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26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8)
“악마! 악마!”
“네~ 네. 오늘 만나러 갑니다. 그러니까 진정하세요, 앵무 군.”
기숙사를 나서자마자 맞이한 앵무새의 환대.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늘 공략에 성공할 확률은 반반이니까.
“20년 동안 잘 참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작 오늘 하루를 못 참으시는 건 아니시겠죠?”
지나가던 학생이 나를 ‘미친놈이다’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슬슬 피했다.
하지만 내 행동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앵무새는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던 앵무새가 점잖게 외쳤다.
“악마!”
“후후, 좋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세요.”
앵무새가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오늘의 공략 성공 확률은 반반.
최대한 변수는 차단하고 싶었다. 그게 앵무새라도 말이다.
‘악마의 편린은 장난이 아니니까.’
악마의 편린은 강하다.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안전장치를 몇 개 해 놓긴 했지만, 이런 식의 공략은 처음.
그것도 에피소드1에 도전하게 되다니.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재밌겠어.’
물론, 희열로 인한 떨림이었다.
아무도 해 보지 못한 기상천외한 공략을 떠올렸다는 것.
그걸 처음으로 사용한다는 것.
처음이지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극한의 환경까지.
기쁠 수밖에 없다.
내가 변태인 게 아니라, 고인물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빨리도 나왔군.’
저 멀리 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왼쪽 옆구리에 진검을 차고 온 루나의 모습.
역시 루나는 저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
“루나 양.”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더워 죽는 줄 알았네.”
확실히, 루나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늦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10분이나 일찍 나왔다.
그렇다면 루나는 대체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걸까.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겁니까?”
“응? 3시간 전쯤…… 아, 아니! 방금 나왔거든!?”
“아하, 그러시군요.”
“지, 진짜거든! 왜? 누가 너랑 노는 날을 기대하기라도 했을까 봐?”
그럼 왜 3시간 전부터 나와 있는데?
누가 두고 가기라도 할 줄 알았나.
심지어 평소처럼 성질도 안 부린다.
오늘이 오기를 손꼽아 기대했다는 것이리라.
‘사랑의 감정은 아니야.’
100% 우정 쪽이다.
저번 주 광장에서 아이들과 놀았던 게 상당히 즐거웠던 모양이다.
루나의 입장에서 오늘은 친구와 두 번째로 노는 날.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조금 미안해진다. 오늘은 놀려고 만난 게 아니니까.
“흐, 흥! 고마워하라고. 귀중한 주말에 시간을 내서 놀아 주는 거니까.”
“후후, 제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놀아 주시는 겁니까? 그러면 질문권을 안 드려도 되겠군요.”
“응? 그야 당연하잖아. 친구랑 노는데 왜 대가를 받아?”
“…….”
그래, 그렇지. 친구 사이에 대가는 좀 그렇지.
문제는 오늘의 놀이가 악마 사냥 놀이(?)라서 그래.
쿡쿡!
음,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찌른다.
억지로 놀이라고 치부해 봤지만, 안 되는 건 역시 안 되는 거였다.
“지, 질문권을 드리겠습니다.”
“응? 싫어. 그런 거 필요 없는데?”
“아닙니다! 오늘 놀이가 끝나면 꼭 질문하세요!”
“아, 싫다니까? 왜 이래! 들러붙지 마!”
루나의 다리에 매달린 채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시작된 루나의 발길질.
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뜰 것만 같은…….
삐빅-!
“불건전한 이성 교제는 벌점 사유다!”
로델린이 좋은 타이밍에 나타났다.
덕분에 새로운 취향에 눈 뜨지 않을 수 있었다.
“얘가 달라붙은 것뿐이라고요. 보세요.”
“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구도로군. 제로 군, 어서 떨어지게. 여자아이의 다리를 붙잡는 건 변태뿐이니까.”
“변태는 맞는 것 같아요, 선배님.”
“으음, 그런가.”
루나와 로델린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둘의 얼굴에 경멸이라는 감정이 깃든다.
음, 뭔가 또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뜰 것만 같은 느낌.
그 전에 재빨리 일어서는 나였다. 난 변태가 아니니까.
“후후, 반갑게 맞아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공과 사는 구분하는 몸이다. 뭐, 허언과 망상에 불과한 말에 반응해 준 것 자체가 내 실수기도 하고.”
루시드 일가가 악마의 저주에 걸렸다는 것.
로델린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물음이었다.
저건 루시드가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반드시 숨겨야만 하는 비밀이니까.
“반성해야지.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을 테니까 말이야. 잠시 긴장이 풀어진 모양이야. 자네에게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로델린이 속한 루시드가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파벌을 만들지 않고도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명가.
로델린은 부담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것이다.
“후후, 그러니 제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야. 책임감이라는 건 귀족만의 특권이 아니니까. 제로 군도 뭔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거겠지.”
좋다, 아주 좋다.
고결하고 합리적인 캐릭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존중해 줄 줄이야.
앞으로 웬만한 일은 ‘후후, 비밀입니다’로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음, 그럼 이제 일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지. 순찰하는 동안 꼼꼼히 살펴봤지만, 침식의 흔적으로 보이는 건 찾지 못했다네.”
“후후,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소문을 추적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소문?”
“예, 침식이나 악마에 관한 소문 말입니다.”
“음, 하지만 너무 방대하군. 아카데미로만 공간을 한정 짓는다고 하더라도…… 너무 방대해.”
잠시 생각에 잠긴 척 연기를 시작했다.
‘악마의 편린’이 있는 공간을 추측해 내는 과정.
그 진행 루트를 완벽히 꿰고 있는 나였으니까.
그걸 로델린에게 자연스럽게 떠먹여 주기만 하면 된다.
“후후, 20년 전의 사람으로 한정한다면 어떻습니까?”
“……20년 전?”
“예, 앵무 군이 그쯤부터 존재했다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로델린 쪽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머릿속은 아마도 이런 상태일 거다.
침식의 프로토타입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어떤 이유로 유출이 되며 앵무새에게 흔적이 남았다.
앵무새가 나타난 건 약 20년 전쯤.
내뱉는 말은 악마, 위험, 지켜, 구해 줘, 도와줘 등.
독특한 단어지만 ‘악마’라는 말은 그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하다.
만약, 앵무새가 악마라 부를 수 있는 존재와 마주했고, 도움을 청하는 거라면?
하지만 짐승과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20년 전쯤 아카데미에 있었던 사건이나 당시 머물던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 말이군.”
“후후, 정확합니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박수가 절로 터져 나올 정도의 추리력이다.
“제로 군이 힌트를 주지 않았나. 그걸 들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추리였다네.”
나는 말없이 루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응, 저기 있네. 아주 간단한 추리도 못 하는 애.
‘건강하게 쑥쑥 크기만 하렴.’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도 느끼는 나였다.
* * *
건물 관리원과의 대화.
“20년 전? 그때 완전 난리였지. 성검이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용사님의 성검 말씀이십니까?”
“그래. 100년 넘게 뽑히지 않던 성검이 감쪽같이 사라졌지. 남은 건 성검이 뽑히고 남은 흔적뿐이야.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네. 폐쇄 구역이 된 지 오래거든.”
하녀장과의 대화.
“이건 그때 돌던 소문인데…… 학생 한 명이 같이 실종됐다는 말이 돌았었지.”
“실종이요? 그렇다면 아직도 찾지 못했단 말입니까?”
“당시 조사단들은 성검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거든. 게다가 소문에 불과하기도 했고…….”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의 이름은요?”
“기억이 안 나. 워낙 오래전 일이라…….”
로델린이 침음을 흘렸다.
학생의 실종 여부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그때 학생회 간부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로델린이 서류를 뒤적였다.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였다.
부학생회장이기에 손쉽게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뭐, 난 저런 거 없이도 찾아낼 수 있지만.’
수천 번이나 반복했던 히든 피스의 루트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할머니와 대화를 하면 끝이다.
“이제 마지막이군. 아카데미에 가장 오래 머무신 분이야.”
“저기 있는 저분 같군요. 응……?”
화단에 서 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옆에는.
‘레이몬?’
순수악 느그 레이몬이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
“레이몬 군?”
“아…… 제, 제로! 아, 안녕! 서, 선배님도 안녕하세요!”
레이몬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예의 바른 청년이다. 물론, 입은 그렇지 않지만.
“야! 난 안 보이냐?”
“아…… 루, 루나! 미안. 너무 작아서 그만…….”
“이, 이게! 너 진짜 죽어 볼래!?”
“왜, 왜 화를 내요……. 나,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걸. 너 진짜 작아요.”
루나가 레이몬의 멱살을 휘어잡고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로델린이 루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음,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홀홀, 오늘은 손님이 많네. 다들 반갑구먼.”
“혹시 20년 전에 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악마라거나…… 성검이라거나…….”
“20년 전이라…… 악마에 대한 소문이 돌긴 했었지.”
“지금 악마라고 하셨습니까?”
로델린이 다급히 다가오며 되물었다.
“그래. 검고 삐죽한 무언가를 봤다는 사람이 많았어. 흔적을 못 찾아 잠잠해졌지만.”
“그렇군요. 실종으로 추정되는 사건도 있었다던데요.”
“실종 추정이 아니라 실종이 맞는다네.”
“예?”
“내가 그 아이를 자주 봤거든.”
“그런! 이름이 뭡니까?”
“이름은 말 안 해 줘서 몰라. 친구가 없는지 매일 혼자 떠돌았지. 앵무새와 함께 다니는 신비한 아이였어.”
로델린의 시선이 하늘을 떠도는 앵무새에게로 향했다.
역시 똑똑한 아이다.
“신고를 왜 안 하셨습니까!”
“수도 없이 했지. 하지만 누구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네. 학생부의 기록이 사라졌거든. 분명 누가 손을 썼다는 거겠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엄청난 불명예지. 그것도 지켜 줘야 하는 학생이 사라졌다? 누구라도 없던 일로 하고 싶었을 걸세.”
“그, 그런…….”
로델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더러운 놈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학생 한 명의 기록을 말소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었을 거다.
“학생회에 속해 있나 보군. 그렇지?”
몸을 크게 떤 로델린이 손으로 선도 명찰을 가렸다.
그런다고 가릴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창피해할 필요 없네. 자네의 잘못이 아니지 않나.”
“그래도…… 죄송합니다.”
“이 일을 듣고도 땅에 묻는다면 그걸 죄송해해야지. 어때, 이 늙은이의 말을 믿고 그 아이를 찾아 주겠나?”
“당연한 일입니다. 부학생회장직을…… 아니,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고맙네.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구먼.”
할머니에게서 등을 돌리자마자 로델린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학생의 죽음을 묻은 자들이 귀족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리라.
‘이제 추리하는 시간만 가지면 끝이군.’
정보를 취합해 추리한 후, ‘그곳’으로 가면 이제 전투 시작이다.
자리를 뜨려던 때였다.
“그런데 저 아이와 아는 사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