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0)
제180화
180화. 쪽지 시험(19)
“꾸웩!”
“켁!”
“부, 분하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철퍼덕 쓰러지는 남자아이.
그의 앞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루시드가의 첫째이자, 제국 십검.
그리고 14조의 3관문 담당 시험관인, 루시아였다.
그녀가 목검을 어깨에 걸친 채 중얼거렸다.
“그래, 종이 한 장 차이긴 하네. 그 종이의 두께가 좀 두껍긴 하지만.”
아마 대륙 정도의 두께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 말도 안 될 정도로 큰 실력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방금 쓰러진 남자아이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끄으으…….”
“6성 기사를 상대로 싸우라니!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이……!”
“괴, 괴물!”
여기저기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는 아이들.
그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지.
“탈락자들은 빨리빨리 나가. 여기 이놈도 데리고 가고. 한 대 얻어맞았다고 바로 항복이라니. 하여튼 요즘 것들은 근성이 없다니깐?”
아이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시험장을 떠났다.
투덜거리던 아이들을 꼰대력으로 단번에 제압한 루시아.
그녀가 혀를 크게 찼다.
‘한 번의 공격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다니.’
수적 우위를 앞세운 협력과 협공은 개한테 줘 버린 걸까.
위기에 빠진 아이를 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이기에만 급급했다.
그래, 급조된 조라는 건 알고 있다.
미궁 시험에서 서로 날을 세운 채 통과했을 거고, 환영 시험의 여파로 더욱 기분이 나빠졌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전우가 뭔지도 모르나? 그냥 상대를 경쟁자로만 보는 거야?’
전우라는 개념을 모르는 아이들.
전쟁터에서 죽기 딱 좋았다.
‘전쟁터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팀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중간에 동료를 잃을 수도 있고, 낙오해 있다가 갑자기 팀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야.’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마주한 강자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용기와 희생정신, 전략을 보기 위한 시험.
그런데 한 대 맞고 나가떨어지는 꼴이라니.
‘내가 아카데미에 다닐 때처럼 전쟁이라도 터지면 어쩌려고…….’
마음이 복잡한 루시아였다.
‘2조와 4조.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 줘야지.’
1~12조는 카론이 상대했지만, 멀리서 지켜본 상태.
안목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루시아다.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뛰어난 팀워크와 용기로 카론에게 대적한 알렉스, 레이몬이 속한 2조.
대등하게 맞설 뿐만 아니라, 6성 기사 이상의 힘을 내도록 만들었던 테르온, 유리디아, 레제가 속한 4조.
테르온과 유리디아도 나이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레제, 그 아이의 활약은 놀라웠단 말이지.’
카론조차 잠시 멈추게 만드는 강력한 파괴력,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위험에 빠지는 순간마다 지원 사격을 해 줬을 뿐만 아니라.
1:1 상황에서 몰아붙이기까지.
상대가 천하의 카론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곱씹을수록 대단한 일이었다.
제로가 왜 그 토끼를…… 아니, 그 아이를 키우려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13조였던 제로는 뭐…… 말해 봤자 입이 아플 정도의 실력자지만.’
예외다. 그 아이는 천재니까.
천재를 저 아이들과 같은 선에 놓고 비교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다.
제로가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 말이다.
‘쯧, 나도 천재라 불렸는데…… 저건 솔직히 규격을 한참 뛰어넘은 거 아니야?’
한번 보는 것만으로 기술을 분석, 따라 할 수 있다니.
천재라고 해도 저건 너무 심했다.
‘게다가 저 능력은 ‘검’에만 한정된 게 아닐 거야.’
그렇다면 사용할 수 있는 비기의 가짓수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
저 아이가 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등골이 살짝 오싹해지는 루시아였다.
‘아무튼!’
현재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14조는 앞선 조에 비하면 아쉬운 조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자신의 일격을 버텨 낸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루나, 그리고 다이크라고 하던가?’
특히, 다이크라는 놈은 흥미가 돋는다.
제로가 편법과 꼼수의 달인이라면, 다이크는 ‘검’의 달인.
순수한 실력만으로 5성 기사의 경지를 이룩한 아이다.
‘짜증이 나서 조금 힘을 쓴 편인데…… 막아 냈다 이거지?’
제로의 괴롭힘(?) 때문에 제법 힘을 준 루시아다.
루나도 루나지만, 지금 당장은 다이크에게 더 관심이 가는 루시아였다.
‘그나저나 저 아저씨는 또 왜 저런담?’
쿠구구구구구-!
수풀 뒤에 숨어 있는 카론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눈빛만으로 몸을 뚫어 버릴 기세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뭐,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야.’
물론 그렇다 해도 너무 과한 반응이긴 하다.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기라도 한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체포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즉결 처형해야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을 터.
‘뭐, 나중에 확인하면 될 문제지. 지금은…….’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손봐 주는 게 먼저다.
루시아가 목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을 때였다.
“6성까지만이다! 시험이라는 걸 명심해라, 루시아!”
저 멀리 있는 숲속에서 소리친 카론의 목소리.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미친 로리콘 아저씨 같으니.”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닐까?
설마 전쟁터에서 자신을 구해 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루시아였다.
‘으윽, 그 당시에 내가 한 귀여움 하긴 했지. 그래도 저런 아저씨한테 관심을 받는 건 질색인데.’
루시아가 살짝 틈을 보인 바로 그 순간.
퉁!
다이크가 치고 들어왔다.
동시에 루나는 크게 돌며 루시아의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호오, 둘이 대화를 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합이 제법이다.
루시아가 한 달 동안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다이크는 테르온파의 실세 중 하나.
그리고 저 둘은 목숨을 건 결투를 펼치기도 했다고 들었다.
‘우선, 전우애는 합격!’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대라도 강대한 적 앞에서는 함께한다.
루시아의 가슴을 울리는 전우애였다.
우웅-!
다이크의 대검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마나를 주입한 거다.
“……이거 1학년 시험 맞지?”
다이크는 말없이 대검을 내리쳤다.
루시아 또한 들고 있는 목검에 마나를 주입하며 그에 응했다.
터덩! 텅-!
공중에서 얽힌 푸른 마나가 흩날린다.
멀리서 보기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몸 한군데가 잘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오호, 안정적이네. 그래, 5성 기사라 이거지?’
현재 다이크의 경지는 5성 기사.
아직 초입에 불과하지만, 그렇다 해도 5성 기사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4성부터 중급 기사의 반열이니까.’
1~3성은 하급 기사.
4~6성은 중급 기사.
7성부터는 어딜 가도 대접받을 수 있는 상급 기사로 분류한다.
4성부터 중급 기사로 분류하는 이유.
무기에 마나를 담을 수 있게 되는 최소 경지이기 때문이다.
담을 수 있는 건 미미한 마나지만, 방법을 깨우쳤다는 게 중요하다.
몸 안에 축적하는 마나의 양을 늘리고, 수련을 통해 무기에 마나를 전도시키는 양을 차츰 늘려 간다면.
언젠가 6성 기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4성의 경지를 이룩한다면, 6성까지 필요한 건 시간뿐이라는 말도 있다.
텅!
‘그런데 이놈은 불과 열다섯에 5성 기사란 말이지.’
루시아도 그러긴 했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말하는 법보다 무기 쥐는 법을 먼저 알려 주던 시대.
가문도 빵빵해서 어릴 때부터 전문 교육을 받았고, 영약이란 영약은 다 먹어 치우기까지.
같은 나이에 5성의 경지를 이룩했지만, 시작점이 다르다.
그래서 루시아는 다이크란 아이에게 궁금한 게 많은 상태였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전쟁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닐 텐데.’
후웅!
다이크가 휘두른 대검이 루시아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실전 경험이 많은 놈이야.’
능숙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사냥감을 사냥하는 것처럼.
물론 루시아도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간간이 옆과 뒤에서 들어오는 루나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다이크의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낸 상태다.
‘흐응~ 속임수는 적당히 먹히지만, 그렇다고 결정타는 내어주지 않고.’
다이크의 가장 큰 장점.
‘우직함.’
계속 밀고 들어오는 바위 같은 느낌이랄까?
이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이다.
영웅이라 칭송받는 루시아다.
그런데 주눅 들기는커녕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에만 전념한다.
상대가 누구든 개의치 않는다는 거다.
‘황제 폐하 앞에서도 뻣뻣한 자세를 유지할 놈이네.’
문제라면 저 우직함이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라는 것?
‘조금 더 보고 싶지만…… 슬슬 끝내야겠지?’
루시아가 슬쩍 빈틈을 드러냈다.
발을 미끄러뜨린 거다.
“아이쿠! 미끄러워라!”
“…….”
미끄러지며 다이크의 시선을 마주한 루시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는 걸.
‘알아차렸어?’
그렇다. 다이크는 자신이 함정을 팠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타닥!
다이크가 검을 가슴 앞으로 고쳐 잡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마무리 지을 자신이 있다는 건가? 하여튼 건방진 놈들투성이네!’
자신이 아카데미에 있을 때는 선후배 관계가 깍듯했는데.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된 건지!
루시아가 투덜거리며 대응에 들어갔다.
루시아와 여덟 발짝 떨어진 곳.
그곳에서 다이크가 눈을 빛냈다.
다이크 세 번째 오리지널 비기.
슐리쉘(Schlüssel).
돌진함과 동시에 양손으로 내지른 찌르기.
하지만 검을 내지른 다이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아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자신의 찌르기를 피해 냈기 때문이다.
‘……이걸 피해 냈다고?’
의도적이긴 했지만, 자세가 무너졌던 건 분명한 사실.
그 자세에서 대처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게다가 처음 선보인 비기였는데. 대체 어떻게……!’
종이 한 장이라는 간격. 이건 자신의 공격법과 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 마치.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꽤 좋았다. 미리 못 봤다면 위험했겠는걸?”
“……!”
미리 봤다고?
그제야 다이크는 깨달았다.
제로, 그 빌어먹을 실눈 자식이.
자신의 비기를 먼저 선보였다는 걸.
“쯧쯧, 보아하니 너도 당한 모양이네. 어쩌겠니.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찌르기의 최대 단점.
빈틈을 노출하게 된다는 것.
쩌엉!
루시아가 휘두른 주먹이 다이크의 명치에 정확히 꽂혔다.
“푸흡!”
다이크가 땅에 검을 박은 채 헐떡였다.
입에서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와, 이걸 기절하지 않고 버틴다고? 너, 보기보다 훨씬 맷집이 좋구나?”
“쿨럭, 쿨럭…….”
“쯧쯧, 기절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을. 어떻게, 내가 밖으로 날려 줄까?”
“……거절하겠습니다.”
승부는 끝났다.
주먹이 아닌, 목검을 휘둘렀다면 이미 저세상에 가 있었을 터.
루시아가 봐줬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다이크였다.
비틀비틀-.
다이크가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면서도 한 발짝, 한 발짝.
꿋꿋하게 말이다.
“그래, 저렇게 근성이 있어야지. 오랜만에 좋은 놈을 하나 봤…….”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텅!
루시아가 목검을 세차게 휘두르며 루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도 있었지.’
제로와 함께 다니는 아이, 루나.
트윈테일을 한 귀여운 외모의 여자아이.
그녀의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원래는 루시아의 흥미를 끌 정도의 아이는 아니었지만, 최근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루시아의 시선이 루나의 검집으로 향했다.
현재 루나는 검을 납검한 채,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계속 생각한 건데 말이야…… 지금 그거. 제로, 걔가 사용하는 비기를 따라 하는 거니?”
루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따라 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가문의 검술이고, 그걸 제로가 따라 한 거지만.
“네.”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현재 자신의 가문은 반역자로 낙인찍힌 상태니까.
“혹시, 그게 어느 가문의 검술인지도 아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루나가 입을 우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고양아, 너무 어린 거 아니니? 그런 반응을 보이면 누구나 다 눈치채잖니.”
“……네?”
“알고 있었구나. 그렇지?”
루시아의 눈동자가.
사납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