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7)
제17화
17화. 제발 친구가 되어 주세요(3)
“제로 군, 고민이 뭔가?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게나.”
로델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 왔다.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 친구가 없는 삶이란…… 참 슬프더군요.”
“음? 그렇군. 자네는 외모가 그렇다 보니…… 선입견을 깨기가 쉽지는 않으니까.”
“맞습니다. 그래도 앤우드 아카데미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밖이랑 똑같더군요.”
“으, 으음……! 그래도 노력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글렀습니다. 제 존재만으로도 불편해하더군요. 역시 저 같은 놈은 아카데미를 떠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그런……! 침착하게, 제로 군!”
“그냥 삐뚤어져야겠습니다. 흑흑, 흑마법사가 돼서 시체랑 친구가 되고 스켈레톤을 만들어 친구를 늘리는 수밖에는…….”
거침없는 자학!
시체와 친구가 되고, 스켈레톤과 가족 놀이를 한다!
재료가 부족하면 사람을 습격해 새로운 친구를 만들면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것일까.
그러자 로델린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고,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 않나! 당장 나만 해도 자네랑 잘 지내고 있고…….”
“……잘 지낸다고요? 정말입니까?”
“으, 응? 그, 그렇지.”
계획대로다. 입가에 절로 호선이 그어졌다.
손 틈으로 보이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럼 우리는 ‘친구’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음?”
“맞잖습니까, 친구.”
“그, 그건 아니지. 나는…… 선배니까 말이야.”
“……선배요?”
“그렇다네. 난 선배, 자네는 후배.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지.”
대체 뭐냐 저 쌍팔년도 대사는.
무슨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도 아니고.
‘자학이 안 먹히다니. 이대로는 안 되겠군.’
로델린을 살짝 밀치며 벽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내 왼팔을 벽에 갖다 대며 퇴로를 차단했다.
소위 말하는 벽치기 자세.
이상한 자세 같다고?
오해다.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가득한 놈들 같으니.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친구를 만들기 위한 아주 건전한(?) 자세 아닌가.
“제 친구가 되어 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그, 그건…….”
“전 그저 친구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잖아요?”
“아, 아아…… 그, 그게…….”
로델린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붉어진 뺨, 숨결을 내뱉는 입술, 벽에 부딪친 탓에 살짝 흐트러진 포니테일.
눈까지 핑글핑글 돈다.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말해.
어서 내 친구가 되겠다고 말해!
“부, 불건전…….”
“네?”
“불건전 퇴치 펀치!!”
퍽!
눈앞이 핑 돌았다. 어질어질하다.
설마 주먹에 맞은 건가? 그 긍지 높은 로델린이 폭력을 쓴다고?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을 감싼 채 신음하는 내 귀에 로델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부, 부학생회장으로서 버, 벌점 1점을 부여하겠다!”
그 말을 내뱉자마자 후다닥 내뺀다.
내가 본 건 귀가 새빨갛게 물든 로델린의 뒷모습뿐이었다.
“……후후, 친구 만들기 더럽게 힘들군요.”
이게 모두 다.
빌어먹을 실눈 때문이다.
* * *
“진짜 짜증 나!”
식당 밖으로 도망치듯 나온 루나.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친구는 한 명도 못 사귀질 않나.
제로 그놈에게 친구 숫자를 밀리질 않나.
부학생회장에게는 둘이 연인이나 친구냐는 이상한 오해를 받질 않나.
진짜 화나는 것투성이다.
“아오!”
화를 못 이겨 낸 루나가 땅을 발로 걷어찼다.
그 힘을 못 이겨 낸 잔디 한 움큼이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우쒸…….”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루나는 심성이 착한 아이였으니까.
다만, 언행이 조금(?) 사나울 뿐.
뽑힌 잔디를 원래 있던 자리로 옮긴 후, 두 손으로 팡팡 두들겼다.
“미안해…… 네가 뭔 죄가 있다고.”
루나의 그런 노력 덕분일까.
잔디가 완벽히 이전의 자태를 회복했다.
그 모습을 본 루나는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흥분하지 말자. 그깟 친구가 뭐라고. 내게는 꼭 이뤄야 할 게 있잖아.’
자신이 너무 들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게 너무 기쁜 나머지, 목적을 잠시 잊었다.
피의 복수.
그게 자신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자, 원동력.
루나는 자신의 목적을 다시금 상기했다.
아카데미 입학은 자신에게 있어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이곳에서 레스터 가문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을 찾아야 한다.
‘입단속을 아무리 해도 자제들에게는 숨기기 힘들지.’
미래에 가주 자리를 물려받을 입장이니, 각 가문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도 미리 교육을 받을 터.
레스터 가문의 멸문에 일조했거나, 누군가가 그들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 아이를 찾으면 된다.
‘그러니까 친구 같은 건 없어도 돼. 처음부터 난 혼자였는걸.’
훌쩍.
울면 안 된다. 눈물 같은 건 복수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애초에 친구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했다.
‘난 성격이 거지 같으니까.’
말이라도 예쁘게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10살부터 무려 5년 동안이나 떠돌이 생활을 했던 루나다.
반역자라는 신분, 어린아이, 거기에다 여자라는 성별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고, 그동안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이유 없이 선의를 베푸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그래서 먼저 인사를 건네 오는 아이들한테도 사납게 군 거다.
생각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
루나는 생각보다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한숨을 살짝 내쉬던 때였다.
“악마! 구해 줘! 악마!”
루나가 귀를 쫑긋 세웠다.
사람의 말이지만, 뭔가 귀에 거슬리는 독특한 목소리.
들린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오, 진짜 개시끄럽네.”
“킥킥, 아까 수업을 방해한 벌이다.”
“깃털을 모조리 뽑아 버리자고.”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건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루나는 상황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앵무새?’
세 명의 아이가 늙은 앵무새를 괴롭히고 있었다.
벌써 깃털 몇 가닥을 뽑은 상태.
깃털이 뽑힐 때마다 앵무새가 비명을 내질렀다.
“자~ 하나 더 뽑는다.”
행색을 보니 자신과 같은 신입생들이다.
루나가 키득거리는 한 아이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퍽!
“컥!”
“뭐, 뭐야!”
“웬 놈이냐!”
대사도 삼류 악당스럽기는.
루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분노했다.
약자를 괴롭히는 놈들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말도 못하는 짐승 가지고 뭐 하는 짓이야?”
“응? 말은 똑바로 해야지. 봐 봐, 말하는 짐승이라고.”
“악마! 악마!”
“……하아.”
자기를 구해 주려는 것도 모르고 목청 높여 말하는 앵무새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미는 루나였다.
“뭐야? 평민이잖아. 자비를 베풀어 줄 테니 꺼지라고.”
“다음에는 안 봐준다.”
“앞으로 고개 똑바로 숙이고 다니고.”
이것들이 자신과 같은 귀족이라고?
긍지도 없고, 명예도 모르는 이 버러지들이?
기가 차는 루나였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을 밝힐 수는 없었다.
현재 레스터 가문은 반역 가문으로 낙인찍힌 상태니까.
루나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닥치고 덤비기나 해.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았는데 잘됐네.”
“이제 보니 미친년이었군. 그냥 가라. 미친년과 얽히면 뒷말이 좋지 않거든.”
“이거나 먹어.”
루나가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양손에 하나씩 세워진 큰 산.
2개의 높은 산은 쳐다보기 힘들었던 걸까.
한 남자애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무래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네. 레이디를 때리는 취미는 없지만…… 억!?”
남자애가 손을 내질렀을 때였다.
루나가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큭!”
루나의 주먹이 그의 턱에 제대로 꽂혔다.
남자애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본 루나가 입맛을 다셨다.
‘쳇, 기절을 안 했네. 그래도 아카데미 입학생이라 이거지?’
체구가 왜소한 루나다.
검 없이 남자애 셋을, 그것도 시험을 통과한 입학생을 제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하지만 이런 양아치들에게 질 생각은 없다.
‘약자를 괴롭히는 놈들한테 질 생각은 더더욱 없어!’
루나가 달려들며 싸움이 시작됐다.
주먹을 날리고 발로 급소를 차고, 물어뜯고.
하지만 체급의 차이는 컸다.
옆구리를 제대로 차인 루나가 땅을 굴렀다.
“커헉!”
“하, 이거 진짜 미친년이네. 이래서 평민은 안 된다니까?”
“또 모르지, 천민일 수도. 그래서 주제를 모르고 달려드는 거 아냐. 하늘처럼 받들어야 하는 귀족한테.”
“오늘 제대로 알려 주자고. 하늘이 어떤 존재인지.”
한 남자아이가 루나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휘어잡았다.
역겨운 놈들. 이딴 놈들이 자신과 같은 귀족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스스로를 하늘로 칭하는 이런 놈들이 반역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문이라는 게.
“하아, 하아…… 운 좋은 줄 알라고. 검만 있었어도 너넨 다 뒤졌어.”
“아, 그러셔? 무서워서 덜덜 떨리네.”
“푸하하! 편하게 보내 주자고!”
남자애가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몰려올 충격에 대비해 루나가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후후,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응?”
“넌 또 뭐야?”
익숙한 웃음과 목소리.
살며시 뜬 루나의 눈에 그가 보였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남자아이. 제로다.
“지금 놀고 있는 거 안 보여? 저리 꺼져.”
“후후, 그건 곤란하겠군요. 거기 있는 게 제 친구거든요.”
“이게 네 친구라고?”
“음……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한데…… 일단 그렇다고 하죠.”
제로가 가진 특유의 말투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로움.
이상함을 감지한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여유로워?”
“실력자인가? 하지만 우리가 아는 얼굴은 아닌데…… 아!”
“뭐야? 아는 놈이야?”
“쟤가 걔잖아. 3위로 입학한…….”
“뭐? 저놈이?”
3위라고?
루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입학 수석과 차석을 제외한 순위는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로가…… 3위?’
앤우드 아카데미는 제국 최고의 명문.
때문에 학생들의 평균 실력이 높기도 하지만, 최상위권은 그 격이 다르다.
그런데 제로가 3위라니.
실력을 숨긴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단 말인가?
남자아이들이 머리를 맞댄 채 수군거렸다.
“포섭 대상이잖아. 어떻게 하지?”
“일단 이 미친년은 놓아주는 게 좋겠습니다. 괜히 악감정을 쌓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쳇! 어쩔 수 없네.”
철퍽!
남자애가 손에서 힘을 풀자, 루나가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루나의 곁을 떠난 아이들이 제로의 앞에 섰다.
“반갑다. 난 고드너라고 한다. 재패린 백작가의 장남이지.”
“그러시군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학년 수석이자 뷀른 후작가의 차남 테르온 님이 널 찾으신다. 이유는 알겠지?”
“후후,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드너라는 아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야. 3위라길래 똑똑한 줄 알았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테르온파에 합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