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229화. 제3의 세력(15)
레제가 불길한 말을 중얼거렸지만, 나는 이미 출전을 선언한 상황.
무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임상 연출이 맞을 거야. 레제가 무슨 예언가도 아니고…….’
애써 불안감을 털어내며 검을 챙겼을 때였다.
반짝반짝-.
여자아이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마치 뭔가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
평소에는 나를 째려보기 바쁜 아이들이다. 그런데 저런 초롱초롱한 시선을 보내다니?
‘마지막 대결이라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련장으로 향하는 계단 위에 발을 올렸을 때였다.
“잠깐만요!”
유리디아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더니 내 곁으로 쪼르르 다가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속삭였다.
“루나 양에게 한마디 하셔야죠.”
“예?”
“싸움에 임하기 전,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거든요? 어휴, 이래서 제로 군은 제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요?”
그제야 깨달았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 여자아이들.
내가 루나에게 로맨틱한 말을 해주고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는 거였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탑을 오르는 왕자처럼, 공주에게 멋진 승리를 바칠 것을 다짐하는 소설 속의 왕자처럼.
하지만.
‘내가 그럴 것 같냐?’
지금 그 왕자의 목이 뚝 떨어지게 생겼단 말이다!
아니, 그리고 애초에 난 루나의 왕자도 아니다.
그저 친구 사이…… 아니, 주인과 들짐승(?) 관계인 우리니까.
들짐승에게 사랑을 속삭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후후, 거절하겠습니다. 지금은 집중해야 할 때라서요.”
“저랑 약조하셨잖아요.”
“……약조요?”
“데몬 슬레이브. 이래도 기억이 안 나시나요?”
그제야 한 기억이 떠올랐다.
4계위 악마 비네스와의 싸움 때 [신의 모방]을 이용, 유리디아 가문의 비전 마법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한 나다.
‘어쩌다 보니 유리디아가 사용한 것으로 조사단이 결론 내렸긴 하지만…….’
옆에 있던 유리디아는 내가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했다는 걸 똑똑히 목격했었다.
조사단이 떠난 이후, 유리디아는 내게 다소 이상한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했다는 것을 함구하고, 어떻게 그걸 사용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겠다.
그 대신.
“루나 양에게 잘 대해주기로 약조하셨죠.”
정확히는 루나에게 하루 한 번씩, 달콤한 말이나 스킨십을 해줄 것.
그게 바로 자칭 ‘연애 박사’인 유리디아가 내건 조건이었다.
“최근 그 약조를 지키지 않고 계신 건 알고 계시죠?”
“……안 보이는 곳에서 했습니다만.”
“거짓말! 최근 루나 양이 힘들어하는 거 다 알고 있거든요? 우리 귀여운 루나 양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요!”
그건 아도니스가 레제를 괴롭히고 있어서란다.
“이러다 루나 양의 마음이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세요! 있을 때 잘하란 말이에요!”
응, 제발 그 마음이 좀 떠났으면 좋겠다. 스토커는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거든.
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유리디아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유리디아 가문의 비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신체를 이용한 기술인 ‘일섬’, ‘하늘 가르기’와 달리, ‘데몬 슬레이브’는 마법이다.
그것도 캐스팅과 마법 구절, 마나 이동 루트까지 완벽해야 발동이 되는 마법.
‘유리디아의 가문인 로운터 백작가에서 감추고 있는 마법이기도 하지.’
그런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나다. 만약 이 사실이 로운터 백작가의 귀에 들어간다면?
귀찮은 일을 넘어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 뻔했다.
솔직히, 유리디아가 이 사실을 함구하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처음부터 내게 선택권은 없었군.’
어쩔 수 없다. 일단 유리디아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후후, 알겠습니다. 제가 뭘 하길 원하시죠?”
“호호호!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간단해요. ‘널 위해 이기고 돌아올게’라고 한마디만 해주시면 된답니다.”
으, 온몸에 소름이 돋는 문구다.
이 말을 들으면 루나가 온몸을 벅벅 긁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2층의 관람석에 자리하고 있는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나 양.”
“응?”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소란스러웠던 대련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도니스를 노려보고 있던 루나가 픽 웃더니 말했다.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 지고 오기만 해봐. 죽을 줄 알아.”
-꺄아아악!
-승리 선언이야!
-루나! 루나!
여자아이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음, 저 아이들의 귀에는 ‘죽을 줄 알아’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던 걸까?
“그래요. 얼마나 보기 좋아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가자고요.”
유리디아가 2층으로 향했다.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띄운 채.
그제야 나도 대련장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미 두 사람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한 명은 아도니스, 다른 한 명은 알렉스였다.
“왔어?”
“후후,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기회를 뺏은 것 같아 미안하군요.”
“아니야. 안 그래도 혼자서는 불안했거든. 같이 싸우는 게 제로, 너라서 다행이야.”
알렉스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아주 싱글벙글했다.
물론, 맞은편은 그 반대였지만 말이다.
“왔구나. 준비는 됐겠지?”
“준비요?”
“죽을 준비 말이다.”
……농담이겠지?
하지만 아도니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스토리상 연출이 아닌 건 아니겠지?’
하하, 그럴 리가 없다. ‘아카데미의 영웅’은 갓겜이니까.
그때였다. 머릿속에 한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아카데미의 영웅은 갓겜임과 동시에 망겜이라는 문구가.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그럼 지금부터 마지막 교류회를 시작하겠…….”
“후후, 잠시만요. 타임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심판을 맡은 아이에게 타임을 요청한 뒤, 가슴팍을 뒤적였다.
그러자 내 품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은빛으로 빛나는 원통형의 물건.
그렇다. 내가 꺼낸 건 ‘쓰레기통’이었다.
“뭐야. 저걸 왜 꺼냈지?”
“크고 거대하네…….”
“악마의 사악한 사술임이 분명하다!”
“아니, 그보다 저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사실 나는 여섯 번째 퀘스트를 수락한 이후, 죽음을 피하기 위한 여러 비책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그 비책 중 첫 번째.
‘비기, 로델린 소환술!’
-되시겠다. 쓰레기통은 그걸 위한 준비물이었다.
죽을 것 같을 때 걷어찬다면, 부학생회장 로델린이 등장.
이 교류회를 즉각 중지시킬 테니까.
[아공간]에서 세 개의 쓰레기통을 더 꺼낸 뒤, 대련장 중심을 기준으로 90도 각도에 총 네 개를 설치했다.어디서 싸우든 몇 발짝만 걸으면 걷어찰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후후, 죄송합니다. 제가 쓰레기통이 없으면 집중할 수 없는 몸인지라…….”
“쓰레기통이라…… 얼핏 보면 소환진 같구나.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밑 준비냐?”
음, 로델린이 좀 악마 같은 면모가 있긴 하지.
내가 쓰레기통을 하나씩 품에 챙겨 넣을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서 주변을 수색했거든.
쓰레기통의 악마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이 정도는 통용되는 모양이네. 뭐, 당연한 일인가? 아도니스는 강하니까.’
쓰레기통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피해서 공격할 수 있는 실력자.
진짜 악마 소환진었더라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거야말로 내가 ‘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될 테니까 말이다.
‘뭐, 나한테는 잘된 일이지.’
곧장 다음 준비로 넘어갔다. 퀘스트 창을 띄웠다.
두 번째 비책, ‘퀘스트 포기 창 띄워놓기’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무조건 포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비책.
“후후, 어쩔 수 없군요. 친구들이 저를 믿고 있으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호오, 도망을 치지 않겠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워낙 싸움을 싫어하는지라 검을 휘두른 적도 손에 꼽는 저지만, 어쩔 수 없죠. 아아, 지금도 눈물이 흐를 것 같습니다. 이런 폭력적인 행위라니! 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여신님이시여!”
“…….”
순수한 척하기. 이게 바로 내가 준비한 세 번째 비책이었다.
너무나도 신실한 모습이었던 것일까. 아도니스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로, 너 친구 없잖아.”
……알렉스야, 그게 무슨 소리니?
내 옆에 있는 게 알렉스가 아니라 느그 레이몬이었던 걸까?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때였다.
“알렉스! 제로! 힘내세요! 자랑스러운 내 친구들…… 읍읍!”
“누가 네 친구라는 거야! 저건 내 거라고! 야, 죽여! 당장 저 애새끼를 죽이라고!”
“아, 악마와…… 괴물의 결투라니…… 며, 멸망! 세계가 멸망하고 말 거예요오오옷……!”
다소 열렬한 응원과 함께.
그렇게 마지막 교류회가 시작되었다.
* * *
채챙-! 챙!
싸움이 시작된 지 어느덧 5분째. 열기로 가득했던 대련장은 어느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무구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싸움을 분석하는 대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수준 높네.”
“응, 특히 성국의 저 작은 놈.”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 둘을 능숙하게 상대할 줄이야.”
아이들의 말대로였다. 지금 아도니스는 우리 둘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즉 우리를 제압했어야 했지만…….’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일까. 아도니스도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챙!
“큭!”
“후후,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지금 당장은 말이지…….”
물론, 아도니스가 힘을 조절한다고 해서 할만한 건 아니었다.
현재 아도니스가 사용하고 있는 힘은 5성 정도.
다이크라면 모를까, 알렉스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슈슉-!
챙!
알렉스를 향해 내질러진 아도니스의 창을 내가 쳐냈다.
내가 아도니스와 능숙하게 싸울 수 있는 이유.
[신의 모방]을 사용, [반사신경], [동체시력], [검술] 스킬이 A급 판정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루시아와 한 지옥 대련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검, 창, 활, 도끼, 망치, 주먹 등등.
여러 무기로 대련을 해준 루시아였다.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아도니스는.
‘나를 떠보고 있다.’
단순히 첫인상만 이상한 놈인지, 테르온과 유리디아를 비롯한 아이들이 의지할 정도의 실력자인지, 아니면.
‘악마와 계약한 수상쩍은 놈은 아닌지.’
증명해야 한다. 내가 수상쩍은 놈이 아니라는 걸.
2:1로 아도니스와 싸우는 히든 피스는 그걸 위해 만들어진 게 틀림없었다.
이 히든 피스에서 내가 생각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패배해야 한다.
둘째, 아도니스의 의심을 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상당한 실력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소 다이크 이상.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세 번째 조건.
‘일섬과 하늘 가르기를 사용할 수는 없어. 보는 눈도 많지만, 아도니스의 의심이 더욱 짙어질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다이크 이상의 실력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건 [제로 오리지널, 힘껏 내려찍기] 정도?
‘뭐,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아도니스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하자.’
그렇다. 나는 지금 ‘여섯 번째 퀘스트’를 깰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클리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도니스와 1:1로 만나 대화하기(0/1)
적이 아님을 증명하기(0/1)
5분 동안 살아남기(5:00)
세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5분 동안 살아남기는 될 거라 생각했지만…….’
5:00.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1:1 상황에서만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도니스의 의심을 줄이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거고.
공격 막기, 알렉스 보호하는 데 집중하기, 응원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간간이 웃어 보이기 등.
싸우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한 덕분일까. 아도니스의 기세는 처음에 비해 많이 누그러든 상태였다.
“……슬슬 끝을 봐야겠구나.”
캉!
창의 밑동을 잡은 아도니스가 거세게 창을 휘둘렀다.
창다운 긴 사거리와 어마어마한 반탄력.
“큭!”
알렉스가 저 멀리 날아갔고, 아도니스가 내게 달려오며 창을 휘둘렀다.
창은 짧게 쥔 상태였다. 창의 장점을 죽이는 행위.
그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거였다.
카각!
내 검과 아도니스의 창이 교차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본 실력을 안 드러낼 셈이냐?”
“후후, 보다시피…… 친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구나. 이러기는 싫었다만.”
아도니스의 황금빛 눈동자가 빛났다.
음,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의심이 풀리고 있던 게 아니었던 걸까?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죽기 싫다면.”
툭!
아도니스가 교차하고 있던 창을 밀어냈다. 동시에.
빠지직-!
아도니스의 오른쪽 손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그 스파크를 보는 순간, 내 머리털이 쭈뼛 섰다.
‘이런 씨……!’
퀘스트 포기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아도니스의 움직임이 훨씬 더 빠르다는걸.
빠지지지직-!
아도니스의 오른손이 내 배로 향한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이 빌어먹을 망겜 같으니.
아도니스에게 죽는 유저는 내가 최초일 거다.
음, 최초 업적(?)을 달성했으니 고인물로서 손해는 아닐지도?
죽음을 앞둔 탓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였다.
퉁!
내 왼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더니, 배로 향하던 아도니스의 오른손을 쳐냈다.
“?”
“?”
목표를 잃은 아도니스의 마나가 공중으로 향했고, 대련장 천장에 닿았다.
투콰앙-!
“처, 천장에 구멍이!”
“모두 진정해라! 구멍은 작아! 지붕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후둑- 후두둑-.
그 말대로였다.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을 뿐, 천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적은 마나를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멍하니 아도니스와 시선을 교환했다.
침착하자. 다 괜찮았다.
난 살았고, 아도니스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대련장도 무너지지 않았다.
조금 문제가 있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던 스토리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툭-.
알렉스가 아도니스의 심장에 검을 갖다 대더니,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음…… 우리가 이겼네?”
야.
이기면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