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74)
제174화
174화. 쪽지 시험(13)
다이크가 길치라는 걸 눈치챈 루나.
그렇다고 그를 쫓아낼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로 박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기도 했지만.
‘하나보다는 둘이 나은 법이니까.’
미궁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건 자기 혼자뿐만이 아니다.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도구.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뭐, 길치라고 해서 무조건 길을 못 찾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자신이 못 본 길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루나는 다이크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걱정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 길은 가다 보면 끝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루나의 말대로 끝이 나오긴 했다.
막다른 길이라는 끝이.
“흠흠, 쉽지 않네. 역시 앤우드 아카데미다운 시험이랄까.”
“…….”
“걱정 마. 다음번에는 무조건 찾을 테니. 넌 이 누님만 믿고 따라오라고!”
저벅저벅-.
하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 어디로 가든 높다란 돌벽이 자신들을 반겨 줄 뿐이었다.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다이크는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가는 곳마다 길이 이렇게 막힐 수 있는 건지.
차라리 자신이 이끄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왜, 뭐! 사람이 길 좀 헤맬 수도 있지!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
“네 눈이 말하고 있거든? 자신이 더 낫다는 눈이라고!”
“……부정하지는 않겠다.”
“흥!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 봐! 특별히 기회를 줄게. 아~ 다음에는 무조건 찾는 거였는데. 아쉬워라.”
“……이쪽으로 가지.”
다이크가 길을 이끌고, 루나는 투덜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물론,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다이크가 길을 찾아 줄 거라는 기대를 말이다. 하지만.
“……막혔네.”
“……그렇군.”
다이크가 길을 이끌기 시작한 뒤, 세 번째로 마주한 돌벽.
심지어 루나가 지나온 곳이라며 표시를 해 둔 돌벽이었다.
“뭐가 ‘그렇군’이야! 나보다 더 잘 찾을 수 있다며!”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생각을 했을 뿐.”
“그게 그거잖아!”
물론, 차이점이 있긴 했다.
루나가 열 걸음 만에 돌벽을 마주한다면, 다이크는 여덟 걸음 만에 돌벽을 마주한다는 차이가.
“치, 침착하자. 당황할 필요 없다고.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1차 시험 종료 10분 전! 더 속도를 올려라! 특히, 아까부터 같은 곳만 뱅뱅 돌고 있는 너희들!”
교관이 지적한 ‘너희’.
누가 봐도 자신들이라는 걸 깨닫는 루나와 다이크였다.
“으아아아아! 어, 어떡하지! 이러다간 우수반은커녕 아카데미에서 퇴출당할지도 몰라!”
머리를 감싸 쥔 채 절규하는 루나.
그 모습을 본 다이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가. 침착하자고, 당황할 필요 없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게다가 이런 일로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할 일은 없다.
……뭐, 일반반으로 강등당하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음! 그래! 둘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이리 와, 내 아이큐 180! 네 아이큐 150! 총 300(?)의 머리로 완벽한 작전을 짜는 거야!”
좌절이 빠르지만, 회복하는 건 그보다도 더 빠르다.
물론 좋은 건 아니다. 아이큐란 건 합친다고 합쳐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심지어 계산도 틀렸다.’
이런 아이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다이크였다.
그렇다고 루나를 버리고 혼자 갈 수도 없었다.
-다른 아이의 뒤를 따라가라.
‘테르온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제로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제로와 테르온의 조언은 결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엄청난 조언인 축에 속한다.
똑똑해 보이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면 손쉽게 미궁을 클리어할 수 있는, 성공률이 꽤 높은 조언.
문제는 이 두 사람이 만났다는 거다.
루나는 다이크를 따라가고, 다이크는 루나를 따라가고.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순간에도 귀신처럼 다른 길을 걷게 만드는 엄청난 조합!
사실 다이크 또한 길치라는 걸 알고 있는 제로였지만, 그런 사실을 루나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다이크와 안 좋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피해갈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의도치 않게 운명 공동체 관계가 된 다이크와 루나.
머리를 맞댄 채 미궁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길치와 길치가 힘을 합쳐 봤자.
‘슈퍼 파워 길치’가 될 뿐이라는 걸.
“시험 종료 5분 전! 곧 문이 닫힌다! 서둘러라!”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교관의 말.
루나가 벽을 두들기며 탄식했다.
“젠장! 출구가 바로 저기 앞에 있는데…….”
돌벽 서너 개 너머쯤. 출구를 알리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사실 지금부터는 올바른 길을 따라간다고 해도 시간 안에 통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카론은 좌·우수법에 대한 함정만 설치한 게 아니다.
출구에 대한 함정도 설치했다. ‘출구와 가까워 보일수록, 가장 먼 곳’이라는 함정을.
벽 하나를 사이에 낀 채 못 넘어가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즉, 다이크와 루나는 출구와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좀 더 빨리 걷도록 해라.”
“나도 노력 중이거든? 그냥 혼자 가든가. 길 못 찾는 내 뒤는 뭐하러 따라온대?”
“……테르온 님의 명령이니까.”
“아하, 그러셔? 죽으라면 죽겠다?”
“그게 명령이라면 그렇게 하겠지.”
“미친놈. 아니, 미친놈들이라고 해야 하나?”
눈앞에 있는 다이크도 별로지만, 테르온은 더 별로였다.
그렇지 않은가. 친구에게 명령을 내린다니.
친구가 아닌, 주인과 노예 관계라 해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충성한다면…… 사람처럼은 대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루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다이크의 두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명령 하나로 그를 일으켜 세우던 테르온의 모습을.
남들의 시선에서는 충성심으로 보일지 몰라도, 루나의 시선에서는 역겨운 주종 놀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은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루나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미궁. 입학시험에서도 자신을 귀찮게 했던 시험이다.
그때도 길을 헤매다 투명 슬라임을 마주쳤고, 제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다.
‘가만, 그때도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했었지. 그때 우리가 시험을 어떻게 통과했더라……?’
이윽고, 루나는 기억해 냈다.
문이 닫힌 후, 그 옆에 있는 수풀로 이루어진 벽을 몸으로 뚫고 들어갔었다.
그렇다면…….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방법?”
“응! 제로의 비책이야! 입학시험에서 이 비책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었고.”
다이크의 눈이 빛났다.
지금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제로’의 비책이라니.
‘테르온 님이 가문의 힘을 이용했지만, 그놈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얻어 내지 못했다.’
입학시험 비공식 3위.
자신과의 결투에서 레스터 가문의 비기를 사용해 단번에 승리.
아카데미를 습격한 악마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소문까지.
그런 놈이 알려 준 비책이라니. 다이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대단한 비책, 똑똑히 눈과 머리에 담아가겠다.’
제로의 비책을 사용하기 위해서일까.
루나가 돌벽 앞에 섰다. 그러더니.
“뒈져!!”
투콰앙-!!
……검으로 돌벽을 부쉈다.
레스터 가문의 [일섬]을 사용한 루나지만, 다이크로서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제로가 보여 준 [일섬]과 간극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아무튼, 돌벽을 무너뜨린 루나가 그 위에 올라서더니 외쳤다.
“길이 나를 향해 찾아왔도다!”
“…….”
저게 제로의 비책이란 말인가? 아니, 저건 비책이라기보다는…….
“무식한 짓을 잘도 저지르는군.”
“무식하다니! 이거야말로 엄청난 비책이거든!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 두드림이 이 두드림은 아닐 텐데 말이지. 그리고 이런 방법이 용인될 것 같으냐?”
“흐응~ 그래서 불만이야? 그럼 이쪽 길로 오지 마. 나 혼자 갈 테니까.”
투콰앙-!!
달려간 루나가 다음 돌벽을 무너뜨렸다.
이 방법이 용인될 거라는 걸 루나는 알고 있었다.
입학시험에서도 엘레스터가 괜찮다며, 상식을 깨부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뭐 이리 단단해?’
처음과 달리 [일섬]을 세 번이나 사용해 두 번째 벽을 허물었다.
출구까지 앞으로 두 개의 벽을 더 허물어야 하는 상황.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는 루나다.
맨손으로라도 두드려 벽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루나가 다시 한번 비기를 사용하려던 그 순간.
다이크 첫 번째 오리지널 비기.
샤이텔하우.
투콰앙-!!
굉음과 함께 돌벽이 무너져 내렸다.
돌벽을 무너뜨린 사람은 당연히.
“뭐냐. 불만을 늘어놓을 때는 언제고.”
“……테르온 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다이크였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을 따라가라는 테르온의 명령.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으로 보일 거다.
하지만 루나는 알 수 있었다.
“흐응~ 자아가 없는 건 아니었네? 이거 놀라운걸.”
다이크가 제 의지로 행동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멋대로 생각해라.”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니까. 이제 하나 남았다. 시간 없으니까 같이 하자고.”
“먼저 해라. 난 네 뒤를 따라가라는 명령을 수행할 뿐이니.”
“네~ 네. 그러시겠죠~.”
두 사람이 함께 검을 휘둘렀다.
마지막 돌벽을 향해서.
* * *
“다음! 12조! 나를 따라오도록!”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관을 따라 자리를 떠났다.
1, 2관문과 달리 3관문인 ‘단체 결투’는 제법 시간이 걸리는 시험과 동시에 카론이 혼자서 치르는 시험.
통과한 조들은 이곳, 미궁의 탈출구 근처에서 자연스레 대기하게 됐다.
뭐, 그것도 이제 마지막 단계다.
내가 속한 13조와 루나가 속한 14조. 두 조만 이곳에 남은 상태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흠…… 루나 양이 너무 늦는군요. 안 그렇습니까, 제라드 양?”
“제라드 아니라 제파다! 양도 아니고 군이고! 이젠 성별까지 착각하는 거냐!”
루나가 너무 늦는다는 거다.
교관의 움직임으로 보아 곧 시험이 끝나는 상황.
카론이 있으니 우수반에서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구설수와 함께 괜한 관심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이크도 나오지 못했어. 이러면 곤란한데…….’
곧 치러질 단체 결투.
‘내 상대는 카론이 아닌 루시아지.’
때문에 다이크를 조금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다.
조가 달라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나니까.
그런데 이러면 곤란…….
투콰앙-!!
후둑- 후두둑-.
“뭐, 뭐야!”
“미궁이 무너졌다!”
“설마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되는 건가? 그럼 앞에 간 놈들은 어떻게 되는 거고?”
돌 미궁이 무너져 내리며 일어난 혼란.
하지만 이내 혼란은 사그라들었다.
먼지가 가라앉으며,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제로! 어때! 너의 완벽한 작전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캬캬캬!”
“…….”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주 아주 싸늘한 시선이.
아니, 얘들아. 오해야! 내 작전은…….
저렇게 무식한 작전이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