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44)
제244화
244화. 토끼를 개조하라(6)
레제가 획득한 [번개 질주].
이동 거리를 늘려 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쁜 스킬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스킬 축에 속하지.
‘아카데미의 영웅’은 칸으로 이동하는 타일 형식 기반의 SRPG 게임.
캐릭터의 이동 범위가 늘어나면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해지니,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
특히, 탱커가 얻으면 사기인 스킬이다.
아군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이동, 방어 스킬을 펼칠 수 있으니까.
레제의 포지션은 탱커가 아닌 딜러. 하지만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다.
앞서 말했듯, SRPG 게임에서 이동 거리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왜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냐고?
‘이러나저러나 서로 한 방인데 무슨 의미가 있니.’
레제는 공격 대상이 될 시 전장을 이탈하는 특성을 가진 캐릭터임과 동시에.
적도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는 캐릭터다.
공격 이후 도망치는, 거리를 벌리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라는 뜻이다.
그런 캐릭터에게 [번개 질주]라니.
레제에게 이것만큼 무의미한 스킬도 없을 거다.
‘이동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조금 더 빨리 공격을 가할 수는 있겠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의미가 없어진다. ‘기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격 범위에서 3스택이 쌓이기 전에 벗어나야 했던 악마의 편린.
역오망성의 불이 전부 켜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공격을 가해야 했던 비네스.
앞으로도 그런 기믹을 가진 악마들이 등장하는데, 레제 혼자 돌격해서 선공을 가한다?
토끼 구이 되기 딱 좋았다.
‘공격 관련 스킬을 얻었다면…… 레제의 활동 가능 수명이 늘어났겠지. 그럼 후반부에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빠라바라밤~!
축하합니다! 레제가 ‘조금 빠른 개복치 토끼’로 진화했습니다!
-라니. 글러 먹어도 한참을 글러 먹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이렇게 빨리 깨달을 줄이야. 유약한 외견과 달리 속은 단단한 아이로구나.”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레제를 칭찬하기 바쁜 아도니스와 루나였다.
“으, 으아아…….”
그 사이에 낀 레제가 양손을 어정쩡하게 든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기쁜가 보네.’
머리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바보털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쪽지 시험 이후 새로운 우수반이 발표됐을 때, 레제가 말했었지.’
-뭔가…… 뭔가 이상해요. 가슴 어딘가가…… 가, 간질간질한…… 벅차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성취감.
각고의 노력 끝에 목표를 이뤘을 때 느끼는 감정. 그리고 인정받았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
처음 느끼는 성취감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레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레제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거였다.
생애 두 번째 성취감을.
‘뭐, 어쩔 수 없나.’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아쉬움을 털어 냈다.
좋은 스킬을 얻지 못한 게 레제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확정된 스킬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후후, 두 분 다 축하드립니다. 힘든 훈련이었는데 잘 버티셨군요.”
“헹! 이 정도야 껌이지.”
“마, 맞아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루, 루나 양과 함께라면……요.”
레제야, 뒷말은 풀벌레처럼 작아서 들리지도 않았어.
뭐, 루나가 듣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제로, 섭섭하구나. 나에 대한 칭찬은 없는 것이냐?”
반짝반짝-.
아도니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댁이 왜 칭찬을 받아? 내가 스킬을 얻은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나는 노인을 공경하는 착한 아이니까.
아도니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던 때였다. 루나가 내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끼어들었다.
“무슨 칭찬? 제로가 너한테 칭찬을 왜 해 줘야 하는데?”
“훈련을 도와주지 않았느냐. 적어도 감사 인사는 해야지.”
“흐응~ 훈련을 도와? 그게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루나의 말대로였다.
현재 아도니스는 빅토리아를 맡길 사람을 찾고 있는 상태.
루나와 레제를 훈련시킨 것도 내 호감을 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루나답지 않은 날카로운 지적이로군.’
우리 루나도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하게 된 걸까? 그렇다면 마구 칭찬해 줄 텐데.
우리 딸이 많이 컸구나.
마음속으로 아빠의 눈물을 훔치던 때였다.
“나랑 친구 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감사 인사를 왜 해?”
“……뭐라?”
“선심 쓰는 척 훈련을 도와준 다음 친구 하자고 손을 내밀 생각이었겠지. 내가 그 음흉한 속내를 모를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난 눈치가 굉장히 빠른 사람이니까!”
……루나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아도니스가 너랑 친구를 왜 해!?
노인과 친구를 먹겠다니. 한국에서도 못 들어 본 참신한 패륜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잘해 주려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래, 그동안 뭔가 오해를 했던 거겠지. 그래서 오자마자 우리 레제를 못살게 괴롭혔던 거고.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깨달은 이후, 우리와 친구를 하고 싶어진 거겠지. 다 알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만?”
“아니긴! 제로는 워낙 멍청하니 손쉽게 속여넘길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야! 난 눈치가 굉장히 빠른 여자거든!”
눈치가 너무 빨라서 나이도 빨리 먹은 걸까? 그렇다면 아도니스와 친구를 먹어도 이상할 건 없을 거다.
패륜아라는 딱지는 붙겠지만.
“친구…… 물론 못 해 줄 것도 없지. 하지만 네 잘못을 한 번의 도움으로 퉁치려는 그 행동이 너무 역겹네. 선심 쓰는 척하며 대가를 원하다니. 그래서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어!”
“…….”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더 노력할 수 있도록! 이상!”
띵-.
아도니스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어이를 상실한 나머지 기절한 듯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겠지. 레니아의 딸이 저런 왈가닥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딱딱하게 굳은 아도니스를 훈련장 문밖에 내놨다.
정신을 차리면 알아서 이동할 것이다.
아도니스를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던 때였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카론이었다. 제국의 시궁쥐이자, 배드 엔딩 메이커, 비즈니스 파트너, 그리고 로리콘까지.
참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남자다.
“후후, 별일 아닙니다. 작은 사고가 있었을 뿐.”
“아도니스 님이 선 채로 기절했는데 별일이 아니라니. 그 건방짐은 여전하구나.”
미안하지만 진짜 건방진 건 내가 아니라 루나였단다. 너도 루나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들으면 기절할걸?
돌로 변한 아도니스와 카론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던 때였다.
“……아도니스 님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소식은 들었다. 제법 수완이 좋구나.”
“후후, 이게 다 제가 잘난 덕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그래서 이렇게 건방을 떠는 거였어.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죄를 지었다고?
어디 보자, 최근에 내가 지은 죄가…….
“잘생긴 게 죄가 된다니. 제국법은 무시무시하군요.”
“하핫.”
카론이 웃었다. 평상시라면 건방 떨지 말라며 곧장 내 머리를 쥐어박았을 텐데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잘생긴 건 객관적인 카론이 보기에도 사실이라는 뜻?
‘그럼, 그렇지. 아무리 못생겨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바퀴벌레처럼 보이겠어?’
마주 웃으며 카론을 바라봤다. 카론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활짝.
“…….”
그제야 깨달았다.
카론이 저기압이라는 걸. 그것도 심각한.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 예를 들면…… 신기한 검이라거나?”
아, 깜빡했다.
성검에 대한 정보를 숨긴 이후, 카론과의 첫 만남이라는 걸.
카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잠시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구나. 최근 새로운 식당을 개업했거든.”
새로운 식당. 고문실을 말하는 거다.
하나만 있어도 괜찮은 고문실을 왜 계속 늘리는 걸까?
“후후,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새로운 식당에 가면 죽는 병을 앓고 있다고.”
“새로운 식당에 가면 죽는 병이라…… 한번 사용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구나. 내일 저녁쯤에 방문해 주거라. 그때는 이미 헌 식당으로 바뀌어 있을 테니.”
응, 그렇지. 식당이 다른 사람의 피로 물들어 있을 테니까.
헌 식당이라면 헌 식당이지.
“후후, 하루 만에 헌 식당이 되어 버린다니. 가성비가 상당히 안 좋은 식당이로군요.”
“걱정 말거라. 널 위해 새로 도입한 신식 장비는 아껴둘 테니.”
날 위한 고문 기구를 장만해 둔 상태라니.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새로운 음식도 연구했단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아니, 둘 다 죽는 음식을.”
둘이 먹다 둘이 죽으면 그게 무슨 음식이야! 독약이겠지!
“후후, 사실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 죽는 병을 앓고 있…….”
따악!
눈앞이 번쩍하더니 머리에서 적잖은 통증이 느껴졌다.
카론이 내 머리를 쥐어박은 거다.
“정보를 숨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런 정보를 숨겨?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물어보지 않으셔서 대답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성검을 갖고 있느냐?’라고 물으셨다면 바로 말씀드렸을 텐데요.”
“…….”
따악!
또다시 눈앞이 번쩍했다. 나처럼 귀여운 아이를 때리다니.
아동 폭행범이 따로 없었다.
“오해하지 마라. 사실 나는 건방진 아이를 두들겨 패는 병을 앓고 있거든. 그러니 이건 아동 폭행이 아니다. 병이 발병한 거지.”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딨습니까!”
“그럼 새로운 식당에 가면 죽는 병이나 새로운 음식을 먹는 병은 말이 되고? 태어났을 때는 모든 게 처음이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논파(論破)!
멋진 논리였다. 문제는 내가 논파를 당했다는 거지만.
팔을 들어 올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막아? 그건 네 몸이 아니더냐?”
카론이 양손으로 꿀밤을 먹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진짜 아동 폭행범이야!
그렇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때였다.
“……다음부터는 나한테 먼저 말해라.”
“예?”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네 비밀을 알게 하지 말란 뜻이다.”
음…… 어딘가 어감이 이상했다.
내가 정보를 숨긴 걸 탓하지 않았다.
성검을 숨긴 게 불만이 아니라 아도니스에게 먼저 공개한 게 불만이라는 것처럼.
‘설마…… 질투하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 없다. 카론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살인 전차.
슬픔과 기쁨도 모르는데, 질투라는 감정을 품을 리가 없다.
“아무튼, 다음부터는 무조건 내게 먼저 말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후후, 노력하겠습니다.”
“…….”
카론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카론 선생님이 당연히 1순위죠. 우리는 비즈니스 파트너 아닙니까? 후후후!”
그제야 카론이 주먹을 내렸다.
건방진 아이를 두들겨 패는 병이라니. 진짜 무서운 병이다.
“새로운 정보는 없느냐?”
“별일은 아니지만…… 아도니스 님이 루나 양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별일이 아니라 큰일인 것 같다만.”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더군요. 한번 얘기를 해 보심이 어떻습니까?”
카론이 굳어 있는 아도니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도니스는 아군인가 아닌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후후, 저한테 살짝 귀띔해 주신다면 대신 떠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뭘 말이냐?”
“카론 선생님과 레스터 가문의 관계 말입니다. 그것만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한번 떠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이제 그만 말해 주시지요. 귀여운 루나 양을 위해서라도요. 후후후!”
카론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카론의 주위를 기웃거리며 압박을 가했다.
뭘까, 뭘까? 응?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얼마나 맛있는 스토리길래 이렇게까지 숨기는 거야?
“……하아.”
따악!
카론이 내린 대답은 간단했다.
한숨과 함께 내 머리에 혹을 하나 더 만드는 것.
머리에 가득한 혹을 주무를 때였다.
드르륵-.
루나가 훈련장 문을 열고 나왔다.
“응? 여기서 뭐 해?”
“후후, 카론 선생님께서 식당을 개업하셨다고 하는군요. 선생이 겸업이라니. 교육자로서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새로운 식당? 나도 갈래. 아니, 거기서 파티를 열자. 우리가 강해진 기념 파티!”
음…… 파티가 벌어지긴 할 거다.
그게 우리의 피와 살점으로 얼룩질 파티라는 게 문제라서 그렇지.
“후후, 기대되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 말은 카론에게 닿지 않았다.
카론은 이미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돌처럼 굳은 아도니스를 옆구리에 낀 채.
* * *
카르파티아에 있는 낡은 성당. 한 노파가 머리를 땅에 박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죽여 주십시오, 제발.”
가족을 희롱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도 모자라, 죽음마저 모욕하며 즐긴 그 악마들…… 아니, 그보다 더한 인간들을.
“제발 죽여 주십시오. 제게 주셨던 임무도 이렇게 해냈으니…….”
카르파티아를 지키던 신비의 힘. 그 신비를 부수는 데 성공한 노파였다.
힘들었지만 해냈다.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는 신체 일부와 남은 수명 전부였지만.
노파의 수명이 1분 남은 순간.
그곳에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여성이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슬퍼 말거라. 네 의지는 우리가 이을 것이니.”
“오, 오오오…….”
여성의 손이 닿자 노파의 몸이 작은 나무로 변했다.
칠흑과도 같은 검은 나무.
이 나무는 주변의 생명을 빨아먹으며 점차 성장해 나갈 것이다.
완벽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비네스, 슬퍼 말렴.”
그렇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정체.
사천왕 중 한 명이자, 사역의 어머니라 불리는 리즈벨트였다.
“아가야, 너를 위해 최고의 장례식을 열어줄게.”
그래, 이건 전쟁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전쟁이라는 그런 저열한 단어로 치부하는 건 이들에게 큰 실례를 범하는 일이니까.
그렇다. 이건 비네스를 위한 장례식이자, 노파를 위한 추도식.
카르파티아 침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