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쪽지 시험(20)
‘어, 어떡하지? 걸렸어!’
루나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루시아의 입이 비뚜름하게 열렸다.
“흐응~ 그렇구나. 그게 레스터 가문의 비기라는 걸 알면서도 쓰고 있었구나?”
“어, 어떻게 아셨죠?”
“음……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소스라치게 놀라던데. 난 무슨 고양이가 점프라도 하는 줄 알았지 뭐니.”
루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신이 그랬단 말인가?
‘실수했어.’
그것도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로 치명적인 실수다.
현재 레스터 가문은 반역자로 낙인찍힌 가문이니까.
루시아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루시드 가문의 사람.
지금 당장 자신의 목을 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루나가 꿀꺽 침을 삼킬 때였다.
“아하하! 뭘 그렇게 놀래고 그래? 왜? 내가 목이라도 칠 줄 알았어?”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레스터 가문의 검술을 따라 하는 사람은 많은 편이거든.”
루시아의 말은 사실이다.
당대 최강자라 불리던 레니아의 검술이기도 하지만, ‘일섬’이 워낙 멋진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렇구나. 내가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라는 걸 루시아 님은 모르고 계셔.’
‘일섬’을 따라 하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
즉, 루시아가 자신을 죽일 이유는 없다.
“나도 한때는 일섬을 연마했었을 정도니……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때가 생각난 것일까. 루시아가 꺄르륵 웃었다.
“물론, 모두가 나처럼 유한 건 아니다? 그런 걸 함부로 쓰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걸? 하여튼 나를 만나서 다행이지…… 고마운 줄 알렴.”
“가, 감사합니다.”
눈감아 준다는 루시아의 말.
그제야 루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제로처럼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루나가 감사 인사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였을 때였다.
“감사하긴. 아무튼, 이만 작별하라고.”
“예?”
“어린아이의 치기는 그쯤 하라는 뜻이야. 수련도 힘들지만, 반역자 가문의 검술이잖니? 후배가 잘못된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지.”
쿵!
루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일섬을, 레스터 가문의 검술을 버려라.
루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비기를 몇 개 알려 줄게. ‘그딴 것’보다는 훨씬 나을걸?”
……그딴 것이라고?
분노한 루나가 일섬을 날렸다.
물론, 루시아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해 낼 뿐이었다.
“뭐야. 열심히 수련한 비기를 비하해서 화가 나기라도 한 거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너무 조잡한걸.”
“…….”
“무엇보다 그 검술은 너 같은 애가 쓸 만한 기술이 아니란다. 그건 긍지 높은 가문의 것이거든.”
레스터 가문이 현존하고 있을 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긍지 높은 가문’이라고.
하지만 루나는 그런 건 알지 못한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가문이 멸망해 버렸으니까.
그런 루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일섬을 사용하며 발악하는 것뿐이었다.
“그쯤 해. 이미 선 많이 넘은 편이니까.”
후웅-!
한 줄기 바람과 함께 날아오는 루시아의 일격.
루나가 즉각 반응했다.
레스터 가문류 두 번째 비기.
월영(月影).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레스터 가문의 두 번째 비기.
절박해서일까,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일까.
루시아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흘려 낼 수 있었다.
“얼씨구? 월영까지? 이거 완전 레스터 가문 빠순이네.”
“…….”
“왜 그렇게 발악하는 거야?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도 아니고.”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어? 진짜야?”
루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루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손쉽게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원체 심리전이라는 걸 어려워하는 루나이기도 했지만.
현재 루나의 수준에서 동공 반응과 심박수, 호흡 조절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아무리 망했어도 그렇지. 레스터 가문의 위상이 대체 어디까지 떨어진 거람?”
정체를 손쉽게 들킨 것에 대한 한탄이 아니다.
‘내 실력에 대한 한탄이지.’
불과 5년 전까지 제국의 여덟 기둥 중 하나였던 레스터 가문이다.
앤스우드 제국이 왕국이었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역사를 생각한다면, 현재 루나의 실력은 눈 뜨고 볼 수도 없는 수준.
루시아가 한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백 년간 루시드 가문과 양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을 지켜 온 가문이니까.
“하아…… 그냥 여기서 내 손에 죽으렴. 너 같은 애새끼가 레스터 가문을 모욕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
“음…… 아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죽일 수는 없지. 반역자의 말로는 비참해야 맞는 거잖아?”
고문하고, 저잣거리에 매달아 둔 채 돌팔매질 당하고, 팔다리 한두 개쯤은 자르고 나서야.
목을 매달고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
“그게 바로 반역자에게 어울리는 최후 아니겠어?”
루시아가 섬뜩한 말을 내뱉었지만, 루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위압감에 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자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아…….’
순간, 물방울이 눈앞을 가렸다.
비가 내리나?
손을 들어 재빨리 물방울을 닦아 낸 루나는 깨달았다.
자신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흐응~.”
목검을 까닥거리던 루시아.
이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아아, 그러고 보니. 제로, 그놈도 한패지? 애초에 그놈은 이상한 것투성이긴 했어. 잘됐네. 같이 매달릴 사람이 있어서. 외롭지는 않겠어.”
그제야 루나는 정신을 차렸다.
제로.
레스터 가문이 누명을 썼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
모난 성격을 지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첫 번째 친구.
“……내 친구를 건드린다면 물어 죽일 거야.”
그게 영웅이라 불리는.
당신이라 할지라도.
“감히 내 앞에서 이를 드러내? 고양이 새끼 주제에…… 건방지게.”
루시아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누구든 오금이 떨릴 수밖에 없는 표정.
하지만 루나는.
“덤벼.”
무덤덤하게 일섬의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루나의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루시아를 쓰러뜨리고, 제로를 데리고 도망친다.
‘레제에게 편지 한 통만 남길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네.’
지금 루나의 머리에 패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루시아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듦과 동시에.
루나가 한 기억을 떠올렸다.
* * *
루나가 다섯 살 때쯤이었을까.
남편 몰래 군것질을 하고 싶었던 레니아.
그녀가 루나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었다.
“자, 이걸로 루나랑 엄마는 공범이야.”
“공범?”
“음…… 동료라는 단어랑 같은 뜻이랄까? 동료 알지?”
“응! 동료 좋아! 든든해!”
그렇게 레니아는 성공적으로 군것질을 할 수 있었다.
딸이라는 이름을 한 방패는 언제나 든든한 법이다.
“엄마, 긍지가 뭐야?”
“그, 긍지? 우, 우리 루나가 벌써 다 컸구나. 그런 어려운 말도 다 알고.”
잠시 생각하던 레니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으음…… 엄마도 잘 모르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말하잖아. 우리 가문은 긍지가 높은 가문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알려졌을 뿐이야. 권력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이렇게 됐달까?”
“어려워. 그게 무슨 말이야?”
권력에 야욕을 드러내지 않으며, 황실에만 충성해 온 레스터 가문.
하지만 레스터 가문이라고 해서 기둥의 자리를 잃고 싶었던 건 아니다.
특히, 제국임을 선포한 이후 시작된 귀족 간의 이권 다툼.
자기들끼리 나눠 먹던 이권도 모자라 슬금슬금 레스터 가문의 이권까지 더러운 손을 뻗었다.
‘봐주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말이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레스터 가문에서 정계 진출을 선언할 조짐을 보이자, 귀족들이 입을 모아 레스터 가문의 긍지를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권력에는 관심 없는, 황실과 제국민에게만 충성하는 위대한 가문’이라면서.
그리고 이어진 황제의 중재와 기둥들의 비호.
그로 인해 레스터 가문의 이권은 무사할 수 있었다.
다만, 정계 진출을 위한 길은 완전히 막혔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뭐, 원래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이런 복잡한 상황을 루나에게 말해 준다고 해서 알아들을 리 없다.
때문에 레니아는 ‘긍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으음, 사실 엄마도 잘 몰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럼 엄마가 정의해 줘!”
“어, 엄마가?”
레니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지능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범인의 수준.
머리를 쓰는 건 남편의 일이다.
‘하여튼 이 이는 필요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다니깐?’
투덜거리던 레니아가 초롱초롱한 루나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긍지.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마음.
일명 프라이드.
하지만 이런 어려운 서술을 어린 루나가 이해할 리 없다.
레니아가 그런 루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게 바로 긍지가 아닐까?”
루나가 생각에 잠겼다.
음, 역시 어려운가 보다. 역시 남편을 불러야…….
“그럼 엄마의 긍지는 뭐야?”
“엄마의 긍지? 음, 그건…….”
레니아가 뭐라고 말함과 동시에 루나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 * *
길었지만, 짧은 기억.
찬란하면서도 따뜻했던 기억.
하지만 루나의 눈앞에는 어느새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루시아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현실이.
긍지.
루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레스터 가문의 상징이었던, 엄마의 긍지가 무엇이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하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게 바로 긍지가 아닐까?
루나의 눈이 번쩍하더니,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살짝 굽힌 왼쪽 무릎, 그에 맞춰 직각으로 세워지는 검집.
그로 인해 더 숙어지는 허리.
루시아를 향해 발을 내디디며, 이를 악물었다.
긍지를 증명해라.
친구를 지켜 내겠다는 자신의 긍지를.
관철하는 거다.
발목부터 시작된 회전이 종아리로, 허벅지로, 허리로 이어짐과 동시에.
루나의 검이 뽑히며 빛이 쏘아져 나갔다.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쿠콰콰콰쾅-!
루나가 쏘아낸 일섬이 나무가 가득한 숲에 닿으며 길쭉한 검흔을 남겼다.
그곳에 루시아의 형체는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루시아.
루나가 다시금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루나의 손목을 잡은 루시아가 싱긋 웃음을 흘렸다.
“찾았다,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
“에……?”
“혼자서 열심히 했구나. 이제는 걱정 말렴. 내가 함께할 테니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루시아의 손길.
“우, 우으…… 우으으…….”
엄마가, 아빠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칭찬해 줬을까.
루나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루시아의 품에 안긴 채.
* * *
울음을 그친 루나가 출구로 나간 이후.
카론이 루시아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난이 심했군.”
“시끄러워. 아저씨가 진작 말해 줬다면 이런 일도 없었거든?”
루시아가 투덜거렸다.
사실 그녀도 루나가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제로와 카론의 귀띔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왜 시험을 본 거냐? 대충 알았으면서.”
“가문의 긍지를 이을 수 있는지는 확인해야 하니까. 알잖아? 저 아이는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힘들 거라는 거.”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로서 도망쳐 온 삶보다.
레스터 가문의 명예를 복원하려는 앞으로의 삶.
후자 쪽이 힘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시험을 봤다는 건가? 악취미로군.”
“아저씨도 언젠가 보려는 시험 아니었어?”
“……너무 어리다.”
“하지만 통과했지.”
그렇다. 루나는 시험을 통과했다.
레스터 가문의 긍지를 이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한 거다.
“아저씨, 알지? 루나는 테르온과 다르다는 걸.”
카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아는 알 수 있었다.
그 또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테르온은 ‘유리디아를 감싸는 행동’을 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카론 또한 그 사실을, 테르온이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유리디아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카론은 테르온에게 높은 점수를 줄 생각이었다.
‘그런 분석 또한 실력이니까.’
하지만 이게 만약, 시험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면 어떨까?
이길 수 없는 강자를 마주한 상황.
동료들은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단둘만이, 그것도 자신과 적대하는 파의 수장과 단둘이 남게 된다면?
테르온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도망을 선택했을 거다.
‘그게 사람의 본성이자, 테르온이란 아이니까.’
하지만 루나는 다르다.
제로와 레제를 도망가게 하고, 자신이 홀로 남아 최후를 맞이했을 거다.
친구를 지키는 것.
그게 바로.
루나의 ‘긍지’니까.
“조건을 충족했으니…… 합격을 주는 게 당연하겠지?”
“…….”
“에고고…… 이 나이에 제자를 받다니. 늙은이를 괴롭히는 건 좋지 않다고.”
“서른 중반인 주제에 늙은이라니. 그럼 나는 노인이란 소리냐?”
“아저씨 대신 그 호칭을 바란다면 얼마든지 해 줄게. 가자고. 애들이 기다릴 테니.”
루시아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루나의 일섬이 남긴 풀숲. 그곳을 바라보던 카론이 중얼거렸다.
“합격의 조건…… 인가.”
제로가 스스로 개척해 낸 검의 길을 보고, ‘합격’을 주긴 했지만.
사실 제로는 진정한 의미의 합격자가 아니다.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내는 시험에는 항상 내포된 의미가 있다.
그건 이번 쪽지 시험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카론이 낸 이번 쪽지 시험 3차 관문에서 보고자 했던 건.
강자를 마주한 상황.
실력 차이가 난다는 걸 알면서도 당당히 대적하는 용기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노력과 동료들과의 합.
동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정신.
알렉스, 레이몬, 유리디아, 다이크, 레제, 제로.
그 누구도 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지.’
그렇다. 루나야말로 쪽지 시험 3차 관문, 단체 결투의…….
최초이자, 마지막. 그리고.
진정한 합격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