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2화. 게임 속 세상(2)
히든 피스(Hidden piece).
개발자가 게임 내에 숨겨 놓은 조각이자, 이스터 에그.
일부러 숨겨 놓은 만큼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만 찾아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히든 피스’였다.
「아카데미의 영웅」의 경우 특성, 아이템, 조합, 퀘스트 등 특수한 조건이 겹치고 겹쳐져야지만 해금이 되곤 했다.
쉬운 조건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심지어…….
‘무조건 좋은 게 해금되는 건 아니지.’
전체 체력 50% 감소로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도, 독에 중독되어 해독약을 달고 살며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 경우도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설마 대사를 강제로 바꾸는 히든 피스가 있을 줄이야…… 놀랍군요.”
물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처음 보는 히든 피스. 그것도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발동하는 히든 피스는 처음 본다.
홀로 남은 내가 아직 찾지 못한 히든 피스는 약 1,950개 정도.
이 괴상망측한 히든 피스를 지닌 채 게임을 플레이하면, 그중 수십 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실눈, 이상한 말투, 항상 웃는 인상, 여기에 불길한 오라까지.
척 보기에도 수상한 캐릭터다.
이 히든 피스가 앞으로 발생하는 이벤트마다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뭐, 고민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요.”
게임 속 캐릭터가 됐고, 말투가 자동으로 교정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예상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다행히 예상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난 이 게임의 고인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생각이 정리된 탓이라기보다는, [정신방어] 스킬의 힘이 더 커 보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앞으로는 뭘 하면 좋을까요?”
「아카데미의 영웅」은 퀘스트가 진행의 기반인 게임이다.
주어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보상을 받거나, 고의적으로 실패해 페널티를 받으며 진행한다.
‘만약 퀘스트가 없다면 활용할 수 있는 히든 피스의 폭이 줄어드는데…….’
그때였다. 눈앞에 큼지막한 푸른 창이 하나 떠올랐다.
-특수 조건을 만족하여 게임 속에 초대되셨습니다.
게임 속 지식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페널티 : 히든 보스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일행이 각 에피소드 보스 방에 진입할 시, 히든 보스 방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포탈 안에는 기존 보스보다 강한 히든 보스가 존재합니다.
(히든 보스의 능력은 정보창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클리어 경험이 없는 최종 보스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클리어 : 지구로 귀환 + 소원권(지구에서도 사용 가능)
실패 : 게임 오버 + 현실에서 사망
아하, 그렇군.
요약하자면 주인공 일행이 메인 보스를 잡는 동안, 나는 뒤로 빠져서 히든 보스를 잡으라는 거구나?
실패하면 무조건 죽는 거고?
거참 쉽네. 아니…….
“지금 장난하십니까?”
‘지금 장난하니?’라고 했지만, 자동으로 말투가 교정되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눈 뜨기]랑 [오그라드는 말투]. 이딴 걸로 뭘 어떻게 하라고!최종 보스는커녕 그 전에 뒤지겠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정신방어]의 힘으로 화는 금세 수그러들었다.그런 나를 반겨준 건,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푸른 창 하나뿐이었다.
[메인 퀘스트#1]-앤스우드 제국의 ‘앤우드 아카데미’에 입학하세요.
우수반에 배정될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200exp, 10골드
추가 보상 : 상점창(S) 스킬
페널티 : 모든 스탯 1감소
주연 캐릭터로 플레이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퀘스트다.
애초에 스토리의 주 무대가 앤우드 아카데미니까.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라는 명성답게 상당한 규모와 인재를 자랑하는 곳.
검 하나로 대지와 하늘을 가르는, 평균을 아득히 상회하는 주인공들이 있어도 개연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 되시겠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라?’
뭐, ‘입학시험’ 때문에 첫 번째 퀘스트치고 난도가 상당한 편이긴 하지만, 고인물인 내게는 땅 짚고 헤엄칠 정도로 쉬운 퀘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작했다는 느낌이 확 드는 순간이로군요.”
그냥 진행하면 되지 왜 첫 번째 퀘스트부터 이렇게 말이 많냐고?
이 게임의 특징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영웅」은 자유도가 높은 게임.
이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아도 다른 루트가 열린다는 뜻이다.
‘이 게임에서 스탯 감소라는 페널티는 충분히 감수할 만해.’
초반 스탯 감소는 뼈아프지만, 극복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내 목적은 최종 보스 공략.
초중반보다는 중후반. 먼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아카데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다 찾았지. 아카데미생이 되면 내 행동반경에 제약이 걸리기도 하고…….’
평소라면 페널티를 받고 다음 퀘스트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해.’
기존 게임을 플레이할 때와 달라진 것.
내가 게임 속에 들어왔고, 이곳에서의 죽음은 현실에서의 죽음이라는 것.
그렇다면 내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위험성’과 ‘안전성’이다.
「아카데미의 영웅」은 판타지 세계.
귀족과 평민 외에도 빈민과 노예, 이종족들이 존재한다.
즉, 산적과 도적, 수적의 습격은 빈번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이벤트이며.
길 가던 노인이 마스터급 암살자인 돌발 상황도 가끔 발생한다.
물론 이런 돌발 상황은 1%보다 낮은 확률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일 수도 있어.’
오랜만에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힘들지는 않다. 오히려 즐겁다.
내가 모르는 게 있다니. 고인물인 내게 이런 고민을 하게 해 주다니.
너무 좋다. 입이 쭉 찢어지는 미소가 절로 지어질 정도로.
“……퀘스트를 수락하도록 하지요.”
잠시 고민했지만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무려 네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내 기억상 이런 캐릭터는 아무도 플레이한 적이 없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나만큼 히든 피스를 알지는 못했을 거고, 이건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히든 피스를 발견하는 원동력이 될 거다.
아카데미에서도 새로운 히든 피스를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둘, 앞서 말했듯 위험하다.
다음 퀘스트가 뭔지도 모르는데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스킬은 전투용이 아니니까.
셋, [상점창] 스킬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 그대로 처음 보는 스킬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무려 S급의 스킬. 스킬명으로 유추해 보건대 단점도 없어 보인다.
만약 스킬이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이라면 무조건 얻는 게 맞다.
넷, 아카데미에 있는 히든 피스 중 선점해야 할 게 있다.
스토리 진행 중 악역의 손에 넘어가는 게 몇 개 있는데, 그것들은 최종 보스의 스킬과 아이템이 된다.
그런데 그걸 빼앗는다면?
나는 강해지고 적은 약해진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아카데미만 다녀서는 최종 보스를 이길 수 없어.’
그렇다면.
“후후, 중간에 자퇴하면 그만이지요.”
짧으면 1년, 길면 2년.
아카데미와 그 주변에 있는 히든 피스를 최대한 빨리 수집한 후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주어지는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난도가 낮다.
게임 속 세상에 적응하고, 밖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
“주인공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메리트 중 하나죠.”
발매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게임과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매력을 지닌 다양한 주조연들.
그들을 만날 수 있다니. 즐거움이 두 배로 늘어났다.
이래 봬도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나다.
금세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즐겁군요. 정말 즐거워요.”
이런 선택의 갈림길은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종용받을 것이다.
힘들 때도, 괴로운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겠지.
하지만.
“한번 해 보죠. 재밌을 것 같으니.”
그렇게 나는 문을 나섰다.
밝은 미소와 함께.
* * *
하지만 내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고?
“하아…… 조금 곤란하군요.”
현재 내가 위치한 곳은 앤우드 아카데미 정문 앞 광장.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이상하게도 내 주위만 텅 비어 있다.
인파로 이루어진 작은 원형의 공간.
그 중앙에 콕 찍힌 점처럼 홀로 서 있는 나.
내가 조금이라도 이동하면 나를 중심으로 원이 조금씩 이동한다.
무슨 말이냐고?
나를 피해 사람들이 이동한다는 소리다.
마치 더러운 벌레를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후후, 안녕하십니까?”
“꺄아악!! 변태야!!”
“…….”
멍하니 서 있던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말만 걸었는데 변태가 되다니.
옛날 학창 시절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저런 인상은 처음 봐요.”
“그거 맞죠? 역사서에 늘 그려져 있는…….”
“어디 역사서뿐인가요? 대륙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마법사도 저런 눈이었잖아요.”
수군수군-.
그렇다. 저게 바로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이유였다.
절도, 폭행, 고백(?) 같은 자잘한 범죄부터 역모, 반역, 전쟁, 악마 소환 같은 크나큰 사고까지.
그들의 인상이 나와 비슷하다고 한다.
작은 눈. ‘실눈’이라는 인상 말이다.
‘너무 눈에 띄는군.’
기본적으로 서구권 외형을 가진 판타지 세계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세상이라는 말이다.
눈이 작다 못해 실눈인 내가 눈에 띄는 건 당연한 일.
“뭔가 불길하네요. 가까이 가고 싶지 않군요.”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에 [불길한 기운] 스킬이 뿜어내는 오라까지.
나를 중심으로 한 원이 형성될 만했다.
‘곤란하네. 입학시험을 쉽게 통과하려면 최소 한 명 이상의 도움이 필요한데.’
[상점창] 스킬은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 아닌, 조건부 추가 보상이다.‘우수반’에 들라는 조건.
전투 관련 스킬이 없는 나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게다가 검붉은 머리라니…… 무서워요.”
“레이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인종 차별이 아니라 인간 차별 수준이다.
“이런, 이런…… 그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저라도 상처받습니다.”
“그건 어떻게 돼먹은 말투인가! 네놈이 지금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사교적인 성격을 적극 활용해 말이라도 걸면 이 꼴이다.
진짜 개같은 말투 같으니.
살짝 묵례를 한 채 백스텝을 밟았다.
이 정도면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나은 수준이다.
그렇게 입을 닫고 있을 때였다.
한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당당한 걸음걸이,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칼, 흐트러짐 하나 없이 잘 말아 올린 포니테일, 그리고 왼팔에 걸려 있는 선도 명찰까지.
단번에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과연…… 척 봐도 수상한 인물이로군.”
「아카데미의 영웅」의 주연 중 한 명.
로델린 드 루시드가 눈앞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