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08)
제208화
208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15)
칙- 치이익-!
크롤리의 손과 맞닿은 땅이 액체로 변했다.
강력한 산성을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한 거다.
“이럴 수가…….”
그 모습을 바라본 엘레스터가 탄식했다.
40년 전. 크롤리가 보여 주던 위용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걸을 때, 싸울 때, 심지어는 호흡을 내뱉을 때까지도.
쉬지 않고 독을 뿜어냈다.
그 힘이 여전하다는 걸 확인한 엘레스터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사, 살려……!
사람이 물처럼 녹아내렸다.
내로라하던 영웅들도 그걸 피할 수는 없었다.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스승님! 정신 차리세요!”
엘레스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루시아와 아도니스가 서 있었다.
엘레스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과거의 망령을 떨쳐내고, 현재로 돌아온 거다.
그 모습을 본 아도니스는 마음이 착잡할 뿐이었다.
“엘레스터, 미안하네. 내가 놈의 말에 사로잡히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아도니스가 고개를 떨구자, 루시아가 곧장 입을 열었다.
“일단 퇴각하자고요. 잘잘못은 나중에 따져도 늦지 않으니까. 저기 아저씨도 오고 있네.”
쿠웅!
어디선가 날아온 카론이 그들의 곁에 착지했다.
“으악! 이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루시아가 기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카론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칸은? 죽였나?”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우선 치료부터 하게. 그러다 죽겠어.”
카론이 성수와 포션을 대충 쏟아부었다. 상처를 하나하나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비겁한 놈…… 도망을 치다니.’
볼칸은 카론이 전진하고 있는 반대편 방향의 뼈를 망가뜨리고, 그 속에 숨은 상태였다.
심지어 카론이 오고 있는 방향에 새로운 뼈를 설치하기도 했다.
‘강도가 비교적 약한 데다가, 1m 정도만 더 전진하면 됐지만…….’
볼칸이 또 다른 방어법을 준비해 놓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크롤리가 부활한 이상, 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
자신이 1m를 전진하는 속도보다, 크롤리의 손이 닿는 게 훨씬 빨랐을 테니까.
‘시궁쥐들의 복수를 해줘야 하지만…….’
여기서 죽는다면 복수의 기회를 영영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카론은 빠르게 퇴각을 결정, 엘레스터와 아도니스, 루시아가 있는 곳에 도착한 상태였다.
“좋아, 그럼 물러나자고. 스승님은 내가 챙길게. 두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부탁해.”
네 사람이 땅을 박차며 왕궁을 떠났다.
사실 이제는 왕궁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지붕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뻥 뚫려 있었고, 기둥은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비어 있는 상태였다.
폐허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폐허에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크크큭! 3년!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었다!”
1초, 5분, 하루, 몇 달.
생전에 갖고 있던 힘에 비례해서 언데드화 하는 데 필요로 하는 시간이 달라진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시전자의 능력이다. 나는 권능을 하사받았으니 능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군단장의 힘은 규격 외의 힘.
그래서인지 볼칸이 지금까지 해왔던 언데드화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마석, 신비를 비롯한 각종 재료와 흑마법사들의 생명을 갈아 넣어서 단축시킨 기간이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마지막이 가까워진 이때, 제국 때문에 그간의 노고가 무위로 돌아갈 뻔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군단장의 언데드화 준비가 끝났다.
“일어나라! 나의 하수인으로 다시 일어서는 거다!”
크롤리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왕궁에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해골이, 볼칸의 명령에 따른 거다.
“하하하하하하!!”
볼칸이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던 때였다.
덜그럭-.
“음?”
무언가가 볼칸의 머리 위로 툭 떨어졌다.
그것을 집어 든 볼칸이 눈매를 좁혔다. 자신과 가장 친숙한 물건이었다.
‘뼈?’
크롤리의 몸에 불필요한 뼈가 붙어 있었던 걸까?
그런 걸지도 모른다. 뼈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곳이니까.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투둑- 투둑-.
“……?”
후두두둑- 투두두두둑!!
하늘을 바라본 볼칸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뼈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뼈는…….
‘크롤리가…… 부서지고 있잖아?’
멍하니 바라보던 중, 크롤리의 거대한 갈비뼈가 뚝 떨어져 내렸다.
볼칸은 즉시 본 아머를 시전해 몸을 보호했다.
쿠웅-! 쿠구구궁!
대지를 울리는 굉음이 울린 후.
본 아머 밖으로 빠져나온 볼칸을 마주해준 건 목을 매캐하게 만드는 먼지구름과.
5군단장 크롤리의 부서진 머리뼈였다.
“…….”
동시에 알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속삭였다.
‘하찮은 것’이라고.
네크로맨서의 권능을 하사받은 볼칸. 그는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자신에게 ‘하찮은 것’이라고 모욕을 준 상대는 다름 아닌.
“크롤리…… 네놈이 감히……!”
군단장 크롤리였다.
볼칸이 갖고 있는 네크로맨서의 권능은 달리 말하면 ‘영혼을 지배할 수 있는 힘’.
사기적인 힘이지만, 그래서인지 뒤따르는 조건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사망자의 뼈 중 최소 50% 이상을 갖고 있어야 언데드화가 가능했다.
100%에 가까울수록 생전의 힘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구조.
뼈를 모으는 것. 이게 언데드화를 진행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였다.
‘그다음은 영혼과의 대화 시간이 주어지지.’
상대방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주어진다.
볼칸의 병사로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안식을 이어갈 것인지.
영혼 대부분은 당연히 ‘영원한 안식’ 쪽을 택한다.
하지만 볼칸에게는 특권이 하나 있었다.
영혼의 선택을 무시하고, 강제로 병사로 부릴 수 있는 특권이.
‘나보다 힘이 약한 영혼들은 강제로 구속할 수 있지.’
현재 볼칸이 ‘강제’할 수 있는 건 6성 기사까지. 그 이상은 강제할 수 없었다.
참고로 과거 영웅이라 불리던 자들은 모두 병사가 되기를 거부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6성 기사까지만 강제로 영혼을 구속할 수 있는데, 왜 과거의 영웅들과 군단장의 부활을 시도했느냐고.
그들의 ‘선택’에 일말의 기대를 한 탓도 있었지만, ‘적합성’ 탓이 더 컸다.
적합성.
상대와 생각이나 그 속성이 비슷할 경우, 영혼을 구속하는 게 가능했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적합성이 좋다면, 강제로 영혼을 구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다.
‘크롤리 또한 그래서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건데…….’
거절당하고 말았다. ‘하찮은 것’이라는 모욕은 덤이었고.
‘3년을 날린 꼴이군.’
사실 볼칸이 가진 권능에는 큰 페널티가 하나 있었다.
‘선택’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거다.
권능을 발휘한 순간, 상대에게 존재하는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볼칸의 병사가 되거나, 성불하며 영혼까지 스러지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그렇다. 크롤리는 죽음을 택했고, 조금 전 크롤리의 영혼이 완전한 영면에 들었다.
앞으로 자신이 아무리 힘을 키워도, 크롤리를 병사로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뜻이다.
“한낱 인간 따위에게는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는 거냐……?”
볼칸이 이를 뿌득 갈았다.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크롤리의 영혼을 잃은 건, 자신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급했다.’
단시간에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나머지, 무리하고 말았다.
‘적합성’이라는 도박을 한 거다.
‘차라리 힘을 키우고, 먼 미래를 봤으면 좋았을 것을…….’
볼칸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역시, 힘이 전부다. 이러나저러나 힘을 키워야만 했다.
* * *
꽈르릉-!
왕궁에서 탈출한 아도니스가 가장 먼저 한 건, 전장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아도니스가 날뛰기 시작하자, 토벌대가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우…… 살았다.”
“끝난 건가? 힘든 싸움이었어.”
아도니스의 뒤를 따라 도착한 엘레스터와 카론, 루시아.
루시아가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유모! 실비아!”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을.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야.”
“유모 덕분이야. 신경 써줘서 고마워.”
“그랬구나. 유모도 정말 고생 많았어.”
“후후, 보상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제로 군과의 결혼. 그거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뭐라는 거야! 내가 걔랑 결혼을 왜 해!”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로라고? 너 사귀는 사람 있니?”
“그런 사이 아니야. 그리고 걔랑 사귀면 결혼 이전에 감옥부터 가야 할걸?”
“범죄자니? 취향이 독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뭐, 괜찮아. 나는 친구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여자니까.”
“그게 아니라…… 어려서 그래. 열다섯 살이라고.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열다섯?”
루시아의 말을 분석하느라 잠시 멍한 상태에 빠졌던 실비아.
그녀가 이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머! 루시아 너…… 생각보다 능력자였구나?”
“뭐가?”
“연하. 그것도 띠동갑보다 더한 연하라니……! 이게 능력자가 아니면 뭐겠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고! 난 전혀 관심 없어! 그런 놈 따위 하나도…….”
잠시 제로의 모습을 떠올리던 루시아.
이내 그와 있었던 갖가지 사건 사고(?)를 떠올렸고.
앞섬을 베인 사건과 아카데미 제복을 입었던 기억을 떠올리자, 볼을 살짝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어머머! 얘 봐? 생각만 해도 좋나 보다?”
“차, 창피해서 그런 거거든?”
“그게 그거지 뭐. 좀 말해 봐. 절친인 나한테까지 숨기기야? 나 삐진다?”
“아,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루시아가 반박하려던 때였다.
“퇴각이다! 부상자를 챙겨 당장 이곳을 떠난다!”
카론의 퇴각 명령.
잠잠해지던 전장에 다시금 폭풍이 휘몰아쳤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단 말이야?”
“게다가 퇴각이라니…… 그렇다면 설마…….”
쿵!!
순간, 왕궁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리더니,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섰다.
거대한 해골이었다. 모두가 그 정체를 단박에 꿰뚫어 봤다.
“크, 크롤리!?”
“살아났단 말인가!”
“부, 부상자 챙겨! 회복은 나중이다!”
순식간에 퇴각 준비가 끝났다.
토벌대가 전장을 이탈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투두둑-! 쿠구구궁-!
크롤리가 허물어졌다. 숨을 조여오던 짙은 마기도 온데간데없었다.
“뭐, 뭐야? 저거 왜 저래?”
“함정 아닐까?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함정인 게 분명해!”
파지직-!
아도니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위에서 왕궁의 상황을 확인한 그가 카론의 곁으로 향했다.
“마기는 물론, 역오망성까지 사라졌더군.”
“방해하는 데 성공한 걸까요?”
“잘 모르겠군. 엘레스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크롤리가 쓰러져서일까.
엘레스터의 이성(理性)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상태였다.
“그렇다기보다는…… 실패한 것 같군.”
“실패?”
“넘볼 수 없는 힘을 넘본 거겠지. 하긴, 군단장…… 그것도 인간을 미물 취급하던 놈이 인간의 명령에 따를 리 없지.”
엘레스터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을 개미 취급하며 짓밟던, 군단장 크롤리의 모습을.
“흐응~ 그랬던 건가. 그럼 이제 퇴각할 이유가 없어졌네?”
꽈르릉-!
아도니스가 곧장 왕궁을 향해 떠났다. 그 뒤를 엘레스터와 루시아가 따랐다.
“이곳에서 잠시 대기하도록. 해골이 일어나진 않고 있지만, 혹시 모른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카론의 말대로, 계속해서 일어서던 해골은 그 행동을 멈춘 상태였다.
아도니스의 공격 이후, 부활을 멈췄다.
토벌대 쪽에는 더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카론도 곧장 왕궁으로 떠났다. 그림자 속에 숨은 그는 볼 수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볼칸.
그는 현재 엘레스터, 아도니스, 루시아와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장난감 놀이는 이제 다 끝난 거야?”
“…….”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 우리가 이겼어.”
루시아의 승리 선언.
그 말에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일까. 볼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항복하는 게 어때? 그럼 목숨만은 살려줄게. 팔다리는 보장 못 하겠다. 어떤 아저씨가 화가 많이 났거든. 그래도 지금 항복하면 하나 정도는 남겨줄지도?”
“……루시아, 그쯤 하거라. 우리가 악당 같지 않느냐.”
“요즘 시대에 이 정도는 농담이거든요? 하여튼 누가 할배 아니랄까 봐.”
“농담으로 팔다리를 자르는 시대라니. 그런 시대는 이쪽에서 사양하도록 하마.”
루시아가 입을 삐죽 내밀었을 때였다.
그녀의 얼굴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에 노을이 졌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시작된 전투.
그 끝을 알리겠다는 듯,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불타는 노을이었다.
노을을 보던 볼칸은 문득 한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그녀를 잃었던 그 날의 기억을.
“……흥이 식었다.”
“그러시겠지.”
“착각하지 마라. 처음부터 내 모든 힘을 동원했다면 너희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니.”
“저거 봐봐. 악당 같은 대사를 잘만 내뱉잖아. 우리가 정의인 거 맞지?”
엘레스터와 볼칸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군. 내 사과하지. 과거에 큰 상처를 입은 탓이니 이해해 주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그리고 큰 상처를 받은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바로 네놈들이 좋아하는 제국 때문에 말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설사 그대의 말이 맞는다고 해도, 악마를 찬양하며 사람을 죽이고, 대륙에 혼란을 일으키는 건 용납할 수 없다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엘레스터, 그대가 전장에서 죽인 사람의 수와 내가 죽인 사람의 수. 누가 더 많을 것 같나?”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고 해서, 자신의 작은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그리고 속죄는 나름대로 하고 있는 몸이라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군. 그래, 이 세상의 법칙대로 하는 게 낫겠어.”
승자독식. 이기는 쪽이 정의.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자가.
올바른 자가 되는 세상!
쿠구구구구-!
볼칸의 마나가 유동 치기 시작하자마자, 아도니스가 창을 집어 던졌다.
터엉!
마나가 가득 깃든 창이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튕겨 나왔다.
모두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땅에서 튀어나온 뼈.
마기도 마기지만,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기형적인 구조는 뭐지? 마치 새의 날개 같은…….’
쩍- 쩌저적-!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 자리를 피함과 동시에 볼칸을 포위했다.
몇 초 되지 않아 땅이 완전히 갈라졌고, 무언가가 튀어나오며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왕궁을 모조리 부쉈다.
크롸롸롸롸-!!!
흙먼지가 피어올랐지만, 거대한 형체를 가릴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내, 모두가 그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드래곤…….”
특이한 점이라면, 뼈만 있는 드래곤이라는 거다.
살점과 비늘은 온데간데없었다.
“본 드래곤이다. 대전쟁 당시 죽은 드래곤을 소체로 만들었지.”
“흑룡 드라칸인가……!”
“잘 알고 있군. 그때 당시 싸웠으니 당연한가…….”
흑룡 드라칸.
40년 전, 크롤리가 강림했을 당시,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그들의 편에 섰던 드래곤이다.
9성 기사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적합성이 좋았기에 3개월 만에 병사로 만드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다른 소체들도 있지만…… 이미 안전한 곳으로 빼돌린 상태라서 말이야.”
“도망치려는 거냐! 이 세상의 법칙을 떠들 때는 언제고!”
“내 전장은 여기가 아니거든. 뭐, 너희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 볼칸의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전장은 사람이 많은 곳.
각 나라의 수도나 대도시, 전쟁터일수록 그 힘을 여실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볼칸은 영리한 사람이다.
엘레스터, 아도니스, 카론, 루시아.
모두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존재들. 그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전장도 크롤리가 없었다면, 진작에 정리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럼 다음 전장에서 보지.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휙-.
기둥 위에 있던 볼칸이 뛰어내리자, 어디선가 날아온 본 와이번이 그의 발밑에 자리했다.
그렇게 볼칸이 도망쳤다.
끔찍한 재앙 하나를 남겨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