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54)
제254화
254화. 카르파티아 침공(10)
[땅의 악마 아몬가를 처치했습니다.] [‘땅의 기운’을 획득합니다.] [카르파티아 방어전이 끝날 때까지 최종 대미지 +10%.]또르륵-.
구슬 하나가 내 발치로 또륵 굴러왔다.
구슬을 집어 태양을 향해 치켜들자 구슬이 빛나며 매끄러운 자태를 뽐냈다.
황토색을 띤 구슬. 이게 바로 ‘땅의 기운’이다.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파티원의 최종 대미지를 10%나 올려주는 사기 아이템.
땅 이외에도 바람의 기운과 불의 기운이 존재하며, 기운 한 개당 최종 대미지에 10%가 가산된다.
구슬 세 개를 얻으면 최종 대미지가 무려 30%나 증가한다는 뜻이다.
아이템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일종의 버프라고 봐도 무방했다.
‘뭐, 이번 에피소드에 한해서지만.’
카르파티아 방어전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구슬이 재로 변하며 인벤토리 창에서 자취를 감춘다.
참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카르파티아 방어전 한정이긴 하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파티원에게도 함께 적용되는 버프.
충분히 ‘사기’라고 말할 수 있는 버프다.
‘뭐, 그렇다 해도 마벨가를 죽인 유저는 아무도 없었지만.’
마벨가의 1만이라는 실드량.
+30%에 달하는 사기적인 버프로도 부수는 게 불가능했다.
‘기운을 모으는 것. 마벨가를 위해 만든 기믹이잖아? 그런데 왜 못 죽이는 거야?’
개발자의 설정 오류다, 우리가 죽이지 못한 마벨가가 강해져서 게임 후반부에 등장할 거다, 신의 농간이다! 등.
유저들 사이에서 갖가지 주장이 터져 나왔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마벨가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유저들은 하나둘 마벨가를 포기하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장에서 얻는 히든 피스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라면서.
맞는 말이었고, 나도 그들의 의견에 수긍했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포기했고, 마벨가를 죽이려는 도전자는 단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바로 나지.’
나는 처음부터 마벨가 공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도전, 도전. 그리고 또 도전하는 것.
그게 바로 게임의 묘미 중 하나니까 말이다.
마벨가는 아카데미 루트를 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존재이다 보니 수만 번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5천 번은 넘게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 축에 속하지. 그럼, 그럼.’
그리고 그 수천 번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회.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신의 모방]으로 모방한 각종 가문의 비기, [칠흑], 대미지 상승 칭호, 수상하게 공격력이 높은 개복치 토끼.여기에 세 마리 악마를 모두 공략, +30%라는 대미지가 추가된다면?
1만이라는 아성을 충분히 넘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떠올린 비밀무기도 하나 있고.’
해본 적이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본다면 ‘허용’될 가능성이 컸다.
‘그 애한테 조금 시달리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뭐, 이런 건 어디까지나 마벨가를 마주하고 나서의 일이다.
지금 중요한 건 2구역과 3구역의 악마를 처치하고 ‘바람의 기운’과 ‘불의 기운’을 획득. +30% 버프를 얻는 것.
그리고 그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것.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반으로 예쁘게 갈라진 아몬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레벨은 안 올랐네. 뭐, 지금 내 레벨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얻은 거라고는 이번 에피소드에서만 적용되는 +10% 버프. 그리고 경험치 조금.
하지만 나는 그 외에도 얻을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었다.
[포식].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투명 슬라임을 죽이고 얻은 스킬이자 히든 피스.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크게 활약할 스킬이기도 했다.
반으로 갈라진 채 땅에 널브러진 아몬가.
절단면에서는 [칠흑]이 일으킨 검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놈의 한쪽 몸에 손을 댄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포식.”
아몬가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더니, 내 몸속으로 순식간에 밀어닥쳤다. 그와 동시에.
[포식의 힘으로 ‘땅벌레 소환’ 스킬을 획득합니다. 등급이 F로 낮춰집니다.] [땅벌레 소환 : F]-땅벌레를 소환합니다.
“…….”
[땅벌레 소환]. 말 그대로 땅벌레를 소환하는 스킬이다.좋은 스킬이냐고?
“땅벌레 소환.”
두드득-!
“뀨?”
엄청나게 작은 땅벌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는 약 10cm. 나 같은 실눈을 하고 있는 특이한 땅벌레였다.
그렇다. 보면 알겠지만 이건 엄청난 사기 스킬…….
‘……일 리 없잖아! 이런 쓰레기 게임 같으니!’
개쓰레기. 그것도 개쓰레기 중의 개쓰레기 스킬이었다.
아몬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쓸모없는 스킬이자, 이 게임에서 최하위 랭킹 1~2위를 다투는 스킬.
그게 바로 [땅벌레 소환]이었다.
‘스톤 샤워 같은 사기 스킬은 바라지도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나처럼 착한 사람한테 이런 개쓰레기 스킬이 주어지는 걸까.
물론 열심히 키우다 보면 방패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땅벌레는 커 봤자 큰 땅벌레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정보창.’
[제로의 땅벌레 Lv. 1]-제로가 소환한 땅벌레다.
제로와 다르게 귀엽다.
HP : 100
보유 스킬 : 단단해지기
뭔가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다.
“후후, 망했군요.”
“뀨?”
땅벌레가 나를 바라봤다. 나도 땅벌레를 마주 바라봤다.
음…… 계속 보다 보니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축 처진 실눈이 참 매력적인 아이…… 아니, 벌레였다.
“후후,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이것도 인연인데 잘 지내보는 수밖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뀨뀨!”
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놈이다.
손을 뻗어 땅벌레를 쓰다듬으려던 때였다.
“앗! 제로! 위험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루나. 그녀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내 땅벌레를 발로 뻥 차버렸다.
“뀨우우우우-!”
반짝-.
그렇게 땅벌레가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휴우…… 땅벌레가 아직도 남아있었다니. 큰일 날 뻔했네. 제로, 아무리 작아도 방심하면 안 돼. 내가 없었다면 어쩌려고 그랬어?”
어쩌긴 뭘 어째? 땅벌레랑 오순도순 잘 살았겠지!
이 살인마! 아니, 살충마……!
‘뭐,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HP가 0이 되면 마계로 돌아가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일종의 소환수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루나의 뒤로 두 명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테르온과 다이크였다.
그들의 시선이 반으로 갈라진 아몬가에게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칠흑]이 남긴 불길은 사그라든 상태였다.
“뭐야, 이미 처리한 건가?”
“…….”
둘의 시선이 제법 따갑다.
필사적으로 변명을 떠올리던 때였다.
루나가 얼굴을 하늘로 올리며 콧대를 높였다.
“포메이션Z를 훌륭하게 수행했네. 역시 내가 자랑하는 부하다워!”
“제로가 혼자 해치우는 게 작전이었다는 거냐?”
“보면 몰라? 포메이션Z의 Z는 제로의 Z를 말하는 거라고.”
“그런 거였나……. 방심했군. 내 실수다.”
어이, 어이!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고! 너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하지만 테르온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 바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테르온의 경계심이 심해진다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해지거나 더 많은 악마의 힘을 끌어 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내 가치를 떨어뜨려야만 한다.
“후후, 바위를 떨어뜨린 게 최후의 발악이었나 봅니다. 아니 글쎄…… 톡 치니 쓰러지지 뭡니까.”
“흠? 그런 것치고는 꽤 큰 상처인 것 같은데.”
테르온이 아몬가의 사체를 살폈다. 반으로 쩍 갈라진 아몬가의 몸.
음…… 그래도 저 정도면 ‘톡 쳤다’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일격인가…… 내 주먹으로도 뚫지 못하는 피부를 이렇게 쉽게 가르다니. 역시 훌륭한 솜씨야.”
응, 전혀 아니구나? 참 각박한 세상이다. 저 정도면 봐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손가락으로 친 거랑 검으로 가른 거랑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특히 지금 같은 그 뻔뻔함. 나는 평생이 가도 가질 수 없는 재능이지. 내가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칭찬이겠지?
“후후, 과찬이십니다.”
“뭐, 그래도 조금 섭섭하긴 하구나. 이렇게 같이 싸울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건 아니니 말이다.”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테르온에게 알려주고 싶다.
얼마 뒤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안달 나는 싸움을 시작하게 될 테니까.
응? 그건 테르온의 말과 다른 의미라고?
내 알 바냐?
“테르온 님, 부상자들이 상당합니다.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제로, 난 먼저 가보겠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천천히 오도록 해라.”
툭툭-.
내 등을 두어 번 두들긴 테르온이 떠났다. 당장 2구역으로 향해야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테르온의 사냥개. 다이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다이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테르온의 뒤를 곧바로 따라갔어야 하는 아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않았다.”
“예?”
“나는 지지 않았다. 나도 처음부터 단번에 벨 수 있었어.”
다이크의 눈이 빛났다.
투지, 그리고 호승심. 그리고 질투.
세 감정이 섞인 오묘한 눈빛이었다.
테르온에게 칭찬받은 나를 질투하는 걸까?
참 귀여운 녀석이다.
“후후, 다이크 군. 그렇게 날 세우지 마십시오. 다이크 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래요…… 팀플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친구와 한 팀플레이요.”
“……친구라니. 적을 함께 해치운 사이에 불과하다.”
“글쎄요? 친구라고 말해야지만 친구인 게 아닙니다.”
같이 적을 물리친다.
그게 바로.
“친구라는 겁니다.”
착각일까? 다이크가 살짝 몸을 떤 것 같았는데.
“……시간이 아깝군. 네 궤변에 어울릴 생각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린 다이크가 훌쩍 떠났다.
같이 싸운 이후에는 친구가 된다는 임시동맹의 마지막 클리셰.
장난삼아 그걸 입에 올렸을 뿐인데 저런 사나운 반응을 보이다니. 클리셰는 역시 클리셰에 불과한 모양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방금 저놈에게 친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음, 그러고 보니 루나를 잊고 있었다.
친구에 미친 아이. 그리고 그런 루나에게 항상 따라붙는 클리셰, ‘물어뜯기’.
클리셰를 피해 가야 한다. 조금 전 자리를 뜬 다이크처럼!
“후후, 착각이십니다. 제 친구는 루나 양 하나뿐이니까요.”
“흐응~ 그래. 역시 그렇지? 너한테 친구는 나밖에 없지?”
루나가 빙긋 웃었다. 천사와도 같은 웃음이었다.
클리셰를 피하는 데 성공한 거다. 역시 클리셰는 클리셰에 불과한 모양이다.
“하나만 더 약속해 주면 더 좋겠는데. 친구와의 약속은 절대적이라는 거. 알지?”
“후후,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만…… 루나 양의 말이니 맞겠죠. 뭘 원하십니까?”
“네 친구는 영원히 나 하나뿐이야. 자, 어서 약속해.”
루나가 나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천사와도 같은 미소를 띤 채.
인생을 살면서 친구를 하나만 가지라는 건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루나라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후후, 하늘이 맑군요. 보십시오. 우리의 밝은 내일을 뜻하는 것 같지 않나요?”
뚜둑-.
하지만 난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루나가 내 목을 아래로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음, 뭔가 영원히 올려다볼 수 없는 몸이 된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나를 봐. 아니, 나만 봐. 하나뿐인 친구잖아?”
“지, 진정하십시오. 루나 양 그거 아십니까? 지금 눈이 맛이 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약속이 더 중요하지. 자, 걸어. 새끼손가락을 걸면 네 친구는 영원히 나 하나뿐인 거야.”
루나가 내 새끼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엄청난 힘이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침착하자. 루나는 힘에 비해 지능이 살짝 모자라는 아이.
평소처럼 루나를 속여넘기면 된다. 내 화려한 언변으로!
“새, 새끼손가락은 절대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겁니까!”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여기서 탈룰라를 시전한다고?
말문이 턱 막혔다. 탈룰라라니. 루나의 엄마를 모욕하지 않는 이상 넘어갈 방법이 없었다.
카론과 루시아, 아도니스를 농락한 내 언변으로도 탈출이 불가하다니.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스토커에게 감금당해 생을 마감하는 최악의 클리셰로……!
“넌 내 거야.”
루나의 한쪽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서로의 새끼손가락이 마주한 순간이었다.
“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끼익!”
철퍼덕-.
우리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오던 레제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