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193화. 스승과 제자(12)
갑자기 내 목을 베어서 뚝 떨어뜨릴 가능성.
화기애애한 분위기지만, 눈앞의 카론이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는다.
유저들 사이에서 ‘배드 엔딩 메이커’라 불리는 남자였으니까.
내 경계하는 태도를 본 탓일까. 카론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의 예상대로 더글라스 님은 살아 계신다. 하지만 그분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는 말해 줄 수 없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카론이 그에 대한 정보를 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더글라스는.
‘악마의 저주에 걸린 상태니까.’
성국에서 수년을 머물러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바꿀 수밖에 없었던 악마의 저주.
어떤 저주인지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중요한 건 더글라스를 ‘볼칸 토벌대’에 합류시키는 것이니까.
더글라스를 합류시켜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려던 때였다.
“그리고 그분은 이미 합류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미 합류하기로 했다고?
그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역시 제국이라는 건가…….’
해골이 일어선다는 말도 안 되는 정보.
곁가지 정보가 몇 개 더 있긴 했지만, 큰 줄기는 저 정보 하나뿐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방심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현재 이 세계는 ‘언데드’의 존재와 그 무서움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칼로스에 수십만의 해골이 묻혀 있긴 하지만, ‘뼈다귀가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라는 게 가장 먼저 드는 생각.
‘물론 평범한 해골이 아니라는 건 카론이 보낸 시궁쥐가 확인하긴 했었지. 그렇다 해도…….’
고작 이런 정보로 다른 나라를 가로질러 싸우러 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카론 급의 강자들을 여럿 투입하는 건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소름이 돋을 수밖에.
‘조금도 방심하지 않겠다는 건가…….’
제국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루나도 문제지만…… 로델린을 구원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겠어.’
목숨이 걸려 있다 보니 최대한 안전을 지향하는 플레이를 하기로 다짐한 나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며칠 동안 고심, 그렇게 완성된 최종장까지의 마인드맵.
그 마인드맵에 ‘로델린의 구원’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로델린의 구원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아카데미의 영웅’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생존게임.
그러니 내가 로델린을 포기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노예 인장만 찍힐 뿐, 멀쩡히 최종 보스전까지 잘만 움직이는 아이니까.
하지만 로델린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그 생각이 꿈틀거리곤 했다.
‘구해 주고 싶다’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제국의 대응력을 보니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갔다.
저런 놈들을 상대로 로델린을 구해내라고?
‘에라이, 퉷!’
더러워서 안 하고 만다.
애초에 로델린을 구원하는 건 내가 이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이후, 지구에 돌아가서 도전해도 충분할 테고.
“…….”
살짝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 냈다.
제국이 무서운 놈들이라는 것, 로델린을 구원하는 것.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건 제국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고, 엘레스터와 카론, 루시아의 생존확률이 높아졌으며.
‘볼칸을 죽일 수 있는 확률 또한 높아졌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응? 8성 기사 이상의 존재가 하나 늘어난 것뿐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그럴 수밖에 없다. 전 더글라스이자, 현 아도니스라 불리는 그는…….
‘성검의 소유자니까.’
주인을 잃은 후, 그 빛을 잃어버린 2대 성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9대 성검 아르테나처럼 힘이 약해진 상태지만, 지금의 볼칸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거다.
“이제 궁금증은 다 풀린 거냐?”
“후후, 충분합니다. 영웅 더글라스 님이면 차고 넘치는 전력이니까요.”
“방심하는 건 좋지 않다. 우리도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듯, 그때 칼로스에 있던 놈들도 우리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때 이후로 상당히 시간이 지났으니 도망쳤거나…….”
“함정을 치고 기다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죠.”
“…….”
따악!
카론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니,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후후, 왜 때리십니까?”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는 놈이 ‘충분하다’는 말을 지껄이니 그렇지. 더글라스 님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그분의 나이가 몇인지는 아느냐?”
“자세히는 모르지만…… 장례식을 치를 때가 일흔쯤이셨으니, 여든을 넘으셨겠죠?”
“여든셋이시다. 노인이 된 지 오래란 말이다.”
이 세계의 평균연령을 생각한다면 노인 중의 노인이다.
그러니 카론의 걱정은 당연한 일이었다.
“9성 기사이시니 웬만한 놈들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과거 영웅이라 불리던 시절에 비하면 한참 모자랄 거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수업 중에 ‘마나’와 관련된 이론을 배웠으니까.
나이를 먹으면 신체뿐만 아니라, 마나의 운용에도 문제가 생긴다.
현재 더글라스는 8성…… 아니, 어쩌면 7성 기사 수준의 힘도 내지 못할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2대 성검의 능력 중 하나가 여신의 가호거든.’
[여신의 가호].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 신체 능력을 전성기 시절로 만들어 주는 미친 스킬.
한순간뿐이겠지만, 과거와 필적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게임에서 더글라스가 2대 성검의 모습을 처음 꺼내 드러내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던 때였다.
“대가를 내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대가를 받을 차례군.”
대가라고?
머리 위로 물음표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 그리고 지금 내가 받은 정보는 정보 제공자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런데 그걸 ‘대가’로 취급하다니.
힘의 우위를 이용해 나를 등쳐먹기로 한 걸까?
“……일섬.”
“예?”
“루나의 일섬은 당분간 봉인하도록 해라.”
그제야 나는 카론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제법 일섬다운 일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루나다.
한 번이라도 레스터 가문의 일섬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나의 정체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
카론의 걱정과 근심이 하늘을 뚫고 있을 거다.
‘하지만 루나를 보호해달라는 부탁은 차마 못 하겠으니…… 차선책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일섬을 봉인해달라는 거군?’
애초에 루나에게 ‘다른 사람 앞에서 일섬은 금지’라고 말해둔 나다.
카론의 부탁을 들어줘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카론이 ‘대가’를 빙자한 반협박을 했다는 것.
‘감히 신성한 대가를 들먹여?’
아주 아주 건방진 행위였다.
다시 한번 우리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제가 오늘 제공받은 정보는 합당한 대가였을 텐데요.”
“모든 거래에는 서비스가 있는 법이지.”
“주인장이 서비스를 줄 생각이 없습니다만?”
“차후 있을 거래를 생각한다면 이쯤에서 작은 서비스 정도는 내어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게 장사를 잘하는 주인장이지.”
“그렇다면 카론 선생님도 서비스를 주시겠다는 뜻이군요? 주고받기 귀찮으니 이번 서비스는 없는 걸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속된 말로 ‘퉁치자’라는 말.
옆집 주인장…… 아니, 제국의 시궁쥐 카론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을 거다.
카론이 아껴 마지않는 루나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후……. 그래 좋다. 뭘 원하지?”
카론이 주먹을 내렸다.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듯 보였다.
대가라…… 물론 여기서 돈이나 아티팩트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후, 이런 일로 우리 사이에 대가를 받기는 좀 그렇죠.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말?”
“예, ‘부탁한다’라는 말 말입니다.”
“……!!”
지금은 건방진 카론에게 본때(?)를 보여 주는 게 더 중요했다.
신성한 거래에 개인적인 감정을 담으면 어떻게 되는지, 룰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기강을 잡아 주지.’
그렇다. 이건 카론의 기강을 잡기 위한 행위였다.
카론을 놀릴 기회가 생겨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
입술을 계속 달싹이며 끙끙거리는 카론을 지그시 바라봤다.
자, 카론. 어서 말해봐.
부, 탁, 한, 다.
‘제발’이라는 말까지 붙여 주면 더 좋고!
“부, 부…….”
부?
“……부고 소식.”
“예?”
“내일 아카데미에 네놈의 부고 소식이 울려 퍼질지도 모르겠구나.”
……농담이겠지?
카론의 착 가라앉은 눈동자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음, 그렇구나. 진심이구나? 하긴, 내가 봐도 장난이 좀 심하긴 했어.
“조건을 바꾸죠. 왜 그렇게 루나를 걱정하시는 건지 알려주신다면 특별히…….”
따악!!
카론이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진짜 나쁜 놈이다. 힘으로 거래를 하려 들다니!
“후후, 주인장에게 서비스를 강제하는 건 좋은 소비자가 아니라고 배웠…….”
하지만 나는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카론이 또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습니다만 카론 선생님은 단골손님이시죠. 서비스를 드리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제야 카론이 주먹을 내렸다.
그렇게 난 서비스를 강제로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 이미 말해둔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사용하지 말라고 말이죠.”
“그런데 나에게 그런 요구를 했단 말이냐? 건방진 놈 같으니.”
건방진 건 신성한 대가를 날로 먹으려 한 당신 아닐까?
양쪽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토했다.
카론의 우악스러운 손이 내 얼굴을 움켜쥐면서 금방 터져 버렸지만.
“……아직도 레니아와 했던 거래가 무엇이었는지는 말할 생각이 없는 거냐?”
내 얼굴을 붙잡고 있는 카론의 손아귀. 그 사이로 그의 알 수 없는 눈빛이 보였다.
카론과 레스터 가문은 대체 어떤 관계였던 걸까?
“없는 건 아닙니다. 카론 선생님이 레니아 님과 했다는 거래. 그 정보라면 거래할 의향이 있습니다만.”
“……레니아와의 한 거래를 서로 공개하자는 건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구나. 네가 거짓말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후후, 눈치채셨군요?”
“건방진 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응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의아한 상태였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는 사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하다니.
‘예상하긴 했지만…… 모르고 있는 척하며 나를 떠봐도 됐을 텐데? 순순히 알려주다니. 무슨 의도지?’
카론과의 수 싸움이 한층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카론이 내 얼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뭐, 그것도 내가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후후, 의외군요.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적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미는 꼴인데 자신 있어 하는 게 더 이상하지. 무엇보다…….”
무엇보다?
“내 본능이 말하고 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고.”
카론은 볼칸이 도망을 선택하기보다는, 싸움을 선택할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니. 레제의 바보 털 레이더 같은 걸까?
“개인적으로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싸우는 게 미련한 행위이지요.”
“불리해지면 도망치라는 말을 고상하게도 하는구나.”
카론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정도면 이제 습관이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이니 걱정 마라. 애초에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될 싸움이기도 하고, 적들이 우리를 얌전히 놔주지는 않겠지. 하지만…….”
카론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달빛이 건물 뒤로 넘어가 방이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였다.
“만약, 만약 말이다……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때는 루나를…….”
방 안이 어두워졌기에 카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론이 말하려는 건 명백해 보였다.
‘자신이 잘못됐을 때 루나를 부탁하려는 건가.’
순간,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아는 카론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다니…… 당신답지 않군요. 늙다 보니 감수성이라도 풍부해진 겁니까?”
“뭐라……?”
“이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싸우기 전에는 승리도, 패배도 자신하지 말라. 그렇게 가르친 사람이 누구죠?”
지금의 카론은 내가 아는 카론이 아니었다.
함께한 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걸 아냐고?
글쎄. 일반적으로 18년이란 세월을 ‘고작’이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카론의 수업을 들은 것만 적어도 수만 번, 싸운 건 수천 번일 텐데.’
그러니 카론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거칠지만 명확하고.
앞에서는 험하게 다루지만, 뒤에서는 챙겨 주고.
혹독하다고 말할 정도로 심하게 굴릴 때도 있지만, 속으로는 학생들 생각뿐인.
내가 아는 카론은 그런 사람이자, 선생님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도 루시아처럼.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일 거다.
뭐, 루시아처럼 시스템 창에 명시된 것도 아닌 데다, 놀리는 재미도 없는 스승이라 별로긴 하지만.
불안해하는 그에게 이번 한 번만 특별히…… 그래, 서비스를 제공해 주자.
“그러니 이기고 돌아오십시오, 스승님.”
짧은 적막. 카론의 희미한 웃음이 그 적막을 깼다.
“……건방진 놈. 난 너 같은 건방진 놈을 제자로 둔 적이 없다.”
“후후, 그러십니까?”
“시건방진 놈 같으니. 다시 한번 그런 말을 지껄였다간 각오해야 할 거다. 혀를 뽑아 줄 테니 말이야.”
구시렁구시렁-.
그 뒤로도 카론의 군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음, 이제야 내가 아는 카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이번 싸움을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조금 불안 요소는 있지만…… 가용할 수 있는 병력 중 최고만을 엄선했다.
조금 전 카론이 말했던 ‘불안 요소’라는 단어가 내 신경을 붙잡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불안 요소 중 하나는.
“루시아 님도 포함되어 있겠죠.”
“……제자에게 불안 요소라 불린다니. 루시아에게 꼭 전해 주고 싶은 말이로구나.”
카론은 내 말을 비꼴 뿐, 부정하지는 않았다.
루시아가 불안 요소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거겠지.’
이건 생각보다 큰 문제다.
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의견을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할 것인지 방어할 것인지, 퇴각할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작전, 전진 방향, 인원 배분, 공략법 등.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는 개인의 센스와 판단이 우선되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건 절대적인 규칙이자 전장의 규율이다.
‘구성 인원으로 보아 작전을 짜는 건 엘레스터나 카론일 확률이 높다.’
최근 카론과 사이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절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이. 게다가.
‘그 천방지축 루시아가 남의 말을 잘 따를 리가 없지.’
카론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루시아를 ‘불안 요소’에 포함시킨 것이고.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직접 보니 더 잘 알겠어.’
루시아가 명령을 따르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쇠사슬처럼 두꺼운 목줄을 채우지 않는 한…….’
그러니까.
내가 카론에게 주면 된다.
쇠사슬, 그것도 아주 두껍고 튼튼한 쇠로 만들어진 목줄을.
“뭐, 기운을 내실 수 있는 선물을 하나 드리죠.”
“선물?”
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던졌다.
사진을 확인한 카론이 곧장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네놈…… 이건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어떻게 했냐고? 그야 물론.
“후후, 비밀입니다.”
평소였다면 주먹으로 얻어맞았을 행동. 하지만 카론은 웃음을 터뜨리기 바빴다.
내가 카론에게 준 사진.
오늘 루시아와 헤어지기 전,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루시아의 제복 코스프레(?) 사진.
서른이 훌쩍 넘은 루시아가 아카데미 제복을 입었으니, 카론이 나자빠질 수밖에.
“그 사진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한다면 루시아 님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겠죠.”
“루시아는 네 스승 아니더냐? 그런데 협박을 권유하다니. 아주 건방진 놈이구나.”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이건 거래니까요.”
“크큭, 그래. 그만한 가치는 있어 보이는군. 좋다, 원하는 건?”
“루시아 님이 제자를 들였다는 정보에 대한 통제입니다.”
나, 루나, 레제가 루시아의 제자가 되었다는 정보.
지금은 카론과 시궁쥐 일부만 알고 있는 정보지만, 곧 여기저기로 새어 나갈 것이다.
동맹 측에는 알려야 한다는 루시아의 말도 그렇지만, 루나와 레제가 저도 모르게 발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 밖에 나간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는 이들.
‘시궁쥐.’
그리고 그 시궁쥐를 지휘하는 자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크큭, 성장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겠다는 거냐? 네놈도 무섭긴 한가 보구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는 평범한 학생이니 말이죠.”
“평범한 학생은 선생을 협박하지 않는다. 스승의 약점을 이용해 거래하지도 않고.”
“후후, 그런가요?”
꽁!
카론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주 가벼운 꿀밤이었다.
“거래는 성립됐다. 넌 학생의 본분이나 다하고 있거라.”
카론이 창문에 몸을 반쯤 내밀었다.
시간이 흐른 것일까. 달빛이 다시 창문을 넘어 비추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카론이 떠났다. 달빛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