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3)
제203화
203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10)
“오, 마법진의 힘이 약해졌어.”
“사샤가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네. 아마 그쪽에도 해골이 있겠지?”
“그러겠지. 뭐, 이쪽만큼 치열하진 않겠지만.”
“…….”
토벌대에 침묵이 감돌았다.
‘치열하다’라는 말. 지금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콰과광-!
천둥이 치는 곳마다 해골이 녹아내렸다.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뼈를 녹게 만드는 농축된 마나의 밀도.
마나를 허공에 흩뿌리고 다녀도 바닥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마력 양까지.
아도니스가 보여 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위(神威). 그 자체였다.
신이 날뛰니 뭐 어쩌겠는가. 나약한 인간들은 그저 구경이나 해야지.
그러니 토벌대가 ‘치열하다’라는 말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흠, 치열한가? 지금 우리 상황이?”
“……그래, 조금 전 말은 취소하마. 사샤가 우리보다 더 치열한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만족하냐?”
아스테온이 입을 삐죽였다.
현재 토벌대의 본대는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전투 중에 마냥 쉴 수는 없으니 반절은 휴식, 반절은 경계를 취하는 중이었지만.
경계 또한 할 일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쯧쯧, 이게 다 보는 눈이 부족한 탓이다. 나처럼 처음부터 알아봤어야지.”
“…….”
“할 거 없다고 놀지만 말고 잘 보라고. 싸우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성장에 도움이 된단 말이다.”
키엘의 말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이 고까운 탓도 있었지만, 눈살을 찌푸려야 겨우 아도니스의 움직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금세 지나가 버려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하! 역시 키엘이야. 근데 배울 게 없어 보이는걸. 나는 창술사가 아닌 사수니까.”
“에드윈, 넌 저게 보이냐?”
“응! 난 사수니까.”
“대단하네. 그럼 중계 좀 해줘. 어떻게 하면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건데?”
“그건 나도 몰라. 난 사수니까.”
……그게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데?
아스테온은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키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텐데. 하여튼 허세는…….’
하지만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지금 그런 건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기도 했지만, 아도니스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건 키엘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휴식을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기분을 맞춰줬으니, 슬슬 대가를 요구해도 될 터.
아스테온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쟤…… 아니, 저분은 누구셔?”
토벌대 일원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열셋? 아니, 열둘은 됐을까 싶은 앳된 외모.
그런 아이가 신에 필적하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으니,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키엘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나를 한 번에 제압했으니 대단한 실력자라고 생각했을 뿐.”
“에이, 뭐야. 아는 척은 다 하더니만.”
“잘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나는 저놈이 괴물이라고 계속해서 말했단 말이다! 그걸 무시하고 귀여워한 건 너희들이고!”
사람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아도니스에게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탕 주기, 강아지인 양 쓰다듬기, 볼 댕기기, 껴안기 등등.
모두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저 속도보다 빠르게 도망칠 자신은 있고?”
“무릎 꿇고 비는 게 낫겠군.”
어쩌면 물구나무를 서는 것도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히, 히이익!”
“살려줘!”
다섯 명의 사람이 토벌대를 향해 달려왔다. 아니, 번개를 피해 도망쳐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흑마법사?”
흑마법사였으니까.
여기저기 헤진 로브를 뒤집어쓴 그들이 필사적으로 달려왔다.
“아도니스가 이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로잡으라는 거겠지. 정보도 정보지만, 죽으면 더 곤란해지는 상황이니까.”
사람이 죽으면 해골로 변하는 건 물론, 해골로 변한 흑마법사 또한 해골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정보.
오토네가 신성력 포션과 함께 전해준 정보였다.
“저놈들을 살려둬야 한다니…….”
“지금은 참자. 죽여봤자 우리 쪽 손해야. 그리고 사는 쪽이 더 지옥일걸?”
이곳에는 카론과 시궁쥐가 있으니까.
전투가 마무리되는 대로 그들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으으! 됐어. 키엘, 내가 가도 되지?”
아스테온이 몸을 일으켰다.
기분 나쁜 생각을 떨치기 위함도 있지만, 전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풀이는 하지 마라. 네 주먹에 맞으면 최소 사망이니까.”
“나도 갈래!”
아스티온의 뒤를 에드윈이 쫄래쫄래 따라갔다.
다른 조에서도 한두 명이 나와 흑마법사에게로 향했다.
조별로 움직일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 안 돼! 기사님들! 저희를 붙잡으시면 안 됩니다!”
“기사가 흑마법사를 잡지, 그럼 놓아주리?”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모두 죽을 겁니다!”
“요즘 흑마법사들은 협박도 참 이상하게 하네. 입 닥치고 있어. 그러다 한 대 맞는다.”
“안 돼! 이곳을 벗어나야…… 우웁!!”
“응? 뭐야. 이거 왜 이래.”
구속용 아티팩트를 사용하려던 아스테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마법사가 풀썩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쓰러진 게 하나가 아니라는 거다.
다섯 명이 다 함께 쓰러졌다.
“독…… 인가?”
“그럴 리가. 스스로 독약을 깨물 놈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저주? 아니면 맹세의 페널티인가?”
모두가 의아해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투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이 튕겨 나갔다.
비교적 거리가 있던 토벌대의 몸조차 일순 젖혀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피어오른 먼지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신체 일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토벌대가 뛰쳐나갔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흑마법사…… 흑마법사가 폭발했어! 갑자기 쓰러지더니 폭발했다고!”
“젠장! 사람을 폭발시키다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자폭인가, 아니면 자폭 당한 것인가.
여러 의문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흑마법사에게 향한 건 일곱 명이었다.
그리고 일곱 명 모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인원을 나눠 응급조치에 들어간다! 포션 있는 대로 다 때려 부어!”
“아스테온…… 이 바보 같은 자식! 죽으면 가만 안 둘 거다!”
아스테온은 누가 봐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키엘은 주저하지 않고 성수를 꺼냈다. 한 명당 하나만 지급된 성수.
‘운이 좋다’면 잘린 팔다리도 붙일 수 있다는 성수다.
성수를 열린 배 속에 때려 부으며 주변에 있는 누구 것인지도 모를 살점을 얼기설기 올리던 중, 린드버그가 달려왔다.
“다른 쪽은 어때?”
“……에드윈과 펠프스가 죽었어. 나머지는 아스테온 못지않은 중상이고.”
“……!!”
키엘이 놀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상황을 파악했다.
일곱 명의 전력 이탈. 치명적인 피해다.
다섯이라는 부상자도 문제였다. 부상자를 전장 밖으로 빼내는 데에도 인력이 필요하니까.
‘시궁쥐의 도움을 받아 부상자들을 옮겨야 하나? 하지만 안전하게 칼로스 밖으로 이송할 수 있나? 시궁쥐가 해골 기사를 이길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키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곳은 평범한 전장이 아니다.
죽음을 관장하고 영혼을 지휘하는.
볼칸이란 X새끼가 있는 곳이지.
키엘의 눈에 에드윈과 펠프스의 시체를 수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바보들! 당장 거기서 물러나!”
“어?”
사아아-.
그 순간이었다. 에드윈의 떨어진 팔과 다리.
그곳에 붙어 있던 살점과 근육이 녹더니 순식간에 뼈만 남았다.
몸통과 머리도 순식간에 부패했다. 그리고…….
화륵-!
두개골에서 검보라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촤악!
“큭!”
에드윈의 팔을 들고 있던 기사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턱을 베였다. 마나를 두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따다다다닥-!
뼈만 남은 팔과 다리가 검보라빛 안광을 불태우는 해골에 붙었다.
뚜둑-.
이윽고 두 다리로 일어서는 데 성공한 놈이 활을 짚고 섰다.
에드윈.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활이었다.
“에, 에드윈이…….”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토벌대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다들 정신 차려라! 저건 적이다! 이제 우리의 동료가 아니란 말이다!”
키엘이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싸우려 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아군을 죽이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키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검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손으로는 다가오는 에드윈의 해골은커녕 일반 해골들도 쓰러뜨리지 못한다.
‘정신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해왔는데……!’
끼리릭-.
해골로 변한 에드윈이 활시위를 당겼다.
콰르릉-!
그 순간이었다. 에드윈의 위로 한줄기 벼락이 내리쳤다.
그리고…….
콰지직!
에드윈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이내 가루로 변하며 흩날렸다.
완전한 영면에 든 거다.
에드윈이,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가.
드디어 친구가 됐다며 웃던 그가 말이다.
“……고맙다, 아도니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키엘 또한 푹 고개를 숙였다.
3초쯤 지났을까. 무언가 떠오른 키엘이 머리를 번개처럼 치켜올렸다.
“잠깐,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한 명 더 있잖아!”
모두의 시선이 펠프스의 시신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참을 경계해도 그의 몸은 해골로 변하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전장에 있는 다른 해골들은 여전히 제 몸을 붙이기 위해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사의 수가 줄긴 했지만,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어째서 펠프스를 부활시키지 않았지?’
아도니스가 생각에 잠겼다.
펠프스는 강한 기사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그를 부활시켰어야 맞다.
하지만 부활하긴커녕 해골로 변하지조차 않는다니.
‘해골 병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건가?’
어떤 조건일까. 가장 눈에 띄는 조건은 역시…….
“키엘, 에드윈의 경지가 어떻게 되지?”
“예? 예…… 6성 기사입니다만…….”
“펠프스는 7성 기사인가?”
“그, 그렇습니다.”
6성 기사는 해골로, 7성 기사는 해골로 변하지 않는다라.
이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뭐? 죽음을 관장하고 영혼을 지휘해?
“6성 기사까지만이라는 문구는 뺐구나. 이 고얀 놈…….”
아도니스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군단장에 필적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니.
그가 키엘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때였다. 시궁쥐 한 마리가 급하게 달려왔다.
“카론 님과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뭐라?”
조금 전 있던 흑마법사의 폭발. 거기에 휘말린 게 분명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아도니스 님을 따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아도니스가 생각에 잠겼다.
카론이 쉽게 당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전장에서 ‘절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카론을 구하러 갈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적은 본대의 병력이 더 줄은 상태다.
그런데 생사가 불분명한 카론을 찾는데 인원을 분배할 수는 없다.
때문에 아도니스는 카론을 생각에서 지웠다.
‘서로 가진 패 대부분을 소모했다. 슬슬 싸움을 끝낼 때야.’
싸움을 끝내는 것. 그게 모두의 생존 가능성을 올릴 수 있다.
최우선 순위는 두말할 것 없이 크롤리의 부활을 막는 것.
콰과과과강! 투쾅!
엘레스터의 활약으로 왕궁은 뼈대만 남은 상태다.
곧 군단장을 보호하고 있는 마법진을 없앨 수 있을 거고, 볼칸의 최후의 발악 또한 시작될 터.
‘그 발악을 분쇄하지 못한다면…… 군단장이 부활, 우리의 패배가 되겠지.’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아도니스가 가야 할 곳은 명백했다.
로한 왕국의 왕궁. 저곳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토벌대가 문제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전력.
자신이 빠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고민이 길어지려던 순간, 키엘이 입을 열었다.
“가십시오.”
“……너희들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럴 거다. 아니, 확실하다.
서른 명의 인원에서 사샤 조와 오토네 조가 이탈한 걸로도 모자라 두 명은 사망, 다섯은 중상을 입기까지.
본대라고 부르기에도 초라한 병력이었다.
하지만.
“군단장이 부활한다면 제 가족이, 우리 가족이, 누군가의 가족이 죽게 되겠죠.”
“…….”
“가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키엘의 결의는 단단했다. 그 뒤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아도니스가 땅을 박찼다.
왕궁을 향해 일직선으로 향하는 번개.
그 뒤를 바라보던 키엘이 검을 들며 소리쳤다.
“이놈들아! 싸울 시간이다! 설마 저기 누워 있는 놈들보다 못 싸우지는 않겠지!”
오오오오오-!!
길었던 싸움의 종지부를 지을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