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
제18화
18화. 제발 친구가 되어 주세요(4)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르온파요?”
“뭐, 넌 평민이지만 우리가 잘 챙겨 주도록 하지. 기밀 정보인 입학 순위를 확보한 걸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테르온파의 힘은 네 상상 이상이라고.”
대화를 듣던 루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숭고한 아카데미에서 파벌을 가를 뿐만 아니라, 기밀 정보를 빼내?
귀족이라는 놈들이 저런 더러운 짓을 서슴지 않다니.
진짜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 건방진 연놈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교육해 줘야지. 그게 우리의 의무잖아. 그렇지?”
“……후후,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아. 오늘은 얘기를 하기엔 좀 상황이 그렇군. 나중에 보자고. 아, 저런 천한 것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걸 추천하지.”
그 말을 끝으로 고드너와 아이들이 떠났다.
루나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눈앞에는 어느새 제로가 다가와 있었다.
“후후, 괜찮으십니까?”
창피함도 아주 잠시.
루나가 생각에 잠겼다.
제로.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정체불명의 남자아이.
평소에는 장난기 짙은 평범한 남자아이.
하지만 싸울 때는.
‘무서워.’
이렇게 마주하니 그 무서움이 더 짙어지는 걸 느낀다.
그의 목적은 뭘까.
자신한테 살갑게 구는 이유는 뭘까.
왜 잘해 주는 걸까.
대체 왜.
‘계속 다가오는 거야.’
자신은 돈도, 명예도, 가문의 후광도, 친구도, 그 외의 것도.
아무것도 없는, 성질만 더러운 아이인데.
그런데도 제로는 계속해서 다가온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나 양, 괜찮으십니까?”
“……저리 가.”
“피가 나는군요. 우선 의무실부터…….”
“나한테 잘해 주지 마! 결국 너도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거잖아!”
원하는 게 뭐야.
대체 왜.
“나한테 잘해 주는 거냐고!”
감정이 폭발해 터져 나온 목소리.
그에 대한 제로의 답은 더없이 간단했다.
“친구니까요.”
“……친구? 개소리하지 마. 너도 처음에는 목적이 있었잖아.”
투명 슬라임과의 교전 때, 제로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 본다고 했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그러니, 제로가 친구라고 말하는 건 개소리가 분명했다.
“맞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
“루나 양, 당신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거짓말.”
“뭐, 루나 양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하지만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건 사실입니다.”
제로가 웃었다.
거짓말이다. 분명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져 주는 척하며 그의 손을 잡고 싶은 건 어째서일까.
“……그럼 비밀이라도 밝히든가. 우리 가문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있지? 친구라면 다 말해 줘야지. 그게 맞잖아.”
“오히려 친구이기 때문에 이런다는 거, 모르시겠습니까?”
“자세히 설명해. 빙빙 돌리지 말고.”
“제가 알고 있는 걸 알려 준다 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야 당연히 바로 쳐 죽이러 가야지.
“루나 양의 성격상 바로 검을 뽑고 달려들겠죠. 그러면 복수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 같습니까? 아무도 죽이지 못하고 끝날 겁니다. 죽인다 해도 아랫놈들이겠죠.”
“…….”
“어디 그뿐입니까? 갑자기 사람을 습격한 미친년으로 기록이 남을 거고, 레스터 가문은 그렇게 평생 모욕을 당하게 되겠죠.”
정곡을 찔린 루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도움이 필요하다.
있는 거라곤 성질머리밖에 없는 자신에게는 제로 같은 사람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제로를 믿고 싶은데,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제로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검지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루나 양의 불안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
“제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도와준다면,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권리?”
“예. 도움 한 번당 질문 1개. 절대 손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봤을 땐, 루나 양 쪽에 훨씬 이득이니까.”
질문이라. 확실히 그 조건이라면 한 번의 질문으로도 자신의 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는 정말 진실을 말해 줄까?
그의 눈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젠장, 실눈이라 눈이 안 보인다.
저건 반칙이다, 진짜로.
“……좋아.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뭐든지 들어줄 테니.”
“후후, 그런 발언은 여러모로 위험한데요. 저도 남자란 말입니다.”
찰싹!
루나가 제로의 이마를 철썩 때렸다.
변태 놈 같으니. 진짜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다.
“루나 양, 왜 때리고 그러십니까.”
“그걸 모르는 것만으로도 맞을 이유는 충분하거든? 아무튼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하자고.”
“예? 뭘 그렇게 하자는…….”
“알면서 뭘 묻냐?”
루나가 제로를 스쳐 지나갔다.
도움 한 번당 질문 1개라는 거래.
루나는 오히려 이런 관계가 편했다.
뭐, 이로써 앞에 조건도 선행되어야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해, 제로.”
제로와 멀어진 후에 내뱉은 말.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10살 이후, 처음으로.
루나에게 친구가 생겼다.
* * *
[퀘스트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친구를 만드세요(2/3).]“후후, 잘 먹힌 모양이군요.”
이마를 문질렀다. 루나의 손이 보기보다 훨씬 매웠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조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운이 좋았네. 만약 그놈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입학시험 비공식 3위라는 정보.
저게 아니었다면, 조금 전의 나는 루나와 다를 바 없는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 콘셉트가 박살 나며 행동에 큰 제약이 걸렸을 것이고.
그런 도박은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역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전투 스킬이다.
[포식]이 있으니 갈수록 강해질 수 있는 기틀은 마련했다.하지만 보스와 네임드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한 무력이 없다.
루나가 있긴 하지만…….
‘루나를 계속 속이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무력은 필요해.’
내 존재가 미스터리할수록 더욱 오래 잡아 둘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새로운 히든 피스는 중간고사쯤 돼야 구할 수 있는 상태.
‘대체 어떻게 한담?’
그때였다. 하늘에서 앵무새가 뚝 떨어지더니, 내 어깨에 올라탔다.
“악마! 위험! 악마! 구해 줘! 도와줘!”
앵무새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귀가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내쫓지는 않았다. 이 아이와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까.
“후후, 금방 편하게 해 드리지요.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사고에 가까운 사건으로 유일한 친구를 잃은.
아무도 모르는 ‘영웅’의 친구였던 앵무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에피소드3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릴 뿐.
“친구! 위험! 도와줘!”
“친구라…… 저도 그게 필요한데 말이죠. 어디 하늘에서 하나 뚝 떨어졌으면 좋겠는데요…….”
“친구! 좋다! 너! 친구!”
앵무새의 외침.
그와 동시에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친구를 만드세요(3/3).] [메인 퀘스트#2, ‘친구를 만들어라!’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exp, 10골드, [아공간S]가 주어집니다.]“……사람이 아니어도 인정이 되는 거였습니까?”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다.
‘진심으로 친구라고 생각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달렸지만, 그래서 더욱 쉽게 해결된 모양이다.
이 앵무새는 지금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절실하니까.
“친구! 도와줘! 친구! 구해 줘!”
“후후, 퀘스트에 도움을 준 건 고맙습니다만…… 그건 힘듭니다. 대신이라고는 뭐하지만 깨끗하게 해 드리죠.”
앵무새를 대상으로 [청소] 스킬을 발동했다.
지금의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음?”
앵무새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혹시나 싶어 [청소] 스킬을 두어 번 더 사용했고, 결과를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에피소드3이 되어야지만 클리어할 수 있는 히든 피스이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개사기 히든 피스.
그걸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 * *
“그래서 이 마법진은…….”
오늘도 시작된 아침 강의.
하지만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능할까? 아니, 역시 힘들려나?’
앵무새를 이용한 실험에서 보게 된 가능성.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야! 뭐 해? 밥 먹으러 안 가?”
“아…… 가야죠.”
“며칠 동안 멍하니 뭐 하는 거야, 대체.”
루나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금요일이 되고 말았다.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는 뜻이다.
‘아카데미생은 주말에만 외출이 가능하니까.’
이 히든 피스는 마을의 광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기간도 최소 1주, 혹은 그 이상.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짜잔~ 알고 봤더니 그 가능성은 0%였습니다’라고 한다면 울화통이 터질 거다.
“야! 밥 먹으러 가자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루나 양.”
교재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루나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보통 품속에 책을 넣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공간 : S]-생명체를 제외한 모든 물건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사망할 시, 보관 중인 물품은 모두 소멸합니다.
친구를 세 명 만드는 두 번째 메인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10골드와 1레벨 업, 그리고 [아공간]을 얻었다.
쉽게 요약하자면, 인벤토리 칸이 무한이라고 보면 된다.
‘고인물들이 필수 스킬로 꼽는 것 중 하나인데 퀘스트 보상으로 얻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원래대로라면 에피소드4 이후에나 얻을 수 있는 스킬이니까.
참고로 세 번째 메인 퀘스트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내가 두 번째 메인 퀘스트를 빨리 깬 건가?’
뭐, 확실히 그렇긴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한 달은 넘게 걸렸을 난도의 퀘스트니까.
이 세계에서 실눈캐의 인식은 최악.
그런데 단 하루 만에 친구 세 명을 만들다니.
‘후후, 역시 나는 대단하단 말이지.’
고인물 커뮤니티에 접속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실컷 자랑했을 텐데.
참 아쉬웠다.
“얼씨구? 이번에는 실실 쪼개?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후후, 밥이 너무 맛있지 않습니까.”
치킨이 산처럼 듬뿍 올라간 카레.
고민이 ‘절반쯤’ 사라질 만큼 훌륭한 비주얼과 맛이었다.
싹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절반쯤.
그만큼 고민이 깊다는 뜻이다. 치킨 카레로도 커버가 안 될 만큼 말이다.
식사를 반 정도 끝마쳤을 때쯤.
루나가 입을 열었다.
“야.”
“후후, 말씀하십시오.”
“고민 있으면 그냥 털어놔. 개처럼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내가 고민을 많이 하긴 했나 보다. 루나한테 이런 말도 다 듣고.
루나의 눈이 자못 진지하다. 그제야 나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그래, 고민해서 뭐 하냐. 일단.
그냥 박고 보자. 남자답게.
“루나 양.”
진중한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남자답게 박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