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201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8)
사아아-.
뼛가루가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공중에 흩날렸다.
이름 모를 기사가 영면에 들었다는 증거였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실비아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주변에 있던 해골 기사를 모두 처치했기 때문이다.
‘뭐, 처치라고 해봤자 머리뼈를 붙이기 위해 땅을 뒹굴던 놈들의 머리에 검을 찔러넣은 게 전부지만.’
키엘과 아스테온이 처치했지만, 신성력 포션을 바른 무기가 아니었기에 부활을 앞뒀던 해골 기사들.
그들의 머리에 신성력 포션이 발린 검을 찔러넣었을 뿐이었다.
말을 탄 해골 기사를 직접 처치한 건 다섯 번 정도?
물론, 그것도 혼자서 해낸 일은 아니었다.
“유모,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우선 저 아이들과 합류하도록 해요.”
“후후, 알겠습니다.”
빠각! 빠지직!
유모가 해골바가지를 최대한 잘게 지르밟았다.
신성력 포션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으니 머지않아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일반 해골 놈들에게 신성력 포션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다.’
열 개. 반절의 신성력 포션을 소모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실비아와 유모는 비교적 빨리 깨달은 편이었다.
현재 토벌대가 보유한 신성력 포션은 평균 서너 개.
키엘이나 아스테온처럼 하나도 남지 않은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처음 나타난 해골은 빈약한 놈들이었으니까요. 호쾌한 손맛도 있지만, 수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을 했을 테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해골 기사와 마법사를 뒤늦게 등장시키는 것도 그렇고…… 전략가일까요?”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 숨겨둔 함정이 못해도 두세 개는 더 있겠죠.”
지금도 벅찬 상태인데 숨겨둔 게 두세 개나 더 있을 거라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하지만.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저런 타입은 몸싸움에 약하죠.”
“후후! 역시 실비아 님이시군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해골.
최소 4성 기사 이상의 힘을 보이는 해골 기사와 마법사.
여기에 그 볼칸이라는 놈이 같이 날뛰었다면?
토벌대가 괴멸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해골을 방패로 날뛰기는커녕, 숨기 급급하다니.
이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힘이, ‘개인의 전투력’이 약한 거다.
‘뭐, 이런 힘을 다룰 수 있으니 개인적인 전투력이 무슨 상관이겠냐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볼칸을 마주하게 된다면 과감하게 달려들어야 한다는 것.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알아내는 것에 의의가 있다.’
다음번, 볼칸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 사람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살고 싶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잠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싶어.’
실비아가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은 볼칸도, 집도, 그리고 낮잠을 자고 있을 아이도 생각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본대에 합류할 수 있지?’
실비아와 유모가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들이 한 일은 주변을 정리하는 것에 불과했다.
현재 이곳은 적의 영역.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서는 해골의 벽을 넘어서야 했다.
그래, 얼핏 보면 물결처럼 보이는.
저 해골들의 벽을 뚫고서.
“유모, 미안해요.”
고립된 키엘과 아스테온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때.
사실 실비아는 알고 있었다. 루시아의 유모가 자신을 따라올 거라는 걸.
‘나를 보호하라고 명령을 내렸겠지.’
자신이 저 아이들을 구하러 가면 유모가 따라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생각대로 유모가 따라와 그들의 구출을 도왔다.
“후후, 괜찮답니다. 이것 또한 제 일이니까요.”
실비아가 피식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참 고마운 사람이다.
말투는 좀 이상하게 변한 것 같지만.
“무엇보다 애 엄마를 죽게 할 수는 없죠. 행복만 가득해야 할 때 아닙니까.”
유모가 찡긋 윙크를 보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실비아가 상기했다.
그렇다. 자신에겐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다.
“실비아 님! 정말 굉장한 활약이었습니다. 이 아스테온,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무리한 것뿐인데 뭐. 일단 말은 편하게 할게. 상황이 상황이니까.”
“핫핫! 얼마든지요! 전투가 끝난 뒤 그 넓은 마음으로 안아 주기만 하신다면…….”
퍼억!
보다 못한 키엘이 아스테온을 한 대 때렸다.
“질투하는 거냐? 추하구나, 키엘.”
“이걸 질투로 생각할 수 있다니. 놀랍구나.”
“나는 진짜로 질투 나! 둘이 너무 친한 거 아니야?”
“……제발 둘 다 내 인생에서 꺼져줬으면 좋겠군.”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입을 살짝 가린 채 쿡쿡 웃었다.
“친구들 사이답네.”
“……그런 사이 아닙니다만.”
“맞아! 아스테온은 아직 키엘에게 친구라고 인정받지 못했다고. 나는 이번에 인정 받았지만!”
키엘의 눈이 짜게 식었다.
소중한 신성력 포션을 자양강장제처럼 처먹는 놈이 친구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건강하면 됐지 뭐. 다들 싸우지 말렴.”
“넵! 절대 싸우지 않겠습니다.”
“친구끼리는 싸우지 않는 게 당연하죠.”
그 모습을 본 키엘은 기가 찼다.
저 두 짐승을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만들다니.
이것이 바로 유부녀의 포용력이라는 것일까?
‘으음……. 아스테온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핫!’
키엘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에겐 루시아.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저걸 어떻게 뚫고 합류하냐인데…… 에드윈, 표적 세 개. 한 번에 맞출 수 있지?”
“무조건 해낼게요!”
실비아의 전략을 들은 그들이 진형을 갖췄다.
아스테온을 필두로 한 돌진 진형.
“하하핫! 이 아스테온만 믿으십시오!”
아스테온이 돌진을 시작했고, 유모와 키엘이 그 뒤를 따르며 해골 병사를 때려 부쉈다.
그리고 길이 막혔을 때쯤.
후웅-.
실비아가 던진 신성력 포션 세 개가 하늘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퓨퓨퓩!
쨍그랑-!
신성력의 비가 전장에 내리기 시작했다.
비에 닿은 해골들이 형체를 잃고 허물어져 내렸다.
“뚫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
한 명도 죽지 않고 본대와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적인 전장이었다면 적군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을 상황.
하지만 이번 전장은 그렇지 않았다.
해골에게는 ‘감정’이란 게 존재하지 않기도 했지만.
“간격을 좁힌다!”
전장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해일처럼 몰려오는 해골 병사들.
현 토벌대의 전력으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진형을 갖춘 건, 엘레스터와 루시아가 싸우고 있는 왕궁.
그 근처에서 전선을 펼쳤다. 최후의 전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엘레스터의 마법이 왕궁 대부분을 파괴한 상태였기에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히 감쌀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막아야지.”
엘레스터와 루시아가 크롤리의 부활을 막는 데 성공할 때까지.
모두가 마음을 다질 때였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지 않아?”
주어는 없었지만, 모두가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아도니스에게 쏠렸다.
그렇다. 아도니스. 저 아이를 살려야 했다.
“…….”
엘레스터는 마법을 난사하기 바쁘고, 루시아는 그의 곁에서 경호를 서고 있다.
카론은 어딨는지도 모르겠다.
이 중에 결정권자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애는 살려야지.”
“그럼 모두 동의한 거다?”
“근데 누가 데리고 나가지?”
속닥속닥-.
해골을 경계하던 키엘은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한 조의 팀장인데, 왜 자신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저놈들 설마…….
“결정했다. ‘키엘과 아이들’ 조가 데리고 나간다.”
키엘의 눈이 커졌고, 아스테온이 즉각 반발했다.
“키엘과 아이들이라니! 내 이름이 빠졌잖아! 아스테온과 아이들로 바꿔!”
“하하하! 키엘과 친구, 그리고 아스테온은 어때?”
“이, 이 바보들! 지금이 조명 정하기 시간인 줄 알아?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버럭 소리친 키엘이 말을 이었다.
“왜 우리지? 객관적인 전력으로 따졌을 때 우리 조가 가장 강한 조일 텐데!”
키엘, 아스테온, 에드윈.
키엘의 조는 단 세 명으로만 편성된 조였다.
다른 조가 다섯 명 이상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엄청나게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카론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셋이 합이 잘 맞기도 했지만, 이 중에서 손꼽히는 강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다. 이 멍청한 놈.”
“뭐?”
“저 해골의 벽을 뚫고 아도니스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 너희 말고 또 누가 있지?”
“……!”
그렇다. 토벌대가 키엘의 조를 선택한 이유.
그들을 가장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도니스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거다.
인정받았다. 그것도 라이벌로 여겼던 놈들에게.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어디서 멋진 척을 하고 앉아 있는 거냐!”
토벌대 모두가 크게 웃었다.
키엘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구하러 올 거다. 저 애새끼를 안전한 곳에 던져두고 다시 이곳으로 달려올 거라고! 그러니까…….”
키엘이 빙글 뒤로 돌며 말을 이었다.
“그때까지 살아 있어라.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하하하! 그럴 필요 있나? 어차피 우리가 다 끝내놓은 상황일 텐데. 그냥 아도니스 데리고 여행이나 가라고!”
키엘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가자. 쉼 없이 달려야 할 거다.”
“쯧, 귀찮지만 어쩔 수 없겠네. 이런 중요한 임무는 나만 할 수 있는 거니까.”
“꼬맹아! 집에 가자! 형들이 데려다줄게!”
하지만 아도니스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키엘이 아스테온과 에드윈에게 눈짓했다. 잠시 둘만의 시간을 달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이 조금 거리를 두자, 키엘이 정중히 말했다.
“가시죠.”
“그럴 필요 없다.”
“……가셔야 합니다.”
“난 여기 남아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넌 그 이유를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 키엘은 알고 있었다. 아도니스가 강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인해 그 실력을 내보일 수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X발.”
“뭐라?”
“X발이라고 했다. 왜, 열 받냐? 그럼 또 협박해보던가.”
반응이 없자, 키엘이 아도니스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X발! 난 몰라! 네가 짊어지고 있는 게 뭔지, 무슨 제약에 걸려 있는지. 그런 거 하나도 모른다고! 그런데!”
“…….”
“안 싸울 거면 꺼져. 내 동료들 발목 잡지 말고.”
평소 점잖은, 귀족계의 모범이라 불리는 키엘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귀족계의 법도고 예절이고.
다 엿이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키엘이었다.
“……네 실력을 알고 있으니 적당한 데다 던져 주고 올 거다. 그 뒤는 너 알아서 해.”
다시 돌아와 싸우든지, 도망치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바라보면서 방관하던지.
키엘이 알 바는 아니었다.
아도니스의 멱살을 잡은 키엘이 그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가자! 최대한 빨리 돌아와서 제 주제도 모르는 저 병X들을 구하러 오는 거다!”
“키엘, 욕은 좋지 않아. 네가 항상 말했잖아. 그런 건 천박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닥쳐!”
아스테온과 에드윈이 키득거렸다.
“아도니스! 걱정 마! 금방 처치하고 따라갈 테니까!”
“다음에는 꽉 끌어안아 줘야 해!”
“꼬맹아! 나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도니스는 알 수 있었다.
최대한 활기찬 목소리를 내뱉으려고, 웃으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아이야, 손을 놓거라.”
“그래, 네 발로 걸어라. 이렇게 낭비되는 체력도 아까우니까.”
“너희들도 갈 필요 없다. 저들에게 전해라. 잠시 쉬며 체력을 비축하라고.”
“응? 그게 뭔 개소리…….”
아도니스가 창을 손에 쥐었다.
조금 전, 키엘의 손에 질질 끌려가던 그는 보았다.
무기를 하늘 높이 치켜들며,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영웅들의 모습을.
“……그저 아이들인 줄로만 알았더니, 나와 같은 영웅들 아닌가.”
적보다 먼저 비장의 무기를 드러내다니.
좋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영웅들을 죽게 할 수는 없지.”
볼칸이라고 했던가?
그래, 네놈이 준비한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해 보거라.
“이 나를 꺾을 수 있다면.”
쿠르릉! 파지지지직-!
아도니스의 주변에 황금빛 번개가 내려쳤다.
숨기고 있던 마나가 일시적으로 터져 나오며 번개가 친 것과도 같은 착각을 일으킨 거다.
그와 동시에.
번쩍-!
황금빛 번개가 전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선이 지나갈 때마다 해골의 얼굴이 조각조각 갈라지며 하늘을 수놓았다.
모두의 눈이 황금빛 선을 뒤쫓았다. 그리고 그 황금빛 선의 끝에는.
“……아도니스?”
황금빛 기운을 내뿜는 아도니스가 서 있었다.
“휴식을 취해라.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 말을 끝으로, 전장에는 계속해서 황금빛 번개가 내려쳤다.
더글라스로 살던 시절, 뇌제(雷帝)라 불리던 위용.
어린아이로 변했지만, 그 위용은 여전했다.
“…….”
모두가 멍하니 서 있을 때, 돌아온 키엘이 키득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저 속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던 아스테온이 하반신 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럴 수가! 그렇다면……!
“쟤는 괴물이 두 개 달렸다는 건가?”
“…….”
그들은 생각했다.
아스테온이 입 좀 닥쳤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