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6)
제186화
186화. 스승과 제자(5)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온 교실.
내 왼쪽에는 루나가, 오른쪽에는 레제가 자리했다.
왜 내가 중앙이냐고?
“음…… 둘이서도 좀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난 둘 다 친하니까. 이 기회에 둘이 친해져 봐.”
둘이 친하게 지내라는 루나의 지시 때문이다.
물론 레제에게 눈독 들이면 죽는다는 서늘한 협박은 덤이었다.
그렇게 루나와 레제의 사이에 앉은 바로 그 순간.
“여자가…… 늘었어?”
“크라켄의 촉수가 또 순진한 여자아이를…….”
“루나 양이 불쌍해서 어쩌죠. 자리까지 양보하는 저 착한 모습을 보세요.”
여기저기서 시작된 여자아이들의 걸스 토크!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 억울한 나였다.
우리는 친구 사이인 데다가, 루나의 지시로 인해 이런 상황이 된 거니까.
그렇게 뒤통수가 따끔따끔함을 느끼고 있을 때, 카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동안 학교를 비우게 됐다. 그동안 내 수업은 도란 선생이 맡을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단상에 오르자마자 터진 카론의 충격 발언. 아이들이 즉각 웅성거렸다.
“엘레스터 님도 휴강 아니신가?”
“저번 주부터 휴강이시긴 했지. 몸이 안 좋다고 들었어.”
건강 관리와 스케줄 관리 또한 실력.
앤우드 아카데미의 교사가 그런 실수를 할 리 없다.
대마법사 엘레스터는 나이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업, 건강, 시간, 면담, 심지어는 학생의 컨디션 관리까지.
마도 기계가 아닌가 종종 의심받는 카론이 휴강을 선언했다?
“엘레스터 님과 카론 선생님. 둘 다 휴강이라고? 우연일까? 아니면…….”
의심의 싹이 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까지 휴강인가요?”
“모른다.”
“곧 중간고사인데, 시험 출제자는 카론 선생님인가요, 아니면 도란 선생님인가요?”
“모른다.”
아이들의 미간이 좁아졌다. 대답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정답을 도출해 내는 것. 그게 카론의 수업방식이었지만, 지금 대답은 좀 묘했다.
카론의 성격치고 애매모호한 대답이랄까?
유리디아가 손을 들어 올렸다.
“혹시 임무를 수행하시는 건가요?”
“……그렇다.”
“이, 임무라고?”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카론이 제국의 시궁쥐로 활약했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나이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난 걸로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늙었긴 해도, 한때 제국의 시궁쥐라 불리던 남자니까.
하지만 아카데미에 온 이후로는 선생의 본분에 충실했던 카론이다.
‘뭐, 그렇게 보이는 거지만. 그러고 보면 진짜 괴물이긴 하네.’
제국의 시궁쥐라는 본연의 업무와 앤우드 아카데미 선생님이라는 가장 업무.
두 가지를 완벽히 수행하고 있었다. 24시간 깨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고 있는 거다.
아무튼, 일선에서 물러났던 카론에게 갑자기 임무가 하달되는 것도 모자라 아카데미를 벗어나야 한다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당황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인력이 모자란가?”
“그럴 리가 없잖아. 강제로 은퇴 당하는 사람이 한 무더기인데.”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해 은퇴를 종용하고 있기도 했지만, 현재 제국의 인재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인재가 발에 치인다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인재가 충만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카론이 모종의 이유로 차출,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건데…….
“성국의 아이들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카론 선생님의 성격상 거절하셨을 텐데. 그런 건 임무라고 볼 수도 없고.”
앤우드 아카데미로 오고 있는 성국의 아이들.
귀족가의 아이들은 손쉽게 그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슬슬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테르온 님?”
“……나도 딱히 들은 건 없다.”
현재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사람 중 하나인 테르온.
그런 테르온조차 들은 정보가 없다?
이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제국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경우는 보통…….
“전쟁……?”
한 아이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
하지만 교실을 공포로 물들이기엔 충분했다.
드드드드드-!
내 몸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려서가 아니다.
옆에 앉아 있던 레제가 쉴 새 없이 떨기 시작해서 그런 것이지.
“야, 우리 레제가 불안해하잖아. 좀 진정시켜줘.”
진정이라. 내 장기 중 하나지.
“후후, 레제 양 걱정 마십시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저, 정말인가요?”
“예. 전쟁보다 악마와의 싸움이 먼저일 거거든요.”
“…….”
드드드드드드드-!!
레제의 몸에서 시작된 진동이 교실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오,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토끼인가? 그렇다면 참 대단한 능력…….
빠악!
“진정시키랬지, 누가 더 놀라게 하랬어? 너 진짜 죽어볼래?”
억울하다.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올해’에는 말이다.
웅성웅성-.
한 편의 촌극과도 같았던 대화.
문제는 이런 상황에 빠진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전쟁인 게 문제가 되나?”
그런 상황에서 카론의 입이 열렸다.
시끄러웠던 교실의 소음이 멎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전쟁. 확실히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앤우드 아카데미생이라면, 적어도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공포에 빠지지는 마라.”
“…….”
“대비책을 논해도 모자랄 판에 공포에 빠지는 꼴이라니. 미래에 제국을 이끌어 나갈 놈들이 이 무슨 추태란 말이냐.”
카론이 혀를 끌끌 찼다.
그제야 아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레제의 떨림도 멎었다.
공포를 극복했다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존재가 더 무섭다는 걸 자각해 얼어붙기를 선택한 것 같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가는 건 다른 일 때문이다.”
“저, 정말인가요?”
“애초에 내가 ‘임무’를 하러 간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 너희들이 뭐라고 그런 걸 공유한단 말이냐?”
카론의 말대로였다. 카론은 학생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자, 제국의 시궁쥐.
우리들에게 정보를 공유할 리가 없다.
즉, 이건 카론의 놀림이자 수업의 일환. 그 정도로 보는 게 이치에 맞았다.
“뭐, 말이 나온 김에 조금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전쟁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느냐?”
“힘을 키우는 거 아닌가요?”
“맞다. 그럼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력을 키우는 방법.
평범한 사람이라면 군사력이라고 말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알 거다.
국력은.
‘지리, 자원, 인구, 경제, 정치, 군사, 정보 등등. 종합적 요소의 합계치다.’
그럼 왜 국력이 전쟁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불리는 걸까?
국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선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쟁 억제력’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다.
그리고 그 국력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는 거다.”
귀족은 귀족의 일을, 기사는 기사의 일을, 상인은 상인의 일을, 선생은 선생의 일을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는 것. 이게 바로 국력의 기초이자, 핵심이었다.
“너희들은 학생이지. 그렇다면 학생의 본분을 수행해라.”
학생의 본분(本分).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고,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마라.
카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 단 하나뿐이다. 설마 그것도 못 하는 멍청이가 이 자리에 있지는 않겠지?”
유치한 도발은 덤이었다.
“어딜 가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다녀오세요!”
“저희는 국력을 키우고 있겠습니다!”
뭐, 아직 열다섯에 불과한 아이들인 만큼 눈이 열의로 활활 타올랐지만 말이다.
‘하여튼 괴물이라니깐?’
아이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카론을 보며 혀를 내두르던 순간이었다.
“자, 그럼 이제 수업을 시작해 볼까.”
“예?”
쪽지 시험 바로 다음 날, 기약을 모르는 휴강에 감동적인 연설까지.
보통 이런 날은 휴강을 하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론은 묵묵히 수업을 진행했다.
심지어 어제 치렀던 쪽지 시험의 품평회였다.
애들을 하나하나 갈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진짜 괴물이라니깐?’
그렇게 오전 수업이 시작됐다.
* * *
“레제, 오늘 수업 어땠어?”
“재, 재밌었어요. 조, 조금 힘들긴 했지만요.”
“아아, 카론 선생님 때문에? 뭐, 수업방식이 독특하긴 하시지.”
“그, 그것도 있지만. 시, 시선이 어딘지 모르게 따가워서요…….”
앞머리가 커튼처럼 처져 있는 레제. 그 뒤에 있는 눈동자가 옆으로 힐끗 움직였다.
레제의 눈동자는 0.1초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왜냐고?
쿠구구구구-!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따가웠기 때문이다.
‘시선이 따가운 건 착각이 아닌, 진짜니까.’
유리디아파뿐만이 아니라 테르온파, 중립에 속한 아이들, 그리고 우수반 밖에서 느껴지는 일반반 아이들의 시선까지.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유독 더하단 말이지. 레제 때문인가?’
어쩌면 루나의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루나 양, 잠시만…….”
“응?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후후, 제 귀에 도청 장치가 있습니다.”
“그럼 귀를 자르면 되잖아.”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음, 명안이다. 내가 많이 아플 거라는 것만 빼면.
아무래도 우리 루나는 T인 모양이다. 감정이 메마른 존재 같으니!
“흠흠. 좋은 모습이네요.”
“역시 정실은 루나 양이죠.”
루나의 귓가에 속삭인 게 사랑의 속삭임으로 보인 것일까.
그제야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누그러들었다.
유리디아가 코피를 흘리며 엄지를 치켜올리는 건 덤이고.
물론, 우리 루나는 이런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시선에 둔감한 루나와 민감한 레제의 조합이라…….
느낌이 팍팍 왔다. 앞으로 여러 사건이, 그것도 곤란한 사건이 계속해서 터질 거라는 느낌이.
“시선이 따갑다고 했지? 새로운 얼굴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아, 아니면…… 모, 못난 애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요. 이 반에 어, 어울리지 않는 존재니까…….”
자신은 우수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레제의 말.
루나가 레제의 앞으로 향했다. T의 대표주자로서 한마디 해주려는 모양이다.
“너도 저 아이들과 맞먹는 실력자야. 그래서 이곳에 있는 거라고.”
“제, 제가요?”
“그럼. 무엇보다 우리는 루시아 님의 제자잖아? 루시아 님도 너의 강점을 본 게 틀림없어.”
“제, 제게 그런 게 있을까요?”
“당연하지. 내 눈에도 잔뜩 보이는데? 루시아 님의 눈에는 더 많이 보였을 거야. 가자. 점심 먹으러 가야지!”
손은 잡은 채 사이좋게 교실을 나서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우리 루나는.
나한테만 T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