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167화. 쪽지 시험(6)
“힌트를 받긴 했지만, 어떤 시험을 보는지 알아내는 건 쉽지 않았답니다. 힌트도 어려웠거든요. 뭐, 카론 선생님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요.”
“…….”
“이번에야말로 유리디아파의 이름을 떨치는 거예요! 우리가 함께!”
유리디아가 계속해서 속삭였다.
엄청난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 자신에게 감사하라는 듯.
물론, 이미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나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루나 양에게 멋진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죠!”
유리디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로맨스에 푹 빠진 여자아이의 모습.
저 꼴을 보니 장난으로라도 물어보기 싫어진다.
“필요 없습니다.”
“어, 어째서죠? 루나 양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야 사랑이 더욱……!”
“그렇기에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루나와 나는 친구 사이.
멋진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유리디아의 눈이 더 반짝이는 건 어째서일까?
“그렇군요! 이미 루나 양의 눈에는 충분히 멋지니까! 그러니까 필요 없다는 거군요?”
“……?”
“아아, 역시 사랑은 위대해요! 이런 흉악한 외모도 멋지다고 느낄 정도라니!”
진짜 미친 아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해석이 된단 말인가?
그리고 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
‘솔직히 카론이 내어 준 힌트가 궁금하긴 하지만…….’
수천 번의 게임 플레이로 쪽지 시험에 관한 모든 걸 아는 상황.
괜한 행동으로 이 이상의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변수는 루시아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애초에 유리디아가 모든 시험 종목을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럽고 말이지.’
의심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후후, 저에게 정보를 알려 주려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같은 편이기 때문이죠.”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이러기예요? 악마가 습격했을 때 전우애를 다졌잖아요. 제로 군의 비밀도 지켜 주고 있고 말이죠.”
유리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비밀.
내가 유리디아 가문의 비기, [데몬 슬레이브]를 쓴 것을 말하는 거다.
‘……유리디아가 비밀을 지켜 주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 대가로 유리디아가 원한 건 ‘하루에 한 번, 자신이 시키는 대로 루나에게 잘해 주기’다.
가끔 곤란한 스킨십을 시킬 때도 있었지만, 비밀에 비하면 싼 대가다.
[일섬], [대지 뒤집기], [하늘 가르기] 등.검술 계열의 비기도 어려운 건 맞지만, 마법 계열의 비기는 그 궤를 달리한다.
주문, 문자 배열, 캐스팅.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한 번 본 마법을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데몬 슬레이브는 유리디아 가문의 비기이자, 가문에서 금지한 비기.’
그걸 따라 하는 것도 모자라 유리디아의 [데몬 슬레이브]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유리디아가 고발을 해도 이상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대비책이라곤 오리발을 내미는 것밖에 없는 상황.
‘많이 곤란해질 거야. 이건 유리디아도 잘 알고 있겠지.’
그럼에도 철저히 비밀을 지켜 준 유리디아였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협박입니까?”
“그러고 싶지만 이런 건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아무튼 정보를 알려 줄게요. 잘 들으세요. 이번 쪽지 시험은…….”
손으로 유리디아의 틀어막았다.
“거절합니다.”
“……어째서죠?”
“당신들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리디아의 계획은 뻔했다.
입학시험 3위인 나를 이용해 테르온을 끌어내리고 싶은 거다.
카론의 힌트를 공유하고, 우리가 쪽지 시험에서 1, 2위를 차지.
테르온을 3위로 밀어내며 자리를 빼앗고 중립에 속한 아이들을 영입, 세력을 확장한다.
이게 유리디아의 생각일 거다.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해. 이번에도 테르온은 1위를 차지해야 하거든.’
그게 바로 게임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쪽지 시험에서 유리디아는 또다시 2위를 차지한다.
수천 번을 반복해도 이 결과는 변한 적이 없다.
나도 카론과의 뒷거래를 통해 2위 아래의 성적을 받을 계획이니,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거다.
“흐응~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라? 정론이네요. 기분이 더러울 정도로 완벽한 정론.”
“후후, 칭찬으로 듣죠.”
“뭐, 그래요. 힌트를 준다고 해도 싫다는데 제가 어쩌겠어요. 가만, 그러면 입학시험에서 3위를 차지한 것도 일부러 그런 건가요? 우리가 괜한 견제를 할까 봐?”
아니, 그건 필기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그랬던 건데?
하지만 유리디아는 제멋대로 망상에 빠져들 뿐이었다.
“……역시 그런 거였군요. 제로 군, 대체 뒤에서 뭘 꾸미고 있는 거죠?”
“꾸민다고요?”
“그래요. 거대한 두 세력이 싸우는 동안 힘을 비축, 양 세력이 힘을 소비한 틈을 타 기습, 두 세력을 쓰러트리고 전국을 제패한다. 역사에 흔히 있는 일이죠.”
유리디아가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망상병 환자일 뿐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당연하죠. 제로 군은 힘을 숨기고 있잖아요?”
유리디아가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일섬]으로 다이크를 꺾는 모습을 본 데다가, [데몬 슬레이브]까지 사용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다행인 점이라면, 기가 막힌 변명거리가 있다는 거다.
“후후, 제게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이미 훌륭한 동료를 영입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훌륭한 동료가 계시잖아요? 루나 양, 그리고 저기 있는…….”
유리디아가 다른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렉스, 레이몬, 루나, 레제가 있는 곳.
그리고 현재 레제는.
“히, 히이이이익!”
……상자에 머리를 박은 채 부들부들 떠는 중이었다.
루나와 레이몬이 싸우고 있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상냥한 알렉스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시선이 모였다는 걸 눈치챈 걸까.
알렉스가 겸연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으음, 훌륭한…….”
유리디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레제를 보고 차마 훌륭한 동료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일 거다.
나, 루나, 그리고 레제.
이 세 명으로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를 쓰러트리고 1학년을 제패한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걸까. 유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네요. 대체 저 아이는 뭐죠? 비상식량?”
사람을 보고 비상식량이라고 하다니.
위기 상황에서 방패로 쓰려는 나보다 더하다.
응?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럴 리가. 비상식량보다는 방패가 훨씬 사람다운(?) 취급을 해 주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유리디아가 눈살을 찌푸릴 터.
여기서는 루나의 대답을 빌리기로 했다.
“친구죠.”
“……친구요?”
“예, 즐겁게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친구 말입니다.”
“아카데미를 즐겁게…… 라.”
유리디아가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게임에서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던 것일까.
유리디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됐어요. 뭘 꾸미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문제니까.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기억하세요.”
처억!
유리디아가 정체불명의 포즈를 취하며 외쳤다.
“루나 양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비밀을 고발하는 건 물론, 아카데미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겁니다. 아시겠어요?”
“후후, 명심하도록 하죠.”
“흥! 루나 양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세요. 오늘의 대가는 그걸로 하죠.”
잠시 후.
알렉스가 기절한 레이몬을 업은 후, 코피를 흘리는 유리디아와 함께 훈련장을 떠났다.
훈련장에 한바탕 몰아친 폭풍.
폭풍이 잠잠해지자마자 목검을 휘둘렀다.
‘결국 해결된 건 하나도 없네.’
루시아를 공략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꿋꿋이 목검을 휘둘렀다.
애초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니까.
* * *
D-4.
레제의 앞머리를 자르려다 루나에게 물렸다.
나는 그저 앞이 잘 보이도록 해 주려던 것뿐인데. 억울했다.
D-3.
루나에게 귀를 물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로델린에게 ‘부, 불건전 행위는 벌점 사유다!’라며 벌점을 받았다.
D-2.
루나가 심심하다며 내 어깻죽지를 깨물었다. 창문 밖에서 염탐하던 유리디아가 코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D-1.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쪽지 시험 하루 전날이다.
소설로 치면 한 페이지 만에 4일이 지나갔다고 느낄 정도랄까?
그간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로델린의 방문, 루시아와 로델린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싸움.
내 도시락 밑바닥에만 깔려 있던 유모의 달걀부침 사건, 유리디아의 관음 행위 등.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언제나 있는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으니까.
‘음, 돌이켜 보니 루나에게 물린 기억뿐이네.’
애정행각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렇지!
“또 뭔 되먹지도 못한 생각을 하고 있냐?”
“후후, 제가요? 아주 건전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요.”
아앙-!
건전한 생각의 대가는 루나의 이갈이였다.
루나가 입맛을 다시며 레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할당량을 채웠으니 당분간 조용할 터.
‘그럼 작전을 짜 볼까?’
우선, 현재 내 스탯은 다음과 같다.
[제로]Lv : 30
힘 : 49.3(+5)
민첩 : 48.8(+5)
지능 : 44.9(+5)
체력 : 67.7(+5)
마력 : 118(+5)
신성력 : 3
잠재력 : 5
보유 pt : 30
…….
…….
집중을 유지한 채 훈련을 마칠 때마다, 스탯을 조금씩 올려 주는 [플뢰르 가문류]의 히든 피스.
그 도움으로 마력을 제외한 스탯들이 조금씩 상승했다.
3~5 정도의 상승폭이지만, 한 달 만에 이 정도 스탯을 올렸으니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몸 상태는 좋다고 봐도 무방해.’
다음으로 봐야 할 건 쪽지 시험의 종목.
앞서 말했듯, 쪽지 시험은 입학시험의 진화판이다.
1단계는 미궁.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풀이 아닌, 돌로 된 미궁이지.’
재료가 바뀌었지만, 문제 될 건 없다.
쪽지 시험의 미궁 길도 완벽히 외워 둔 나니까.
길치인 루나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라고 말해 뒀으니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레제는 위장의 달인이니 걱정할 것도 없고.
‘2단계, 환영 시험도 마찬가지지.’
어젯밤, 카론에게 부탁했던 아티팩트를 받아 둔 상태다.
오늘 훈련을 마치는 대로 하나씩 배분할 생각이니, 2단계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 터.
이제 남은 건…….
‘3단계, 단체 결투.’
입학시험 때와 달리, 이번 결투는 남은 생존자들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대략 10명이서 한 팀, 그 상대는.
‘카론이지.’
입학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카론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합/불 여부가 갈린다.
이번 쪽지 시험에서도 게이머들끼리 합격 기준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기준이 뭔지 알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루나와 레제에게 전략도 말해 둔 상태.
충분히 카론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 상대가 카론이 아닌, 루시아라는 거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매일 같이 생각했지만, 루시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전략을 짜긴 했지만…….’
저 괴물에게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목검을 휘둘렀다.
스탯을 올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신의 모방을 활용한 변수 창출뿐인데…….’
[플뢰르 가문류]의 자세를 취하며 어떤 스킬을 모방해 놔야 좋을지 고심하던 때였다.“어라?”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 괴물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