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4)
제204화
204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11)
“음?”
해골 기사의 머리를 발로 짓이기던 루시아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 다수의 폭발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엘레스터가 마법을 난사하며 엄청난 폭음을 일으켰지만, 루시아는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8성 기사.
그런 루시아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루시아! 이쪽에 집중해라!”
“충분히 집중하고 있거든요? 할 일이 없으니 잠깐 다른 곳의 전황을 살핀 것뿐이라고요.”
콰드득-.
루시아가 목을 잃은 해골 기사의 몸통을 짓밟았다.
해골 기사 십수 마리가 부활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4~5성 수준.
루시아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다른 곳이 다 이겨도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그러니 한눈팔 시간에 노력하거라.”
엘레스터가 소매를 들어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런 그를 보며 루시아가 생각에 잠겼다.
‘냉정을 잃으셨어.’
루시아가 봤을 때 엘레스터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5군단장 크롤리의 해골을 보자마자 시작된 마법 폭격.
엘레스터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저 해골이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무차별적인 마법 폭격을 퍼부었다.
‘왕궁과 함께 마법진을 무너뜨리는 게 작전이라지만…….’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엘레스터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훨씬 좋은 방법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기는커녕, 마법을 난사하기 바쁜 꼴이라니.
‘생각’이라는 걸 망각한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크롤리로 인한 PTSD가 재발한 것이려니 하고 이해하려 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곧 왕궁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저놈의 부활도 머지않았어.’
마법진 안에 누워 있는 크롤리의 해골.
어느 순간 피어난 역오망성 문양이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이를 악물고 집중하는 걸로 보아 크롤리의 부활이 머지않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조금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히는.
‘크롤리가 부활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해.’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을 미리 정해둔다면, 평소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행동할 수 있다.
긴급 상황에 입 아프게 떠드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크롤리가 부활한 이후 작전을 짜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러니, 미리 작전을 짜둬야 해.’
하지만 현재 엘레스터는 군단장의 부활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루시아는 이 점을 지적할 필요를 느꼈다.
엘레스터를 포함한 제국의 인재들을 이런 곳에서 잃을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너무 흥분하신 거 아니에요? 좀 침착하시라고요.”
“……난 더없이 침착하다. 조금 흥분했을 뿐이지.”
“조금이든, 너무든. 대마법사가 흥분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
엘레스터가 혀를 찼다. 루시아가 상황 파악을 전혀 못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다음 마법을 캐스팅하며 입을 열었다.
“루시아, 저 괴물의 권능이 뭔지 알고 있느냐?”
“저주와 독, 질병의 권능을 다루는 놈이었다고 역사책에 나와 있죠.”
“그래, 아주 잘 알고 있구나. 그럼 이제는 내가 이러는 이유도 알 수 있겠지.”
“정도가 심하잖아요, 정도가.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그렇지. 그렇게 마법을 써대다간 제풀에 나자빠질걸요?”
루시아의 말대로였다. 현재 엘레스터의 마나는 20%도 채 남지 않았다.
쉬지도 않고 마법을 써댄 탓에 현기증이 치민 지 오래고, 군단장의 부활을 막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볼칸이 다음 수를 준비했다면…… 막을 힘이 없다.’
그러함에도 엘레스터가 모든 힘을 쏟아붓는 이유.
5군단장 크롤리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놈의 손짓 한 번, 호흡 한 번에 모두가 녹아내렸다. 사람들이 물처럼 녹아내렸단 말이다!”
그때 크롤리를 상대했던 영웅들은 온몸으로 저주를 받아 내며 싸웠다.
팔을 잃으면 다리로, 다리를 잃으면 몸으로, 몸을 잃으면 입으로 크롤리를 물어뜯었다.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녹아내리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맞서 싸웠다.
엘레스터는 그들의 활약을, 죽어가는 모습을, 끝내 맞이한 죽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크롤리가 부활했을 때 그때와 같은 힘을 갖고 있다면 모두가 죽을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 대륙 전체가 녹아내리게 되겠지.”
“…….”
“그러니 난 충분히 이성적이다. 이제 이유를 알겠으면 조용히 있거라. 평소에는 네 투정을 받아줬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엘레스터의 엄포.
평소의 루시아였다면 얌전히 그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엘레스터가 그녀의 스승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엘레스터 님의 말은 옳았지.’
쌓은 지식의 차이도 있었지만, 루시아는 다소 허당스러운 면모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루시아는 입을 열기로 했다.
이십 년의 세월. 그동안 자신의 말이 옳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지금만큼은 자신 쪽이 옳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좋아요, 그럼 질문. 만약 크롤리가 부활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온 힘을 다해 막아야지.”
“봐요. 이성적이지 않잖아요. 군단장을 스승님 혼자서 어떻게 막죠? 솔직히 10초…… 아니, 5초도 못 버티실 것 같은데.”
“…….”
엘레스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루시아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크롤리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가정.
크롤리의 해골을 본 직후, 가장 먼저 머리에서 없애버린 가정.
5군단장, 크롤리의 부활.
그 상황을 가정하자, 멈춰있던 엘레스터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크롤리가 부활한다면 맞서 싸우는 건 최악의 수다.’
이 정도 병력으로 군단장을 상대하라는 건 자살하라는 말과도 같았으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결국 엘레스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했던 모양이구나.”
“그걸 이제 깨달으셨다는 게 놀랍지만…… 봐 드릴게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뭐, 드디어 1승을 챙기기도 했고.”
“그래, 네 첫 승리로구나. 이십 년 동안 1승이라니. 전적이 앞서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게다.”
“최근 전적이 가장 중요한 지표라는 건 아시죠?”
499승 1패보다.
1승 499패가 우월하다는 루시아의 주장.
“……전적의 의미가 없어지는 해괴망측한 주장이구나.”
“그런가요? 논리적인 거 아닌가?”
“지금 당장 그 찬란한 1승을 패배로 바꿔 줄 수 있지만, 특별히 봐주도록 하마.”
크롤리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에 ‘캐논 버스터’를 날린 엘레스터가 껄껄 웃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뭐냐? 크롤리가 부활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도망쳐야죠.”
“뭐라?”
“도망가야죠. 여기서 뭐 하러 싸워요? 우리만 개죽음당할 텐데.”
“……진심이냐?”
“이곳에서 지켜야 할 건 우리와 함께 온 사람들뿐이잖아요? 이깟 황폐해진 땅과 궁전. 녹이든 찜쪄먹든 알 게 뭐예요.”
그렇다. 여기엔 지킬 게 없었다.
황제도, 가족도, 제국민도, 심지어는 동물조차 한 마리 없는 땅 아닌가.
지키지 못하는 건 단 한 가지.
‘명예’뿐이다.
‘제국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자가 퇴각을 당당히 주장하다니……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할지…….’
엘레스터가 생각에 잠겼다.
퇴각하는 것. 확실히 최고의 수다.
부활한 크롤리는 어떡하냐고?
부대를 물린 뒤 주변국에 지원을 요청하면 된다.
맹약에 따라 인간 연합군을 결성한다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도 분담할 수 있게 될 테지.’
제국도 피해를 보긴 하겠지만, 상당히 적을 것이다.
크롤리의 존재를 확인, 인간 연합군 결성, 병력을 보내고, 목적지에 당도하기까지.
대륙이 멸망할 수도 있으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최소 2주의 시간이 소요될 터.
그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건.
‘이 땅의 주변에 있는 주변국들이 해야 할 일이지.’
주변국들의 힘이 알아서 깎이는데, 제국이 싫어할 리가 없다.
피해 정도에 따라 병력을 주둔시켜, 제국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뭐, 루시아가 여기까지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나저러나 루시아의 말이 옳았다.
“좋다, 퇴각에 어울려 주마.”
“드디어 현명한 스승님으로 돌아오셨네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크롤리가 부활에 성공했을 때라는 거,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일단 계획대로 가자고요. 지루했던 마법전도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엘레스터가 왕궁을 무너뜨리는 데 오래 걸린 이유.
과거 황금의 왕국이라 불리던 로한 왕국의 건축 기술력이 좋기도 했지만, 흑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펼치며 발악한 탓이 더 컸다.
크롤리와 함께 있는 여섯 명의 흑마법사. 최소 6서클 이상의 고위 흑마법사들이었다.
하지만 엘레스터는 그들을 상대하는 건 물론, 마법진을 받치고 있는 건물을 부수기까지 했다.
혼자서 여섯을 압도한 거다.
결국 흑마법사들은 마법진을 방패로 크롤리의 부활에 매진, 그 끝을 앞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엘레스터가 마구잡이로 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건물의 구조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마법진을 받치고 있는 바닥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중이었다.
‘조금 있으면 그 작업이 끝난다.’
작업이 끝난 이후 큰 마법 하나 정도면 마법진과 함께 크롤리의 뼈를 산산조각 낼 수 있을 터.
엘레스터가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하던 때였다.
파지직-!
하늘에서 아도니스가 뚝 떨어져 내렸다.
“오, 할배! 오랜만이야. 살아 있었네?”
“그래, 루시아. 나도 반갑구나. 상황은 어떻지?”
“보이는 대로지 뭐. 곧 결판이 날 것 같아. 그쪽 상황은 어떤데?”
“좋지 않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다수 생겼다.”
“그래? 역시 쉽지 않네.”
아도니스가 있었던 곳에는 유모와 실비아 또한 있었던 곳.
하지만 루시아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누구보다 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볼칸, 그놈은 어딨지?”
“뭐야, 거기 있던 거 아니었어? 여긴 없었는데?”
아도니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수십 개의 전장을 돌아다닌 아도니스는 알 수 있었다.
‘군단장도 문제지만…… 볼칸 그놈도 놓쳐서는 안 되겠군.’
바닥이 없는 체력, 무한한 부활, 시체를 폭발시키고 죽은 사람을 해골로 부활시켜 아군과 싸우게 만들기까지.
언데드의 무서움을 똑똑이 깨달은 아도니스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는 6성 기사까지만 해골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지만…….’
만약, 성장한다면? 그 이상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규모가 큰, 수만 명이 부딪치는 전쟁터에서 저 능력을 사용한다면?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반드시 죽여야겠군.’
지금도 해골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옥도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볼칸의 목을 잘라야 했다.
“참, 저놈이 부활하면 퇴각할 거다. 알고 있어.”
크롤리가 부활하면 퇴각할 거라는 루시아의 말.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아도니스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천둥벌거숭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성장했구나.”
“할배는 작아졌네. 이제 싸우면 내가 이길지도 모르겠는걸?”
루시아가 아도니스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렸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기대하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헤헹~ 난 방금 스승님도 이긴 몸이거든? 할배라고 못 이길 거 같아?”
“그런 것치고는 멀쩡해 보인다만.”
“정신으로 이긴 거니까 당연하지!”
아도니스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믿을 수 없는 말이라고.
“그래서, 할배는 뭐 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건물 부수는 건 할배도 힘들잖아.”
“상황을 확인하러 온 것도 있지만…… 볼칸을 잡으러 왔다. 그놈을 잡아야 이 싸움이 끝날 테니 말이다. 군단장의 부활도 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뭐, 그렇긴 하지. 어디 숨어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군단장의 부활이 머지않은 상태다. 숨어있던 놈도 기어 나올 수밖에 없는 순간이지.”
“흐응~ 확실히 그렇네.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니까. 그럼 이미 여기 있을 수도 있겠네.”
아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이면 어딘가에 숨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군단장을 부활시키는 것. 그게 바로 볼칸의 목적이었으니까.
“우선 새로 확보한 정보를 알려주마. 부활 가능한 건 6성 기사까지다. 7성 기사부터는 불가능해 보이더군.”
“잠깐, 그럼 저 해골바가지도 못 일어나는 거 아니야? 쟤 군단장이잖아.”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저 볼칸이라는 놈이 그걸 모를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저런 노력을 기울였다는 건…….”
“방법이 있긴 하다는 건가? 진짜 골치 아픈 능력이네.”
루시아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같았다.
싸워 이기는 것.
“부상자가 많다. 속전속결로 끝내도록 하자.”
“안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 아무튼, 신나게 뛰어보라고. 나도 시간 나는 대로 찾아볼 테니까.”
“기대하마.”
콰르릉-!
아도니스가 발을 뗌과 동시에, 전장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