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28)
제228화
228화. 제3의 세력(14)
네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다.
현재 나는 루나에게 ‘일섬’의 사용을 금지한 상태.
어쩌면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라도 루나가 반드시 이겨줘야 하는데…….’
챙!
“크윽…… 내가 졌다.”
“에게? 뭐야? 벌써 끝이야?”
하지만 루나는 가뿐하게 승리를 쟁취했다.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루나가 대련장에서 내려오며 투덜거렸다.
“에이~ 재미없어. 보기와 달리 약한 놈이었네. 아쉽다, 아쉬워.”
“후후, 루나 양이 강해진 건 아닐까요?”
“그런가?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야. 매치 포인트이니만큼 저놈이 나올 줄 알고 나갔던 건데…….”
루나의 시선 끝에는 아도니스가 있었다.
음, 그렇구나. 그냥 싸움을 하고 싶어서 올라간 게 아닌,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올라간 거였구나?
우리 루나가 생각이란 걸 할 정도로 컸단 말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솟아 올랐다.
‘이런 게 바로 딸의 성장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란 거겠지.’
하루빨리 커서 출가해 줬으면 좋겠다.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애써 닦아낼 때였다.
루나가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툭 쳤다.
“지지 마라.”
“예?”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잖아? 물어 죽여버리라고.”
음, 내가 다섯 번째 선수로 출전할 일은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죽긴 할 거다.
내가 아도니스에게.
“후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이길 수도 없지만요.”
“……뭐야? 그 꼬랑지 내린 강아지 같은 말은. 설마 싸우기 전부터 포기한 거야?”
“포기하는 게 당연합니다. 저건 규격 외의 존재거든요.”
훅!
루나의 얼굴이 확 가까워졌다. 루나가 내 멱살을 휘어잡으며 잡아당긴 탓이었다.
“싸워서 지는 건 괜찮아. 그런데 그 전부터 꼬랑지 말고 도망치는 건 인정할 수 없어.”
“질 게 뻔한 싸움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요.”
“이건 교류회잖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그 기회를 걷어찰 셈이야?”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이게 바로 루나가 싸움을 피하지 않는 이유이자, 네 번째 선수로 출전한 이유였다.
“목숨이 걸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야.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너답지 않아. 빌어먹을 운에라도 기대보라고!”
루나의 열변.
거리가 워낙 가까운 탓에 루나의 침이 내 얼굴에 다 튀었다.
‘우리 쪽의 마지막 출전자는 알렉스야. 내가 아도니스와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 듯했다. 침에 빠져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 멱살을 쥔 루나의 손 위로 내 손을 포갰다.
“뭐,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제가 출전한다면 말이죠.”
“흐응~ 이제야 내가 아는 제로답네. 이기고 오라고. 이 누님이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루나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자,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루나 양! 멋져요!”
“키스해! 키스해!”
“박치기! 입술 박치기!”
……그걸 왜 해?
그때였다. 빅토리아가 아도니스에게 소곤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매치 포인트에서 승리한 환호성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도 큰 환호성.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인가. 그걸 알아보라고 지시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불안한데.’
빅토리아는 여자아이다. 그것도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통해 ‘황제의 자격’을 배운 아이.
그 소설에는 당연하게도, ‘사랑’에 대한 얘기도 잔뜩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설마 유리디아와 같은 행보를 보이지는 않겠지?’
이 게임의 주인공격인 유리디아와 빅토리아가 루나에게 관심을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랑을 응원한다?
하하하, 그럴 리가! 어휴, 하여튼 이놈의 망상이 문제다.
“근데 우리 레제는 어디 간 거야? 내가 저기 눕혀 놨었는데…….”
“여기 있습니다.”
무릎 언저리의 허공에 손을 휘적였다.
손에 스치는 옷깃. 그걸 단단히 붙든 채 들어 올리자, 레제가 튀어나왔다.
그렇다. 레제는 대련장 모양으로 위장한 상자에 숨어있던 중이었다.
“우왓! 깜짝이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상태가 영 좋지 않지만요.”
“주, 죽고 말 거예요. 헤헤, 헤헤헤헤헤…….”
정보창으로 확인해 본 결과, 현재 레제는 위기에 빠질 시 전장을 이탈하는 [겁쟁이], 스탯이 두 배로 뻥튀기되는 [생존 희망자]라는 특성이 발동한 상태였다.
하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지 못한 탓일까. 부정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도망칠 수 없을 시, 부정 개복치 토끼로 진화한다라…… 또 하나의 정보를 얻었군.’
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다.
루나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주먹을 말아쥔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아도니스를 쏘아봤다.
“저 건방진 놈!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또 이런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
“……예?”
“보면 몰라? 저 꼬맹이가 우리 레제를 괴롭혀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 누구보다 활발하고 밝았던 애를 이렇게 만들다니…….”
레제가 활발하고 밝았다고? 그건 대체 어느 세계에 사는 토끼니?
레제는 그 누구보다 우울하고 암울한 성격의 토끼란 말이다!
부정적으로 변한 건 아도니스가 괴롭혀서 그런 게 아니라 도주에 실패해서고!
“당장 가서 말하고 와! 네가 출전해서 저 건방진 애새끼의 목을 가져오겠다고!”
조금 전에는 교류회라고 말하지 않았니?
그런데 목을 가져오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루나야!?
“당장 가!”
뻥!
루나가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나는 자연스레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호호호호! 보셨나요? 사랑의 힘을!”
“대체 어디가 사랑의 힘이란 말이냐? 사람을 두들겨 패기만 했는데.”
“그 힘이 어디서 났겠어요? 사랑의 힘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하네요.”
“……일단 이겼으니 그렇다고 치지. 이제 마지막이로군.”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채 회의에 들어갔다.
상대 쪽에서는 무조건 아도니스가 출전할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테르온과 유리디아였다.
“심지어 먼저 올라왔네요.”
유리디아의 말대로였다. 아도니스는 대련장에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아직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심리전일까요?”
“자신감이겠지. 누가 나오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순서대로라면 제 쪽에서 나가야 하긴 하지만…….”
“뭐,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이겨도 져도 내 쪽에 부담은 없으니. 하지만 너는 아닐걸?”
테르온파는 1승 1패, 유리디아파는 1패를 한 상황.
여기서 유리디아파에 소속된 아이가 나가 패배한다면, 2패를 달성.
유리디아는 책임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때문에 유리디아는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 중, 강한 사람을 찾아 헤맨 결과.
‘알렉스를 출전시키게 되지.’
그리고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아도니스가 깨닫고, 연을 맺기 시작.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인연을 쌓고, 마지막에는 빅토리아를 맡기고 앤우드 아카데미를 떠나게 된다.
‘즉, 이번 교류회는 빅토리아가 1파티 멤버의 힐러가 되는 시작점.’
주인공의 스토리는 절대적이다. 그러니 루나가 아무리 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내가 제발 출전시켜달라고 빌어도 거절당하지 않을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테르온과 유리디아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마지막은 역시…….”
알렉스지.
“제로지.”
“제로 군이죠.”
?
거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후후, 저보다는…… 알렉스 군이 더 적합하지 않나요?”
내가 루시아와 훈련을 하는 동안, 알렉스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다.
훈련과 결투, 주·조연과의 인연.
각종 기연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비를 줍기까지.
주인공다운 버프를 잔뜩 받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테르온과 유리디아 앞에서 비범한 면모를 보이는 알렉스다.
그런데도 알렉스가 아닌, 나를 선택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예?”
“알렉스가 강하긴 하지만…… 네놈 정도는 아니다.”
음, 잠시 생각해 보자. 내가 얘네 앞에서 힘을 보였던 때가 언제더라…….
학기 초, 루나를 구하기 위해 [일섬]을 사용, 다이크를 일격에 꺾고.
4계위 악마 비네스와 한판 떴고.
유리디아 가문의 비전 마법 [데몬 슬레이브]를 썼었다.
내가 한 거라곤 그것뿐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내가 더 강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이 멍청한 자식아!’
여기서 내가 출전한다면, 망가지는 건 교류회 스토리 하나가 아니다.
알렉스가 아도니스, 빅토리아와 인연을 맺는 스토리.
알렉스가 패배, 우수반의 패권을 빅토리아파가 쥐게 되며 테르온이 흑화하는 스토리.
유리디아와 빅토리아의 ‘동맹’ 스토리 등.
수많은 스토리가 무너지게 된다.
무엇보다.
‘여섯 번째 퀘스트의 조건부 페널티가 여기서 발동할 수도 있다.’
아도니스의 의심 퀘스트, ‘사망’이라는 최악의 페널티.
그 페널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출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기…….”
“제로 군이 자진해서 나가겠다며 손을 드는군. 어쩔 수 없지. 출전시킬 수밖에.”
“어쩔 수 없네요. 저희 쪽에서 출전시키려고 했는데. 제로 군이 저렇게 원하신다면야 양보할 수밖에 없죠. 호호호!”
큰일이다. 이 새끼들, 내 말은 하나도 듣고 있지 않다.
“후후, 저는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만?”
“어머, 죄송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바퀴벌레어는 아직 배우지 못했거든요.”
바퀴벌레어는 뭐냐. 이 세계에는 그딴 것도 존재하는 거냐?
“흠흠, 다음에는 꼭 배워두도록 하지. 그러니 오늘은 나가줬으면 하는군.”
그렇다고 사람 대신 바퀴벌레를 출전시켜? 오, 신이시여! 이놈들이 진짜 사람 새끼들이란 말입니까?
진짜로 바퀴벌레처럼 죽고 말 거라고! 그것도 창에 꿰인 채 전기로 파직 파직 튀겨질 거란 말이다!
“바퀴벌레에게도 엄연히 인권…… 아니, 바권(?)이 있습니다.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죠.”
“제로! 우리의 명예가 걸려 있다! 이건 인류의 명예나 마찬가지야!”
“제로 군! 루나 양을 지켜내야죠! 피앙세 루나 양이 저 야만인들에게 잡혀가게 둘 셈인가요!”
이 정도면 광기다. 대체 이놈들에게 아카데미는 무슨 의미인 걸까?
“저기…… 내가 나가도 괜찮은데.”
알렉스였다. 나의 구세주!
그가 볼을 긁적이며 출전 의사를 알렸다.
하지만.
“알렉스, 네놈은 빠져 있어라. 나와 척을 지고 싶은 거냐?”
“제 모임에도 더 이상 못 나오게 할 겁니다. 저 뒤에 빠져 계세요!”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알렉스를 타박했다.
그렇게 스토리가 산을 넘어가려고 할 때였다.
쿵!
거대한 소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살짝 흔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대련장에 홀로 서 있는 아도니스. 그의 창이 대련장 바닥에 닿아 있었다.
아도니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둘 다 나와라. 한꺼번에 상대해 줄 테니.”
2:1로 싸우겠다는 아도니스의 선언.
침묵은 짧았다. 저마다 입을 열며 대련장이 어수선해졌다.
“두 명을 상대하겠다고?”
“아무리 강하다지만……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야?”
“저쪽에서 먼저 제의한 것이니 받아들여도 문제 될 건 없지만…….”
만약, 두 명이서 함께 싸웠는데도 진다면?
우수반의 패권은 빅토리아파가 차지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교류회의 효력은 중간고사 때까지만이지만…….”
“그 이후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겠네. 최강자라는 칭호를 갖게 될 테니까.”
그 정도로 파급력 있는 제안이었다.
심지어 숫자도 많은 빅토리아파이니, 그쪽으로 합류하려는 아이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날 터.
테르온과 유리디아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내 머리도 빠르게 돌아갔다.
‘혹시…… 연출인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게임 진행 중에 갑자기 시네마틱 영상이 나온다든지, 컨트롤이 불가능해지며 자동으로 게임이 진행된다든지.
게임 속 연출. 물론, ‘아카데미의 영웅’에도 그런 게 존재했다.
‘아도니스의 2:1 제안은 여섯 번째 퀘스트 해결의 실마리를 주기 위한 연출…… 그럴 확률이 높다.’
현재 아도니스가 나를 의심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불길한 첫인상과 감각적으로 알아차린 악마의 기운, 그리고 수상할 정도로 나를 신뢰하는 아이들.
전자의 오해는 풀기 힘들지만, 후자의 오해는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래서 신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이들을 세뇌했다’라는 아도니스의 의심을 풀기 딱 좋은 기회라는 뜻이다.
크, 역시 갓 게임이다. 짜임새가 너무 좋다. 이래서 이 게임을 끊을 수가 없다.
테르온과 유리디아. 저 둘이 아도니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확실해진다.
이게 ‘스토리상 연출’이라는 게.
“알렉스, 자신 있겠지?”
“최선을 다할게. 저 아이랑은…… 꼭 붙어보고 싶었거든.”
“좋다. 지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되겠지만…… 이기면 되니까. 무엇보다…….”
테르온이 나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질 리가 없지. 그렇지, 제로?”
그 냉정한 테르온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게 ‘게임상 연출’이라는 게.
이제는 거리낄 이유가 없다.
“후후, 어쩔 수 없군요. 참전할 수밖에.”
참전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뒤쪽에 있던 레제가 중얼거렸다.
“헤, 헤헤헤…… 악마와 괴물의 충돌…… 멸망…… 세, 세계가 멸망할 거예요…….”
……레제야, 그게 무슨 소리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싹트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