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2)
제202화
202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9)
“크억!”
카론의 주먹에 맞은 흑마법사가 고꾸라졌다.
놈이 기절한 것을 확인한 카론이 아티팩트를 꺼내 들었다.
마나의 흐름을 막아 주는 포획용 아티팩트였다.
팔, 다리, 그리고 입까지.
흑마법사의 신병을 꼼꼼히 구속한 카론이 가벼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시궁쥐가 흑마법사를 둘러업더니 금세 자취를 감췄다.
“……세 놈째인가.”
정확히는 둘은 구속, 하나는 죽었다.
사실 카론도 오토네 팀과 같은 일을 겪은 상태였다.
죽은 흑마법사가 해골로 변해 다른 해골을 부활시키는 광경은 정말이지…….
‘나조차도 소름이 돋는 모습이었지.’
그 이후, 카론은 흑마법사를 죽이지 않고 신병을 구속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후 정보를 빼내기 위함도 있지만, 흑마법사가 다시 일어서는 불상사를 막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신성력 포션을 이용한다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신성력 포션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 그게 볼칸이란 놈의 첫 번째 목표가 아닐까?’
카론이 봤을 때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볼칸이 준비한 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신성력 포션이 없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거라는 것.
그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카론이 봤을 때 흑마법사는 죽이지 않고 구속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해골로 변해 부활할 일이 없어지고, 신성력 포션도 낭비하지 않게 될 테니까 말이다.
“쯧.”
다음 건물을 수색하던 카론이 혀를 찼다.
흑마법사의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추적과 수색, 색적에 이골이 난 카론조차도 힘겨워하는 이유.
하늘에 떠 있는 마법진의 힘이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미리 만들어뒀다.’
결국, 카론은 눈과 손, 발, 감각 등을 이용해 일일이 건물의 벽과 바닥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쿠르릉-!
순간, 밖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카론이 즉각 밖으로 나가 전장을 살폈다.
황금빛 번개가 전장 곳곳에 내리치고 있었다.
‘아도니스 님?’
카론은 곧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십 번 넘게 전장을 함께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아도니스의 몸이 아닌 더글라스로 활동하던 시절이었지만…….
‘여전하시군.’
몸이 작아진 지금도 그 위용은 여전했다.
본래 아도니스는 제국이 마련한 비장의 수 중 하나.
그렇기에 그가 최대한 늦게 움직이길 원했지만, 저 또한 아도니스의 판단과 선택.
카론이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정도면 오래 참으신 거지.’
토벌대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떠오르는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그들이다.
적어도 한두 시간 정도는 자력으로 버틸 수 있었을 것이고, 엘레스터나 루시아가 중간중간 지원해 줬다면 그 이상도 가능했을 것이다.
볼칸이 준비한 수 중 한두 개를 더 끌어낼 수 있었을 거란 얘기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몇 명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도니스는 그 점을 우려했고, 결국 먼저 실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거다.
저 행동이 결국 아도니스, 그 자신의 목을 죄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전장에서 상대의 노림수를 모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
하지만 그렇기에.
“……당신이 영웅이라 불리신 거겠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자세.
카론이 아도니스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쿠르릉-!
“…….”
최강의 카드가 공개됐지만, 나쁠 건 없다.
아도니스라는 존재가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지만.
애초에 자신들이 가진 진짜 비장의 무기는.
‘성검을 든 아도니스니까.’
볼칸이 준비한 비장의 수 한두 개 정도는 우습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색을 마친 카론이 다음 건물로 이동하려던 때였다.
시궁쥐 하나가 창문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오토네 조가 보낸 포션이 본대에 전달됐다고 합니다.”
“오토네가 훌륭한 판단을 내렸군. 본대 상황은 어떻지?”
“잔 부상을 치료하면서 2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망자는 없습니다.”
“……군단장 쪽은 어떻지?”
“이제 막 건물의 뼈대가 드러났습니다. 곧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 보고를 끝으로, 시궁쥐가 떠났다.
카론이 다시 한번 전장을 살폈다.
부활하는 해골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자신과 시궁쥐, 오토네 조가 흑마법사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탓도 있지만.
‘마나를 회복하는 양보다 소모되는 양이 더 많기 때문이겠지.’
콰르릉-!
파사삭!
아도니스가 지나갈 때마다 부서지는 걸 넘어 바스러지는 해골들.
가루가 된 해골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평소보다 많은 마나가 소비될 것이다.
토벌대가 전장을 제압해 나가고 있는 상황.
하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5군단장 크롤리…….’
부활한 해골이 생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상태.
군단장 크롤리도 생전의 힘을,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놈이 부활한다면 우리 쪽에는 승산이 없다.’
군단장의 부활을 막는 게 최우선 순위.
하지만 카론은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봤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콰르르르릉-!
엘레스터와 루시아가 있는 곳에서 주기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마법을 난사하는 중이다.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
게다가 카론은 대인전에 특화된 존재.
건물에 단검을 박아 넣어봤자 벽돌 수십 개 정도 빼내는 데 그칠 것이다.
‘차라리 볼칸과 흑마법사를 찾는 게 훨씬 이득이다.’
아도니스를 포함한 본대에 자유를 선물하는 것.
그게 자신의 역할이자 임무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쩌적- 쩌저적-.
쨍강-!
하늘에 떠 있던 마법진이 쩍 갈라지더니, 반절이 가루로 변하여 흩날렸다.
사샤가 마법석을 절반 이상 파괴하는 데 성공한 거다.
카론은 그제야 흑마법사들의 마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마법진이 힘을 잃은 서쪽 근방에 한해서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반반…… 아니, 7:3 정도로 우세한가.’
이겼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하지만 승기를 잡았다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비율.
카론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크롤리가 부활한다면 모두 다 끝이야.’
손가락 두어 개를 입에 집어넣은 카론이 휘파람을 세차게 불었다.
삐이이이익-!!
하나, 둘씩 느껴지던 인기척이 얼마 가지 않아 수십으로 늘어났다.
늘어나던 인기척은 오십에 이르고서야 멈췄다.
본대가 칼로스에 진입한 이후, 은밀하게 뒤따른 시궁쥐의 숫자이자.
카론이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시궁쥐들의 수였다.
“흑마법사를 제압한 후 칼로스를 벗어나라. 되도록 죽이지는 말도록.”
“넵!”
시궁쥐들이 즉각 행동에 나섰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 적에 대한 정보를 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해 뒀던 시궁쥐들이었다.
하지만 카론은 그들을 전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건물에 숨어있는 흑마법사들을 빨리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이 전장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사와 함께 칼로스를 벗어날 테니,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정보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거다.’
시궁쥐의 전투력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 수가 많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큭!”
“억!”
곳곳에서 흑마법사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론도 즉각 행동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전장을 제압하기 위해서.
* * *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거대한 공동.
또륵-.
천장에서 생긴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공동의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물방울이 땅에 닿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했다.
똑!
하지만 물방울은 땅에 닿기도 전에 수십 개의 작은 물방울로 변하고 말았다.
땅에 닿기 전, ‘어떤 물체’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물체는 다름 아닌 뼈였다.
살점 하나, 신경 조직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새하얀 뼈.
이상한 건, 그 뼈가 거대했다는 거다.
공동을 가득 메울 정도로,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뼈에 닿으며 산산이 부서질 정도로 말이다.
“음?”
그 뼈에 손을 댄 채 주문을 외우던 흑마법사, 볼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전장에서 이탈하는 흑마법사들의 숫자가 속속 늘어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수족이나 다름없는, 이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그들이 납치당하고 있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큭큭, 드디어 쥐새끼들이 다 튀어나왔구나.”
볼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를 뿐이었다.
“카론, 당신이라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
정보, 부활 방지, 신성력 포션의 낭비를 막기까지.
흑마법사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구속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거다.
그리고 그런 유능한 카론을 믿고 준비한 함정이 하나 있었다.
따악!
볼칸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잠시 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기절한 채 끌려가던 흑마법사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그들에게 미리 걸어두었던 ‘저주’를 발동시킨 결과였다.
흑마법사들을 죽였으니 정보를 빼앗길 염려도 없어졌고, 해골로 부활해 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게 됐다.
흑마법사 해골은 다른 해골을 부활시킬 수 있으니, 신성력 포션도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하지만 볼칸의 노림수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카론, 시궁쥐들이 죽는 건 모두 당신의 탓이야. 그러니…… 함께 가길 바라지.”
그게 바로 그들에 대한 예의이자, 속죄일 테니까.
볼칸의 입이 비뚜름하게 열렸다.
“시체 폭발.”
* * *
“카론 님,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음.”
카론이 구속한 흑마법사를 시궁쥐에게 양도했다.
복면을 쓰고 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작년에 입소, 험난한 훈련을 마친 후 이번 년부터 정식 시궁쥐가 된 아이였다.
열다섯이라는 나이였기에 앤우드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는 게 자신에게 어울린다면서 말이다.
그렇다. 씩씩하면서도 아주 건방진 아이였다.
‘……이번 임무가 끝나는 대로 아카데미로 보내야겠군.’
학생으로 위장해 아카데미에 투입, 학생들에게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
학생들 사이에서 활동해야 하다 보니 강제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구도 사귈 것이고, 열다섯의 나이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거다.
‘졸업 이후에 시궁쥐 일을 계속하든, 다른 길로 나가든……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애초에 이번 임무에 낄 만한 깜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원이 워낙 부족했기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뭐, 흑마법사를 칼로스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순간 안전이 확보되니 이제는 걱정할 이유도 없어졌지만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억……!”
“어라?”
시궁쥐가 둘러업은 흑마법사가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본 카론은 이상함을 느꼈다.
손목이나 입 안쪽 등. 독약이 숨겨져 있을 만한 공간은 모두 검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흑마법사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없었다.
“……?”
그리고 시궁쥐와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한 바로 그 순간.
퍼어어어엉-!!
건물을 삼키는 폭발과 함께 카론의 몸이 건물 밖으로 튕겨 나갔다.
삐이이이이-!
이명이 귀를 어지럽혔다.
카론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무언가가 터졌다.
폭발물 함정? 아니, 마법인가?
“쿨럭!”
기침을 토하면서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시궁쥐의 부상 정도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팔을 휘적이며 먼지를 가라앉히는 데 성공한 카론은 보았다.
발목 밑부분만 남아 있는 시궁쥐의 모습을.
카론은 그제야 깨달았다.
터진 건 폭발물 같은 게 아닌, 흑마법사의 시체라는 걸.
그리고 자신의 얼굴과 온몸이.
시궁쥐의 피와 살점으로 물들어 있다는걸.
“……함정이었던 건가.”
정보에 집착하는 카론과 시궁쥐, 되살아나는 흑마법사.
그 점을 역이용한 게 분명했다.
1지구에 있는 건물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먼지가 보였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체 몇이나 되는 시궁쥐가 죽었을까.
카론은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동시에 되뇌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카론.”
하나도 잃지 않는 완전무결한 승리를 원한 거냐?
아직도 그런 환상에 빠져 있었던 거냐?
전쟁의 잔혹함을 그새 까먹은 거냐?
그럴 리가 없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다만.
조금 지쳤기에,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카론이 몸을 일으켰다.
감상에 빠지는 건, 죄책감에 빠지는 건.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해도 충분하니까.
삐이이익-!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조를 요청하는 휘파람 소리였다.
공포, 혼란, 슬픔.
시궁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열지 않도록 교육된 존재들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시궁쥐의 특성상, 위치를 들킨다면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궁쥐들은 휘파람, 새소리, 동물 소리 등.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곤 했다.
그렇다. 설사.
몸 몇 군데가 날아가는 부상을 입은 상태라도 말이다.
카론이 가장 가까운 휘파람 소리를 향해 움직이려던 때였다.
사아아-.
발목 밑부분만 남아 있던 시궁쥐의 신체.
붙어 있던 살점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뼈만 남았다.
동시에 여기저기에 퍼져 있던 뼛조각들이 조금씩 모이더니, 이내 두 형체를 이루었다.
하나는 흑마법사 해골,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따닥- 따다닥-!
단검을 들고 있는 해골이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있던 열다섯 먹은 시궁쥐의 해골이 분명했다.
애도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아군끼리 싸우게 만들다니. 진짜 빌어먹을 능력이었다.
“……미안하다.”
살아 있을 때도 고통받게 했는데 죽은 뒤에도 고통받게 하다니.
카론이 단검에 신성력 포션을 바르며 다짐했다.
볼칸, 기다리고 있어라.
네놈은 반드시.
“내가 찢어 죽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