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20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2)
‘……그런 거였나.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군.’
확신에 가까운 추측.
이 추측에 대한 결과는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고인물들도 모르는 걸 알아냈다는 기쁨에서 만족해야 할 듯했다.
“후후, 전 제로라고 합니다. 다른 분과 착각하신 모양이군요.”
“아…… 그, 그런가. 하,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세월이 흘렀으니…….”
광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가 생각에 잠긴 건 그야말로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한 미소와 함께.
“안녕! 난 광대라고 해! 너희들도 풍선을 받으러 왔니?”
“후후, 이래 봬도 아카데미생입니다. 풍선 같은 건 아이들이나…….”
움찔.
루나가 살짝 몸을 떤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착각일 거다.
열다섯이 성인이라는 게 이 게임의 설정. 그러니 풍선을 갖고 싶어 할 리가 없다.
아무리 애 같은 루나라도 말이다.
“그래? 그럼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나?”
“후후, 아이들과 좀 놀아 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제 보니 광대를 선망하는 학생들이었네. 얼마든지! 단, 알바비는 없지롱~ 키히히!”
광대가 허리까지 뒤로 꺾으며 폭소했다.
웃긴 대화를 한 것도 아닌데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역시 ‘광기의 가면’이라고 불릴 만했다.
주변의 치안을 점검하며 다가오는 로델린의 모습이 보였다.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선배님, 아이들과 놀아 달라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음, 원래 계획과 달라졌지만 상관없겠지. 아이들과 놀아 주는 일 또한 치안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니.”
“후후,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델린이 광대에게로 향했다. 그러더니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상대의 강함을 꿰뚫어 본 걸까.
광대가 굽신굽신 모드로 태세를 전환했다.
“흠…… 허가증은 받고 영업을 하는 겁니까?”
“무, 물론이란다! 키히히…….”
저 광대마저 주눅 들게 하는 로델린의 위엄이란.
둘의 대화를 흥미롭게 엿듣던 때였다.
루나가 다가왔다.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을 한 채.
“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후후, 어떤 것 말씀이신지요?”
“난 애들하고 노는 법 같은 거 모른다고. 그리고 내가 왜 애X끼들하고 놀아 줘야 하는데?”
하긴, 루나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거다.
내가 뭔가 대단한 부탁을 할 거라 생각하며 잔뜩 긴장했을 텐데, 그게 아이들과 노는 일이었다니.
하지만, 루나는 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다.
“이게 바로 제 부탁이니까요. 후후, 이래 봬도 다 이유가 있는 행동입니다.”
“……이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지기 전까지 광대와 생활하는 것. 그러면 [흉내쟁이] 스킬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얻으려는 히든 피스의 시작이자, 선결 조건이었다.
“그럼 애들이랑 놀아 주기만 해도 질문을 하나 받아 주겠다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짜증 나지만 어쩔 수 없지.”
루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광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히든 피스를 위한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음! 아주 훌륭한 그림이군. 우리 아카데미에 걸어 두고 싶을 정도다.”
“내 그림! 내 그림도 봐 주세요!”
“잠시 기다리도록. 순서를 지킬 줄 알아야 예쁜 아이지.”
“네! 예쁜 언니!”
“크, 크흠…….”
다소 말투가 딱딱하긴 하지만, 로델린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아이들을 다뤘다.
동화 들려주기, 훌륭한 아이로서의 몸가짐 강의, 여기에 그림 그리기까지.
아이들을 다루는 것도 완벽 그 자체였다.
그녀의 주변으로 작은 팬클럽이 형성될 정도랄까.
그럼 우리의 루나는 뭐 하고 있냐고? 루나는…….
“야! 니들! 잡히면 진짜 죽는다!!”
“꺄악! 괴물이 쫓아온다!”
“그래, 내가 바로 괴물이다! 크아아!”
한 무리의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빙자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아주 잘 놀고 있다는 뜻 되시겠다.
‘본인이 아이가 된 게 큰 문제지만.’
정신연령은 물론 말투까지 퇴화했다.
저 정도면 아이들이 루나와 놀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모르는 사람이 저 모습을 본다면, 그들이 서로 친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뭐 하고 있느냐고?
나는…….
“후후, 자…… 여기 작은 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양손으로 꽉 쥐면…….”
쥐었던 양손을 정면을 향해 펼쳤다.
놀랍게도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와! 공이 사라졌어!”
“마법이다! 마법으로 공을 없앤 거야!”
“잠깐, 그럼 내 공은 사라진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후후’라고 중얼거릴 뿐.
그러자 공을 맡겼던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잠깐만요……. 이거 왜 이러죠?”
내 가슴팍에서 동그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됐다.
“이런…… 공이 주인한테 돌아가고 싶다는군요. 상당히 잘 대해 줬나 봅니다.”
품에 손을 넣고 꺼내자, 아이가 맡겼던 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풍선 1개와 함께 공을 건넸다.
“후후, 선물입니다. 앞으로도 친구를 소중히 아껴 주세요.”
“예! 마법사님, 감사합니다!”
참 해맑게도 웃는다.
[아공간] 스킬을 활용한 마술 공연.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지만, 마법사가 그렇게 흔한 존재는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후후, 다음 공연은 잠시 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5분짜리 공연 1개를 선보인 후, 55분의 휴식 시간을 가진다.
아주 훌륭한 워라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오늘 하루뿐인 일정이지만, 워라밸은 상당히 중요하다.
만약 휴식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헉…… 헉…… 죽겠네. 저 정도면 쟤네들 입학시험 무조건 뚫는다. 진짜야, 합격한 내 말이니 진짜라고…….”
비틀거리던 루나가 내 옆에 풀썩 쓰러졌다.
일을 시작한 뒤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녔으니 이렇게 되는 게 당연했다.
“동감하는 바다. 어찌 저리도 체력이 좋고 호기심이 많은지…… 연구를 제의해 봐야겠군. 아카데미에 적용할 수 있다면 크나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니.”
로델린이 내 옆에 주저앉으면서 한 말이었다.
항상 단정했던 포니테일이 여러 갈래로 뻗쳐 있었다.
왼팔에 있는 선도 완장의 각도가 축 늘어졌다는 건 알고 있을까?
“후후, 반나절만 더 하면 됩니다. 다들 힘내시지요.”
“야, 먹을 건 안 주냐? 끌고 왔으면 그 정도는 줘야지.”
“후후…….”
“뭐야? 내 말 안 들려? 밥 달라니깐?”
“후후후…….”
“…….”
나를 쳐다보는 루나의 눈이 이글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점창]에서 스탯을 사야 하는 내 입장에선 단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지금도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식사로만 생활하는 중이었고.
심지어 지금은 여러 행사가 진행 중인 광장.
군것질거리의 가격이 평소보다 최소 2배 이상이다. 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밥을 사라고?
절대 안 되지.
“나 지갑도 안 가져왔다고! 밥 안 내놔? 왜, 너를 구워 먹어 줄까?”
“후후, 루나 양. 식인은 제국에서 금지된 행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배님?”
“지금은 예외가 적용될 수도 있을 것 같군. 황제 폐하께서도 그렇게 판단하실 거야.”
“…….”
아니, 여기서 황제를 팔아먹는다고?
내가 아는 그 고지식한 로델린이 맞나?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양쪽에서 사나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진짜 잡아먹을 기세다.
어쩐다. 싸고 양 많은 알감자라도 사 와야 하나?
로델린과 루나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아…… 그렇구나. 감자로는 배가 안 차는구나?
그럼 감자하고 고구마? 그거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둘 사이에 완전히 끼여 찌부러질 위기에 놓였을 때였다.
“얘, 얘들아! 비상! 큰일이 났지 뭐니! 키히히!”
잠시 자리를 비웠던 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과장스러운 움직임. 하지만 뭔가 일이 생기긴 한 모양이었다.
“후후,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제 상황보다 더 큰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글쎄 연극 공연을 해 주기로 한 사람들이 못 온다지 뭐니! 키히히!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연극이 파토 났다니.
그럼 그 시간을 우리가 대신 때워야 한다는 뜻이다.
로델린과 루나가 밥을 먹을 시간은 더욱 없겠지.
“…….”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의 눈에 노기가 가득하다는 걸.
고기처럼 비싼 걸 사 주지 않으면 나를 물어뜯어 고기를 취할 기세였다.
“키히히!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이 대신 연극을 해 주면 안 될까?”
“저희가 말입니까?”
“그래, 그래! 아주 간단한 연극이거든. 대사는 마음대로 해도 좋아. 소품도 다 준비되어 있다고. 키히히!”
네, 대신 소품은 두 명분만 준비하면 될 것 같네요.
전 지금 인간에서 고기로 품종이 바뀔 예정이거든요.
“아, 진짜! 광대 아저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무일푼인데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연극까지 하라니……!”
“키히히…… 밥 줄게.”
“예?”
“밥 준다고. 키킥!”
로델린과 루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했다.
“연극은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과 감정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야.”
“내가 말 안 했던가? 예전부터 연극 배우가 꿈이었다고.”
선배님, 이런 시대에 그런 연구 결과가 있습니까?
루나야, 그리고 네 꿈은 복수 아니었니?
“키히히! 좋아. 그럼 다 같이 하는 거다?”
“후후, 전 빠져도 될 것 같습니다만…….”
“키키! 안 돼. 네게 딱 맞는 역할이 있거든.”
딱 맞는 역할이 있다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불안해진 나였다.
* * *
“공주! 내가 왔소!”
“영웅님! 저를 구해 주세요!”
망토를 두른 로델린이 열연을 펼쳤다.
줄에 묶여 있는 루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합이 잘 맞는지 모르겠다.
여러모로 진짜 대단한 애들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참고로 로델린이 영웅, 루나가 공주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후후, 이제야 온 겁니까?”
내 등 뒤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단단한 종이로 만든 조악한 날개.
그렇다. 내가 맡은 배역은 바로…… 악마였다.
“크윽…… 엄청난 마기!”
“용사님! 힘내세요!”
연기도 즉흥, 대사도 즉흥이다. 흔한 삼류 스토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연기가 훌륭하다 보니 아이들이 제대로 몰입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자.’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일단 끝내고 보자.
“후후, 덤비십시오!”
“악마여! 내 검을 받아라!”
“후후, 그 정도로는 무리입니다. 그런 천박한 검술로는 절 이길 수 없지요.”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자 관객석이 술렁였다.실눈에 숨겨져 있던 붉은 눈빛.
클라이맥스로 딱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나는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는 로델린이 굶주린 야수라는 것, 두 번째는 내 말실수.
그리고 세 번째는…….
로델린이 너무 몰입한 상태였다는 거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박하다라…… 우리 가문을 모욕하다니. 배짱이 아주 두둑한 악마로구나.”
카각.
로델린이 목검을 바닥에 갖다 댔다. 비스듬히 파지한 목검.
음? 어디서 많이 본 모션인데.
어디서 봤는지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게임에서 여러 번 본, 바로 그 자세였다.
“자, 잠깐……!”
하지만 이미 로델린의 목검이 움직인 뒤였다.
그렇다, 저건 바로.
루시드 가문류 첫 번째 비기.
“대지 뒤집기!”
무대 바닥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 절로 한마디가 튀어 나갔다.
이런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