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10)
제210화
210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17)
엘레스터가 고민에 빠진 루시아를 바라봤다.
루시아가 전투와 퇴각. 두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이유.
군단장 크롤리와 달리, 본 드래곤은 반드시 저지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하긴 하다. 하지만 크롤리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
‘군단장은 인간 연합군이 모인다 해도 승패를 가늠할 수 없지만…… 드래곤 정도는 왕국 선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다소 피해는 입겠지만, 한 나라의 힘으로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닌 존재.
그게 드래곤의 위치였다.
조금 더 첨언하자면…….
‘우리가 굳이 그 피해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
부상자도 부상자지만, 기사들의 체력이 다했다.
현재 본 드래곤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도니스, 루시아, 카론, 그리고 엘레스터 자신뿐.
‘하지만 카론은 볼칸을 쫓아갔고, 나는 마나가 바닥난 상태이니…….’
실제로 싸울 수 있는 건 아도니스와 루시아. 둘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
‘퇴각한 후, 다른 나라에 본 드래곤을 맡긴다.’
맡긴다기보다는 떠맡긴다는 느낌에 더 가깝지만.
이게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 ‘본 드래곤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라는 통보는 하지 않을 거다.
사건이 끝난 뒤, 제국에 책임을 물으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적의 전력을 줄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군단장보다 끗발이 약할 뿐이지, 드래곤도 어디 가서 꿇리는 놈이 아니다.
적어도 왕국의 한두 개 사단 정도는 반파.
운이 좋으면 고위 기사들도 몇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본 드래곤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제국으로 오려면 적어도 두 나라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본 드래곤과 싸우지 않으려는 멍청한 나라는 없을 거다.
드래곤이 왕국의 중심부로 향할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내버려둔다?
그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으니까 말이다.
“루시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제 생각이 중요한가요? 아저씨가 없어진 지금, 차순위 지휘권자는 스승님이신데.”
“허허, 이 늙은이에게 무슨 힘이 있단 말이냐. 진작 은퇴를 선언하고 아카데미 골방에 박혀 있는 나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거라.”
슬쩍 고개를 돌린 루시아가 미간을 좁혔다.
엘레스터가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루시아다.
‘시험이라는 건가…… 고약한 성격은 여전하시네.’
더없이 인자해 보이는 노인, 엘레스터.
20여 년 전, 루시아가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보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인 모습이었다.
‘스태프로 학생들을 쥐어패고 다니셨지.’
그 움직임이 어찌나 신묘한지, 마나로 신체를 강화한 아이들도 그의 스태프를 피할 수는 없었다.
과거의 기억을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 루시아가 살짝 몸을 떨었다.
아무튼, ‘아카데미의 호랑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엄했던 엘레스터.
그는 종종 알쏭달쏭한 시험을 내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우리가 굳이 저놈과 싸울 이유는 없어.’
루시아도 잘 알고 있었다.
적의 전력을 줄일 수 있는,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싸우죠.”
“이유는?”
“볼칸에 대한 연구, 드래곤 뼈의 가치, 그리고…… 저희가 괜히 들쑤셔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만약 루시아를 비롯한 토벌대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크롤리를 부활시키는 데 실패한 볼칸은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자신에 대한 정보를 꼭꼭 숨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훨씬 유리했을 테니까 말이다.
“흠…… 하지만 우리도 좋은 일을 하자고 벌인 일 아니냐? 볼칸의 정체를 밝혀낸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할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이후의 일은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
엘레스터의 말대로다.
왕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볼칸이 군단장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군단장의 부활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큰일을 해낸 건 분명한 사실.
“저희가 벌인 일입니다. 그러니 저희 손으로 끝을 내는 게…….”
“우리는 이미 충분한 희생을 치렀다. 그런데도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단 말이냐? 다른 나라를 위해서?”
아니, 다른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다.
루시아가 지키고 싶었던 건 처음부터 다른 것이었다.
결국, 루시아는 본심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민간인들에게는 죄가 없으니까요.”
“뭐라?”
“저놈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건 민간인들일 겁니다. 왕국이 병력을 꾸려 보내기 전까지, 큰 피해를 당하겠지요.”
전쟁의 고통을,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잃었을 때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루시아다.
그 고통을 민간인들이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설사, 다른 나라의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엘레스터가 눈을 부릅떴다. 반대로 루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나라의 사람을 걱정하다니……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
포스 해머로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루시아가 엘레스터에게 혼날 준비를 하던 때였다.
“허허, 많이 컸구나.”
“예?”
“평생 천둥벌거숭이일 줄 알았더니…… 어느새 어른이 됐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지켜내는 것.
최대한 피해 없이 전쟁을 끝마치는 것.
그리고 이 조건은 승자와 패자. 둘이 함께 고민하고, 감내해야 한다.
사람이 없으면 결국 국력의 약화를 일으키고,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내가 예순이 넘어서야 깨달은 걸 벌써 깨닫다니…….’
그것도 허당의 대명사인 루시아 아닌가.
그런 루시아가 스스로 깨우쳤다니.
엘레스터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뭐, 국력이라는 큰 그림보다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작은 그림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 원래부터 어른이었는데요. 스승님을 만났을 때 이미 성인이었다고요.”
“그랬던가? 미안하구나. 이제부터는 어른으로 대해주도록 하마.”
“……진짜 어린애로 보고 계셨나 보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닌 실력에 비해, 정신적 성장이 더뎠던 루시아니까.
투덜투덜.
루시아의 투덜거리는 모습. 20여 년 전,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보이던 모습과 똑같다.
그런 루시아의 모습이 점차 커지더니, 잘 자란 성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눈 돌리는 사이에 어찌 이리 쑥쑥 크는 건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엘레스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아가 ‘영웅’이 될 준비를 끝마쳤다는 걸.
“허허, 어쩔 수 없구나. 힘이 없는 이 노인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카론 아저씨도 그렇지만 저~기 번쩍이는 할배도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 않으냐. 긴급 상황 시 규칙이 그러하니, 지금 이곳의 지휘관은 네가 맞다.”
“스승님…….”
앞서 말했지만, 루시아는 알고 있었다.
엘레스터라면 퇴각을 선택했을 거라는 걸.
제국의 미래라 불리는 아이들을 살림과 동시에,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런데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시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뭐 하는가 지휘관. 어서 명령을 내리지 않고.”
“……알겠다고요.”
숨을 잔뜩 들이마신 루시아.
이내 입이 열리며, 루시아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저 뼈만 남은 도마뱀을 잡는다! 모두 전투 준비!”
쿠드드드득-!
루시아의 외침과 동시에.
지하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본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 * *
“……결국 싸우는 건가.”
“적의 대장은 도망친 것 같고…… 드래곤은 일어나고. 난장판이 따로 없네.”
“어서 마무리하고 도우러 가자고. 저분들이 강하시긴 하지만…… 드래곤은 쉽지 않은 상대일 테니까.”
호기로운 말.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해골 기사들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스무 마리 이상. 그 뒤를 따르는 수백의 해골 병사들도 문제다.’
언데드의 가장 무서운 점.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에 비해 토벌대는 체력과 마나는 바닥난 상태.
든든했던 유모도 숨을 헐떡이기 바빴다.
“후후후, 오랜만의 싸움. 쉽지 않군요.”
……이상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토벌대라고 부르기에도 초라한 병력이 전열을 가다듬을 때였다.
“으으…… 뭐야. 내가 왜 누워 있는 거지?”
“아스테온! 정신이 드나?”
흑마법사들의 폭발에 휘말렸던 아스테온이 눈을 떴다.
그에게 현재 상황을 브리핑할 때였다.
“에드윈은? 그놈은 어디 자빠져 있냐?”
“응?”
“나랑 같이 있었잖아. 튼튼한 내가 이 정도이니, 그놈도 많이 다쳤을 테지. 상태는 어때. 많이 다쳤냐?”
“……미안하다.”
에드윈의 안부를 묻는 아스테온의 말.
대답 대신 사과가 돌아오자, 아스테온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둔한 아스테온도 알 수 있었다. 에드윈이 영면에 들었다는 걸.
“바보 같은 놈. 네가 사과를 왜 하는 거냐? 네 잘못도 아닌데.”
“내가 더 냉철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조금 더 주의했어야 했어. 그랬다면 지금쯤…….”
덥석-.
아스테온이 키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가 대단한 놈인 건 잘 알겠는데,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는 마라. 우리가 당한 건 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였어.”
“아스테온…….”
“대단한 네놈이 지금 해야 할 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평소처럼 우리를 깔보고, 마구 부리라고. 짜증 나지만 네가 가장 좋은 판단을 내린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니까.”
아스테온이 양손으로 바닥을 짚더니, 힘겹게 일어서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읍!”
끝내 일어서는 데 성공한 아스테온이 손을 까닥거렸다.
“미안한데 내 방패 좀 갖다 줘라.”
“지금 넌 싸울 수 있는 상태가…….”
“네놈이 멍청해졌으니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일부분 메꾸는 수밖에!”
키엘이 방패를 주워 아스테온의 팔에 걸었다.
‘부상자보다 못하다니…….’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역겨운 키엘이었다.
시간 나는 틈틈이 공부한 전략도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에드윈이 아니었을까?
그라면 이 상황에서도 헛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밝게 해줬을 텐데 말이다.
‘내가 죽고 대신 에드윈이 살았었다면…….’
아니, 이런 생각은 좋지 않다.
자신을 탓하지 않겠다고, 자학하지 않겠다고 실비아 님과 약속했으니까.
키엘이 마음을 가다듬던 때였다.
쿵!
순간, 엄청난 충격이 머리를 꿰뚫었다.
동시에 득의양양한 아스테온의 미소가 보였다.
바위에 부딪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스테온이 머리 박치기를 한 탓이었지.
“또 이상한 생각하지.”
키엘이 이를 까득 갈았다.
“그런 적 없거든? 전략을 구상했을 뿐이라고.”
“그래, 이제 머리가 좀 차가워지셨나?”
“아니, 뜨거워서 죽겠다.”
“그런 네 모습도 나쁘지는 않네. 그래서, 전략은?”
키엘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 떠 있던 마법진은 어느새 그 형체를 잃은 지 오래다.
주변에서 흑마법사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
‘모두 죽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저 해골들은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할 거다.”
“뭐?”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흑마법사가 남아 있다 해도…… 끽해야 한두 번. 그 이상은 무리일 거야.”
전투의 막바지인 데다, 그들의 대장인 볼칸도 도망간 지 오래다.
숨어 있는 흑마법사들도 허둥지둥 이곳을 떠나고 있을 터.
“문제는 저 해골 기사들인데…… 우리가 상대하던 놈들보다 조금 강해 보여. 저놈들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뭐야, 한두 번만 더 부수면 된다고? 그럼 쉽네.”
쿵! 쿵!
아스테온이 손바닥으로 방패를 두어 번 두들겼다.
“수백 번도 더 때려 부순 놈들이다! 고작 한두 번 더 못 부수겠다고 징징거리는 놈들은 없겠지!”
아스테온은 당당히 선두에 섰다.
하지만 그는 이내 후방으로 밀려났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앞에 섰기 때문이었다.
“부상자는 뒤로 빠지시지.”
“으으으! 이 나쁜 놈들! 선두는 언제나 내 몫이었단 말이다!”
아스테온이 낑낑대며 앞으로 가려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 모습 바라보던 키엘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거 아냐?”
“뭐.”
“실비아 님이 나를 꽉 끌어안아 주셨다.”
“뭐, 뭐라고!? 네놈이 뭐가 예쁘다고!”
“네놈보다 내가 예쁘긴 하지. 듬직하기도 했을 거고.”
“우쒸…… ‘듬직’하면 이 아스테온인데. 운도 없지.”
“뭐, 열심히 해봐라. 그럼 네놈도 안아주실지도 모르지. 물론, 그것도 살아남는 게 선행되어야겠지만.”
“우오오! 이놈들 다 비켜라! 듬직함의 대명사, 아스테온 님이 나가신다!”
뒤뚱뒤뚱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키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강력한 의지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토벌대가 해골들을 향해 달려갈 때, 전장에 행운이 드리웠다.
“모두 공격!”
“본대를 지원해라!”
사샤 조와 오토네 조였다.
저 얼굴들이 반갑다니. 죽을 때가 된 모양이다.
키엘이 크게 소리쳤다.
“참 빨리도 온다!”
“따듯한 환영의 인사 고마워. 우리도 반갑다!”
해골과 기사들이 사방에서 엮이면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