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185화. 스승과 제자(4)
카론의 비밀 집무실 중 한 곳.
밤이 늦었다는 걸 깨달은 카론이 눈앞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작은 아이, 제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진 심문.
예고했던 대로 뜨거운 시간이었지만, 제로도 불만은 없을 거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아주 뜨거운(?) 특별식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부르도록 하겠다. 나가는 길은 시궁쥐가 알려줄 거다.”
“후후, 그럼 저는 이만…….”
제로가 자리를 나섰다. 여유가 가득 담긴 특유의 미소와 함께.
하지만 카론의 눈썰미를 속여넘길 수는 없었다.
‘체력이 다했군.’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고.
시시콜콜한 얘기와 되먹지도 않은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끌며 생각할 시간을 벌었으며.
허를 찔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상황에 맞는 변명을 늘어놓기까지.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는 듯 괜찮은 척하는 저 뒷모습을 보라.
‘건방진 놈.’
그것도 아주 시건방진 놈이었다.
카론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뭐, 저런 행동 자체가 대단한 거지만.’
이곳으로 끌려온 직후, 제로가 물구나무를 서며 땅에 머리를 박음과 동시에 시작된 긴 이야기.
그럴싸한 이야기였지만, 어느 정도 거짓이 섞였다는 걸 알아차린 카론이다.
‘특히,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고작 그걸로 루시아와 내기를 했고, 제자가 됐다?’
루시아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뭔가가 더 있다. 예를 들면.
‘루시드 가문의 약점이나 비밀을 알고 있다든가?’
확실한 건 아니다.
루시아가 아카데미에 온 이후, 중간중간 엿들은 대화와 반응의 파편으로 추측한 것일 뿐.
‘루시아를 협박하는 배짱이라…… 뭐, 나도 비슷한 걸 겪었으니 못할 건 없겠지만…….’
도대체 뭘 쥐고 있길래 저 말괄량이 루시아의 목줄을 쥘 수 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한 카론이었다.
제국에 존재하는 정보 중 90% 이상은 자신을 거친다고 자신하는 카론이었으니, 더욱 관심이 갔다.
뚜둑-.
‘고문을 하면 알아낼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그게 고문을 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저 확률을 높은 수치로 올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건방진 태도, 거짓말, 정체불명, 개인적인 호기심.
제로를 끌고 갈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카론이 제로를 가만히 두는 이유. 현재 루나의 임시 보호자로 제격이기도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제법이란 말이지.’
그럴싸한 변명, 진실 속에 간간이 섞인 거짓, 추궁에도 굴하지 않는 강심장.
뛰어난 정보력과 심장 박동수를 조절하는 기술까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건.
카론 세 번째 오리지널 비기.
흑충아랑(黑衝餓狼).
한번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술을, 가문의 비기도 상관없이 따라 할 수 있다는 제로의 주장.
카론이 코웃음 치며 기술을 선보이자, 제로가 즉각 자신의 오리지널 기술을 펼쳐 보였다.
……그것도 하품을 하면서 말이다.
‘내 비기 중 가장 까다로운 놈이었는데…….’
첫 공격으로 적의 시야를 빼앗고, 반대쪽 손에 들린 단검을 급소에 찔러넣는 기술.
양손이 약 0.3초의 간격을 두고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은 신경 쓰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뼈를 내주는 대신 상대의 목숨을 확실하게 가져오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가 동급의 강자가 아니라면 뼈를 내 줄 필요도 없지만.
‘그걸 저놈은 알아차렸단 말이지.’
기술 속에 감춰진 근간과 묘리를 깨닫고 이해한 거다.
즉, 제로가 주장하는 ‘다른 가문의 비기를 따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진실.
솔직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가문의 비기를 따라 할 수 있는 사람. 예전에도 몇 놈 있긴 했다.
르앵도 그중 하나였고 말이다. 하지만.
‘고작 한번 본 것만으로, 그것도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물론, 저런 제로를 칭할 수 있는 단어가 이 세상에 없는 건 아니다.
하늘이 허락한,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존재를 칭하는 단어.
천재(天才).
‘…… 라는 건가.’
카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천재라는 단어를 입에 잘 올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재라고 불리는 놈들. 막상 찾아가 보면 대부분이 바보 같은 놈들 천지였지.’
진짜 천재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천재라는 걸 자각한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나태’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걸 왜 못 하는 거지? 이렇게 쉬운데.’
-라고 생각하며 노력을 경시, 천재적인 재능을 썩히게 되는 거다.
청년기를 의미 없게 보낸 뒤, 뒤늦게 깨달음을 얻어 노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천재적인 재능은 여전하지만, 신체가 망가진 상태.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마나의 절대량이 부족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태한 천재보다는 노력하는 범재가 낫다.’
그래서 제로가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카론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3차 관문, 루시아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선보였던 그 ‘일격’.
“강해지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라…….”
다시금 그 일격을 떠올린 카론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비기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일격이었다.
‘다이크 그놈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 다이크 또한 개인적으로 연마한 비기를 갖고 있었다. 그것도 세 개나.
심지어 위력과 기술 숙련도도 다이크가 압도적이다.
한 개와 세 개.
누구나 다이크가 우수하다고 말할 거다. 하지만.
‘그건 제로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지.’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기술을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비기만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최강의 비기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로는 다른 가문의 비기를 사용할지언정, 맹목적으로 좇지는 않았다.
오히려 본연의 힘을 키우기를 바랐지.
‘쉽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길. 하지만 최고는 될 수 없는 길.’
그 길이 품고 있는 함정에, 유혹에 빠지지 않은 거다.
‘노력하는 천재. 그보다 무서운 놈은 없지.’
재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한다.
솔직히 말해 미친놈이다.
카론 자신에게 저런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면.
아니, 저것의 티끌만 한 재능이라도 있었더라도 곧바로 나태의 길로 빠져들었을 거다.
“……재밌군.”
만약 제로가 노력하는 천재. 그 미친놈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비기를 모두 익히고, 본인의 검술까지 연마한다면?
제국 역사상…… 아니, 대륙 역사상.
“최고의 괴물이 탄생할지도 모르겠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카론.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웃고 있었다는 걸.
“흠흠…… 뭐, 지금 중요한 건 저놈이 아니지.”
카론이 제로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제로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칼로스. 그곳에 있는 흑마법사들을 찢어 죽이는 게 먼저다.
스르륵-.
그렇게 카론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 *
‘에구구…… 머리야.’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짚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욱신거린다.
어젯밤 늦게까지 카론과 지옥의 심리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시궁쥐를 동원하는 걸로도 모자라 납치까지 할 줄이야…….’
아이들이 루시아와 함께 앞으로 이동한 순간, 내 얼굴에 마대 자루가 씌워졌다.
그렇게 도착한 카론의 비밀 집무실. 그곳에서 시작된 지옥의 심문.
‘사실상 정신적 고문이었지.’
아카데미에서 제공한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이후, 밖으로 나섰다.
아직 바람이 찬 이른 아침이다.
옷깃을 여미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침 식사 전, 간단한 운동 시간을 갖겠다는 공지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쪽지 시험 때문에 잔뜩 긴장했던 몸을 풀어줘야 한다나 뭐라나.
운동장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자리해 있었다.
“저쪽으로 가라. 여긴 테르온파의 자리다.”
“아, 미안 미안. 어제 시험 이후에 우리 쪽 인원이 많이 늘어서 말이야. 양보 좀 해달라고. 어차피 그쪽은 인원이 줄었잖아?”
“건방진……!”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의 기 싸움.
익숙하다는 듯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기존 우수반 아이들.
이번에 우수반으로 승급한 아이들.
어느 쪽 세력에 붙어야 할지 아직도 생각을 정하지 못한 아이들까지.
‘오늘도 우수반은 평화롭군.’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카론과의 대화를 천천히 복기했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계속된 심문.
짧은 시간이 아닌 데다, 카론의 본거지에서 심문을 당했다.
질문은 칼처럼 날카로웠고, 얻어맞은 꿀밤만 수십여 대.
그간 루시아와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드 가문이 악마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 그것만 빼면 ’
아무튼, 위험했던 상황치고는 잘 넘긴 편이긴 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말에 어느 정도 거짓말이 섞였다는 걸 눈치챘다는 건데.’
[정신방어] 스킬로 가능했던 호흡, 심박수 조절.내 나이대에 가능한 기술이 아니다. 즉, 지금까지 카론은 내 말이 다 진실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중간중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말았다.’
카론이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참 대단한 놈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표정에 변화 하나 주지 않다니.
‘나중에 써먹기 위함이겠지.’
협박이든, 거래든, 목숨 탈취(?)든.
좋은 용도로 쓰이지는 않을 거다.
아마 이전에 했던 대화도 전부 참/거짓의 판별에 들어갔을 거다.
당장 내 목이 꺾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제로! 이쪽이야!”
루나가 양팔을 붕붕 휘두르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그렇다. 현재 나는 루시아의 제자이자, 루나의 보호자.
특히 루나를 보호하는 데는 나만 한 존재가 없으니, 당장 목을 꺾으려 들지는 않을 거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네크로맨서 볼칸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카론이 준비한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루시아가 합류하는 히든 피스가 발동한 상황.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볼칸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천왕 중 한 명. 게임 후반부 대륙을 집어삼키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을 여기서 죽일 수 있다면.
카론에게 얻어맞은 수십 대의 꿀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우리 레제는 어딨지?”
걱정으로 가득한 루나의 목소리.
그 순간, [초감각] 스킬이 발동했다. 근처에 있던 레제의 위치를 잡아낸 거다.
“거의 다 왔습니다. 길이 막혀서 못 오고 있을 뿐.”
“길? 길이 왜 막혀? 주위가 뻥 뚫려 있는데.”
“후후, 저길 보십시오.”
내가 가리킨 곳에서는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의 기싸움이 한창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뒤편에서.
뽈뽈뽈-.
뽈뽈뽈-.
운동장 모양으로 위장한 상자가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은신이 드러나는 걸로 보아, 상당히 당황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우리처럼 주의 깊게 보지 않는 한 눈치챌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후후, 저희가 보이긴 하는데 갈 수는 없고. 빨리 가고는 싶고. 시야는 좁아지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빨리 데리러 가야지!”
“다녀오십시오.”
아침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깃을 단단히 여미던 때였다.
루나가 내 머리채를 단단히 붙들었다.
“다녀오긴 뭘 다녀와. 너도 같이 가야지!”
“저도요? 어째서죠?”
“친구가 위기에 빠졌잖아!”
아니, 너만 가도 되잖니? 귀찮게 나를 왜 데려가는 건데?
그리고 사람들은 저런 걸 위기라고 말하지 않거든?
하지만 루나의 눈에는 전쟁터에서 울부짖는 새끼 토끼처럼 보이는 걸까.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루나가 내 머리채를 붙든 상태라는 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서 비켜! 길 막지 말고!”
루나는 우회가 아닌 직진을 택했다.
으르렁거리는 아이들 사이를, 정확히는 유리디아와 테르온의 앞을 지나친 거다.
“저, 저놈들이……!”
“무엄한!”
두 수장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너희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라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
기싸움을 하던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 그리고 이번에 승급한 아이들의 시선 또한 우리에게로 향했다.
“히, 히이이이익!”
레제가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내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는 거다.
“크라켄……!”
여자아이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음, 오늘도 역시 평화로운.
평소와 같은 우수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