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65)
제165화
165화. 쪽지 시험(4)
“건방진 놈. 별게 다 비밀이구나.”
카론이 코웃음을 치더니 팔짱을 꼈다.
전혀 관심 없다는 듯한 태도.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미친 듯이 궁금해하고 있네.’
카론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궁, 환영, 결투.
총 3단계로 진행되는 쪽지 시험.
환영 마법을 막는 아티팩트는 그 쓰임새를 알겠지만, 내가 조금 전에 받은 [순백의 하마]는.
‘어느 시험에서 사용할지, 어떻게 사용할지. 그 쓰임새를 알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카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건방진 놈. 내가 네 얄팍한 생각 하나 못 읽을 것 같으냐?”
“후후, 그렇습니까? 그럼 말씀해 보시죠. 제가 이걸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 같습니까?”
[순백의 하마]를 카론의 눈앞에서 흔들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도무지 그 쓰임새를 알 수 없기 때문일 거다.
‘생각대로 잘 안 될 수도 있어. 2장에서 이 방법을 시도하는 건 처음이니까.’
하지만 계획대로 잘 풀리기만 한다면.
‘카론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을지도?’
그렇다. [순백의 하마]는 3단계, ‘단체 결투’의 시험관.
카론에게 써먹기 위한 아티팩트다.
[순백의 하마]를 순순히 내어 준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물론, 어디까지나 계획대로 잘 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대충 알겠군. 하지만 말하지는 않겠다. 네게 힌트를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후후, 그렇군요. 방 냄새 제거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는데 말이죠.”
“쯧!”
카론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혀를 찼다.
“그럼 이제 대가를 지불할 차례군.”
“후후,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나 말고 아는 시궁쥐가 더 있느냐?”
나는 질문에 감춰진 카론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술집을 운영하며 정보를 모으는 스칼렛.
관리자급의 시궁쥐가 나와 연이 있다는 헛발질을 했고, 그걸 그대로 카론에게 보고하라고 했던 나다.
‘내부적으로도 점검은 마쳤겠지. 그런데도 물어보는 건가.’
꼼꼼해도 너무 꼼꼼하다.
뭐, 그런 만큼 더 신뢰하며 일할 수 있는 거지만.
“없습니다. 아, 스칼렛 군을 제외하고 말이죠.”
“역시 그랬나. 멍청한 놈 같으니.”
내가 아닌, 스칼렛을 말하는 거다.
자기 이름을 실수로 떠벌려 놓고 책임을 회피하는 중.
그렇게 판단을 내렸을 거다.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스칼렛이 카론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될 테니까.
카론의 눈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활동 반경은 더 넓어질 터.
“다른 질문은 없으십니까? 한 개는 더 제공할 의향이 있는데요.”
“달아 둬라. 다음에 합산해서 큰 정보를 요구할 생각이니.”
“후후, 두려워지는군요.”
이걸로 모든 볼일이 끝났다.
‘안 그래도 카론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찾아와 줄 줄이야.’
나는 [정신 방어] 스킬이 있어 상관없지만, 루나와 레제는 환영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상태.
카론을 찾아가 아티팩트나 약초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훈련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겠네.’
쪽지 시험 3단계, 단체 결투의 시험관 카론.
지금 스토리로 보건대, 내 상대로는 카론이 아닌 루시아가 등장할 거다.
그것도 돼지 루시아가 아닌, 영웅 루시아가.
‘어떻게 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훈련을 할 때마다 스탯이 올라가니 손해는 아니야. 다른 가문의 비기를 사용해서 놀라게 만들어야 하나? 응……?’
[신의 모방]으로 모방할 수 있는 수백 개의 스킬을 두고 고민하던 와중.문득, 카론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집에서도 그렇고…… 저런 쪽이 취향이었나? 어울리지 않는군.”
“예?”
“아티팩트 세 개. 그중 한 개는 저 조용한 아이 거겠지. 그렇지?”
카론이 가리킨 조용한 아이는 바로 레제였다.
보아하니 술집에서 일어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을 뽑으시오’ 사건 때 내가 레제를 골랐다는 것도 보고받은 모양.
“그렇긴 합니다만…….”
“챙겨 주는 여자가 갈수록 늘어가는구나. 과연, 크라켄 제로라 불릴 만해.”
이야~ 오늘 만들어진 내 새로운 별명을 알고 있다니.
역시 카론의 정보망은 엄청나다.
그럼 내가 저 별명을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
그런데 그걸 숨겨 주기는커녕 당당하게 입 밖으로 내다니.
진짜 개자식이다.
“후후, 루나 양에게 비밀을 말해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군요.”
“크큭,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거라. 이 크라켄 자식.”
“후후후후후…….”
“크크크크큭……!”
서로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인 상황.
그런 우리 사이에 루나가 끼어들었다.
“야! 선생님한테 뭐 하는 거야? 어서 사과드려!”
“후후,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만?”
“그래? 선생님, 이 말이 사실인가요?”
“어른에 대한 공경이라곤 없지 뭐냐.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구나.”
카론이 루나의 뒤쪽에 자리 잡더니, 입 모양으로 ‘앤우드 아카데미의 전설, 크라켄’이라고 벙긋거렸다.
저 빌어먹을 자식이?
억울해서 안 되겠다. 당장 루나에게 카론의 못된 점을 알려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제대로 혼 좀 나야겠어.”
그렇게 말한 루나가 내 옆에 까치발을 들고 섰다. 그러더니.
앙.
……내 귀를 물었다.
아프지는 않다. 살살 물었으니까.
‘부드럽네.’
아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느낄 새가 없었지만, 두 번째가 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귀가 살짝 축축해지더니, 이내 끈적하게 변했다.
침이 늘어지는 끈적한 소리가 그 끝을 모르고 조금씩 강해졌다.
게다가 청각을 담당하는 귀에 입이 닿아 있기 때문일까.
루나의 작은 숨소리까지 세세하게 들려왔다.
‘오, 뭔가 새로운 것에 눈을 뜰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카론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유리디아 말고 이런 꼴을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가 한 명 더 있었다.
살인 전차, 카론.
눈앞에 있는 남자였다.
뚜둑- 뚜두둑-!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그의 체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전투태세에 들어간 거다. 물론, 상대는 나였다.
“이, 이건 제가 의도한 게 아닙니다.”
“…….”
“보, 보십시오! 전 가만히 있었을 뿐이란 말입니다!”
“변명은 지옥에서 듣겠다.”
카론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큰일이다. 배드 엔딩 루트다.
농담이 아니다. 카론은 게임에서 ‘배드 엔딩 메이커’라 불리는 남자.
스토리를 잘 진행하고 있을 때마다 불현듯이 나타나 목을 꺾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카론이 내 목을 양손으로 붙잡았을 때였다.
“응?”
킁킁-.
루나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카론에게로 향했다.
그러더니 개처럼 냄새를 맡는다.
“뭐, 뭐 하는 거냐?”
“음? 이 냄새가 아닌데…… 뭐지? 선생님, 혹시 향수 바꾸셨나요?”
고개를 치켜든 채 물어보는 루나.
그제야 카론이 내 목에서 손을 뗐다.
“그, 그런 건 쓰지 않는다.”
“그래요? 이상하네. 평소랑 냄새가 다른데.”
“……시간을 너무 허비했군. 이만 가 보겠다.”
카론이 도망치듯 훈련장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루나가 항상 주장하는 ‘카론의 냄새.’
이것 또한 진실로 향하는 퍼즐 조각일지도 모르겠다고.
* * *
“오늘은 이만하면 되겠네. 난 야외 훈련하러 간다. 너희들도 적당히 하다가 들어가.”
온종일 훈련을 하고도 체력이 남았단 말인가?
진짜 괴물이다.
“레제, 오늘도 자기 전에 마나 다 쓰고 자. 빼먹으면 가만 안 둔다.”
“네, 네……! 오늘도 꼭 하고 잘게요!”
“귀엽긴.”
루시아가 레제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이리저리 뻗은 머리칼. 그 사이로 은은히 빛나는 레제의 눈동자가 보였다.
“간다. 내일 보자고.”
루시아가 떠난 후, 남은 우리.
머리를 정돈하는 레제를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요.”
“뭐가? 지금 이상한 건 네 얼굴뿐인걸?”
“……레제 양이 루시아 님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습니까. 강한 사람과 마주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앗! 그, 그러고 보니! 레제! 괜찮아?”
루나가 레제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졌다.
하지만 레제는 멀쩡하기 짝이 없었다.
‘꾀병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강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죽는 병이라니. 이 세상에 그런 병이 존재할 리가 없다.
어리둥절하던 레제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 어쩌면!”
어쩌면?
“저…… 조, 조금 강해져 버린 걸지도요?”
강해지긴 뭘 강해져!
한 달 훈련한 걸로 루시아급의 강자를 마주할 수 있는 성장세면 1년이면 아주 소드 마스터가 되겠다?
하지만 우리 루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강해지다니. 정말 대단해, 레제!”
“헤헤, 모, 모두 루나 양 덕분이에요오.”
“내가 뭘 했다고. 다 네 노력 덕분이지.”
정말 눈 뜨고는 봐 줄 수 없는 촌극이다.
둘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던 때였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후후, 강해졌다라…… 좋은 소식이로군요.”
“……!”
레제의 머리 위에 있는 바보털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으, 음. 저, 저는…… 약해요. 하, 하나도 안 강해졌어요오…….”
무언가를 느낀 걸까.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물론, 그런다고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이번 쪽지 시험을 통과한 후, 우수반으로 오십시오.”
“저, 저 같은 게 어떻게…….”
다시 쭈그리 모드로 변한 레제.
그런 그녀의 어깨에 루나가 손을 올렸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우리 같이 수업 듣고, 밥도 먹고, 놀러도 가자. 항상 붙어 다니는 거야!”
“하, 항상!”
“해, 해 볼게요. 부, 부족한 몸이지만…….”
결정됐다. 우수반에 들어온 후, 함께 즐거운 아카데미 라이프를 즐기기로.
물론, 내가 함께하는 아주 즐거운 아카데미 라이프다.
“우리는 준비됐어. 이제 말해.”
“예?”
“레제가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거잖아. 설명해.”
이런, 이런. 그 사실을 알아차리다니.
루나의 눈치가 빨라진 게 아니다. 나에 대한 ‘신뢰’의 증거지.
품속에서 아티팩트 한 개를 꺼냈다.
조금 전 카론에게서 받은.
“응? 뭐야. 순백의 하마잖아?”
“알고 계십니까?”
그야 당연하지. 잡화 아티팩트 판매 인기 순위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는 놈이잖아. 가격도 나쁘지 않고.
이쪽 세계에서 나름 핫한 물건인 모양이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만.
‘루나랑 레제의 3단계 시험관은 카론이겠지.’
루나의 합격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시험관이 카론이니 프리 패스나 마찬가지.
문제는 레제인데, 1단계와 2단계는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에서.
이 [순백의 하마]는 비장의 한 수가 될 거다.
그렇다. 이 [순백의 하마]의 사용자는 내가 아니다.
개복치 토끼, 레제가 사용할 물건이지.
‘우선, 효과를 알아봐야겠지?’
킁킁-.
레제의 목덜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음, 향긋한 냄새가 난다. 역시 여자는 신비하단 말이지.
“이걸 받으십시오.”
[순백의 하마]를 레제의 손에 쥐여 준 후, 다시 냄새를 맡았다.킁킁-.
‘오, 대단한데? 진짜 아무런 냄새도 안 나잖아?’
땀 냄새, 사람 특유의 향기, 옷에서 나는 냄새까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후후, 효과가 좋군요. 이 정도면 확실히 써먹을 수 있겠습니다.”
“써, 써먹어? 너, 너너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고개를 든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변태를 봤다는 듯한 루나의 눈빛, 그리고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레제의 모습.
레제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 저 냄새 나나요? 죄, 죄송해요. 최, 최근에 훈련을 많이 하다 보니…….”
땀 냄새는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전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후후, 괜찮습니다. 향긋했거든요.”
“…….”
“…….”
음, 말하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레제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더, 더럽혀졌어요. 아, 악마에게…….”
누가 악마라는 거야? 더럽혀졌다는 건 또 뭐고!
억울했다. 난 그냥 냄새를 맡았을 뿐이니까.
“이 변태 자식이! 하여튼 한순간도 방심을 못 해요!”
꽈드득-!
루나가 내 귀를 물어뜯었다. 엄청나게 세게.
“끄아아아악! 어, 억울합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다고요!”
“죽어! 죽어!”
드르륵-.
정신없는 와중, 훈련장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유리디아가 힌트를 공유하러 찾아왔…….”
유리디아였다. 그리고 우리와 시선을 마주함과 동시에.
푸슉!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진짜 미치겠다. 내일은 또 어떤 악의적인 소문이 퍼질지.
진심으로 두려운 나였다.
쪽지 시험까지.
앞으로 D-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