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57)
제257화
257화. 카르파티아 침공(13)
[7턴] [2구역에 바람의 악마 크로가가 등장했습니다.]“크하하하하! 인간 놈들! 모조리 죽여 주마!”
부우웅-!
진부한 대사를 내뱉으며 모습을 드러낸 바람의 악마 크로가.
그와 동시에 수십 마리의 벌레가 하늘을 물들였다.
정식 명칭은 ‘바람벌레’지만, 생김새는 우리가 아는 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수다.
굳이 다른 점을 하나 꼽자면…… 벌레 하나하나가 사람만 한 덩치를 자랑한다는 것 정도?
응? 그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니라 많이 다른 거 아니냐고?
그런가?
“벌레형 마수다!”
“안 돼! 난 알레르기가 있다고!”
“저 크기면 그 전에 죽을걸? 독 이전에 물리기만 해도 죽을 거라고!”
아이들이 혼란에 빠진 그 순간, 한 여자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로운터 가문의 기재이자, 마법 천재.
유리디아였다.
화르륵-!
키에에에엑!
진홍빛 불길이 바람벌레 몇 마리를 집어삼키더니, 전장이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로운터 가문 특유의 진홍빛 마나.
적을 벌하는 빛이자, 아군에게 용기를 심어 주는 빛이었다.
“다들 침착하세요! 벌레일 뿐입니다. 연습대로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모두 위치로!”
그제야 아이들이 하나둘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실드!”
“포스 해머!”
유리디아파는 마법사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세력이다. 손쉽게 바람벌레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개연성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건 우리 쪽이지.’
차분하게 전장을 살폈다.
바람의 악마 크로가와 여덟 마리의 바람벌레.
그리고 열 개가 조금 넘는 바위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게임과 똑같은 모습을 한 전장. 하지만 상황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바위를 미리 옮겨 최적화 루트를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드웨너가 일으킨 나비 효과.
HP가 100%인 아몬가를 상대하느라 너무 많은 턴을 소모하고 말았다.
게다가 바람벌레는 근접 공격이 불가능한 공중 몬스터.
손이 부족한 만큼, 턴도 많이 잡아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2구역은 카르파티아 침공에서 가장 많은 턴을 소모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최적화 루트는 이용할 수 없지, 바람벌레를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은 적지, 루나는 말썽이지.
총체적 난국.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 스킬’이라면 지금까지 낭비한 턴을 한 번에 따라잡을 수 있다.
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바람벌레를 제거하는 것. 그게 최우선 과제.
‘우선 바람벌레를 공략한다.’
응? 우리 쪽 인원이 너무 적어서 바람벌레를 잡는 데만 한 세월인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현재 내 파티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캐릭터는 레제 하나뿐.
애초에 2장인 지금 원거리 캐릭터가 많은 게 더 이상하다.
그걸 의식해서일까. 제작진이 만들어 둔 특별한 장치가 하나 있었다.
“유리디아 님! 저희가 돕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모두 고마워요. 미안하지만 힘을 좀 빌릴게요.”
[유리디아파의 마법사 1, 2가 일시적으로 파티에 합류합니다.]로브를 깊게 눌러쓴 아이 두 명이 파티에 합류했다.
파티원이 5명 이하일 시 발동하는 히든 피스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파이어 볼]과 [아이스 볼]이 전부지만.
“파이어 볼!”
“아이스 볼!”
키이익-!
둘이 힘을 합치면 바람벌레 한 마리를 잡아낼 수 있는 우수한 전력이었다.
쉬이익-! 펑!
어디선가 날아온 마나탄에 바람벌레 한 마리가 사라졌다.
어찌나 빠르고 강력했는지, 바람벌레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정신을 차렸나 보네.’
들판에 눕혀 놨던 레제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이동, 곧바로 바람벌레를 저격하는 걸로도 모자라 한 방에 보내다니.
생각보다 훨씬 잘해 주고 있는 개복치 토끼였다.
“파이어 랜스!”
화르륵-! 투콰콱!
키이이이익!
진홍빛으로 불타는 창이 바람벌레의 몸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바람벌레 세 마리가 죽음을 맞이한 거다.
게다가 우리 쪽에는 아직도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두 명이나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두 명이 잉여라는 거지만.
“아오! 이리 안 내려와? 치사하게 하늘에 있지 말라고!”
루나가 하늘에 검을 붕붕 휘둘렀다.
그렇다. 나와 루나.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근접 공격’ 캐릭터니까.
[일섬]을 사용한다면 공격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루나 양, 이동을 우선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왕건이가 중요한 법이니까요.”
“시끄러워! 내가 알아서 해!”
[현재 ‘루나’는 혼란 상태입니다.] [명령할 수 없습니다.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행동합니다.] [‘루나’가 제멋대로 행동을 개시합니다.]예상대로 루나는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일단 내버려 두자.’
어차피 근접 캐릭터인 루나는 전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몸.
[윈드 스피어]만 조심하게 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다.부우웅-!
‘남은 바람벌레는 다섯 마리. 거리가 멀어 이번 턴에 처리할 수는 없겠군.’
한 턴 한 턴이 아쉬운 상황에서 바람벌레를 먼저 잡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저놈은 추가적으로 벌레를 소환하지 못하거든.’
[땅벌레 소환]이라는 스킬을 가진 아몬가와 달리, 크로가는 소환 관련 스킬을 갖고 있지 않았다.즉, 남은 다섯 마리의 바람벌레가 크로가의 전부라는 뜻.
그리고 둘째.
‘유리디아의 캐스팅이 끊기면 곤란하니까.’
지금까지 낭비한 턴을 한 번에 따라잡을 수 있는 전략.
그 중심에는 유리디아가 있었다.
쉬쉭-!
바람처럼 유리디아의 옆으로 이동,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후후, 유리디아 양. 작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만…….”
“부탁이요?”
“예, 지금 당장 ‘데몬 슬레이브’를 캐스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데몬 슬레이브].유리디아의 가문인 로운터 가문의 금지된 마법이자, 캐스팅에만 무려 5턴이 소모되는 마법.
심지어 남아 있던 모든 마나를 소모해 발동하는 마법이기에, 이후에 마법사인 유리디아를 무쓸모한 존재로 만드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력은 확실한 스킬이지.’
크로가에게 [데몬 슬레이브]를 맞출 수만 있다면 ‘턴’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캐스팅에만 무려 5턴이 소모되는 스킬이니 지금부터 캐스팅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유리디아에게 접근한 거였다.
“제로 군이 하시면 되잖아요?”
훌륭한 주장이다. 비네스가 아카데미를 습격했을 당시, 내가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똑똑히 본 유리디아니까.
하지만 현재 나는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할 수 없는 몸이다.
‘현재 신의 모방에 저장해 두지 않은 상태거든.’
[데몬 슬레이브]가 강력한 스킬이긴 하지만, 5턴이라는 캐스팅 시간은 너무 길었다.루시아와 아도니스.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들과 맞서 싸우기에 적합한 스킬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로 인해 [데몬 슬레이브] 대신 다른 스킬을 저장하게 되었고, 현재 [신의 모방] 슬롯에는 [데몬 슬레이브]가 없는 상태였다.
“…….”
유리디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때는 잘만 사용하던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괜찮다. 아주 훌륭한 변명거리를 마련해 둔 상태니까.
“후후, 제게 마법은 살인이니까요. 함부로 사용해서는 곤란합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무엇보다 보는 눈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제가 로운터 가문의 금지된 마법을 사용한다라…… 사람들이 저희 사이를 오해할지도 모르겠군요.”
움찔!
유리디아가 몸을 움찔 떨었다.
내가 그녀와 똑같은 마법을, 그것도 로운터 가문의 금지된 비기를 사용한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속닥거릴 것이다.
‘저 둘은 대체 무슨 사이일까?’라고.
“그, 그런 헛소문이 퍼질 리 없어요. 루나 양과 제로 군은 아카데미 공식 연인이잖아요.”
우리가 공식 연인이라고? 대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후후, 연인 관계라는 게 절대적이라면 바람이나 불륜이라는 단어가 왜 존재하겠습니까?”
“제로 군! 그런 망언을……! 당장 취소하세요!”
“가정을 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유리디아 양처럼 매력적인 사람을 거부하는 멍청이는 이 세상에 없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매력이 넘치는 여자 유리디아, 친구를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했구나’라고.”
“그, 그게 무슨! 그럴 리 없어요!”
하지만 유리디아의 그런 생각과 달리, 벌써 오해는 쌓여 가는 중이었다.
유리디아파의 마법사 1, 2가 우리 쪽을 바라보며 속닥거리기 시작한 거다.
“귓속말? 가까워 보이네.”
“게다가 길어. 은밀한 대화…… 마치 연인 같은걸?”
“연인? 설마 그럴 리가. 유리디아 님은 우리 ‘사응동’의 회장이시잖아. 그럴 리가 없어.”
“원래 바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법이라지.”
속닥속닥-.
웅성웅성-.
자와자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요?”
유리디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친구인 루나를 배신하는 걸로도 모자라 연인을 빼앗는 악녀가 바로 자신이라니!
촤촥!
유리디아가 나와 거리를 벌렸다. 게임으로 치자면 타일 3칸 정도?
“거, 거기서 말하세요. 앞으로 저와는 최소 3m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세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하지 않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한 상황.
유리디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데몬 슬레이브라. 뭐……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가문에서 금지한 마법이긴 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까요. 사거리를 확보한 이후 곧바로 캐스팅을 시작할게요.”
“후후, 감사합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이요?”
척!
유리디아가 검지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는 루나가 있었다.
“루나 양과 화해를 한다면요.”
“예?”
“말 그대로예요. 루나 양과 화해하세요. 그럼 그 부탁을 들어드리죠.”
유리디아야, 그게 무슨 소리니? 악마를 잡기도 바쁜데 화해를 언제 해?
“후후, 악마를 처치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사랑이 우선이죠! 어떻게 그 당연한 걸 왜 모르실 수가 있죠?”
글쎄. 내가 봤을 때는 너 빼고 다 악마를 잡는 게 먼저라고 할 것 같은데.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게임에서도 느꼈지만, 생각보다 더 이상한 애다.
[8턴]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8턴. 크로가의 기믹, [윈드 스피어]가 처음 발동하는 턴이다.
[윈드 스피어]는 2턴마다 발동하는 스킬이다.즉, 홀수 턴에는 전진과 공격을, 짝수 턴에는 이동과 엄폐를 하는 것.
이게 바람의 악마 크로가의 공략법이었다.
‘우리가 이번 턴을 종료하면, 크로가의 윈드 스피어가 날아올 거다.’
한 사람에게 하나씩 날아가는 ‘전체 공격기’이기에 바위 뒤에 엄폐하는 게 필수다.
슈우웅- 퍼엉!
바람벌레 한 마리가 레제의 공격에 스러졌다.
네 마리의 바람벌레가 남았지만, 제법 거리가 떨어진 상태이기에 유리디아와 마법사들은 공격할 수가 없었다.
공격조가 행동을 끝마친 상황. 고개를 하늘로 들고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모두 바위 뒤로 몸을 숨기십시오! 레제 양도요!”
“뭐 하러 그래? 저따위 녀석 내가 단칼에…….”
쿠콰콰콰콰콰콰-!!
바람이 전장에 휘몰아쳤다. 동시에 우리가 숨어 있는 바위에 바람의 창이 꽂혔다.
무형의 바람. 하지만 그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그 정도로 엄청나게 밀집된 바람이었다.
“……벨 수 있지만 특별히 이번만은 참아 주기로 하겠어!”
……그래, 루나야.
참아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