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75)
제175화
175화. 쪽지 시험(14)
잠시 시험이 중지됐다. 루나와 다이크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돌벽을 힘으로 무너뜨리고, 무너진 돌무더기를 기어 올라오는 과정에서 생긴 생채기가 전부였지만.
‘이건 실전이 아닌, 시험이니까.’
학생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군수군-.
생각지도 못한 휴식 시간이 주어져서일까. 아니면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몇몇 아이들이 내 쪽을 힐끗거리며 수군덕거렸다. 유리디아파의 아이들이다.
“미궁을 부수다니. 크라켄답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긴 하네요.”
“게다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작전도 성실히 수행하는 루나 양을 보세요.”
아니다. 루나는 내 작전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
내가 지시한 것 중에 하나도 제대로 수행한 게 없단 말이다!
“너무 슬퍼요. 루나 양에게 저런 무식한 작전을 지시하다니…… 그런데 왜 저런 작전을 지시했을까요?”
“과시하기 위해서겠죠. 루나 양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과시하는 거예요!”
“저 상처로 가득한 손 좀 보세요. 여리고 부드러운 루나 양의 손을 저렇게 만들다니…….”
아니다. 손에 먼지는커녕,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작전을 지시했단 말이다.
그리고 쟤 손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상처투성이였다고!
“그만 갈라놔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건 안 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루나 양의 사랑을 응원하는 존재. 저 둘 사이에 관여하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2조 3항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죠.”
……2조 3항이라고? 저 정도면 단순한 동아리 활동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어쩌면 유리디아는 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흑흑, 루나 양이 불쌍해서 어쩌죠? 저 계속 눈물이 나요…….”
“모두 오늘의 아픔을 기억하세요. 루나 양의 마음이 변하는 날, 모두 돌려주는 겁니다. 루나 양과 우리의 아픔을요!”
수군수군.
쑥덕쑥덕.
콩떡팥떡(?).
어째 갈수록 오해가 쌓여만 가는 것 같다.
이쯤 되니 한번 날을 잡고 오해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유리디아파에게 납치당해 야산에 묻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배드 엔딩을 마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 이것도 히든 피스라면 히든 피스겠군.’
문제라면 그걸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생겼다는 것 정도?
야산에 묻힌 채 쓸쓸히 식어 가는 경험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나였다.
‘애초에 루나가 처신을 똑바로 했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만 말이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단한 치료를 끝마친 루나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누님 왔다! 내 실력이 어때? 네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후후, 어디 가서 제 작전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쪽팔리니까요.”
“쪽팔리긴 뭐가 쪽팔려? 입학시험 때 당당히 쓸 때는 언제고.”
루나야, 수풀과 돌은 물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단다.
입학시험 때 썼던 방법을 이번에도 쓰라고 말한 적도 없고!
‘입학시험 때 엘레스터가 우리를 칭찬한 이유는 단순히 없던 길을 만들어 내서가 아니야.’
엘레스터가 우리에게 감탄한 이유.
‘틀’ 안에 갇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미궁’이라는 시험의 주제. 본디 시험이라면 그 주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궁이라는 틀을 깨부수며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 거다.
엘레스터가 칭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틀을 깨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가 항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니까.
그럼 지금 루나가 한 일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그래, 확실히 틀에 갇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긴 했다.
‘너무 벗어나서 그렇지.’
입학시험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돌을 사용해 미궁을 만들었다. 그것도 꽤나 튼튼한 돌벽을.
그런데 그걸 박살 내 버린 거다.
엘레스터가 칭찬한 ‘틀’을 깨는 일과도 상반되는 일이다.
수풀을 뚫고 통과하는 건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돌벽을 무너뜨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힘’이라는 절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지금 이 꼴을 엘레스터가 봤다면 경을 치지 않았을까?
“뭐, 아무렴 어때. 통과했으면 됐지. 좀 기뻐하라고.”
“후후, 기뻐하고 있습니다.”
“더 크게 기뻐하라고!”
“무리입니다. 저런 무식한 작전이라니. 저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우욱.
스마트하고 영리하고 똑똑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일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구역질이 저절로 치밀어 올랐다.
“이게 진짜!”
루나가 까득 이를 갈았다.
내 귀를 물어뜯기 전에 보이는 전조 증상.
재빨리 검지를 루나의 입술 위에 올렸다.
꺄아아아아-!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음, 오해가 쉴 틈을 모르고 쌓여 가는 것 같지만…… 지금은 내 귀를 지키는 게 우선이다.
게다가.
“후후,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르니까요.”
“뭐? 그게 무슨…….”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거든요. 아니,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엥?”
루나가 의아해하는 사이, 루나가 속한 14조의 시험이 시작됐다.
2차 관문, 환영 마법 시험이.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루나도 환영 마법을 막아 주는 아티팩트를 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크윽…….”
“으으! 저, 저리 가!”
“아,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이미 2차 관문을 통과한 13조의 아이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전, 자신들도 그들과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도, 도와줘!”
“살려 주세요! 제발……!”
바닥을 기는 모습을 보고도 놀릴 생각은커녕 인상을 찌푸리기 바빴다.
환영 마법 시험은 그 정도로 끔찍한 시험이었다.
‘입학시험 때보다는 약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지.’
정신은 단련하고 싶다고 해서 단련되는 게 아니니까.
엘레스터와 카론을 비롯한 사람들이 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든 주눅 들지 않으며 깊은 생각을 하니까.
‘정신 방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스킬이란 말이지.’
물론 고문당할 때는 최악의 스킬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환영 마법 시험이 힘들수록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다이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거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부들부들 떨던 다이크가 몸을 일으켰다.
환영 마법을 극복해 낸 거다.
근처에 있던 교관이 곧바로 달려가 다이크의 상태를 확인했다.
“합격이다. 계속할 수 있겠나? 포기해도 괜찮다만.”
“……계속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조금만 더 힘내도록.”
교관이 다이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후 지나갔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쓰러진 아이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환영 마법이 2차 관문이었구나? 네 예상대로네. 뭐, 이런 것 없이도 통과했겠지만.”
“후후, 입학시험 때 네발로 기면서 울던 루나 양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립니다만.”
“내, 내가 언제 그랬어!”
루나가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음, 아프다. 그새 스탯이 더 오른 걸까?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폭풍과도 같은 루나의 주먹을 등으로 받으며 다이크에게로 향했다.
현재 그는 나무에 기댄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상태였다.
“……뭐냐.”
“후후, 작은 선물을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경계하는 그의 품에 작은 손거울을 쥐여 주었다.
“이건……?”
“아티팩트입니다. 환영 마법을 막아 주는.”
“……!”
그렇다. 내가 건네준 건 카론에게 받은 [파마의 손거울].
하루 한 번만 사용 가능한,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는 아티팩트지만.
‘나한테는 정신 방어 스킬이 있으니까.’
그보다 하위인 아티팩트의 효과가 발동할 리 없다.
그렇게 남게 된 [파마의 손거울]을 다이크에게 넘긴 거다.
환영 마법이 끔찍한 건 단순히 정신을 괴롭혀서가 아니다.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환영 마법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입학시험 당시, 대련 시험에 들어가기 전. 루나가 유난히 사나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가문이 멸문당하던 날의 기억을 계속해서 떠올렸으니, 사나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있다면 벗어날 수 있다고 했어.’
환영 마법의 ‘잔상’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입학시험 때 여러 아이가 떠들던 이야기니, 확실할 거다.
“…….”
다이크의 떨림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계획대로다. [아공간]에 손을 넣으며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잠시 후 내 품은 여러 물건으로 가득 찼다.
물과 손수건, 그리고 과자였다.
“오~ 센스 있는데? 내가 성의를 봐서 고맙게 먹어 줄…….”
휘릭-!
하지만 루나는 헛손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물건의 주인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이 땀 좀 보십시오. 아카데미도 참 너무하단 말입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다니!”
“…….”
“다이크 군, 이것들을 먹고 기운을 좀 차리십시오.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다이크의 앞에 수북하게 쏟아진 간식거리.
루나가 곧장 내 귀를 잡아당겼다.
“적을 챙겨 주다니! 제정신이야?”
“후후, 루나 양. 적이 아닙니다. 친구죠.”
“네 친구는 나 하나뿐이거든?”
“으음…… 그럼 친우는 어떨까요?”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 같잖아. 안 돼!”
“동료는 어떻습니까?”
“기각! 등을 맡기는 존재 같아서 별로야!”
벗, 붕우, 동무, 깐부까지.
모조리 기각당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친구 언저리는 어떻습니까?”
“그 정도면 뭐…… 좋아. 특별히 내가 봐줬다! 난 그보다 가까운 사이니까 과자를 먹어도 되겠지?”
“후후, 물론입니다.”
그제야 루나의 허락이 떨어졌다.
정신없이 과자를 까먹는 루나를 뒤로하고, 다이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다이크는 내가 준 식음료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은 상태였다.
“후후, 좀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친구 언저리인 다이크 군.”
“그런 호칭은 이쪽에서 싫어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럼 친구 쪽이 더 마음에 드신다는 건가요? 이야, 이거 놀랍군요. 저를 친구로 여기고 계셨다니! 역시 다이크 군입니다.”
“……말장난은 이쯤 하지. 원하는 게 뭐지?”
“예?”
“원하는 게 있어서 이런 걸 준 게 아니냐.”
다이크가 [파마의 손거울]을 던졌다.
품에 갈무리한 후, 양손을 비비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원하는 거라뇨.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친구 언저리인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럼 그냥 가도 되겠군.”
“하지만 친구 언저리는 확실히 친구라고 보기에는 힘든 사이죠. 이런,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군요! 이렇게 슬플 수가!”
“…….”
다이크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라는 표정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그래서, 원하는 건?”
“후후, 그게 말입니다…….”
속닥속닥-.
조심스레 원하는 걸 말하자, 다이크의 눈이 커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알고 있냐고? 그야 당연히.
“후후, 비밀입니다.”
고개를 돌린 채 잠시 생각하던 다이크.
하지만 그의 고민은 짧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받았으니 그 정도는 해 주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역시 친구 언저리인 다이크 군이군요!”
“…….”
잠시 후, 시야가 가려진 나무 뒤에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손에 넣었다.
루시아의 퀘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 * *
교관의 지도 아래 도착한 3차 관문, 단체 결투의 대련장.
대련장 특유의 대리석 바닥을 보자마자 한 남자아이가 그 위로 뛰어 올라가며 소리쳤다.
“대련인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테르온파의 아이였다. 서열 5위,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제다니엘이었나? 이름을 좀 간단하게 지었다면 확실히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개명을 권해 줘야겠다.
“제로! 승부를 보자! 이번에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거다!”
“시끄럽다.”
낮지만, 귀에 똑똑히 박히는 목소리의 소유자.
카론이 어느새 우리의 앞에 서 있었다.
“6성 기사 수준의 힘을 사용할 거다. 너희들은 나를 제압하면 승리, 실패하면 패배다. 당연히 승리했을 때의 점수가 더 높겠지.”
인사도 하기 전에 시작된 3차 관문에 대한 설명.
아이들은 곧장 혼란에 빠졌다.
정확히는, 나를 제외한 여덟 명의 아이들이었다.
“카, 카론 선생님과 싸워 이기라고?”
“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비하면 혼란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래? 그럼 나는 어때?”
귓가에 가느다란 미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제국 십검(十劍) 중 하나이자, 루시드 가문의 첫째.
루시아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