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58)
제258화
258화. 카르파티아 침공(14)
[9턴]“흥! 네 말에 따른 건 절대 아니거든?”
루나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윈드 스피어]의 무서움을 알았으면서도 저런 태도라니. 삐져도 아주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루나 양, 화해합시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무슨 화해?”
“삐졌지 않습니까!”
“아, 안 삐졌거든? 나, 난 그렇게 속 좁은 여자가 아니라고!”
그래도 양심은 있는 걸까. 루나가 말을 잔뜩 더듬었다.
“대체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려 주셔야 사과를 하든 할 텐데요.”
“나도 몰라, 이 바보야!”
두다다-!
빽 소리를 지른 루나가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제멋대로 행동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바위 뒤에 자리 잡았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벌써 9턴인가.’
홀수인 턴이므로 바위 뒤에 숨지 않아도 괜찮은 턴이지만, 어차피 루나는 공중 공격이 불가능한 몸.
크로가가 있는 쪽을 향해 전진했으니 턴을 낭비한 건 아니었다.
‘남은 바람벌레는 네 마리…….’
슈우우우우- 퍼엉!
바사삭-.
아니, 세 마리 남았다. 레제가 바람벌레 한 마리를 먼지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는 마법사 듀오의 힘에 의지하려 했는데…… 레제의 활약이 상상 이상이네.’
바람벌레를 한 방에 보내 버리는 위력도 놀랍지만, 일명 포지셔닝이라 불리는 ‘위치 결정 능력’이 더 놀라웠다.
전장 이곳저곳에 있는 바위는 우리만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바람벌레도 이용할 수 있었다.
“제길! 치사하게 바위 뒤로 숨다니!”
“위치가 좋지 않아. 어떡하지? 이동할까? 아니면 저놈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까?”
마법사 듀오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유리디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위 근처로 이동했지만, 바람벌레에게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에잇! 이 바위만 아니었어도!”
그리고 이건 레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높다란 바위는 저격의 가장 큰 장애물.
그런데 빗맞히기는커녕 쏘는 족족 저승으로 보내 버린다.
사거리, 장애물, 적의 이동 방향, 다음에 자리 잡아야 할 곳 등. 모든 걸 계산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거다.
‘100%의 적중률만 해도 사기적인 능력인데…… 모든 턴에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포지셔닝이라니.’
‘포지셔닝의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문제라면 도망의 천재이기도 하다는 것 정도?
빠드득-.
이동을 끝마쳤을 때였다. 발아래로 무언가가 밟혔다.
바람벌레의 잔해였다. 레제의 마나탄에 의해 목숨을 잃은 놈이었다.
“…….”
언젠가…… 아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저 꼴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착각이겠지?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우리 토끼에게 얼마나 잘 대해 줬는데!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화장실 모래는…… 안 갈아 주긴 했네.
‘음…… 앞으로는 조금 더 잘해 줘야겠다.’
내 목숨을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활약하는 아이에게 상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스칼렛을 시켜 희귀한 당근 씨라도 좀 얻어 와야겠다.
물론,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만.
[10턴]어느새 10턴째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유리디아가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하는 것.
모든 소망과 사랑을 담아 유리디아를 바라봤다.
“쯧쯧쯧.”
하지만 유리디아는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거릴 뿐이었다.
루나와 화해를 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는 뜻이다.
슈우우우우- 투쾅!
레제의 마나탄이 또 한 마리의 바람벌레를 박살 냈다.
원래는 나도 함께 바람벌레를 제거할 계획이었지만.
‘바람벌레는 버린다.’
남은 두 마리는 레제와 마법사 듀오로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루나와 화해, 유리디아가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하게 하는 것.
“…….”
루나를 바라보자, 내 쪽을 힐끗거리고 있던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루나도 내가 달려올 걸 알고 있는지, 이동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 상태였다.
차분히 루나가 이동을 끝마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 느려 터진 인간 놈들 같으니! 다 죽어라!”
참다못한 크로가가 [윈드 스피어]의 시전을 알렸다.
아니, 느긋하게 3시간 정도는 기다려 줘도 되지 않니?
턴에 시간 제한이 존재한다니. 참 빌어먹을 게임이다.
타닥-!
루나가 앞쪽의 바위를 향해 땅을 박찼다.
나도 곧장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바람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초감각]도 계속해서 나에게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제로, 구른다!
데굴데굴-.
투콰콰콰콱!!
땅을 구르는 내 뒤를 따라 바람의 창이 연달아 박혔다.
콰곽!
[초감각]이 조용해진 건 바람의 창이 바위에 박혔을 때였다.안전지대에 무사히 도착한 거다.
‘휴우…… 겨우 살았네. 어라?’
힘들게 일어설 필요도 없었다. 루나가 내 멱살을 움켜쥐더니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야! 너 미쳤어?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후후, 루나 양이 조금 빨리 움직이셨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요.”
“네가 스토커 짓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스토커는 내가 아니라 너잖니, 루나야.
결국 시선을 마주하고 말았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내 멱살을 놓은 루나가 고개를 휙 돌렸다.
“루나 양, 이제 말해 주십시오. 왜 삐지신 겁니까?”
“아닌데? 삐지지 않았는데? 전~혀 삐지지 않았거든?”
그러면서도 끝까지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심지어 눈에 물기까지 차올랐다.
“혹시…… 제가 레제 양과 친하게 지내서 그러신 겁니까?”
루나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렇다. 사실 나는 루나가 삐진 이유를 알아차린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제 때문만은 아니야. 내가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낸 탓이겠지.’
로델린, 알렉스, 레이몬, 테르온, 다이크, 유리디아, 빅토리아, 아도니스, 여기에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레제까지.
대화하는 사람이 꽤 많이 늘어났다. 그만큼 루나와 대화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친구를 잃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루나를 계속해서 괴롭혔고, 그게 이번에 폭발한 거였다.
뭐, 유리디아의 힌트도 조금은 도움이 됐다. 아주 조금은.
“그래, 했어! 둘이 친하게 지내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루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나보다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안 했잖아. 이 바보야…….”
역시 그런 거였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신호를, 삐졌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고 있었는데 왜 나는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말을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떻게 그래. 이건 내 성격이 거지 같아서 생긴 일인데.”
내가 친구가 많은 건 내가 잘나서.
루나 자신에게 친구가 적은 건 자신이 못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때리는 대신 삐진 태도를 선택한 것도 루나 나름대로 노력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려 달라고. 어서 와서 말을 걸어 달라고.
내가 진짜 친구이자, 첫 번째 친구라는 걸 사람들한테 알리라고.
“이, 일단 먼저 가. 이럴 시간 없잖아. 어서 악마를 잡아야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루나가 정신없이 닦아 냈지만,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알겠어, 이제 다 알겠다고.
전부 눈치 없는 내 잘못이었다.
“저도 질투 납니다.”
“응?”
“루나 양에게도 친구가 있지 않습니까. 레제 양이라는 친구가요.”
손을 들어 루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저나 루나 양이나. 앞으로 친구가 계속 늘어날 겁니다. 서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겠죠.”
“……그렇겠지.”
“그래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저와 루나 양은 영원히 친구고…….”
“친구고?”
“서로에게 첫 친구라는 것. 그건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친구가 생겨도 변하지 않습니다.”
“……!”
그렇다. 루나는 내가 첫 번째 친구.
그리고 나에게도 루나가 첫 번째 친구였다. 게임 속 세상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이자, 소중한 동료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루나가 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누, 누가 그걸 몰라? 전투 중에 그런 말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너 진짜 바보니?”
“후후, 말해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번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바보! 멍청이! 죽기는 누가 죽는다는 거야! 누가 그렇게 내버려 둔대?”
루나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절대 잃지 않겠다는 것처럼.
“……내 허락 없이는 죽을 생각도 하지 마. 알겠어?”
“후후, 명심하겠습니다.”
루나의 뒤쪽. 저 멀리에서 유리디아가 엄지를 척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눈물과 코피를 줄줄 쏟고 있었다.
‘역시 사랑은 아름다워요’라는 입 모양과 함께.
“루나 양.”
“왜?”
“우리 이제 화해한 겁니다?”
“뭐래? 처음부터 안 싸웠거든? 진짜 친구는 싸움 같은 거 하지 않아!”
역시 우리 루나는 시원시원해서 좋다.
루나를 껴안은 채, 유리디아를 향해 빙긋 웃으며 신호를 보냈다.
[11턴]유리디아가 눈을 감은 채 집중에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보다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붉은 자여…….”
시작됐다.
[데몬 슬레이브]의 캐스팅이.* * *
3구역.
사제복을 입고 있는 아이 몇 명이 병사와 함께 부상자를 이송했다.
“빅토리아 님, 부상자를 확보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 치료하세요. 부상이 심각하다면 저를 부르시고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시선은 한참 전부터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가 있는 곳. 정확히는 1구역과 2구역 쪽이었다.
신성력이 풍부한 빅토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흐음~ 사악한 기운이 가득하군요. 악마가 나타난 게 확실한 것이에요.”
빅토리아가 부채 뒤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테르온, 유리디아와 세력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이긴 하지만 저들도 자신이 보듬어야 할 제국민.
저대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빅토리아파는 하나하나가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사제다.
악마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명령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지휘관은 어디로 간 거죠? 무능한 사람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잖아요?’
앤우드 아카데미의 총장이자, 이번 1학년의 지휘를 맡은.
이 세계의 돈키호테 드웨너.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이놈이 어딜 가는 게야! 저쪽, 저쪽이라고!
말에서 내리지 못한 채 숲속으로 향하던…… 아니, 끌려가던 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말 무능에도 정도가 있죠. 아도니스 님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만…….’
아도니스와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도니스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현재 그는 침식을 막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콰릉-!
성에서 간간이 내리치는 번개가 말하고 있었다.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는 걸.
‘솔직히 말해…… 앤우드 아카데미생의 목숨과 카르파티아 방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누구나 카르파티아를 선택하겠죠.’
카르파티아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 영민한 빅토리아가 모를 리 없었다.
빅토리아가 체통도 잊은 채 손톱을 까득 깨물었다.
‘아도니스 님이 없는 지금,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건 바로 이 몸, 빅토리아예요.’
제국민을 보듬고 보호하는, 황녀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맡은 구역을 비우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 최소한의 인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계산을 마친 빅토리아가 지시를 내렸다.
“1, 2, 4구역에 다섯 명씩 파견하도록 하세요.”
“열다섯 명이나요? 그랬다간 이곳의 방비가 허술해질 겁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아요. 적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빅토리아 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로부터 13분쯤 흘렀을까.
빅토리아파의 진형 앞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들판 여기저기서 온몸이 불타는 불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들판이 불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크하하하하! 인간 놈들! 살려 달라고 빌어 보거라…… 응?”
세 번째 악마이자, 불의 악마 발람가.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었다.
‘사제들이잖아……?’
그렇다. 누가 봐도 사제들이었다.
사제복도 그렇지만, 마기와 상극인 신성력이 그들의 몸에서 뿜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음…… 저기…… 안녕하십니까? 발람가라고 합니다.”
악마의 정중한 인사. 그에 아이들이 반갑게 화답해 주었다.
저마다 무기를 하나씩 꺼내 드는 것으로.
철컥- 철그럭-.
검, 창, 도끼, 철퇴 등. 갖가지 무기가 그들의 손에 자리했다.
성국이 모시는 여신 가이아는 폭력을 막는 게 아닌, 장려하는 신.
여신의 교리를 따르는 아이들이 살벌한 무기를 갖고 다니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빅토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품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악마의 가죽을 벗긴 후 정화와 연마, 축복의 과정을 거쳐 만든 최고급 채찍.
그 모습을 본 발람가가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저……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지나가도 괜찮을까요?”
그에 대한 빅토리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랍니다.”
촤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