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26)
제226화
226화. 제3의 세력(12)
촤락-!
피를 닦아낸 빅토리아가 부채를 펼쳐 들었다.
부채 위로 고고한 눈빛을 빛냈지만, 내가 봤을 때는 열다섯 먹은 애일 뿐이었다.
물론, 빅토리아의 세력은 애처럼 취급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시죠? 설마 인원수로 상대를 찍어 내리는 천박한 짓을 하시려는 건 아니실 거고.”
“하하! 찍어 내리다니. 그럴 리가 있나. 우린 그냥 대화하러 온 거라네. 상의할 것도 있고 말이야.”
“……상의요?”
빅토리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까맣게 모르는 얼굴이었다. 지금 자신이.
테르온의 정치질에 말려든 상태라는 걸.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건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래도 제국과 성국에서 마련한 교류의 장인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겠나?”
“동의해요. 하지만 그건 그쪽에서 우리를 배척해서 생긴 문제 아닌가요? 저희는 여신님의 가르침을 설파했을 뿐인데 말이죠.”
“성국에 교리가 있듯, 제국에도 법칙과 규율이 존재하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올바르다고 얘기하는데 어찌 안 시끄러울 수 있겠나?”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같은 반 학우끼리 날을 세우기는 싫은데. 참 곤란한 상황이지 뭐예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교류회를 가지는 건 어떤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빅토리아의 눈썹이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갔다.
“교류회요?”
“서로 실력을 겨루며 신의를 다지는 거지.”
말은 고상하게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간단했다.
교류회를 빙자한 싸움을 통해 우열을 가리자는 것.
그 뜻을 알아차린 빅토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흐응~ 등 뒤를 맡길 정도의 수준은 되는가. 그걸 알아보자는 거로군요?”
“그렇다. 싸움 같은 천박한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행위지.”
“오~ 호호호! 그렇군요. 교류회라…… 제게 딱 알맞은 고상함이에요.”
촤락!
빅토리아가 부채를 접더니, 그걸로 우리를 가리켰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어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걸요? 결과에 수긍하셔야 할 테니까요.”
“그건 이쪽이 할 말이다. 지고 나서 허튼 말은 하지 마시지.”
“좋아요. 계약서를 작성하죠.”
고상함을 뽐내기 위한 문구가 가득 들어간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계약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교류회에서 패배하는 쪽은 싸움이 일어나려 할 때마다 먼저 물러날 것.
둘째, 교류회는 1:1 대결로 치러지며 5전 3선승제로 진행된다는 것.
셋째, 이 계약서의 효력은 중간고사 성적이 나올 때까지라는 것.
‘중간고사 이후에는 성적이 우수한 세력이 주도권을 지게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저런 조항을 단 거지만…….’
그게 자신의 세력일 거라고 단언하는 게 문제다.
중간고사 이후에도 변함없이 세 개의 세력이 싸우는 우당탕탕 아카데미 생활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테르온이 흑화, 악마와 계약을 하며 두 번째 에피소드의 보스가 되지.’
주인공 일행이 기말고사 때 악마와 계약한 테르온을 처치.
그렇게 테르온파의 몰락과 함께 두 번째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니, 그런 곳에 신경 쓸 데가 아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아수라장을 빠져나가는 거란 말이다!’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에 둘러싸인 걸로도 모자라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게 생겼다.
‘내보내 줘! 세력에 속해있지도 않은 내가 왜 교류회에 참석해야 하는 거냐고!’
사실 교류회에 참석하는 건 문제라 할 것까지는 아니다.
5전 3선승제. 다섯 명만 싸울 수 있는 교류회다. 스토리상 내가 저 다섯 명에 포함될 리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쿠구구구구-!
아도니스가 계속 날 노려보고 있는 게 문제였다.
여섯 번째 퀘스트인 아도니스의 의심, 그리고 강제로 참석하는 교류회.
감이 팍팍 왔다. 교류회에서 뭔가 문제가 생길 거라는 감이!
‘살려줘!’
하지만 내 절규에도 스토리는 착착 진행되기 바빴다.
“그래서, 교류회 날짜는 언제죠?”
“굳이 시간 끌 필요 있나? 지금 당장 열지.”
“……지금 당장이요?”
“왜? 자신 없나? 뭐, 그럼 어쩔 수 없지만…… 실망이 크긴 할 것 같군. 성국의 인재들이 도망이라니…….”
테르온의 거침없는 도발.
빅토리아가 아도니스 쪽을 힐끗 바라봤다.
아도니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빅토리아가 곧장 선언했다.
“그럴 리가요. 하죠. 지금 당장.”
“마침 좋은 장소가 있다. 교류회를 열기 딱 좋은 파티장이지.”
“흐응~ 그렇군요. 기대되네요.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파티장이라니.”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시간을 두고 따로 이동하는 게 낫겠지. 안내인을 하나 붙여주겠다.”
테르온이 고개를 까딱하자, 한 학생이 빅토리아파의 앞에 섰다.
그렇게 빅토리아파가 떠났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테르온이 우리를 바라봤다.
“알렉스, 레이몬. 너희도 제국의 일원이니 당연히 동참하겠지?”
“저, 저를 끼워준다는 건가요? 우리는 치, 친구도 아닌데!”
“같은 반 아닌가. 함께하는 게 당연하지.”
“그, 그렇다면 함께할게요! 테, 테르온 군과 함께 놀기는 싫지만!”
“…….”
음, 역시 느그 레이몬이다. 모욕을 한시도 쉬지 않는다.
두통이 온 것일까. 손으로 이마를 짚은 테르온이 알렉스 쪽을 바라봤다.
“알렉스, 너는?”
“뭐…… 싸움이 아닌 교류회니까 상관없을 것 같네. 개인적으로 신경 쓰이는 애도 하나 있고.”
아도니스를 얘기하는 거다. 알렉스는 이 게임의 주인공.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설정이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설정이었다.
“후후, 수고하십시오. 교류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길 빌겠습니다.”
“마치 어딜 간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내 착각인가?”
“착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만? 함께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유리디아파와 테르온파.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나다.
교류회에 참석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루나와 레제의 손을 잡은 채 슬쩍 도망가려던 때였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양쪽 어깨를 붙들었다. 테르온과 유리디아였다.
“제로, 설마 다이크와 쌍벽인 네가 빠지지는 않겠지?”
“제로 군! 이건 명예가 걸린 결투라고요!”
이 미X 연놈들아! 교류회라며! 왜 갑자기 명예가 걸린 결투로 바뀐 건데!
뭐, 당연한 일이긴 했다. ‘교류회’라는 건 허울 좋은 단어일 뿐.
결투를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후후, 다이크 군과 쌍벽이라니……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굳이 제가 필요할까요? 인재가 넘치지 않습니까.”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일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함께해줬으면 하는군.”
“저도 정말 그러고 싶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제로가 정말로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는군. 편하게 모셔라. 걸을 필요도 없게끔 말이야.”
“……?”
대체 어떻게 하면 그 말이 그렇게 들리는 건데?
뭐라고 할 틈도 없었다. 테르온파의 아이들이 내 팔다리를 붙들더니 하늘로 들어 올렸다.
루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쪽도 나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루나 양과 레제 양은 우리 쪽에서 모시도록 하죠.”
유리디아파의 아이들이 루나와 레제를 들어 올렸다. 마치 왕을 모시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교류회가 열린다는 파티장으로 향했다.
물론, 나한테는.
처형장과 다를 게 없었다.
* * *
“오랜만이네. 감회가 새로운걸?”
루나가 눈을 감은 채 추억에 빠졌다.
테르온이 말한 파티장의 정체는 다름 아닌 대련장이었다.
루나와 다이크의 싸움이 펼쳐졌던 곳이자, 뒤늦게 찾아온 내가 다이크와 정면 대결을 펼쳤던 곳.
내 [일섬]으로 인해 날아간 지붕을 수리하느라 로델린이 진땀을 뺐던 곳이기도 했다.
“후후, 그리고 여기서 레제 양을 주웠죠.”
“친구를 땅에서 주웠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
하지만 사실인걸.
루나를 유인하기 위해 레제를 두들겨 패던 고드너.
그런 레제를 루나와 내가 구해주었고, 레제는 우리를 스토킹하기 시작.
이런저런 일을 거친 뒤 우리와 함께하게 됐다.
아무튼, 루나의 말처럼 여러 추억이 담긴 대련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곳에 새로운 추억이 생기게 생겼다.
내 묘비가 건립되는 추억이.
“어때, 마음에 드나?”
“훌륭한 파티장이네요. 특히,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거대한 것이 제 마음에 쏙 들어요. 칭찬해 드리죠.”
“칭찬 고맙군. 그럼 연회를 시작하도록 하지. 5분의 준비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차고도 넘치죠. 다음에 대화를 나눌 때가 기대되네요.”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 고상한 말투가 얼마나 망가질지 기대되는군.”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겠어요. 그럼 이만.”
빅토리아와 그 세력에 속한 아이들이 반대편으로 떠났다.
“건방진 놈들. 여신님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지.”
“흥! 놀라 자빠지지나 않았으면 좋겠군.”
시작 전부터 기 싸움이 치열했다.
물론, 이런 싸움에 끼일 내가 아니었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제로=평화’. 누구나 이 공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할 수밖에 없을 거다.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긴 했다.
‘루나=싸움’이라는 공식이.
“후후, 루나 양. 물러납시다. 저건 노는 게 아닌, 진짜 싸움이니까요.”
“그래서 참여하려는 건데? 뭔가 문제야?”
일단 그걸 모르는 것부터가 문제가 아닐까?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루나의 옷깃을 잡은 채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레 참여하게 된 교류회. 처음에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상관없을지도 몰라.’
앞서 계약서에 쓰여있듯, 교류회는 1:1 대결로 치러지는 5전 3선승제 결투다.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 알렉스와 레이몬을 포함한 인원 중 단 5명만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중 두 자리는 다이크와 알렉스가 차지하지. 나머지 세 자리는 유저도 참여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세 자리에는 내가 들어가도 상관없다.
문제의 아도니스가 출전하는 건 다섯 번째, 마지막 대결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 대결은 무조건 주인공인 알렉스가 하게 되어 있어.’
이건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게임 설정이었다.
주인공인 알렉스와 아도니스의 만남을 통해 빅토리아와 연결점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즉, 내가 아도니스와 싸울 확률은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강제로 연회장에 끌려오는 히든 피스.
어쩌면 난도 높은 여섯 번째 퀘스트의 힌트를 주기 위해 발동한 히든 피스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주변 상황과 흐름을 보며 그 힌트를 찾는 일이다.
어려울 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에서 변화하는 부분. 그걸 찾으면 되니까.
“첫 번째는 역시…….”
“음, 제 생각은…….”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첫 번째로 출전할 사람을 선정하는 회의였다.
사사사삭-!
네발로 땅을 기며 그들의 곁으로 향했다.
누구를 출전시킬지 안다면 그에 따른 대응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짜악!
갑자기 내 고개가 꺾였다. 유리디아가 내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어머! 미, 미안해요! 바퀴벌레인 줄 알고…….”
“후후, 네발로 기어서 착각하셨나 보군요. 그럴 수 있습니다.”
“아뇨. 제로 군은 평소에도 바퀴벌레 같았는데요. 평소에는 인지하고 있어서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깜짝 놀라서 실수했지 뭐예요. 죄송해요.”
“……?”
농담이겠지? 사람과 바퀴벌레를 착각한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유리디아, 바퀴벌레한테 시선을 빼앗기지 마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모르는 게냐?”
“……테르온 군?”
“으앗! 깜짝이야!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건가? 인기척이라도 좀 내고 다니지 않고.”
“…….”
결심했다.
난 오늘부터 빅토리아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