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5)
제205화
205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12)
드득- 드드득-.
뚜두둑-.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꿀꺽-.
키엘을 포함한 토벌대의 일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오는 해골들.
검보라빛 안광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침을 삼키는 빈도가 잦아졌다.
공포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데드. 죽지 않는 존재들. 죽일 수 없는 자들.
한 번의 전투를 치르자마자 그들의 무서움을 깨달은 토벌대였다.
“키엘.”
“린드버그, 부상자들은 어떻게 됐지?”
“최대한 안 보이는 곳에 옮겨뒀어.”
“현재 우리 숫자는 어떻게 되지?”
“……너도 눈이 있으면 알 거 아니야? 이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걸.”
린드버그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그제야 키엘은 다시금 현실을 자각했다.
‘열셋인가…….’
그렇다. 눈에 보이는 인원이 토벌대의 전부이자, 전력이었다.
그것도 루시드 가의 유모를 포함한 숫자였기에 망정이지, 그녀가 없었다면 고작 열둘에 불과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아도니스도 없다.’
콰르릉-!
등지고 있는 왕궁에서 천둥과 번개가 쉴 새 없이 내리쳤다.
아도니스가 활약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이 전장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겠지?’
아도니스의 압도적인 무위(武威).
그가 있다면 눈앞의 해골들은 굴러다니는 해골바가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도니스를 붙잡았어야 했던 걸까?
그랬다면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할 병력을 빼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키엘이 고개를 흔들며 애써 그 생각을 떨쳐냈다.
그건 승리를 위한 길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길에 불과하지.
‘애초부터 이 토벌전에서 창으로 활약했어야 하는 아이다. 우리를 보호하려는 방패로 써서는 안 돼.’
키엘이 생각을 정리했을 때였다. 머뭇거리던 린드버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부상자와 함께 퇴각인가?”
“아니, 물러날 수는 없다. 이곳을 사수해야 한다.”
“이유는?”
“아도니스 님이 저 안으로 들어간 게 3분 전이다. 저 해골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하는 분이 아직도 싸우신다?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거다.”
비단 아도니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곳에는 엘레스터와 루시아도 함께 있는 상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괴물이라 불리는 그들이 손쉽게 승기를 못 잡을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저들이 손가락만 휘둘러도 이 해골들은 박살 나겠지만…….’
그것도 체력과 마나를 소모하는 일.
계속해서 부활하는 해골들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사수해야 한다. 단 한 마리도 저곳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것. 그게 우리의…… 마지막 임무가 될 거다.”
“……그래, 이해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전하지.”
린드버그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키엘이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세게 쳤다.
‘마지막 임무’라니. 불길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린드버그는 명석한 편이니 그 말은 빼고 전하겠지만.
‘린드버그에게 불안의 싹을 심다니…… 멍청한 놈!’
키엘이 머리를 감싼 채 자학하고 있을 때였다.
콰르릉-!
왕궁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왕궁이 많이 무너지긴 했지만, 완전히 시야가 확보된 건 아니었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그쪽을 살폈지만, 보이는 건 황금빛 번개와 마법뿐이었다.
‘루시아 님은 괜찮으신 건가?’
이번 전장에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루시아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했던 키엘이다.
순간, 문득 떠올려 버리고 말았다.
루시아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 준 친구, 에드윈의 모습을.
언제나 경쾌했던 에드윈. 그의 미소를 떠올릴 때였다.
에드윈이 해골로 변하더니, 자신에게 활시위를 겨눴다.
키엘이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젠장!’
키엘이 다시금 머리를 때리려던 때였다.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키엘, 괜찮니?”
“실비아 님…….”
루시아의 친구, 실비아였다.
“자학하지 말렴. 저 아이들이 저렇게 된 건 네 탓이 아니니까.”
“더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생각했었다면…….”
와락-.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등에서는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전장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촉과 냄새.
키엘은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실비아가 자신을 꽉 끌어안은 채 등을 다독이고 있다는걸.
희미하게 확보되는 시야에서 키엘은 보게 되었다.
실비아의 검집에 묶여 있는 리본을.
‘검은 리본…….’
키엘은 저 리본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쯤 터진 도론 왕국과의 전쟁.
거기에서 죽은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상징으로 쓰이던 물건이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는, 그런 의미를 가진 리본.
키엘은 그제야 상기할 수 있었다.
실비아는 전쟁 영웅 중 한 명이고.
자신보다 더 많은 친구와 동료를 잃었던 사람이라는 걸.
‘그런 사람을 비웃다니…… 키엘,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사과해야 한다.
그들의 죽음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쟁의 아픔을 극복해 내지 못한 실비아를 이해하지 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사과해야 했다.
“실비아 님, 실은…….”
“괜찮단다. 다 이해하니까.”
“예?”
“사람들이 전쟁의 아픔을 잊는다는 건 좋은 일이란다. 그만큼 행복한 일이 가득하다는 뜻이거든.”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건 다른 기억을 덧씌우는 것이다.
행복한 기억을 덧씌우는 거다. 슬픔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을.
“추모는 일 년에 한 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 사과할 필요 없단다. 아파하는 건……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니까.”
“…….”
“그러니 자학하지 말렴. 그들도 네가 아프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키엘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실비아가 해주는 말은 그녀의 경험담이라는 걸.
전투로 인해 찢어진 소매. 그 틈으로 얼핏 보이는 손목 가득한 흉터.
키엘이 실비아의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안정을 되찾은 키엘이 실비아의 품에서 벗어났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래. 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잘해 보자. 이번 싸움에도 끝이 다가오는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실비아의 뒷모습을 보며 키엘이 생각에 잠겼다.
‘유부녀의 포용력이라…….’
곧바로 아스테온이 떠올랐다.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누워 있을 아스테온.
그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곳을 사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반드시 살아남아서.
실비아 님이 꽉 끌어안아 주셨다고 자랑하고 말 거다.
“그러니 어서 일어나란 말이다, 이 바보 자식…….”
아스테온의 상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해골들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은 인원이 고작 열셋에 불과했기에 한 명당 맡아야 하는 구역도 굉장히 넓은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는…….
다그닥- 다그닥-.
회복을 완료한 해골 기사들이었다.
신성력 포션을 사용해 우선적으로 제거하긴 했지만, 그래도 스무 마리 정도가 남았다.
‘아스테온이 드러누웠으니, 돌진을 막을 방도가 없다. 진형 붕괴는 시간 문제야.’
기마병의 전술에 대한 기억도 갖고 있는 것일까?
스무 마리의 해골 기사가 일렬로 도열했다.
‘돌진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저걸 막으라고 말한다면, 가서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누군가에게 명령한다면, 기꺼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전가하기는 싫었다.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악문 키엘이 종아리에 마나를 싣던 때였다.
“후후, 이거 어쩔 수 없군요. 제가 가는 수밖에요. 쯧쯧, 다들 이리 몸이 허약해서야…….”
이상하기 짝이 없는 말투.
이내 키엘은 보게 되었다. 자신의 앞에 선 채, 이리저리 몸을 푸는 유모의 모습을.
“제 자리를 부탁드립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시겠죠?”
“……예?”
투쾅!
키엘이 채 반문하기도 전, 유모가 땅을 박찼다.
유모는 순식간에 해골 기사의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흐아아아아아아!!”
끝머리에 있던 해골 기사를 등으로 밀쳤다.
마나가 가득 담긴 강력한 일격.
일렬로 도열해 있던 해골 기사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쿵!!
유모가 발을 크게 굴렀다.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반대쪽 해골 기사에 도달한 상태였다.
놀랍게도, 스무 마리의 해골 기사의 머리가 모조리 박살 나 있었다.
키엘을 포함한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루시드 가의 유모는 다 괴물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현재 유모의 경지는 7성 극 후반. 깨달음을 얻지 못해 7성에 머무르는 상태였다.
토벌대는 이제 막 7성에 도달한 이들이 대다수.
그러니 그들이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일부러 화려하게 처리한 거긴 하지만.’
토벌대에게 ‘희망’을 심어 사기를 올려 줘야 했으니 말이다.
유모가 왕궁을 힐끗 바라봤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루시아가 있는 곳이다.
‘……악마 소환 같은 계획은 없어 보이는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군단장의 시체는 있어도 악마는 없다.
루시드 가(家)가 걸린 악마의 저주.
조건에 부합할 경우, 루시아는 죽음에 이르고 말 거다.
8성 기사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정말 화 나는 일이지.’
하지만 유모를 분노하게 만든 건 다른 이유가 더 컸다.
그건 바로 다름 아닌…….
‘파티장을 온종일 쏘다녀도 바쁜 이 시점에 흑마법사와 쌈박질이나 하게 만들다니!’
몇 년 만에 다이어트를 성공한 루시아다.
제로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파티장을 쏘다니다 보면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바쁘게 파티장을 물색하던 와중, 떨어진 흑마법사 토벌령!
유모를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가씨의 결혼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파! 괴! 한! 다!
유모가 전장을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해골들이 뼛조각이 되다 못해 가루가 되어 하늘에 흩날렸다.
“……음?”
은신처에서 전장을 살피던 볼칸은 생각했다.
저곳으로는.
절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 * *
콰르릉-!
왕궁 이곳저곳을 뒤지던 아도니스가 잠시 멈춰 섰다.
크롤리의 기운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마기가 점점 짙어지는군.’
크롤리를 감싸고 있는 마법진.
성검을 사용한다면 부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껴야 한다. 그건 이쪽이 가진 최고의 패니까.’
자신조차 짧은 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는 성검이다.
무엇보다 성검으로 저 마법진을 부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엘레스터를 믿어야겠군.’
콰르릉-!
반대편으로 이동하던 아도니스의 눈에 무언가가 잡혔다.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
마법을 쓰려는 듯, 엘레스터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볼칸……!’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처음 보았던 볼칸과 똑같은 체구의 소유자였다.
‘마나도 느껴진다. 흑마법사의 마나야.’
아도니스가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못 본 척한 거다.
대략 300m의 거리.
하지만 뇌제(雷帝)라 불리던 아도니스에게 이 정도의 거리는.
멀다고 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콰릉-!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볼칸의 앞에 도달한 아도니스.
그가 곧장 창을 내질렀다.
카셀 가문류 다섯 번째 비기.
쌍창(雙槍) 나락(奈落).
아도니스의 창이 두 개로 갈라졌다.
하나인 창이 두 개로 느껴질 정도로 빠른 두 번의 찌르기.
그의 공격은 정확히 볼칸의 머리와 목으로 향했고, 완벽하게 적중했다.
콰드득-!
“……!?”
하지만 아도니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맛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살과 근육을 찢고 들어가는 파육음도 들리지 않았고, 인간이라면 흘려야 할 피도 흐르지 않았다.
그렇다. 이건 마치…….
‘해골을 찌른 것 같지 않은가?’
덜그럭-.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는 것처럼, 해골바가지가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흑마법사의 마나까지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하던 아도니스는 그럴싸한 추리를 해낼 수 있었다.
‘해골이라면 뭐든 조종할 수 있다는 건가.’
덜그럭- 덜그럭-.
여기저기서 해골이 벌떡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보이는 것만 수십여 구다. 그리고…….
콰드득-!
몇몇 해골에서 뼈로 된 창이 만들어지더니, 엘레스터를 향해 쏘아졌다.
칵! 카각!
루시아가 호위를 서고 있었기에 엘레스터에게 닿지는 못했다.
“…….”
아도니스가 하늘을 바라봤다.
안개가 상당히 걷힌 상태였다. 하늘에 떠 있는 마법진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리라.
파지직-!
하늘로 떠오른 아도니스가 전장을 내려다봤다.
새하얬다.
눈이 내렸냐고? 아니다. 이 세상에서 새하얀 건 눈뿐만이 아니니까.
“……최악의 전장이구나. 아니, 놈에게는 최고의 전장인가.”
아도니스는 볼 수 있었다.
수천, 수만을 넘어 수십만의 해골이 널브러져 있는 땅의 모습을.
그렇다. 새하얀 건 다름 아닌 해골이었다.
‘볼칸…… 이것도 네놈의 노림수였던 거냐?’
이곳은 볼칸이 선택한 전장.
죽음이 가득한 곳이자, 볼칸이 숙주로 삼을 수 있는 해골로 가득한 곳.
‘……체력전이 될지도 모르겠군.’
아도니스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싸움은.
저 땅에 있는 모든 해골을 박살 내야 끝날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