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36)
제236화
236화. 마족의 피가 흐르지만 악마는 아닙니다(6)
“빅토리아파는 수업 전까지 들어오지 않을 생각인가 보군.”
“와봤자 고개를 처박기 바쁠 테니까요.”
“이게 모두 테르온 님의 지략 덕분입니다! 완벽한 용병술이었습니다!”
“하하하! 너무 띄우지 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거늘.”
테르온은 두 번째 에피소드의 보스가 되는 캐릭터다.
교류회 이후부터 본격적인 성적의 압박을 받다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며 흑화하는 게 정상적인 스토리인데…….
“하하하하하하!”
흑화하기는커녕, 아주 얼굴에 꽃이 피었다.
땅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을 태세였다.
온몸에서 ‘착한 아이’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큰 문제였다.
테르온이 기말고사의 보스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가 보스로 등장할 거다. 이 게임은 그런 게임이니까.
문제는 그 ‘무언가’를 내가 모른다는 거다.
‘교류회에서 테르온, 유리디아 연합이 이긴 건 처음 있는 일이거든.’
나는 물론 다른 고인물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뭐, 그래도 어떻게 기말고사를 넘길 수는 있을 거다. 현재 나는 꽤 강한 편이니까.
문제는 그다음이다.
‘완전히 다른 스토리로 진행되겠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강점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거다.
평상시라면 새로운 루트를 발견했으니 다양한 시도를 하며 다음 회차 때 사용할 정보를 모았겠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게임 속에 들어왔고, 캐릭터가 죽는 순간 현실의 나도 죽게 될 테니까.’
스토리 중반부면 모를까, 초반부부터 처음 보는 스토리로 진행한다?
그런 부담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흑화시킨다.’
테르온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도록.
흑화해서 기말고사의 보스가 되도록.
테르온을 조종하는 ‘흑막’이 되는 거다!
응?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도 보고 싶지만, 그건 현실로 돌아간 이후에 봐도 충분했다.
‘테르온을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힌트를 얻은 것만 해도 큰 성과.
‘미안하다…… 다음에 꼭 구원해 줄게!’
테르온을 향한 애도(?)의 인사는 이걸로 충분했다. 테르온도 웃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일 거다.
그렇지?
“아니, 이게 누구야! 어제 우리를 승리로 이끈, 제로 아닌가!”
테르온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귀족은 달리지 않는 게 예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놈이 말이다.
그런 테르온을 향해 [은빛 섬광]을 사용했다.
상대를 0.1초 동안 기절시키는 아티팩트.
그러자 테르온이 내 앞에서 철퍼덕 엎어졌다. 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테, 테르온 님!”
“괜찮으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바닥을 잘 닦아놨어야 했는데…….”
테르온파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자신이 보인 추태 때문일까, 아니면 분노했기 때문일까.
엎어진 테르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큭큭, 계획대로군.’
테르온, 바로 그거다.
분노해라. 소리쳐라.
아이들의 잘못을 꾸짖어라.
악의 마음을 키우는 거다!
내 의지가 전해진 것일까. 테르온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진정해라. 내 실수니까. 절친한 친구가 온 나머지 나도 모르게 달리고 말았군.”
“아, 아닙니다. 저희가 걸리는 곳 없도록 진작 바닥을 청소해 놓았어야 했는데…….”
“어허! 내 실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 잘못을 뒤집어쓰려 하다니. 내게 더 큰 창피를 주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럼 됐다. 하하하하하하하!”
……이럴 수가. 화를 안 내는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다니.
‘이 새끼 누구야?’
테르온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어머, 먼저들 와계셨군요?”
유리디아와 그 추종자들이었다.
그래, 유리디아가 있었지.
싸움을 붙인 후, 슬쩍 유리디아의 편을 든다면 테르온이 발작할 수밖에 없을 거다.
둘은 라이벌이니까.
“후후, 유리디아 양, 오늘도 아름다우시군요.”
“칭찬 고마워요. 제로 군도 멋지네요.”
“그야말로 귀족의 모범입니다. 그렇죠, 테르온 군?”
“응? 그렇지. 유리디아는 훌륭한 귀족의 표본이지.”
“……예?”
“그러니 나와 같은 편을 먹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유리디아가 아니었다면 그런 제의도 안 했을 거야. 크하하하하!”
???
테르온이 유리디아를 칭찬하다니. 수천 번 게임을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칭찬은커녕 비꼬기 바쁜 게 바로 테르온이란 캐릭터였는데.
‘꿈인가?’
옆에 있던 레제의 앞머리를 잡아당기자, 루나가 곧바로 내 손을 물어뜯었다.
음,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다. 차가운 현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차가운 현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도 테르온 군이 아니었다면 동맹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테르온 군의 실력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잖아요?”
“하하하! 유리디아, 너만 하겠나?”
“호호호! 우리가 뭉친다면 빅토리아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중간고사 때도 힘을 내보자고요!”
“물론이지. 중간고사 때 아주 박살을 내버리자고!”
“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호!”
……너희들 대체 누구니?
동맹 관계를 넘어 절친 수준이다.
내가 아는 테르온과 유리디아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결국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차는.
완전히 망해버렸다는 걸.
* * *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질문이 있는 척 카론에게 다가갔다. 아도니스의 전언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따악!
“……?”
그러자 카론이 곧장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어째서일까?
“이제 나를 죽이기로 한 거냐?”
“예?”
“하마터면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지 않으냐. 네 얼굴은 살인 무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다음부터는 인기척을 내고 접근하도록 해라. 되도록 오지 말고.”
바퀴벌레에 이어 살인 무기라니.
이 세계에서 실눈이란 대체 얼마나 부정적인 이미지인 걸까?
“그래서, 찾아온 이유는?”
“후후, 전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전할 말?”
“예. 아도니스 군이 찾더군요. 도서관 옥상으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카론이 눈을 부릅떴다.
놀란 것이리라. 그것도 아주 많이.
카론은 선생님이다. 일개 학생에 불과한 아도니스가 찾는다고 해서 가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내가 아도니스의 잔심부름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찾아와 전했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아도니스=더글라스.
-라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렸고, 아도니스와도 충분히 대화를 나눈 상태라는 것.
그러니 카론이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놈……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냐?”
“후후, 아도니스 군과 만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제가 얘기하기에는 조금 그렇군요. 아이들의 시선도 있고요.”
“……사고를 친 건 아니겠지?”
“제가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진짜냐?”
“그럼요. 조금 실수를 했을 뿐, 사고를 치진 않았습니다.”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카론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음, 그렇구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구나?
이럴 때는.
“후후, 그럼 이만…….”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그렇게 루나와 레제의 곁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왔냐? 쟤네 좀 어떻게 해봐.”
루나가 교실 문 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테르온파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니, 막고 있었다.
문 쪽으로 향하자, 테르온이 말했다.
“승리 기념회를 하려고 하는데. 당연히 참석하겠지?”
당연히 거절이다. 훈련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지만, 주연들과 엮이는 건 좋지 않다.
“후후, 거절하겠습니다. 송사리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군요.”
“뭐? 송사리?”
“그렇습니다. 어제 깨달았죠. 테르온파는 겁쟁이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걸요.”
내가 도발한 이유는 간단했다.
테르온을 흑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면 테르온도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군. 송사리라…… 좋은 의견이야.”
“예?”
“그 정도로 우리가 못나 보였다는 거겠지. 이해하네. 어제 우리는 형편없었으니까. 그래서 화가 난 거겠지. 동료들이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을 테니…….”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런데 축하 파티를 할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부끄럽군. 내 잘못이야. 제로, 너처럼 수련에 힘썼어야 했거늘!”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모두 식사 이후 수련장으로 모여라! 한 명이라도 빠지면 내가 경을 칠 것이야!”
우오오-!
테르온파의 아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아니, 애들 다독이지 말고 화를 내라고! 흑화를 하란 말이다!
진짜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곤란한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로 군, 안녕하세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나 모르겠네요.”
빅토리아였다. 어느새 다가온 빅토리아가 내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테르온이 나와 빅토리아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냐. 중간고사 전까지 조용히 있기로 합의했을 텐데.”
“어머, 저는 제로 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인데요? ‘제로 군과 이야기를 나누지 말 것’이라는 조항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
테르온이 뒤로 물러났다. 빅토리아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제로 군, 혹시 좋아하는 게 있으신가요?”
“예?”
“좋아하는 것 말이에요. 제가 웬만한 건 다 해드릴 수 있거든요. 이래 봬도 돈이 제법 많답니다. 오~호호호호호!”
내가 좋아하는 거? 돈이랑 게임, 그리고…….
“루나 양이요. 루나 양을 원합니다! 사랑하니까요!”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뒤에 있는 유리디아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 말이지.
“유리디아 양, 대화에 끼어드는 건 예절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걸 모르시는 건가요?”
“예절을 모르는 건 그쪽이겠죠. 지금 제로 군은 루나 양과 시간을 보내야 할 때란 말이에요!”
아니, 밥 먹으러 갈 시간이거든?
내 스케줄 네 멋대로 바꾸지 말아 줄래?
그때였다. 테르온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손을 잡았다.
“흥, 애써봐야 소용없을 거다. 제로는 내 거니까.”
“……예?”
“내 사람이란 말이다. 그것도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지.”
“…….”
쿨럭!
푸확!
빅토리아가 피를 토해냈고, 유리디아가 코피를 터트렸다.
……지금 쟤네는 무슨 상상을 한 걸까?
뭔지는 몰라도, 상당히 불건전한 상상을 한 건 분명해 보였다.
양쪽 세력의 수장이 지혈을 하기 위해 애쓰던 때였다.
탁!
내 손을 잡고 있던 테르온의 손을 누군가 쳐냈다.
“지금 뭐 하냐?”
루나였다. 그녀가 으르릉거리며 테르온을 올려다봤다.
“이건 네 거가 아니라, 내 거야.”
“흥, 아직 확정난 건 아니지. 그렇지 않나?”
“뭐래. 얘는 나 없으면 못 살 정도거든? 두 번 다시 내 거에 손댔다간 봐. 가만 안 둔다.”
“…….”
“야,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루나가 내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절대로 안 놓치겠다는 것처럼.
루나가 걷기 시작하자, 길을 막고 있던 아이들이 양옆으로 길을 비켜섰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것처럼.
“꺄아아아악!”
“박력 봐!”
“루나 양 너무 멋져요!”
음, 또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지겠군.
데굴데굴 구르듯 교실을 빠져나온 레제를 일으켜 세울 때였다.
교실을 바라보던 나는 보게 되었다.
쿠구구구구-!
카론의 뒤집힌 눈깔을.
* * *
“흠, 저 둘은 대체 어떤 관계인 걸까.”
식사를 마친 후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빅토리아.
그녀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제로와 루나의 모습.
빅토리아는 알 수 있었다.
우정을 넘어선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다는 걸.
‘아도니스 님은 어디 가셨나 몰라. 정보도 안 알아보시고.’
현재 아도니스는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비운 상태.
빅토리아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꿍얼거리던 때였다.
“호호호, 곤란에 처한 모양이군요.”
“유리디아 양? 여긴 어쩐 일로……?”
“사랑의 냄새가 났거든요.”
“……사랑의 냄새요?”
“호호호, 적이지만 특별히 들려드리도록 하죠. 제로 군과 루나 양의…….”
찐득한 러브 스토리를.
‘사랑을 응원하는 동아리’, ‘사응동’.
그 세력이 더욱 불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