끝마친 그녀가 자리를 떴다.
원심력에 의해 나가떨어진 레제를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
보기만 해도 답답했던 대화.
하지만 카론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뿌듯한 아빠의 미소랄까?
물론,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후후후.”
“……뭐냐. 그 눈빛은.”
“제 눈빛이 보인단 말입니까? 실눈이 보인다니. 참 신기한 일이군요.”
“건방진 놈.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쪽지 시험은 결코 쉽지 않을 테니.”
“그럴 것 같긴 합니다. 입학시험의 진화판이니까요.”
카론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힌트를 너무 많이 줬군.”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가볍게 호응했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루나 덕분에 알게 된 척 연기하는 거다.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에 대해 또다시 지옥의 심리전이 시작될 터.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나였다.
“이만 가 봐야겠군. 네놈도 열심히 하도록 해라.”
카론이 몸을 돌렸다.
진짜 치사한 놈이다. 본인의 볼일이 끝나자마자 떠나려 하다니.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루시아를 통해 얻은 ‘레니아의 죽음’이라는 퍼즐 조각.
그걸 이용해서 카론이라는 퍼즐을 맞춰야 한다.
이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스토리를 알고 싶은 고인물의 욕망이 피어오른 탓도 있지만.
‘운이 좋다면 카론을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몰라.’
제국의 시궁쥐와 같은 편이 된다?
웬만한 정보는 우습게 얻을 수 있을 거다.
카론이 훈련장 입구를 향해 몇 걸음 내디뎠을 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진짜 놀랐지 뭡니까?”
“……?”
“레니아 님의 수급을 취한 자가 카론 선생님이었을 줄이야. 이야~ 진짜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쪽으로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나 봅니다.”
몸을 돌린 카론이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노려보는 쪽에 더 가깝긴 했지만 뭐, 일단 걸음을 멈춰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루나가 있는 쪽을 살짝 흘겨본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놀라운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지금까지 그걸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그러고 보니 루시아가 그랬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건이라고.
그러니 카론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내어 준 정보만 해도 상당하니까.’
수상할 정도로 좋은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아이.
그러니 자신이 레니아를 죽였다는 정보는 당연히 갖고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개미굴에서 나를 살려 준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꿨다고 말한 나다.
그런데 자신이 레니아를 죽였다는 걸 알면서도 당당히 접근한다?
나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
카론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기밀급의 정보는 알고 있는데 기밀이 아닌 정보는 모른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심할 단계까지는 아니다.
이런 일로 의심을 하기에는 우리 사이가 제법 단단한 탓도 있지만.
애초에 정보란 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치중되기 마련인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너는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꿨었다고 했지. 그래서, 이제 복수라도 할 생각이냐?”
“그럴 리가요. 오히려 확신이 섰습니다.”
“확신?”
“예.”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며 입을 열었다.“당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확신…… 말입니다.”
카론의 분위기가 변했다. 의도한 대로다.
지금 나는 더없이 진지한 상태다. 누명을 뒤집어쓴 거라면 말해 봐라. 내가 들어 주겠다.
[눈 뜨기] 스킬은 위 문장을 함축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카론의 속마음을 듣기 위한 스킬의 활용.
하지만.
“숨겨진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죽였고, 목을 진상했다. 그것뿐이다.”
카론은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짜 짜증 나는 인간이다. 좀 말해 주면 어때서.
“후후, 단순한 죄책감 때문에 루나 양을 보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죠.”
“……보호한 적 없다.”
루나에게 종결급 아티팩트를 주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진짜 뻔뻔한 놈이다.
뭐, 다음 말을 듣고도 계속 뻔뻔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후후, 원수 중 한 명이 카론 선생이라…… 루나 양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군요.”
“……!”
카론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시에 굳었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이 잔뜩 간 거울을 보는 것만 같다.
사람의 표정을 묘사할 때 이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저런 표정은 난생처음 봤으니까.
‘이런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는데. 그만큼 루나에게 미움받기 싫다는 건가?’
이 자리에 보는 눈이 없었다면, 내 목이 180도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정이 변한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일그러진 얼굴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일까. 카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도발 하나는 수준급이구나. 네놈이 그 사실을 루나에게 알려 줄 리 없는데 말이다.”
“후후,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나와 거래를 하며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지.”
놈들.
레스터 가문을 모함하고, 반역죄로 몰아넣은 놈들을 말하는 거다.
“루나가 나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된다면 앞으로 정보 교류에 큰 차질이 생기겠지. 네놈이 그런 멍청한 행동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정답이다. 나는 루나에게 카론이 레니아를 죽였다는 사실은 말해 주지 않을 거다.
하지만 카론이 생각한 이유와는 조금 다르다.
나는 이미 레스터 가문을 그렇게 만든 ‘원흉’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루나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을 뿐이야.’
그렇다. 카론이 레니아를 죽였다고는 하나 그런 상황을 만든 건 그 나쁜 놈들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레니아를 죽이게 된 것일 터.
그러니 카론이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루나는 카론을 복수의 대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해서 엄마를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카론이 레니아를 죽였다는 사실을 루나에게 말하지는 않을 거다.
‘카론이라면 단번에 내 의중을 파악할 줄 알았는데…….’
한순간뿐이었지만, 카론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만큼 루나를 아낀다는 것일 터.
“맞습니다. 루나 양이 적개심을 품어야 할 건 다른 놈들이죠. 레스터 가문을 그렇게 만든 더러운 놈들 말입니다.”
“…….”
“그러니 그날의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루나 양이 이해해 줄지도.”
루나를 이용해 카론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저 아이가 이해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완고하다.
이 이상 압박했다간 진짜로 목이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일단,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뭐, 됐습니다. 제가 알아내면 되니까.”
“그만둬라. 지나간 일을 들쑤셔 봤자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과거는 돌리지 못하더라도, 앞으로의 관계에 개선이 있을 수는 있죠. 평생 비밀을 감춘 채 루나 양 곁에 있을 생각이십니까?”
“…….”
카론이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런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속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대가 받을 상처도 그에 비례해 커진다는 걸 모르는 걸까?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카론에 대한 퍼즐 조각을 모으는 건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다.
그러니 다른 일,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야.’
첫째, 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인 ‘루시아에게 인정받기’.
이건 일단 패스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기도 했지만, 돌파구가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째.
‘저 빌어먹을 개복치 토끼를 어떻게 우수반에 합격시키는가인데…….’
중간고사 때 사건이 터지는데, 현재 내가 한 설계대로라면 개미굴 때처럼 폭업이 가능하다.
우수반 아이들끼리 조를 편성하게 되니, 레제의 승급은 필수적.
즉, 레제는 이번 쪽지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우수반으로 승급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생겼습니다.”
“뭐냐?”
“먼저 확답을 받아야겠습니다. 쪽지 시험 전까지 제가 원하는 걸 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충분히 구해 줄 수 있는 것 같구나.”
역시 카론이다. 척하면 척.
기간이 촉박한 만큼, 내가 상식선에 부합하는 부탁을 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네놈이 충분한 대가를 내어준다면 말이지.”
“어떤 질문이든 답해드리겠습니다. 아, 레스터 가문에 관한 질문은 빼고요.”
“선택적 정보 제공이냐? 아주 시건방진 행동이로구나.”
10초쯤 지났을까. 카론이 말을 이었다.
“좋다, 원하는 게 뭐지?”
“우선 환영 마법을 막는 중급 아티팩트 세 개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시험을 날로 먹겠다는 거군.”
그의 말대로다.
앞서 말했듯 이번 쪽지 시험은 입학시험의 진화판이다.
미궁, 환영 마법, 그리고 결투.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환영 마법이 그렇다.
‘아티팩트만 있다면 손쉽게 공략할 수 있어.’
루나는 물론, 레제도 충분히 버텨 낼 수 있을 거다.
“멍청하긴. 아티팩트를 금지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게냐?”
“후후,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허용하기로 결론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시험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것 또한 실력이니까.
그렇다. 쪽지 시험을 공지한 오늘, 이미 시험은 시작된 상태였다.
쪽지 시험에 관한 내용을 유추하는 것 또한 시험의 일부라는 뜻이다.
‘입학시험 때는 부정한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한 아이들이 있었지. 그래서 엘레스터가 강한 마법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평범한 환영 마법진이다.
중급 아티팩트 정도면 충분히 환영 마법을 극복해낼 수 있을 거다.
“멋대로 생각해라. 건방진 놈.”
“반응을 보아하니 제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찍었는데 맞히다니. 이야~ 제 찍기 실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미처 몰랐지 뭡니까?”
“닥치고 원하는 거나 계속 말해라.”
공감을 해 주기는커녕 욕설을 박다니.
이래서 T가 안 된다.
‘유리디아 같은 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속으로나마 아주 심한 욕을 해 줬으니까.
“냄새를 없애 주는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그 외에 또 다른 건?”
“없습니다.”
카론이 품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네모난 모양의 작은 통이다. 겉에는 정체불명의 하마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정보창.’
[순백의 하마 : D]한 마법사가 지독한 발 냄새를 없애기 위해 개발한 아티팩트다.
냄새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청결도 +10%
냄새를 제거하는 아티팩트.
카론이 갖고 있는 게 놀라운 건 아니다.
서민들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저급 아티팩트이기도 하지만.
‘카론은 암살자니까.’
은밀히 활동해야 하는 그들에게 냄새는 금물.
냄새를 지우는 건 필수적이다.
그래서 항시 소지하고 있었고, 내게 그걸 던져 준 거다.
“환영 방어 아티팩트는 최대한 빨리 구해 주도록 하겠다.”
“후후, 감사합니다.”
아티팩트를 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카론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건 어디다 쓸 생각이냐?”
어디다 쓸 예정이냐고? 그야 당연히.
“후후, 비밀입니다만?”
카론의 얼굴이 짜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