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88)
제188화
188화. 스승과 제자(7)
얼얼한 귀를 어루만지며 아픔을 누르려 애썼다.
중간중간 살이 눌린 곳이 느껴졌다.
루나가 남긴 잇자국이다.
옆에서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던 루나가 중얼거렸다.
“음, 오늘은 좀 짜네. 오늘부터는 좀 덜 짜게 먹어. 그러다가 몸 망가진다.”
귀의 맛(?) 상태로 내 건강을 체크하는 경지까지 올랐단 말인가?
전혀 기쁘지 않은 소식이다.
“왜? 불만 있냐?”
“후후, 그럴 리가요. 뭐, 물은 있긴 합니다만.”
“……개그 상태가 심각하네. 그런 개그에 웃어 주는 사람은 변태밖에 없을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 누가 봐도 웃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개그였단 말이다!
“얘 좀 봐라. 진짜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너 어디 아프니?”
루나가 머리를 들이밀더니, 자신의 이마와 내 이마를 맞닿게 했다.
루나의 체온이 이마를 통해 전해져왔다.
“음,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어디가 아픈 거지? 얼굴인가? 평소처럼 이상할 뿐인데…… 아니다. 더 못나진 것 같기도 하고…….”
루나야, 내가 아픈 건 네가 물어뜯은 귀란다. 그리고 난 잘생겼어.
눈앞에 있는 루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때였다.
그러고 보니 루나에게 한 가지 알려 줘야 할 게 있었다.
“참, 앞으로 일섬은 금지입니다. 제가 허가할 때만 사용하십시오.”
“엥? 어째서?”
“제법 태가 나기 시작했거든요.”
한 줄기 바람에 불과했던 루나의 일섬.
어느새 누가 봐도 ‘저거 일섬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엿하게 성장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러니 지금부터 일섬의 사용은 자제하도록 하십시오.”
“뭐, 뭐래. 내 일섬은 예전부터 완벽했거든?”
루나가 필사적으로 미소를 억눌렀다.
하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뭐, 좋아하는 게 당연해. 내 인정을 받았으니까.’
학기 초. 사람들 앞에서 일섬의 사용을 망설이던 루나에게 마음대로 일섬을 사용하라고 말했던 나다.
-당신의 일섬은 형편없어서 레스터 가문 출신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팍팍 쓰세요!
그랬던 내가 일섬의 금지를 명했다? 루나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자신의 일섬이 강해진 거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무엇보다 일섬은 루나가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라는, 가문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다는 증거.
루나가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 좋아. 일섬만 믿으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거든.”
“후후, 역시 레니아 님이시군요.”
“아직 중간고사를 치르기도 전인데 이 정도 성장이라니! 나만 믿으라고! 음하핫!”
루나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치솟았다.
“아, 그러고 보니…….”
루나가 고개를 불쑥 내렸다.
콧대가 높아져서일까, 아니면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까.
루나의 코가 내 볼을 콕콕 찔렀다.
옆으로 고개를 슬쩍 꺾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파티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작은 선물이라거나.”
“선물이요?”
“오늘 스승님이 떠나시는 날이잖아! 시간이 없으니 파티는 힘들어도 선물 정도는 준비해야지!”
스승님이라고? 현재 우리의 스승은 루시아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루시아가 오늘 떠난다는 얘긴데…….
“전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언제 그런 얘길 하셨습니까?”
“어제 밥 먹으면서 얘기했잖아. 그때 안 듣고 뭐 했어?”
……루나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어제 난 카론이랑 단둘이 밥을 먹었다고!
펄펄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국밥을, 그것도 카론과 같은 탁자에서 먹었단 말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끔찍했던 저녁 식사.
실제로 반절쯤은 코로 먹은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남자애들은 정이 없다니깐? 스승님의 은혜는 하늘 같은 거라고!”
……아니,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고!
대화를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 초대장 안 받았는데 결혼식 왜 안 갔냐 같은 소리하네!
‘그리고 루시아는 내가 카론한테 끌려갔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얘네한테만 맛있는 걸 사 줬단 말이지? 나를 구해주지도 않고?
아주 건방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흠, 어떡하지? 주말이 아니라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되도록 기억에 남는 선물을 준비해야 할 텐데…….”
“후후, 선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준비해 뒀으니까요.”
“그래? 뭔데?”
“후후, 선물은 비밀로 해야 재밌는 법이죠.”
“나도 너랑 같이 선물을 주는 입장이거든? 주는 사람이 모르는 선물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건방진 루시아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선물, 그것도 방금 막 준비한 선물이니까.
말했다간 루나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아주 멋진 선물이라는 겁니다.”
“더 모르겠는데? 뭐, 준비했으니 됐나?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루나가 고개를 주억거리던 때였다. 어디선가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로델린이다. 흐트러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느새 ‘완벽의 로델린’으로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문제라면 나를 엄청난 기세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 정도?
“선배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갑자기 쓰러지시던데요.”
“……걱정해 줘서 고맙군. 처음부터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야.”
“후후, 그럼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어떻습니까? 그쪽이 더 좋으셨을까요?”
턱!
로델린을 벽에 몰아붙이기 위해 은근슬쩍 내뱉은 발.
로델린이 발을 치켜세우며 내 접근을 막았다.
“제로 군은 학기 초부터 변하는 게 없군. 장난기가 너무 많아. 자신이 앤우드 아카데미생이라는 걸 항상 명심하고 행동하도록 하게.”
로델린의 눈매가 제법 사납다.
아쉽지만 장난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로델린력(?)도 충분히 채워둔 상태니까.
“후후,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은 시원해서 좋군.”
“아, 그러고 보니…… 루시아 님이 어디 계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떠나기 전에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요.”
“음, 큰언니 말이지. 사실 나도 찾는 중이었다네. 아침부터 유모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거든.”
“도망이요?”
“그렇다네. 늘상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도망이 길군.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네만…… 아니었던 모양이야.”
루시아와 유모의 추격전이라.
둘이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큰언니가 자네들을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후후, 그렇습니다.”
“음음! 드디어 제자를 키우시는 건가. 세 명을 한 번에 받다니. 첫 삽부터 제대로 뜨시려나 보군.”
로델린이 큰 미소를 머금었다.
제자가 우리인 것에는 전혀 불만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정확히는, 제자를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듯했다.
“실은 걱정이 많았다네. 5성 기사도 제자를 받는데, 큰언니는 영웅의 자리에 오르신 이후에도 제자를 받지 않으셨으니 말이야.”
로델린이 눈을 빛내더니, 나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그래, 가르침은 어떤가? 성실히 잘 지도해 주시나?”
“에…… 그, 그런 편이죠.”
“역시 그랬군! 조금 늦긴 했지만, 큰언니가 할 때는 하는 사람이지. 불이 붙으면 멈출 줄을 모른달까?”
로델린이 또다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눈동자에 ‘루시아’라는 광기를 띄운 채.
“영웅들에게도 고뇌는 있다는 거겠지. 큰언니도 잠시 방황하고 계실 뿐…… 곧 깨어나실 거야. 나는 믿고 있다네.”
“…….”
“어쩌면 이번이 그런 때인지도 몰라. 2주도 안 되는 시간에 완벽한 몸을 만드시는 것도 그렇고…… 역시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은 달라도 참 다르단 말이지. 제로 군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겠다.
로델린이 루시아의 빠순이라는 걸.
“오늘도 제국의 미래는 밝군! 제로 군! 루나 양! 레제 양! 함께 노력하세! 우리도 제국을 지키는 영웅이 되는 거야!”
“와아…….”
짝짝짝.
루시아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감상에 빠진 로델린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소심하게 호응하며 박수를 치는 것밖에는.
드르륵-.
그때였다. 훈련장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모였다. 루시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유모.
현재 그녀는 누군가의 팔을 잡아당기는 중이었다.
“들어 오십시오! 자신감을 가지시라고요!”
“자, 잠깐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루시아의 목소리다.
마음의 준비라니. 저 문 뒤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뻥!
문 옆을 잡은 채 필사적으로 버티던 루시아.
하지만 유모가 뒤로 가 그녀를 걷어차자, 손이 미끄러지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크, 큰언니…… 지, 지금 대체 뭐, 뭘 하시는……!”
“보, 보지 마! 다들 눈 감으라고!”
하지만 누구도 눈을 감지 않았다. 루시아가 너무 충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쁘게 땋은 트윈 테일.
흰 밤송이처럼 생긴 머리끈.
앤우드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기까지.
그렇다. 저 모습은 영락없는.
‘……학생 코스프레?’
너무 황당한 상황에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때.
유모가 웃음을 흘렸다.
“후후, 제로 군의 취향을 분석했죠. 그래요, 제로 군의 취향은 바로…… 귀여운 여자! 맞죠?”
충격으로 망가져 버린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음, 그러니까…… 현재 유모는 나를 신랑감으로 낙점한 상태.
내 주변에 있는 여자아이들은 루나와 레제, 두 명이고.
이 둘은 예쁘다기보다는 귀여운 편에 속한다.
‘그리고 루나는 내 여자친구라는 헛소문이 도는 상황.’
유모는 루나의 머리 스타일이자, 귀여움의 상징(?)인 트윈 테일을 루시아에게 권유…… 아니, 강제!
내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아카데미 제복까지 입히게 됐다. 뭐,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이런 상황일 거다.
‘……내가 생각하고도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네.’
일단 루나는 내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 루시아가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는 것.
또한 귀여움이 아닌, 쭉빵 쪽이 내 스타일이라는 것.
제복은…… 좋아하긴 한다.
‘아,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잖아! 아무튼!’
루시아를 바라봤다.
시뻘게진 얼굴, 살짝 숙인 몸, 손으로 여기저기를 가리는 모습까지.
충격적인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건.
‘……잘 어울리네.’
트윈 테일과 제복이 너무 잘 어울린다.
저 여자가 서른다섯 살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 게임의 스토리 작가. 문제가 많아 보인다.
스승이 제자를 꼬시기 위해 제복을 입고 학생 코스프레를 한다?
그야말로 씹덕 망상 최대치!
어쩌면 게임을 하던 유저가 피를 토하며 탈출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심각한 스토리였다.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변태들뿐일 거다.
물론, 나는 이 게임을 좋아하지만!
“이, 이이이이이!!”
하지만 로델린은 변태가 아니었던 걸까. 눈가가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추태입니까! 군인이 지금 무슨 짓을……!”
“그럼 어떡해! 밥을 안 준다는데! 난 요리할 줄 모른단 말이야!”
“그냥 굶으셨어야죠! 풀뿌리를 캐 먹거나!”
“난 영웅이라고! 영웅이 풀뿌리를 왜 먹어!”
“그럼 영웅이 제복을 입는 건 말이 됩니까? 아, 아니. 애초에 제복이 맞긴 합니까? 너무 짜, 짧잖아요!”
로델린의 말대로였다. 상의도 상의지만, 치마를 미니스커트 수준으로 줄여놨다.
루시아의 뒤에 있는 유모가 엄지를 척 세웠다.
……저거 진짜 미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