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27)
제227화
227화. 제3의 세력(13)
그동안 친분을 쌓아서일까, 아니면 나를 진짜 바퀴벌레로 생각하는 것일까.
테르온과 유리디아의 대화가 시작됐다. 나를 사이에 낀 채로.
“일단 우리 둘은 제외해야겠지.”
테르온의 말에 유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장이 나섰다가 지면 그것만큼 망신도 없으니까.’
추가로 ‘아~ 내가 나갔다면 이겼을 텐데~ 다음에는 안 봐줘~’라는 정신 승리도 가능했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테르온, 유리디아, 빅토리아는 출전이 불가능했다.
“역시 다이크 군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야겠죠? 저쪽에서는 저 ‘괴물’이 출전할 테니까요.”
괴물. 바로 아도니스를 말하는 거였다.
다이크를 한 손으로 붙든 아도니스의 힘. 유리디아도 그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었다.
“……아니, 다이크는 마지막에 출전시키지 않는다. 첫 번째로 출전한다면 모를까.”
제일 강한 자를 마지막에 배치하는 건 전략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다이크를 첫 번째로 출전시키겠다니.
유리디아의 눈이 묘하게 휘었다.
“흐응~ 다이크 군을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쯧, 그 반대다. 믿고 있으니 첫 번째로 출전시키는 거다. 내게…… 아니, 우리에게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줄 테니까.”
“그렇긴 하지만…… 다이크라는 패를 첫 번째에 소모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요.”
“나는 다전제의 빈틈을 파고들 생각이다.”
5전 3선승제.
3승을 먼저 챙긴다면, 뒤의 2전은 할 필요가 없어진다.
테르온은 그 점을 꼬집고 있었다.
“저쪽에서도 아도니스를 첫 번째로 출전시킬 확률이 있지만…… 빅토리아의 성격상 그럴 일은 없다고 본다. 아도니스 다음의 실력을 가진 자가 나오겠지.”
“빅토리아파의 넘버 2를 꺾을 뿐 아니라, 확실한 1승을 챙겨온다…… 그런 전략이군요?”
“기세도 가져올 수 있다. 다전제에서 선승은 큰 힘을 발휘하니까. 다이크가 빠진다면 뒷일이 걱정되긴 하지만…….”
테르온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알렉스에게 향했다.
먼 곳을 바라보던 그가 살짝 고개를 내리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인 얼굴이라는 걸까?
‘그렇지? 바퀴벌레 취급을 하기에는 너무 잘생겼지?’
그윽한 시선으로 테르온을 마주 바라봤다.
테르온이 살짝 움찔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이쪽에도 비장의 수는 있으니까. 그 뒤도 어떻게든 될 거다.”
“좋아요. 그럼 다이크 군을 출전시키도록 하죠.”
잠시 뒤, 다이크가 대련장 위에 올랐다. 반대쪽에서도 한 아이가 올라왔다.
사실 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엄청난 거구였기 때문이다.
다이크 두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체구.
어깨에 걸쳐 멘 망치도 일반적인 망치보다 몇 배나 컸지만, 그게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만나서 반갑군. 한스라고 한다. 네 이름은 뭐지?”
“……다이크.”
“패배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나 같은 강자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닌, 당연한 거니까.”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심판을 맡은 아이가 깃발을 내림과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저 거대한 망치를 정면으로 상대하겠다는 건가?”
“무모해! 회피를 우선해야 한다고!”
한스의 거대한 망치가 휘둘러진 순간. 다이크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다이크 첫 번째 오리지널 비기.
샤이텔하우(scheitelhauw).
머리 위로 올라가 있던 다이크의 검은 어느새 바닥을 향해있었다.
한스의 망치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다이크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데 성공한 거다.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는데 둘 다 무사하다니.
‘너무 긴장한 나머지 거리 간격 조절에 실패한 걸까?’라고 모두가 생각하던 때였다.
쩍!
쿵! 쿠궁!
한스가 들고 있던 쇠망치가 반으로 쩍 갈라지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다이크가 한스의 쇠망치를 가른 거다. 그것도 단 일격에.
“이, 이럴 수가……! 쇠를 벤다고?”
“한스가 지다니! 말도 안 돼!”
“저 정도면…… 아도니스와 비등할지도 모르겠는걸?”
빅토리아파 아이들이 부산스러워졌다. 워낙 충격적인 패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당사자인 한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졌다고? 이게 무슨…….”
손잡이만 남은 망치를 든 채 손을 부들부들 떠는 한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다이크가 입을 열었다.
“아까 나한테 패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넌 좀 패배를 부끄러워했으면 좋겠군.”
“크윽! 비아냥거리는 거냐?”
“아니, 자기 수준을 파악하라는 거다. 이곳에서 나는…… 강자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거든.”
“무슨……! 설마 너보다 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냐?”
“그렇다.”
음음, 알렉스를 말하는 거겠지?
그럴 거다. 지금은 알렉스가 다이크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주인공 버프는 무시할 수 없는 법.
알렉스에게서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왜 시선이 나에게 향해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착각이겠지 뭐.’
다이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그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바퀴벌레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이것도 내 착각일 거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가득한 실눈이어도 그렇지, 사람이 바퀴벌레처럼 보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이크가 대련장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유리디아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역시 다이크 군이네요. 적일 때는 두렵기만 했는데…… 아군이 되니 이리 든든할 수가!”
“부러우면 너도 내 아군이 되거라. 그러면 언제든지 이런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
“그건 테르온 군이 제 밑으로 들어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전 이게 더 마음에 드니 이쪽으로 진행하시죠.”
“……빅토리아파를 처단한 뒤 할 일이 생겼군.”
“어머, 우연이네요. 마침 저도 그 뒤에 해야 할 일이 생각난 참이거든요.”
파지직-!
음, 정말 사이가 좋은 두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다음 두 번의 결투에서 사이좋게 패배를 맛봤다.
“……다전제의 빈틈을 찔러, 3선승을 하는 게 계획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네가 내보낸 아이가 패배한 탓 아니냐.”
“테르온 군도 마찬가지거든요? 제파인지 제네르기파인지. 순식간에 1패를 기록했잖아요!”
두 번째 대결에서 유리디아의 오른팔인 알폰소가 출전, 패배.
세 번째 대결에서 테르온의 오른팔인 제파가 출전, 패배.
그야말로 순식간에 1승 2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한 번만 더 지면 모든 게 끝나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
유리디아가 팔과 다리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진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스토리대로군.’
물론, 나는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아는 스토리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크가 승리한 이후 세 개의 대결은 1승 2패를 기록하지.’
승패패.
패승패.
패패승.
순서는 랜덤이지만, 저 세 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2승 2패가 되고, 마지막 대결에서 알렉스와 아도니스가 맞붙게 된다.
주인공인 알렉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를 띄워주기 위한 게임 속 장치이자 클리셰.
지금의 2패는 그런 연출을 위한 2패에 불과했다.
‘즉, 이번에는 누가 나가도 이긴다는 얘기지.’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테르온과 유리디아는 의견을 나누기 바빴다.
“만약 여기서 아도니스라는 아이가 나온다면…… 패배 확정이에요.”
“다전제의 빈틈을 이용한 거지. 대단하군.”
“……본인이 말하고도 안 민망하신가 봐요? 빈틈은 무슨 빈틈! 그냥 우리가 알아서 승리를 갖다 바친 거지!”
“크흠! 크흠! 아무튼, 아도니스가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도 가장 강한 카드를 내야겠지.”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주변을 훑었다. 그래봤자 나갈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레이몬이나 루나, 또는…….’
나.
그렇다. 나는 이번 네 번째 대결에 출전할 생각이었다.
‘다섯 번째는 알렉스로 고정이니, 굳이 나갈 필요가 없긴 하지만…….’
‘만약’이라는 경우의 수가 있는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네 번째 대결에 출전, ‘만약’이라는 경우의 수를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아도니스는 마지막. 다섯 번째 대결에서만 출전하니까.’
실제로 게임을 수만 번 플레이하는 동안, 아도니스가 다른 순서에 나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후후, 어쩔 수 없군요. 제가 나가는 수밖에.”
“그래, 제로! 너라면 믿을 수 있지.”
“저도 찬성이에요. 아도니스가 나오더라도 해 볼 만 하겠네요. 다섯 번째 대결이 걱정이지만…… 일단 여기서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요.”
예상대로인 반응이다. 물론, 아도니스와 싸울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련장으로 향하던 때였다. 대련장 위에 서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이상한 건, 우리 진영 쪽에 서 있다는 거였다.
연분홍빛 트윈 테일을 한 소녀.
어디선가 많이 본 뒷모습이었다.
그렇다. 대련장 위에 서 있는 건…….
“루나 양……?”
네가 왜 거기 서 있니?
“야, 미안한데 나 먼저 하자. 보고만 있자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응, 그렇구나. 그래서 허락도 없이 나갔구나?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저, 저 미친 고양이가! 아도니스가 나올 수도 있단 말이다!”
“그래? 그럼 더 좋지. 갚아주고 싶은 게 있었거든.”
“저, 저저저……!”
테르온이 목 뒤를 잡더니 쓰러졌다.
음, 이해한다. 루나의 기행에 면역력이 있는 나도 당황스러웠으니까.
가뜩이나 루나를 싫어하는 테르온의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리라.
‘2, 3, 4번째 대결 주자가 랜덤으로 정해지는 시스템이긴 하지만…… 루나가 그 확률에 들었다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도저히 머리를 굴릴 수가 없었다.
뒤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연인 대신 출전하다니!”
“자기 남자는 자기가 지키겠다는 거겠죠!”
“역시 루나 양이예요. 그야말로 여장부!”
“꺄아아악! 루나 양! 힘내요!”
물론, 우리 루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빌 뿐이었다.
“뭐야? 쟤네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루나야, 지금까지 그 이유를 모르는 네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이상한 건 루나뿐만이 아니었다. 유리디아가 양손을 얼굴 앞으로 모으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어쩜…… 우리 루나 양은 용감하기도 하지. 정말 최고의 신붓감이라니까요?”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라 최고의 야만인이겠지.
당장 ‘우가, 우가!’를 외치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야만인이자 싸움광이었다.
‘뭐, 강해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니 이해는 하지만…….’
통제할 수 없다는 건 꽤 큰 문제였다.
“유리디아, 정신 차려라! 상대 쪽에서 아도니스가 나온다면 끝이란 말이다!”
“괜찮아요! 그깟 꼬맹이! 사랑의 힘 앞에서는 무의미합니다!”
“이, 이 미X 여자가!”
음, 통제할 수 없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게 루나가 대련장 위에 섰고, 반대편에서도 한 명이 올라왔다.
흉악하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아도니스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남자아이.
“케케케케케!”
그 아이가 혀를 쭉 내빼더니, 검날을 핥았다.
……그런데 저놈, 성직자 맞나? 망나니 아니야?
“루, 루나 양!”
“저, 저런 불한당이 루나 양의 상대라니…… 너무해요!”
“루나 양, 도망치세요! 도망쳐도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 크억!”
뭐라고 말하려던 테르온이 저 멀리 날아갔다.
똘똘 뭉친 여자아이들이 앞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것일까. 흉악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투덜거렸다.
“뭐야, 꼬꼬마들끼리의 사랑놀이냐? 김이 새는군.”
“……뭐라고?”
“그렇지 않나. 꼬맹이들끼리 무슨 사랑을 한다고. 그게 뭔지 알기는 하고?”
그러자 루나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검을 뽑은 루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로를 꼬맹이라고 부르는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나를 꼬맹이라고 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루나야.
반대로 하는 게 더 멋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