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21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3)
로델린의 목검 끝에서 시작된 균열이 점차 무대 위로 번졌다.
로델린의 가문인 루시드가의 비기 중 하나인 [대지 뒤집기].
균열은 빠른 속도로 커졌고, 그 끝은 나를 향해 있었다.
‘젠장!’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좁은 무대였기에 옆이 바로 흙바닥이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대지 뒤집기]가 무서운 점은 지형을 파괴하며 전선을 바꾸기도 하지만, 주변에도 50%의 대미지를 주는 광역기라는 거다.그 이유를 지금 보니 알겠다.
투콰과과곽-!
“으악!”
“파, 판자가 튄다!”
무대가 부서지면서 나무 파편이 이리저리 튀기 시작했다.
연극을 보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로델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앗……! 악마여, 괜찮…… 아, 아니! 제로 군! 괜찮은가!”
주변을 더듬자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작은 돌멩이. 그것을 던져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렸다.
‘일단 연극은 끝내야 한다. 화가 난 광대가 스킬을 안 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광대가 게임 사상 처음으로 화를 낼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새로운 히든 피스를 발견했다고 좋아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광대가 주는 스킬은 고인물이라면 누구나 갖고 시작하는 거니까.
그러니 최선을 다해 연극을 끝마쳐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무대 아래에 엎어져 있는 나를 확인한 로델린이 동작을 멈췄다.
무대 주변에 먼지가 자욱한 상황.
재빨리 무대 위로 기어 올라가서 박살 난 무대 위에 드러누웠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고, 참혹한 무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중앙이 길게 갈라졌으며, 그 주변으로 나무판자가 좌우 구분 없이 이리 휘고 저리 휜 모습.
그리고 그 위에 누워 있는 사람…… 아니, 악마.
“크윽…… 내가 지다니…….”
힘겹게 들고 있던 머리를 떨군다.
그리고 혀를 옆으로 길게 뻗는다.
꽥.
악마가 죽었다.
영웅 로델린이 공주 루나를 가볍게 껴안는다.
그 위로 광대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그렇게 영웅과 공주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우와아아아!”
“이, 이런 연극은 처음이야!”
“무대를 부수는 연출이라니! 정말 대단해!”
아이들과 부모들의 환호성.
광대가 그들을 상대하는 사이, 로델린과 루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제로 군! 괜찮은가?”
“후후, 일단 살아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제 팔다리가 다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미, 미안하다. 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만…….”
로델린이 고개를 푹 떨궜다.
물론 연기에 몰입한 탓도 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내가 가문을 모욕했기 때문이겠지.’
천박한 검술이라는 말.
장난이었지만, 대가는 보이는 바와 같았다.
로델린에게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찰칵!
우리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광대였다. 그가 카메라를 든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히히!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치즈!”
찰칵!
이 게임은 중세시대 배경의 판타지지만, 카메라가 존재한다.
마나석으로 작동한다는 삼류 판타지 같은 설정.
참고로 모양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똑같이 생겼다.
그걸 모티브로 한 것일까. 사진 한 장이 ‘징~’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친구는 아닙니다. 선후배 사이죠.”
“키히히! 보기보다 훨씬 시크한 선배네. 그래도 친한 사이인 건 맞지? 치즈!”
찰칵!
광대가 또다시 셔터 버튼을 눌렀다.
세 장의 사진. 그것을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흥! 뭐야. 내 미모를 전혀 담지 못했잖아?”
하지만 말과 달리, 계속해서 사진을 바라보는 루나였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으음, 무대는 제 사비로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키히히! 됐어! 애들이 좋아했는걸.”
하긴, 무대를 박살 내는 연극은 처음이었을 테니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4D 영화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키히히! 밥 먹어야지? 잘 먹어야 쑥쑥 큰다구!”
“흠, 아이는 아니지만 옳은 말씀입니다. 감사히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 * *
와구와구!
루나와 로델린의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둘 다 참 사납게도 먹는다. 저러다 그릇까지 먹을 기세다.
“키히히! 넌 더 안 먹니?”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광대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상당히 놀랐지만, 겉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았다.
[정신 방어] 스킬의 힘이었다.“키히히! 재미없었니?”
“후후, 재밌었습니다. 아이들과 노는 것보단 못하지만요.”
“키키! 그렇긴 하지.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니까.”
루나와 로델린이 밥에 정신이 팔린 타이밍. 그때 내게 다가온 광대.
강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지금이 대화를 나눌 기회라고 누가 시킨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진행해 줘야지.’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후후, 자녀분이 몇 분이십니까? 애들을 좋아하니 상당히 대가족이실 것 같은데.”
“가족…….”
광대가 중얼거렸다. 웃음기가 싹 사라진 진지한 얼굴.
질문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앤우드 아카데미생이라고 했던가? 사실…… 내 아들도 자네들과 같았지.”
“후후, 그렇습니까? 선배님이겠군요.”
“……살아 있다면 말이지.”
광대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아아, 걱정 말게. 아마 살아 있을 거야. 똑똑한 놈이니까. 어디 가서 굶을 놈은 아니지.”
“그럼…… 실종인 겁니까?”
“그렇다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지. 아마…… 질린 걸 거야. 나한테 말이야.”
광대의 얼굴이 감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슬픔, 서글픔, 미약한 안도감. 그 모든 게 뒤섞인 얼굴이었다.
입꼬리에 새하얀 칠을 한, 항상 웃는 모습인 광대 분장.
그와 대조되는 감정인 탓일까. 그 감정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나와 인연을 끊고 싶었던 걸 거야. 나는 아이들만 좋아하는 철없는 어른이니까.”
“…….”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겠지. 차라리 잘됐지 뭔가. 내가 품기에는 너무 뛰어난 아이였으니까.”
광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그의 입이 열릴 때까지.
“그 외모로 살기에는 참 힘든 세상일 거야. 그렇지?”
“뭐, 그렇더군요.”
“그래도 버티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광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 나가려 하지도 않았다.
‘숨겨진 히든 피스가 다 진행됐다는 뜻이겠지.’
그럼 이제 예정대로 진행해 보자.
[흉내쟁이]를 얻기 위한 대화를.“후후, 아이들과 놀아 주는 게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힘들지. 아이들의 체력은 끝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계속 이 일을 하시는 겁니까?”
광대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무료로 나눠 줬다.
수입도 변변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광대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 질문에 대한 광대의 답변은 지극히 간단했다.
“아이들이 웃으니까.”
사실 알고 있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새로운 캐릭터를 플레이할 때마다 들었던.
매번 똑같은 대답이니까.
그러므로 이번에도 내가 들려줄 대답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군요. 제 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키키! 자네도 광대를 꿈꾸나? 그럼 내 밑에서 배우는 건 어때?”
아니요, 제 꿈은.
“영웅입니다.”
움찔.
몸을 살짝 떤 광대가 동작을 멈췄다.
그러더니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누군가와 나를 겹쳐 보고 있는 듯한 시선.
나는 그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영웅이라고?”
“후후, 그렇습니다. 영웅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웃게 하죠. 어린아이들이나 꿀 법한 꿈이죠? 어쩌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그렇지 않네.”
광대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키키! 힘내게! 이 광대가 응원해 줄 테니!”
“후후, 감사합니다.”
“힘들 때는 이 자세를 따라 해 보라고!”
광대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나도 그의 자세를 따라 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흉내쟁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흉내쟁이 : F]동작을 꽤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얻었다.
히든 피스로 향하는 선행 스킬이자.
[신의 모방]으로 진화하는 스킬을.* * *
2시간쯤 더 아이들과 놀아 줬을 때쯤, 광장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광대가 손짓하더니 우리를 불러 모았다.
“오늘 수고했어. 그만 가 봐도 돼! 키히히!”
“벌써요?”
“키히히! 너희들도 놀 시간은 있어야지. 어서 가 보라고! 재밌는 게 많으니까!”
그에게서 스킬을 얻은 이상, 더 볼일은 없었다.
광대와 인사를 나눈 후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였다.
로델린이 입을 열었다.
“흠, 미안하지만 나는 이만 가 봐야겠군. 업무가 있어서 말이야.”
“후후, 그럼 저도 쉬러…….”
“저희는 놀다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알겠네, 루나 양. 오늘 즐거웠다네. 제로 군도 다음에 보지.”
기숙사로 가서 쉬겠다는 내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루나가 내 목을 낚아챘기 때문이다.
“저기…… 루나 양?”
“야야, 웃어. 의심하잖아.”
“……하하하.”
삼류 양아치 같은 대사 쪽이 더 의심스럽거든?
하지만 로델린에게는 친구 사이의 장난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살짝 미소를 보인 그녀가 점차 멀어져 갔다.
그렇게 로델린이 떠났다.
“루나 양, 혹시 양아치로 꿈이 변하신 겁니까?”
“뭔 소리야? 우리끼리 청산할 게 있어서 그런 거거든?”
“청산이요?”
“질문 말이야. 네 부탁을 들어줬으니, 내 질문 하나 받아 줘야지.”
맞다. 깜빡하고 있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였던 ‘친구 만들기’.
하지만 루나는 상처가 많은 의심병 환자.
그런 그녀의 친구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루나의 의심을 풀기 위해 떠올린 게 바로 이 거래였지.’
루나는 내 부탁을 들어주고,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한다.
그때는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너무 큰 걸 내줬다.
‘만약 루나가 가문을 몰락시킨 범인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 루나에게 채워 둔 족쇄 중 상당수를 잃게 된다.
어쩌면 분노에 삼켜져 아카데미를 떠날지도 모를 일이고.
‘거짓말을 하면 되긴 하지만…….’
그건 최대한 피해야 한다.
나중에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그날로 루나는 내 곁을 떠날 테니까.
잘 키운 아이가 파티를 떠나는 것만큼 치명적인 건 없다.
그러니 곤란한 질문이 오면 잘 넘겨야 한다.
거짓말은 최대한 피하며, 두루뭉술한 대답도 하지 않는다.
루나 또한 얻어 가야 하는 게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다음에도 계속해서 내 부탁을 들어줄 테니까.
“후후, 뭐든 물어보시지요.”
내뱉은 말과 달리 잔뜩 긴장한 나였다.
루나가 그런 나를 향해 질문을 뱉었다.
“넌 내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