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191화. 스승과 제자(10)
의도치 않았던 소란이 일어난 이후.
스승과 제자가 모여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제자인데, 왜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냐고?
‘저 자리에 내가 없으니까.’
루시아의 손에 의해 종이 인형처럼 짜그라진 나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읍읍!”
“후후후후후! 며칠만 참으십시오. 눈 뜨면 루시드 가에 계실 테니까요.”
현재 나는 유모에 의해 온몸이 꽁꽁 묶이는 중이었다.
유모의 목적은 뻔했다. 나를 루시드 가에 감금시킨 뒤 기회를 만들어 루시아와 결혼시키려는 거다.
‘잘생긴 아동 납치범이야!’
내가 아무리 귀여워도 그렇지. 이건 진짜 범죄 아닌가.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유모가 재갈을 물린 탓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읍읍읍!!”
최선을 다해 시도한 마지막 발버둥.
그제야 나를 발견한 루시아가 다가와 물었다.
“유모, 지금 뭐 해?”
“포장 중입니다. 가는 길에 상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왜 포장하는데.”
“선물이라지 않습니까. 가져가는 게 당연하죠!”
“……미안하지만 반품하겠다고 전해 줄래? 가는 길에 상하는 게 아니라 이미 상했어, 그건.”
유모가 시무룩해졌다.
그나저나 사람을 상했다고 표현하다니. 내가 무슨 음식도 아니고.
설사 음식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난 상해도 맛있을(?) 거라고!
“제로 군,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습니다.”
“후후, 애초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만.”
“후후후, 막상 도착하면 좋아할걸요? 루시드 가의 지하 감옥은 쾌적하기로 유명하거든요. 한 3년 정도 계시다 보면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내 말투가 저렇게 소름 끼치는 말투였던가?
사람들이 나와 대화할 때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너무 떠들었네. 자자, 다들 모여보렴. 이제 진짜 이별의 순간이야.”
루시아가 박수와 함께 우리를 소집했다.
“직접 지도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태산 같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네.”
영웅으로 불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무도회, 귀족 회의, 토벌전, 전쟁 등.
드높은 명예만큼 행해야 하는 의무도 존재한다. 일종의 의무 방어전(?) 같은 거랄까.
‘그런 곳에 우리를 데려가 수는 없지.’
각종 행사에 데리고 다니면 우리가 루시아의 제자라며 광고하는 꼴이고.
싸움터는 말할 것도 없다. 그곳은 시험이 아닌 진짜 전장이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여기에 앤우드 아카데미의 우수한 교육 제도도 한몫했다.
“애초에 지금의 너희들은 내 지도를 이해할 수준이 안돼. 그러니 이곳에서 기초를 배우고, 본격적인 수련은 3학년이나 졸업 이후쯤부터. 그렇게 알고 있으렴.”
중간중간 방학이 있긴 하지만, 그때 루시아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웅을 찾는 곳은 많은 법이니까.
‘뭐, 애초에 찾아갈 생각도 없지만.’
루시아의 훈련은 분명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거다.
하지만.
‘히든 피스에 비할 바는 아니야.’
일반적인 학생들에게 방학은 짧은 휴식 시간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이 지역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사기적인 히든 피스를 얻을 유일한 기회다.’
그래, 이를테면.
[신의 모방]급의 히든 피스 같은 것 말이다.아무튼, 방학 때 가야 하는 여행지도 정해둔 상황.
계획이 바뀌는 일은 없다. 천하의 루시아라 할지라도 말이다.
“대신 연락은 언제든지 해도 돼. 바쁘다 보니 항상 받지는 못하겠지만.”
유모가 우리에게 종이쪽지를 하나씩 건넸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는 종이쪽지다.
[루시아의 통신 코드를 획득했습니다.] [앞으로 ‘루시아 드 루시드’와 자유롭게 연락을 취할 수 있습니다. 마법 수정구를 이용해 통신을 시도해 보세요.]마법 수정구라니. 너무 구닥다리 아니냐고?
어쩔 수 없다. 이건 옛날 게임이니까.
저래 봬도 한때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통신 방법이라고 떠들어대던 물건이다.
“그리고 선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루시아의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유모는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고.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왜 선물을 거론하는 걸까.
설마 루시아도 ‘내가 선물이야’라고 말하려나!?
“그런 건 스승인 내가 줘야지.”
……같은 씹덕 망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루시아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우리에게 하나씩 던졌다.
직사각형 모양의 나무패. 중앙에는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이 아주 멋지게 양각되어 있었다.
루시드 가문의 상징인 포효하는 사자다.
그렇다, 이건.
“우리 가문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증거야. 동맹 관계인 귀족들의 영지에서는 꽤 대우를 받을 거고…… 다른 곳에서도 쓸만할걸?”
물론.
“일이 잘못될 경우 죽을 수도 있지만.”
“어, 어째서죠?”
“적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기도 하지만…… 그 패의 가치는 상당히 무겁거든. 너희는 어리잖아? 수상하다며 검증하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사기꾼, 상인, 기사, 동맹을 맺은 귀족들 등등.
최악의 경우, 죽이고 빼앗으려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히, 히이이이익! 주, 죽을 때까지 안 쓸거예요오오!”
나무패의 무게를 깨달은 걸까. 레제가 곧장 경기를 일으켰다.
“아하하! 그래도 죽을 것 같을 때는 써야지. 사실 위험할 때보다는 목숨을 구해 줄 때가 더 많을 거야. 우리 가문의 권세는 여기저기,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뻗쳐 있으니까.”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인 루시드 가문.
겉으로도 위상이 대단하지만, 남몰래 존경하고 흠모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지기수다.
루시아의 말대로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겪을 때가 더 많을 거다.
‘마지막으로 굉장한 선물을 주고 가네.’
특히,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 나무패를, 루시드 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수백 가지나 떠올랐으니까.
응? 내가 바로 아까 루시아가 걱정하던 사기꾼 아니냐고?
착각이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나무패를 잘 써먹으려는 착한 사람일 뿐이다.
“지금 너희들한테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미안해. 더 많이 챙겨 줘야 하는데…….”
“아, 아니에요, 스승님! 저희가 더 죄송하죠!”
“스, 스승니임…….”
“왜 울어. 다시 못 볼 것도 아닌데. 귀여운 것들, 이리 와. 한 번씩 안아보자.”
하지만 루시아도 코맹맹이 소리를 숨길 수는 없었다.
“스승님!”
“사랑하는 내 제자들!”
세 사람이 와락 서로를 끌어안았다.
물론, 이번에도 나는 강제로 제외당했다.
“후후, 제로 군. 제가 안아드릴까요?”
그런 나에게 은근슬쩍 유모가 접근했다.
“후후, 뒤에 숨기고 있는 밧줄만 버려 주신다면 말이죠.”
“어머나, 이게 왜 여기 있지?”
유모가 밧줄을 내던졌다. 진짜로 몰랐다는 것처럼.
유모와 살짝 포옹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칼로스로 가시는 겁니까?”
“당연하지요. 전 언제나 아가씨와 함께니까요.”
그렇다. 루시아와 유모는 일심동체.
카론에게 얻은 정보의 99%는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칼로스’라는 기밀을 말한 것이고.
‘유모도 내 정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하군.’
오히려 잘 됐다.
“카론 선생도 토벌대에 포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같이 안 가시는 겁니까?”
“토벌대 인원 모두 각자 이동한 뒤 지정된 장소에서 합류할 예정입니다. 보는 눈이 많잖아요?”
“그럼 카론 선생은 언제 떠날까요?”
“오늘 밤, 아니면 내일 오전일 거예요. 쪽지 시험을 치르고 떠나겠다며 고집을 부렸거든요. 상당히 일정이 촉박한 상태랍니다.”
그렇다면 카론은 오늘 밤 나를 찾아올 확률이 높다.
“후후,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를 얻었군요.”
“후후후, 걱정 마세요. 대가는 나중에 톡톡히 받아낼 예정이니까요.”
그 대가가 뭔지는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은 나였다.
그렇게 우리의 스승, 루시아가 떠났다.
짧지만 강렬했던.
한 달간의 만남이었다.
* * *
유모와 함께 비룡을 타고 날아가던 중.
루시아는 문득 하반신이 서늘하다는 걸 느꼈다.
당연한 일이었다. 치마를, 그것도 앤우드 아카데미의 제복용 치마를 입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엄청나게 줄인 치마를 말이다.
“크윽! 내 스승으로서의 위엄이!”
루시아가 머리를 감싼 채 좌절했다. 난생처음 갖게 된 제자들.
애송이들, 다음엔 전장에서 보자.
-라고 말하며 멋지게 떠나려던 계획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쿨하기는커녕 질질 짜기나 하고! 루시아! 네가 그러고도 어른이더냐!”
“후후, 인간적이고 좋던데요. 뭐. 아가씨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루시아의 눈동자가 옆으로 향했다.
유모. 그녀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유모!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런 의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제복 코스프레(?)를 해서 루나와 경쟁함과 동시에 제로를 유혹하자!
세찬 바람을 맞는 와중에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루시아였다.
“후후후후후, 위엄도 중요하지만, 결혼은 그보다 더 중요하니까요.”
“으으! 제발 그 말투 좀 그만해!”
“후후, 그럴 수는 없죠. 제로 군을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이어갈 생각입니다. 신랑을 기억에서 잊으면 곤란하니까요.”
“대체 누가 신랑이라는 거야!”
“후후, 당연히 제로 군이죠. ‘루시아 님은 물건이 아니니까요’라니. 어휴, 이 유모의 가슴이 다 뛰었다니까요?”
루시아가 입을 삐죽였다.
‘뭐…… 그때 조금 설렌 건 사실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도 문제지만, 이제는 제자가 된 제로다.
제자와 결혼하는 건 사회 통념상 있을 수 없는 일.
“이제 스승과 제자인 몸이거든?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통념이 법은 아니죠. 아니, 법이더라도 문제없습니다. 중요한 건 사랑이니까요.”
“그 사랑이란 걸 시작한 적도, 시작하려고 한 적도 없다고! 게다가 루나는 어쩌고? 스승이 제자의 남자친구를 가로챈다? 온 세상이 나를 욕할걸?”
“그, 그렇군요!”
유모가 이마를 탁! 쳤다. 드디어 자신의 말을 이해해 준 걸까?
“그래, 그러니까 그만 포기…….”
“금단의 관계가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뭐? 그게 뭔데?”
유모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금단의 과실일수록 달콤한 법이죠.”
“……금단의 과실?”
“스무 살 차이, 학생, 귀족과 평민, 최상층과 최하층, 스승과 제자, 영웅과 수상쩍은 인물!”
“…….”
“지금 여기에 제자의 남자라는 금단의 항목 중에서도 엄청난 금단의 항목이 추가된 겁니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눈을 희번덕거리는 유모를 보며 루시아가 생각했다.
미친 사람이라고.
“금단의 과실이 왜 위험한지 아십니까?”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한 입만 물면 모든 게 끝나거든요. 그러니 지금부터 아가씨가 하실 일은 딱 하나입니다. 한입. 딱 한 입만 무시면 되는 겁니다!”
“……물라고?”
“후후…… 방으로, 둘만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라는 겁니다. 그럼 루나 양이고 뭐고 한순간에 끝…….”
“미, 미쳤어. 정말! 저리 가! 더러워!”
“저런 금단의 과실을 안 먹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죄악입니다! 이건 다 아가씨를 위한 일이라고요!”
온통 흰자위로 가득한 유모의 눈을 보며 루시아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고. 유모가 관심 있는 건 제로와 자신의 결혼뿐.
“으으으! 비룡 조종이나 해! 이러다 떨어져 죽겠어!”
“후후후! 그렇군요.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제로 군과 결혼을 하시겠다는 뜻이군요!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석하면 내 말이 그렇게 되는 건데!?”
루시아의 외침에도 유모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
‘후후후!’를 반복하며 깔끔한 비룡 조종을 선보일 뿐.
그 모습을 본 루시아가 벌러덩 드러누우며 한숨을 내뱉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훈련장에서 제로의 일섬을 본 날부터 루시아는 항상 생각했다.
제로가 휘두르는 레스터 가문의 비기에는 혼이.
‘긍지’가 담겨 있지 않다고.
‘제로의 목적은 레스터 가문의 명예 회복이 아니야. 증거는 없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어.’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꿨다면 그 드높았던 긍지를 조금이라도 이양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제로에게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레스터 가문이 멸문한 이후로 마음이 떴기 때문인지, 아니면…….’
복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라지 않기로 한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최악이다.
레스터 가문의 검술을, 드높은 긍지를.
피로 물들이겠다는 뜻이니까.
만약, 제로가 꿈꾸고 있는 게 그런 것이라면.
‘내가 막아야겠지.’
잘못된 길을 가는 제자를 바로 세우는 것.
그게 바로 스승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도리니까.
그렇다. 제로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그 순간부터, 루시아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제로가 피에 미쳐 날뛴다면 자신이 막아 세울 것이다.
설령.
“죽여야 한다고 할지라도.”
루시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비룡은 계속해서 날갯짓할 뿐이었다.
제국의 서쪽 끝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