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61)
제261화
261화. 카르파티아 침공(17)
“헤, 헤헤. 오, 오해였군요? 지, 진작 말씀하시지 않고…….”
레제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웃는 걸로 넘길 수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웃음이 나오십니까!”
“히, 히이이이익! 자, 잘못했어요!”
현재 내 얼굴은 시퍼런 멍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레제가 활시위에 걸어 날린 수십 개의 나무토막.
개수도 개수지만, 적중률이 미쳤다. 양팔로 막아도 옆으로 휘어 들어와 얼굴을 때렸다.
그 결과, 내 얼굴은 개판이 되고 말았다.
이게 사람 얼굴인지 아니면 보라색 슬라임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였다.
“제 잘생긴 얼굴이 엉망이 됐잖습니까! 책임지십시오!”
“어, 얼굴은 원래 이, 이상했잖아요……?”
“뭐라고요!?”
“히, 히이이이익! 더, 더러운 얼굴 들이밀지 마세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
레제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싹 갖다 붙이며 속삭였다.
“애초에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제가 루나 양을 괴롭힌다니. 반대라면 모를까.”
“루, 루나 양이 그럴 리 없어요. 그, 그리고 아까 울린 거 다 봐, 봤거든요!”
바위 뒤에서 루나와 화해할 때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 멀리서, 그 난리통에서 바람벌레를 저격하는 와중에도 우리가 하는 짓을 다 보고 있었다니.
놀라운 전장 파악 능력이다.
“사, 사과하세요.”
“예?”
“루, 루나 양한테 사, 사과하시라고요!”
레제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시선은 땅을 향해 있었다.
소심한 성격의 레제이니 이 정도로도 대단한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놈의 토끼가 진짜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렇게 대들지?’
나한테는 건방진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오랜만에 정신 교육을 해 줘야 할 듯했다.
“후후, 레제 양. 잠시 저 좀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깊이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지 뭡니까.”
“시, 싫다면요?”
“어쩔 수 없죠. 직접 데려가는 수밖에.”
“에……?”
레제를 옆구리에 장착(?)했다.
레제가 토끼다운 매서운 뒷발 공격을 날렸지만, 이미 내 옆구리에 단단히 낀 상태.
내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갑시다. 카론 선생에게 전수받은 끔찍한 고문…… 아니, 행복한 고문이 있거든요.”
“두, 둘 다 고문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요.”
“고, 고문을 당하는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전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행복해진다고는 말한 적 없습니다만?”
“에……?”
그렇다. 고문받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고문을 가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적인 놈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그 고문자가.
“바로 저랍니다. 제 행복을 위해 레제 양을 고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끼, 끼이이이이익!”
상황을 알아차린 레제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레제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며 루나의 눈치를 살폈다.
음…… 이쯤 되면 루나가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반응이 없다.
루나도 고문에 동의한다는 걸까?
“아하하!”
그때였다. 루나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거품을 물기는커녕 웃으며 자지러지기 바빴다.
뭐지? 새로운 공격법인가?
방심을 유도한 뒤, 순식간에 달려들어 내 머리통을 씹어 먹으려는 걸지도 모른다.
루나의 눈치를 살피던 때였다. 루나가 손가락으로 살짝 새어 나온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아하하! 역시 친구 사이는 이래야지. 둘의 사이가 좋아져서 다행이야.”
고문을 하기 위해 끌고 가는 중인데 사이가 좋아 보인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레제 못지않은 이상한 아이였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정상인은 나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후후, 성장하셨군요.”
“응?”
“아까는 자기보다 더 친해지지 말라며 눈물을 펑펑 쏟으셨잖습니까.”
“내, 내가 언제 그랬어!”
“나보다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안 했잖아. 이 바보야아~.”
목소리를 높여 루나의 성대모사를 했다. 그러자 루나가 곧장 달려들었다.
“다, 닥쳣!”
뚜두둑-!
루나의 목 꺾기. 내 목이 왼쪽으로 45도 정도 돌아갔다.
음, 익숙한 시야다. 예전에는 이렇게 수업을 듣곤 했었지.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보아하니 3구역에도 악마가 나타난 모양인데.”
저 멀리 보이는 3구역.
눈부신 신성력과 함께 화염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후후, 당연히 가야죠.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1구역으로 이동한다.
-3구역으로 이동한다.
-현재 구역에 머무른다.
정비 타임마다 주어지는 선택지.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선택지를 눌렀다.
내가 선택한 건 ‘3구역으로 이동한다’였다.
“저, 저 같은 의지 박약아는 아, 안 가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레제의 말.
그런 레제를 땅에 살포시 내리며 속삭였다.
“후후, 이 세상에는 토사구팽…… 아니, 악사토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마의 사냥이 끝나면 토끼는 잡아먹는다는 뜻이죠.”
“그, 그런 끔찍한 말이!”
“하지만 레제 양도 알고 있듯, 저는 인자한 사람입니다. 이번에 레제 양이 큰 공을 세우신다면 ‘특별히’ 살려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먼저 3구역에 도달해서 저격에 좋은 장소를 선점한다든가?”
“끼, 끼이이이익!”
상자를 덮어쓴 레제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주위와 동화된 레제는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췄다. 그 모습을 본 루나가 중얼거렸다.
“레제가 평소보다 신나 보이는걸?”
“그 반대일 수도 있죠.”
“응?”
“무리하는 거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계속되는 악마와의 싸움에 정신줄을 놔 버린 거다.
나에게 대드는 것도 그 일환이지 않을까?
“좋은 시험대가 되겠군요.”
“시험대? 이 정도면 통과 아닌가? 솔직히 나보다 더 많은 활약을 했잖아?”
아니, 아직 한참 멀었다. 공격 대상이 될 시 도망가는 특성도 그렇지만.
‘그 많은 공격에서 크리티컬이 한 번도 터지지 않는다니.’
불만이라기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안 그래도 강력한 레제의 공격이다. 그런데 저기서 크리티컬이 터진다면?
‘총으로 폭탄을 쏘는 거나 마찬가지지.’
벌레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질 거다. 악마도 마찬가지일 거고.
땅벌레와 바람벌레를 한 방에 죽여 버리는 레제의 위용을 떠올리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음…… 어쩌면 나도 그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는걸?’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레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상자와 함께 자연환경에 녹아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리가 제법 되는지, [초감각]도 레제의 존재를 감지해 내지 못했다.
‘갑자기 날 쏠지도 몰라. 지금의 레제는 미친 개복치 토끼니까.’
쏠~ 수 있어!
-라고 말하며 울부짖는 레제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루나의 뒤에 황급히 몸을 숨기던 때였다.
“시험대라…… 불합격한다고 쫓아내는 건 아니지?”
시험이라는 말이 불안했던 걸까. 루나의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그건 아닙니다. 아직 연구할 가치가 있거든요.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토끼라고 생각합니다.”
“레제는 연구용 동물이 아니거든? 뭐, 기회를 더 줄 생각이라니 됐어. 우리도 빨리 가자. 구하러 가야지!”
루나가 내 손을 잡아끌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루나의 말이 맞다. 빨리 구하러 가야 한다.
빅토리아한테 얻어맞고 있을 불쌍한 악마를.
* * *
[17턴]3구역에 도달하자마자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떠오르며 우리의 행동이 강제로 제지당했다.
16턴에 2구역을 돌파한 우리다.
17턴은 오롯이 이동에 소모되는 턴이니, 제지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턴은 18턴부터야.’
문제는 3구역의 악마인 발람가가 22턴에 사라진다는 거다.
사용할 수 있는 턴이 많아야 5턴이라는 뜻이다.
촉박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으아아아아! 이 더러운 인간 놈들이!”
3구역의 악마 발람가는 비명을 내지르기 바빴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3구역의 담당은 성국에서 파견한 빅토리아파. 그것도 폭력을 사랑하는 가이아 여신을 따르는 신도들이다.
연약한(?) 악마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죽어라! 파이어 필드!”
파이어 필드. 이게 바로 불의 악마 발람가의 기믹이다.
턴마다 자신의 주변으로 10칸. 캐릭터 체력 기준으로 20%의 대미지를 입힌다.
화염 계열의 마법이다 보니 마법 저항력이나 속성 저항력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2장 초반부인 지금 그런 걸 갖고 있는 아이가 있을 리 없다.
전장이 불타오르자 아이들이 하나둘 비명을 내질렀다.
“으윽! 또다시 불길이!”
“여신님이시여!”
“서로를 치료해라!”
아이들이 서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파는 전원이 체력 회복 스킬, [힐링]을 사용할 수 있는 성직자.
그리고 이게 바로 발람가가 고통받고 있는 이유였다.
“크아아아악! 이, 이 더러운 놈들! 너희들이 바퀴벌레랑 뭐가 다르단 말이냐!”
발람가가 땅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성직자들의 피가 100%에서 조금도 줄지를 않았으니까.
[18턴]“응? 제로 군? 그리고 루나 양?”
18턴이 되자 빅토리아가 우리를 인지했다.
“후후, 도움을 주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저쪽은 정리가 됐나 봐요?”
“대충은요. 부상자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보내 준 성직자들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 호호호! 역시 저예요. 제로 군이 생각하기에도 대단한 선견지명이었죠?”
빅토리아가 얼굴을 치켜들며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음, 일단 그런 걸로 하자. 빅토리아의 판단으로 아이들이 죽지 않는 건 게임상 스토리이기도 하니까.
지금 문제는.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공적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거든요.”
빅토리아의 싸움에 끼어드는 게 쉽지 않다는 거였다. 빅토리아파의 힘만으로도 악마를 죽일 수 있었으니까.
이 싸움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1. 빅토리아에게 대가를 내어준다.] [현재 파티가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 중 가장 높은 등급을 내어줘야 합니다.] [2. 협상을 하지 않고 악마를 처치한다.] [현재 파티에 대한 빅토리아파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합니다.]위 두 가지 중 하나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참고로 나는 2번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현재 우리 파티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아이템은 루나가 갖고 있는 ‘정령의 숨결’이니까.
‘카론이 준 아이템을 함부로 내어줬다간 내 목숨도 내어줘야 할걸?’
빅토리아파와 적대하게 되면 귀찮은 문제가 잔뜩 생기지만, 내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렇게 2번을 선택하려던 순간이었다.
“나를 도와라! 그쪽이 아니라 나를 도우란 말이다!”
빅토리아가 토끼 눈을 떴다. 사람이 내뱉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마……?”
그렇다. 불의 악마 발람가가 한 말이었다. 그가 자신을 도우라고 외친 거다.
그리고 그가 요청한 대상은.
“……제로 군?”
바로 나였다.
상황을 보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들이 또 문제를 일으킨 듯했다.
“아주 좋은 기운이다. 크큭, 우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군.”
“…….”
“인간 세상에 숨은 채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겠지.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나와 손잡고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을 무찌르자꾸나!”
루나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내게 눈빛을 보냈다.
‘또 너냐?’
-라는 눈빛이다. 악마의 편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귀찮지만 이해한다는 눈치다.
물론.
“악마가 친근한 척을 하다니! 제로 군, 당신 설마 악마와 계약을 한 건가요?”
빅토리아는 달랐다. 그녀가 신성력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나를 정화하겠다는 태세다.
“후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친해 보이는데요.”
친하다면 친하지. 게임에서 수천 번도 더 본 사이니까.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후후, 발람가라니.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악마로군요.”
“……제로 군이 온 이후 저 악마가 이름을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시는 분이신가요?”
이런. 그랬던가?
“후후, 그럴 리가요. 아는 사람이랑 닮아서 착각했을 뿐입니다.”
“누구죠?”
“루나 양이요. 이름도 비슷하군요. 그래서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
우리 루나가 화나면 딱 저렇게 생겼거든.
봐봐, 지금 날 째려보는 저 모습을. 악마랑 완전 똑같이 생기지 않았니?
“하아…… 제로 군을 의심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네요. 수상해도 너무 수상해요.”
“후후, 오해일 뿐입니다. 저 악마가 거짓말로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 겁니까?”
“오해……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경우가 있으니…… 확실히 해 주셔야겠어요.”
빅토리아가 내게 한 걸음 다가오며 속삭였다.
“저 악마를 ‘직접’ 처치하세요. 그러면 자연히 제로 군의 결백이 증명될 테니까요.”
눈앞에 떠 있던 두 가지의 선택지.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3. 악마를 직접 처치하고 자신의 결백을 밝힌다.] [당신에 대한 빅토리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이거 어쩌면.
날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