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2)
제182화
182화. 스승과 제자(1)
“후후, 아프군요.”
현재 내 오른쪽 엉덩이는 1.5배쯤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루시아가 루나를 끌어안음과 동시에, 카론이 내 엉덩이를 뻥! 걷어차며 출구로 내쫓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카론 같으니. 하여튼 정이 안 간다니깐?’
투덜거리며 출구를 빠져나오자, 평탄한 공터가 나를 반겨 주었다.
1조에서 14조로 나뉘어 시험을 봤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친구끼리 또는 세력끼리.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중이었다.
교관들이 딱히 터치하지 않는 걸로 보아, 조별로 모이지 않더라도 괜찮은 모양이다.
“크, 크라켄! 역시 살아남았군요!”
“저놈은 13조 아니었던가? 어떻게 14조보다 늦게 나오지?”
“화장실이라도 갔다 온 거겠지. 어기적어기적 걷는 자세를 봐.”
“역시 크라켄! 똥도 거대하다는 거군요!”
아이들의 흘끔거리는 시선과 경계의 시선, 매도의 시선까지.
평소라면 짜증을 냈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루나의 시험도 잘 끝난 것 같고…… 이제 보상의 시간만 남은 건가?’
대체 얼마나 엄청난 보상을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사기적인 무기? 내가 모르는 스킬? 아티팩트? 아니면 천금에 달하는 돈?
기대감만으로도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 좋아진 나였다.
웅성웅성-.
“응?”
그러던 와중, 내 시선을 무언가가 잡아끌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뭔가를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뭐지? 게임에서 이런 이벤트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나로 인해 생긴 새로운 이벤트인 걸까?
아이들이 모여 몇 겹이나 되는 벽을 만든 상태였지만, 파고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물러나며 공간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편하단 말이지.’
[불길한 기운]과 실눈이 만들어 낸 시너지 효과.평상시에는 짜증이 절로 치밀어 오르는 스킬이지만, 아주 가끔 쓸 만한 때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응? 스킬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변태적인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도망치듯 물러나는 거 아니냐고?
……착각일 거다. 나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으니까.
시간이 흐른다면 사소한 오해(?)가 풀리며 행복한 아카데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아무튼, 머지않아 안쪽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응?”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가 양쪽으로 서 있었다.
가장 앞쪽에는 유리디아와 테르온이 자리해 있었고.
여기까지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게 한 가지 있었다.
유리디아와 테르온이 ‘무언가’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놀랍게도…….
“그 더러운 손 당장 치우세요! 레제 양이 아파하잖아요!”
“유리디아 네년이 잡고 있어서 그런다는 생각은 안 하느냐?”
“히, 히이이이이익!!”
……개복치 토끼, 레제였다.
그녀는 현재 유리디아와 테르온에게 손목을 한쪽씩 붙들린 상태였다.
……쟤는 저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인재를 알아보고 영입하는 것이야말로 유리디아파의 존재 의의! 레제 양을 영입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말은 잘하는구나! 지금까지 손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주제에!”
“오늘부터 관심이 생겼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테르온 군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그 손을 놓는 게 좋을 거다. 큰일을 치르기 싫다면 말이지!”
테르온파의 아이들이 움직일 기세를 취했다. 그에 맞춰 유리디아파의 아이들도 기세를 올렸다.
전면전을 벌인다면 유리디아 쪽에 불리한 상황.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유리디아가 아깝다는 듯 입을 열었다.
“좋아요. 우선 대화를 해 보죠. 셋 하면 동시에 놓는 거예요!”
“그러지.”
“하나…… 둘…… 셋!”
“…….”
하지만 둘 다 레제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을 뿐.
“끼, 끼이이이이!!”
아픔은 물론, 레제의 몫이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나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내가 키우는 토끼(?)란 말이다!’
감히 우리 집 토끼를 노리다니.
심지어 위험을 알리는 레이더 기능과 사격술까지 겸비한 토끼 아닌가.
그런 우수한 토끼를 도둑질하려 하다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후,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제로 군!”
“제로……!”
유리디아와 테르온이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분위기가 바뀐 거다.
레제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은 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도둑질하려던 순간을 들켰기 때문일까.
유리디아와 테르온은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리털이 곤두선 레제.
그녀를 부드럽게 품에 안으며 선언했다.
“후후, 이건 제 겁니다.”
“……!!”
자신들의 수장이 무시당했다고 느낀 것일까.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의 남자아이들이 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건방진 놈!”
“선을 넘는구나! 테르온파 서열 5위, 제파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
하지만 그들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당신은 임자가 있잖아요! 그런데 다른 여자아이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당당히 바람을 피우다니!”
“역시 크라켄이라는 건가요! 정말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군요!”
“모두 일어서세요! 크라켄 제국의 건설을 막는 겁니다!”
와아아아아-!!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의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남자아이들이 그들의 발밑에 깔린 채 신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디아파는 그렇다 쳐. 그런데 테르온파의 여자아이들까지 저런다고?’
내가 유리디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흥!’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 세력까지 규합하는 데 성공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진짜 무서울 정도다.
“후후, 상황이 좋지 않군요. 먼저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선택한 건 도망이었다.
그렇게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 집 토끼…… 아니.
레제를 옆구리에 낀 채로.
* * *
“후우…… 이제야 살겠군요.”
옆구리에 있던 레제를 땅에 내던진 후, 땀을 훔쳤다.
무려 10분이나 이어진 추격과 도주.
교관들의 제지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없었다면 중간에 따라잡혔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험난한 추격전이었다.
“이, 이 나쁜 놈!”
레제가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았다.
힘 스탯 3.
개복치 토끼, 레제의 주먹이었기 때문이다.
“후후, 왜 이러십니까? 제가 아니었다면 반으로 갈라졌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만.”
“초, 총을 맞으면 다 죽는다면서요! 아니에요! 초, 총 따위로는 절대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요오오오옷!”
이게 무슨 말일까?
총을, 그것도 마도 총을 맞고도 안 죽는 사람이 있다고?
“괴, 괴물이었어요. 저, 저는 죽고 말 거예요오오오옷!”
두서가 없는 레제의 말.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다.
‘……카론. 이 인간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소심한 레제가 공격성을 띠게 하다니.
레제의 증언을 보아하니 마나탄이 카론의 몸에 닿긴 한 모양이다.
‘레제는 4조, 나는 13조였지.’
3차 관문에서 카론이 나를 상대한 건 아니지만, 딱히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마나탄에 맞고도 다치지 않았다는 레제의 말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
‘진짜 몸이 무쇠로 되기라도 한 거냐?’
살인 전차라는 별명이 퍽 잘 어울리는 카론이었다.
뭐가 그리 서글픈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레제.
그녀를 토닥이며 물었다.
“후후, 작전은 어디까지 실행했습니까?”
“끄, 끝까지요.”
유리디아와 테르온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카론과 일대일 승부까지.
내 전략을 충실히 수행해 냈단 말인가?
‘그래서 유리디아와 테르온이 저러고 있었던 거군.’
위험할 때마다, 필요한 순간마다 날아오는 원거리 지원.
마도 총의 화력도 목도했을 테니, 그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후, 제 말을 잘 들으셔야겠군요.”
“예? 왜, 왜요?”
“제 곁에서 벗어난다면 레제 양의 몸이 반으로 쪼개질 테니까요.”
“히, 히이이이익!!”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유리디아와 테르온. 레제의 가치를 알아차린 둘이 레제를 가만히 둘 리 없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나와 함께하거나, 자퇴하는 것.
본의 아니게 레제의 앞에는 극단적인 선택지만이 남고 말았다.
‘그 둘에게 넘길 수는 없지.’
아무래도 레제에게 작은 족쇄를 채워 놔야겠다.
“후후, 반으로 쪼개지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그, 그야 당연하죠…….”
“그럼 저와 함께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간단하게 계약서부터 작성할까요?”
“에, 에……?”
[아공간]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특별한 종이는 아니다.
수익은 9:1로 배분, 내 말에는 무조건 복종, 자퇴 금지 등등.
불평등한 노예 계약서…… 아, 아니. 어딜 봐도 평범한 계약서다.
“서명하시면 됩니다. 내용은 뭐…… 보실 것 없습니다. 제가 레제 양의 안전한 아카데미 생활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니까요.”
“그, 그런가요? 하지만 여기에는…….”
“후후, 루나 양과 함께하는 두근두근 아카데미 생활이 기대되지 않나요? 싫으면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군요.”
“아, 아니에요! 서, 서명할게요!”
계획대로다.
레제가 사인을 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친구를 괴롭히지 마랏!”
“크억!”
누군가 내 등에 발차기를 날렸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하여튼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내 친구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루나였다.
재빨리 계약서를 [아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방금 그 종이 뭐냐?”
“후후, 별거 아닙니다.”
“별이 되게 해 줘? 빨리 안 불래?”
루나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억울하다. 나는 레제에게 공평한(?) 계약을 제의했을 뿐인데.
곤란한 상황. 하지만 이 상황을 벗어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루나 양.”
“왜.”
“혹시 우셨습니까? 눈이 벌겋게 부었는데요.”
“우, 울다니! 내가 울 리가 없잖아!”
눈물을 흘렸다는 게 창피했던 걸까.
루나가 내 귀를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음, 평범한 일상이군.’
쪽지 시험이 끝났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너희들은 언제나 시끄럽구나.”
카론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제가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 죽을 거예요! 죽고 말 거예요오오옷!”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중에 자세히 들어 봐야겠다.
“호들갑 떨지 말고 모두 모이도록. 지금부터 새로운 우수반을 발표할 테니 말이다.”
카론의 뒤를 따라 평원으로 향했다.
1학년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여자아이들의 찌릿한 시선을 느끼며 아이들 사이로 몸을 섞었다.
“그럼 지금부터 우수반을 발표하도록 하겠다. 순서는 랜덤이며, 순위 또한 발표하지 않는다. 괜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입학시험 당시, 테르온파에 순위를 유출한 교관 때문에 생긴 변화.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도 상관없다.
“다음은…….”
차례차례 우수반에 속한 아이들이 발표됐다.
시간이 갈수록 유리디아파에는 화색이, 테르온파에는 암운이 돌았다.
유리디아파가 10% 정도 늘어난 반면, 테르온파는 15% 정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머지 5%는 파벌에 속하지 않은 아이들이 차지했다.
‘이미지에 큰 상처가 났군.’
실력파라고 주장해 온 테르온파의 입장에서는 꽤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서 일어난 변화보다 큰 낙폭이다.
유리디아가 쪽지 시험의 힌트를 얻은 영향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에 변화가 생기면 큰일인데…….’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듯하다.
하나둘 불리던 와중, 카론이 시선을 우리 쪽으로 옮기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레제 드 레리아, 우수반.”
우리 토끼…… 아니, 레제의 이름이 불렸다.
“됐어! 레제! 됐다고!”
“에, 에……?”
루나가 레제의 손을 맞잡은 채 날 듯이 기뻐했다.
순간, 레제가 비틀거렸다. 가슴팍을 붙잡으면서 말이다.
“레제, 왜 그래? 어디 아파?”
“뭔가…… 뭔가 이상해요. 가슴 어딘가가…… 가, 간질간질한…… 벅차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레제의 서술은 두루뭉술했지만, 나는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레제가 느끼고 있는 것.
그건 바로.
“성취감 때문입니다.”
“서, 성취감……?”
“예. 인정받았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죠.”
어떤 일생을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자존감이 유난히 낮은 레제다.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지금이 처음일 거다. 그래서 지금 느끼고 있는 게 뭔지도 몰랐던 것이고.
그렇다. 지금 레제는.
일생일대,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것 외에도 이 세상에는 즐거운 게 많습니다.”
“저, 정말요?”
“물론이죠. 저와 함께한다면 더 많이,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빠안-.
레제가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 말이 진짜냐는 것처럼.
동시에 그 뒤에서 사나운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내 친구한테 작업 걸지 마라. 물어 죽인다.”
“후후, 그런 적 없습니다만?”
“문답무용!”
루나가 내 귀를 깨물기 위해 이를 내밀고, 나는 그런 루나의 이마를 힘껏 누르고 있을 때였다.
“여, 열심히 할게요.”
“응?”
“여, 열심히 할 거예요. 부, 부족한 저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가슴 앞에 모은 손을 달달 떠는 레제.
그런 레제를 루나가 힘껏 안아 주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다.
“그, 그런데…… 다음 서, 성취감은 어떻게 얻죠?”
“목표를 설정해야죠.”
“모, 목표요?”
“후후, 이미 계획도 다 짜 둔 상태입니다.”
루나와 레제가 눈을 빛냈다. 어서 말하라는 것처럼.
‘미리 말해도 괜찮겠지.’
모처럼 소심한 레제도 의욕을 내는 상황이다. 이럴 때 말한다면 더욱 의욕을 불태우지 않을까?
우리의 다음 목표. 그건 바로…….
“후후, 악마를 한 놈 잡을 겁니다. 그것도 상급 악마를요.”
“…….”
풀썩-.
레제가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