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256화. 카르파티아 침공(12)
“흥!”
앞서가던 루나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칫!”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루나가 다시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핏!”
그러더니 돌멩이를 차면서 또 한 번 이상한 비음을 내뱉었다.
“흥!”
‘흥, 칫, 핏!’이라는 말과 함께 계속 뒤를 돌아보는 기이한 행동의 반복.
루나의 기행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됐다.
그 기행이 스무 번 정도 반복됐을 즈음.
나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보기로 했다.
‘혹시…… 삐진 건가?’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항상 당차고 씩씩한 아이. 그게 바로 루나란 아이 아닌가.
그런 루나가 삐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루나가 삐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를 물어뜯거나 두들겨 패면 모를까.’
‘삐진다’라는 단어는 루나의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흥!”
다시금 뒤를 돌아본 루나.
나는 그런 루나를 바라보며 웃었고,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뭘 봐? 사람 처음 봐?”
……루나가 삐져도 아주 단단히 삐졌다는 걸.
그렇다. 지금 루나는 온몸으로 자신이 삐졌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다.
원체 잘 삐지지 않는 루나이다 보니, 그 사실을 알아채는 게 살짝(?) 늦고 말았다.
그래, 루나가 삐졌다는 건 이제 알겠다. 그런데…….
‘왜 삐진 건데?’
삐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가 1구역에서 한 거라곤 아몬가를 처치한 것뿐인데, 삐질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진짜 미스터리였다.
애초에 삐졌다는 사실도 눈치 빠른 나여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리라.
“흥, 칫, 핏!”
좋지 않았다. 머지않아 2구역에 도달하는 상황.
이 게임에는 ‘혼란’이라는 상태 이상이 존재하는데, 혼란에 빠진 캐릭터는 컨트롤이 불가능해지며 제멋대로 행동한 후 턴을 마치게 된다.
상대의 스킬이나 대화를 통한 도발,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혼란’이라는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되는데.
‘지금 루나가 딱 그 상황이란 말이지.’
앞에 말했던 ‘특별한 경우’.
파티원 사이에서 심각한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간간이 ‘혼란’ 상태 이상이 발생하곤 했다.
‘루나의 스펙은 준수한 편이야. 다른 때라면 그냥 전투에 임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크로가의 [윈드 스피어]는 아군을 일격에 기절시키는 스킬.
전투가 시작된 이후에 루나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즉, 2구역에 도달하기 전에 루나가 삐진 이유를 알아내고 기분을 풀어 줘야 한다는 건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침착하자. 하나씩 퍼즐을 맞춰 보는 거야.’
머릿속에서 퍼즐이 펼쳐졌다. 루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퍼즐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퍼즐을 하나씩 끼워 넣었다.
전투, 테르온파, 아몬가, 시간, 그리고 레제.
작은 퍼즐 하나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볼 수 있었다.
살짝 어깨를 내린 채, 돌멩이를 찾아 발로 걷어차는 루나의 뒷모습을.
‘뭐야, 그런 거였어?’
제법 어려운 문제였다. 루나학을 마스터한 나를 고심하게 만들 정도로.
하지만 이 명탐정 제로를 속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인 법이니까!
헐레벌떡 달려 루나의 곁으로 향했다.
“후후, 루나 양. 이제 알겠습니다. 100% 이해했어요.”
“……뭐를?”
“루나 양이 삐지신 이유 말입니다.”
“누, 누가 삐졌다는 거야?”
“후후, 아닌가요? 그럼 토라진 거로 하죠.”
“……그게 그거잖아.”
루나가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자신이 삐졌다는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루나의 기분이 벌써 풀렸다는 것을.
“흠흠, 삐진 게 아니라 살짝 기분이 상한 거라고. 뭐…… 이제라도 알았다면 다행이지만.”
“후후, 너무하셨습니다. 티를 조금 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마터면 끝까지 모를 뻔했지 뭡니까?”
“미안. 아무튼,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루나가 내 팔뚝을 주먹으로 살짝 쳤다.
평상시의 루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좋다.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다.
“후후,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부터 시정할 생각입니다.”
“흐응~ 그렇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역시 내가 첫 친구로 삼을 만해.”
루나의 입술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기분이 완전히 풀렸다는 뜻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여자의 마음까지 완벽히 파악하다니.
‘역시 나는 대단하단 말이지.’
스스로를 칭찬하던 때였다.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지금부터 시정하겠다는 건 무슨 뜻이야? 지금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후후, 당연하죠.”
품에서 주먹밥 하나를 꺼냈다.
식당의 히든 피스, ‘앤우드 아카데미 특제 주먹밥’.
맛도, 영양도, 모양도 훌륭한 주먹밥이다.
루나의 마음에 아주 쏙 들 거다.
“배가 고프셨던 거죠?”
“……응?”
“배가 고파서 기분이 나쁘셨던 거 아닙니까. 제가 먹을 걸 챙겨 놨다는 건 어떻게 아시고…… 정말 루나 양은 개코라니까요.”
엄청난 감동을 받은 것일까. 루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내가 삐진 이유가…… 배고파서라고?”
“음?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내가 무슨 돼지인 줄 알아!?”
루나가 주먹밥을 휙 던졌다.
이럴 수가! 내 소중한 주먹밥이!
루나가 주먹밥을 던진 곳으로 내 몸을 내던졌다.
들판을 구르긴 했지만, 힘껏 몸을 던진 결과 주먹밥을 무사히 사수할 수 있었다.
“흥!”
코웃음을 친 루나가 다시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쿵! 쿵!’ 땅이 울릴 정도로 크게 발을 구르면서.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아까보다도 더.
‘배고파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럼 왜 삐진 거지?’
원래 안 삐지는 애가 저러니 더 무섭다.
차라리 평소처럼 두들겨 맞을 때가 좋았다.
몸은 아파도 마음은 편했으니까.
“흥! 칫! 핏!”
쿵! 쿵!
아까보다 더 심각해진 루나의 기행.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걷던 때였다.
“제로! 루나 양!”
2구역의 조장, 유리디아.
그녀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손까지 흔들면서.
“1구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던데…….”
“후후, 악마가 나타났었습니다.”
“아, 악마요?”
유리디아의 눈이 커졌다.
후방에 악마가 나타났다는 것도 놀랍지만, 우리가 무사히 이곳에 온 게 더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악마를 해치웠다는 뜻이니까.
슬쩍 루나의 눈치를 살폈다. 루나가 삐진 이유.
1구역에서 활약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그렇다면…….
“후후, 막 처치하고 오는 길입니다. 루나 양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지 뭡니까.”
“억지로 추켜세울 필요 없거든? 혼자 해치웠으면서 무슨…….”
루나가 픽 웃음을 흘렸다. 칭찬 전략도 안 통하다니.
비상, 초비상이다.
“루나 양, 괜찮으세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부상이라도 입으셨나요?”
“……아니니까 신경 꺼.”
루나가 유리디아를 휙 지나쳐 갔다.
걱정해 주는 유리디아에게 차갑게 굴다니. 참 못난 딸내미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루나를 좋아하는 유리디아지만, 이 아이도 사람이다.
차갑게 대한다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기회를 이용해 루나와 유리디아의 사이를 이간질한다면…….’
유리디아가 주도하는 ‘사응동’의 활동에 큰 제약을 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멍한 표정으로 루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유리디아.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후후, 너무하군요. 걱정해 주는 유리디아 양에게 저런 차가운 태도라니.”
“…….”
“괜찮으십니까? 아니, 당연히 안 괜찮겠죠. 가끔은 저도 힘든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이래서 잘해 주기만 하면 안 됩니다. 버릇이 나빠지거든요.”
이간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이간질.
하지만 유리디아의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내기에는 충분할 거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쌓아 나간다면…… 유리디아도 깨닫게 되겠지.’
루나는 사실 성질이 더러운 아이라는 걸.
그리고 루나가 나에게 하는 건 애정 표현이 아닌, 실제로 물어뜯는 거라는 걸.
언젠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고, 그건 ‘사응동’을 해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응동’의 해체. 그 아름다운 날을 꿈꾸던 때였다.
유리디아가 양손을 올리더니,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아아, 행복해라.”
“……?”
“평소 착한 루나 양이 저렇게 차가운 태도를 보이다니. 아아, 착한 루나 양도 좋지만…… 저런 얼음 같은 모습도 나쁘지는 않네요.”
유리디아의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나는 그런 유리디아와 슬쩍 거리를 벌렸다.
변태. 그것도 매도당하는 걸 즐기는 변태다.
변태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쉰다는 건 정상인인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흥!”
저 멀리서 나와 또 한 번 시선을 마주친 루나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모습을 본 것일까.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아내던 유리디아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흐응~ 그렇군요. 루나 양이 왜 저러는 건가 했더니…… 토라진 거였군요? 그 이유는 물론 제로 군이고요. 착한 루나 양을 토라지게 만들다니…… 또 무슨 잘못을 하신 거예요?”
쟤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니?
그리고 착한 루나라니. 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다.
“후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세상에나…… 그렇군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셨네요.”
“……?”
“눈치가 너무 없는 나머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거죠. 연인 관계에서 이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없는데…… 큰일이네요.”
확실히 유리디아의 말대로였다.
삐진 이유를 모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쳐다보는 것뿐이다.
물론 우리가 연인 관계라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나에게 유리디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유리디아 양의 말을 들어보니 제 잘못이 맞는 것 같군요.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호호! 드디어 이 연애 천재, 유리디아가 활약할 타이밍이군요. 좋아요, 우선 1구역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볼까요?”
* * *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루나 양이 왜 저러는 걸까요?”
1구역에서 있었던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털어놨다.
그리고 유리디아가 웃으며 내놓은 대답은.
“음~ 모르겠는데요?”
……였다.
연애 천재라며! 근데 모르면 어떡해!?
“후후, 연애 천재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실망이 크군요.”
“흐응~ 제가 연애 천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다만, 정보가 부족했을 뿐이에요.”
“……정보요?”
“예. 예를 들면…… 둘 사이에 있었던 은밀한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유리디아가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응, 그렇구나. 그냥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구나?
유리디아의 얼굴을 손으로 쭉 밀어냈다.
“흥!”
언덕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루나.
그녀가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입술이 앞으로 쭉 튀어나와 있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내 손가락 사이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리디아가 흥얼거렸다.
“흐응~ 역시 그런 거였군요. 루나 양은 쿨해서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랑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니까요?”
“이유를 아시겠다는 겁니까?”
“뭐, 대충은요.”
아까와 달리 힘이 있는 말투였다. 루나가 삐진 이유를 정말 알아낸 모양이었다.
“후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나 양과 화해를 하고 싶거든요.”
“싫은데요.”
“……?”
“지켜보는 게 재밌을 것 같은 탓도 있지만요…… 이건 스스로 깨닫는 게 두 분에게 더 도움이 될 거 같거든요. 이 연애 천재의 말이니 믿으세요.”
알려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치솟아 오르는 짜증에 머리를 벅벅 긁자, 유리디아가 빙긋 웃음을 흘렸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루나 양이 집착하는 것. 그것과 연관이 있답니다.”
루나가 집착하는 것? 몇 개 없다.
레스터 가문, 친구, 먹을 것, 강해지는 것, 그리고 또…….
‘없네?’
내가 루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아니라, 이것 말고는 없었다.
이게 루나의 전부이자, 그녀의 세계였다.
유리디아가 준 힌트를 다시 한번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투콰앙!!
귀를 울리는 굉음. 동시에 들판에 큰 크레이터가 생겼다.
먼지구름이 살짝 가라앉자, 2구역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먼지 사이에서 빛나는 불길한 눈동자를.
“악마……!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세요!”
시작됐다. 7번째 턴이자, 두 번째 악마와의 싸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