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62)
제262화
262화. 카르파티아 침공(18)
발람가를 내 손으로 처치하고 결백을 증명하라는 빅토리아의 제안.
“후후후…… 어쩔 수 없군요.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실력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로군요.”
외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생각은 그 반대였다.
페널티 없이 3구역을 넘어가는 걸로도 모자라 발람가를 처치, 경험치까지 독식할 수 있다니.
입맛이 싹 돌았다. 동시에 살짝 울컥했다.
‘개고생만 하다가 드디어 한 번 날로 먹는구나.’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스킬을 연속으로 얻고, 구르고, 밟히고, 두들겨 맞고, 키우는 동물들에게는 물리고 발로 차이기까지.
취향(?)이 바뀔 정도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할짝-.
이렇게 날로 먹는 건 처음이라 몸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일까.
혀가 제멋대로 튀어 나가며 입술을 핥았다.
“오오, 그 뱀 같은 기세와 언행. 드디어 배신을 결심한 거로구나. 그래, 어서 배신하거라. 나와 함께 저 간악한 인간 놈들을 도륙 내는 거다!”
뒤통수를 치라는 발람가의 말.
그에 빅토리아가 채찍을 단단히 말아쥐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배신을 원한다고? 그래, 얼마든지 해 주마.
“갈(喝)!!”
내 입에서 튀어 나간 호통에 발람가와 빅토리아가 몸을 움찔 떨었다.
발람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이간질을 시도하다니! 아주 간악한 악마로군요! 순수하고 순진한, 악마와는 1g도 관계없는 순박한 시골 청년인 이 제로가 당신을 절대로 용서치 않겠습니다!”
순수, 순진, 순박.
나를 상징하는 3가지 단어나 다름없었다.
악마와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단어였던 탓일까. 발람가가 절규했다.
“그런 끔찍한 단어로 자신을 수식하다니! 네놈, 우리 편이 아니었구나!”
“후후,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잘난 외모 하나만 믿은 나의 실수다. 나를 속여넘기다니! 역시 인간들은 믿을 수가 없는 종족이로군!”
혈압이 오르는 걸까. 발람가가 목 뒤를 부여잡았다.
빅토리아를 향해 싱긋 웃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잘했지? 믿을 수 있지?’라는 미소.
“……말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시죠.”
“후후,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이벤트 스토리가 정리됐으니 남은 건 전투에서 이기는 일뿐이다.
침착하게 전장을 살폈다.
‘원래는 일곱 마리의 불벌레가 있었어야 했지만…….’
현재 전장에 있는 불벌레는 두 마리뿐이었다.
‘신성력이 이래서 무섭지.’
13턴부터 시작된 3구역 전투. 그리고 지금 막 18턴이 시작되었다.
13~17턴 동안 다섯 마리의 불벌레가 사라졌으니, 빅토리아가 한 턴에 한 마리씩 불벌레를 제거했다는 뜻이었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레제급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악마’라는 제한이 걸려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완전 사기적인 힘이었다.
‘우리 파티에도 성직자를 한 명 마련해야 할 텐데…….’
내 특성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겠다.
악마가 친근함을 느끼는 걸로도 모자라 같은 편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힘이라니.
성직자가 엑소시즘을 행하겠다며 안 달려들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집중하자. 동료 모집은 나중이다. 저놈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야.’
아무튼,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건 발람가와 불벌레 두 마리가 전부였다.
발람가가 사라지는 건 22턴.
이번 턴을 포함해 5턴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우- 투쾅!
어디선가 날아온 마나탄. 내 눈앞에 있던 불벌레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불벌레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겠네.’
남은 한 마리도 레제가 잘 처리해 줄 거다.
레제가 내가 아닌, 불벌레를 죽인 것에 고마움을 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루나 양은 공격 범위 밖에서 시선을 끌어 주십시오. 제가 들어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왜? 같이 싸우지 않고?”
“불을 다루는 놈입니다. 여기는 제게 맡겨 주시죠.”
앞서 말했지만, 발람가의 기믹은 캐릭터 체력을 기준으로 20%의 대미지를 입힌다.
1, 2구역에서 이어진 전투로 인해 루나의 체력은 30% 정도 깎인 상태.
발람가의 공격도 문제지만, 2번째 기믹을 생각하면 위험한 수치였다.
‘체력이 0이 되어도 죽는 게 아니라 기절하는 거지만…… 루나는 끝까지 끌고 가야 해. 중요한 건 4구역에 있는 마벨가니까.’
내 생각이 잘 전해진 것일까.
눈알을 또르륵 굴리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뭐, 그래. 대신 다음 놈은 내가 잡는다.”
“후후, 루나 양만 믿고 있겠습니다.”
“조심하기나 해! 불이 위험한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 말과 함께 루나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정확히는 나와 반대쪽 방향. 발람가와 상당히 떨어진 위치였다.
“어이, 거기! 제로랑 똑같이 생긴 놈!”
“그런 칭찬을 해 주다니. 인간 중에도 착한 놈이 있군…….”
발람가가 만면에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얼굴에 촉수가 난 놈이랑 내가 똑같이 생겼다니.
이 세계 사람들의 눈에 내 얼굴은 어떻게 보이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해하던 때였다. 발람가가 뒤를 돌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네놈을 놓칠 줄 알았더냐? 이 간악한 인간 놈! 이거나 먹어라!”
화르륵-!
발람가의 기믹이자 스킬, [파이어 필드]가 펼쳐졌다.
발람가를 기준으로 10칸, 캐릭터 전체 체력을 기준으로 20%의 대미지를 입히는 스킬.
1, 2구역에서 이어진 전투로 인해 체력이 감소한 건 루나뿐만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제로!”
“이런……! 밖으로 나오세요! 위험합니다!”
내 몸에 불이 붙었고, 그 불길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후후…….”
나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발람가가 경악했다.
“뭐, 뭐냐! 대체 어떻게……!”
뭐긴 뭐야. 불 속에서 웃는 사람 처음 봐?
‘뭐, 처음 볼 수도 있긴 하겠네.’
발람가의 [파이어 필드]는 화염계 마법이다.
마법 저항력이나 속성 저항력이 있다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2장 초중반부인 시점.
지금 획득할 수 있는 마법 저항력이나 속성 저항력 스킬, 신비, 칭호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심지어 아카데미에서는 하나도 구할 수가 없었다.
나도 구할 수 없었을 거다. ‘그 녀석’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폭염주의보]화염 속성 저항력 +30
아카데미를 습격한 악마.
4계위 악마 비네스를 죽이고 얻은 칭호다.
‘폭염주의보’는 4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저항계 칭호에서도 상위급에 속하는 칭호다.
그런데 하급 악마인 발람가의 불길? 아플 리가 없다.
[‘파이어 필드’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화염 저항력이 높습니다.] [전체 체력의 2%가 소모됩니다.] [19턴] [4구역에 물의 악마 마벨가가 등장했습니다.]“후후후후후…….”
몸에 불을 붙인 채 발람가를 향해 걸었다.
발람가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지금 그의 눈에 내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사람? 이상한 놈? 그도 아니면.
대악마?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갈 길이 바쁘니까 빨리 끝내자.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 * *
“서약서를 쟁취했다!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로써 루나 양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악녀를 무찔렀다! 만세!”
“사응동 만세! 루나 양 만세!”
유리디아파에 속한 여자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만세를 외쳤다.
“콜록, 콜록!”
그들의 발치에서 누군가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우수반의 거대 세력 중 하나인 유리디아파의 수장이자, 마법의 천재라 불리는 여자아이.
유리디아였다.
“사랑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라면 회장이라도 가차없다니…… 역시 ‘사응동’이네요. 제가 창설했지만 정말 놀랍다니까요?”
루나를 밀어내고 제로의 옆자리를 노린다는 말도 안 되는 음해에 휘말린 유리디아.
제로와 사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잠시나마 악녀로 오해받은 건 굉장히 치욕적이지만…… 뭐, 괜찮아요. 중요한 건 루나 양의 사랑이니까.”
자신의 희생으로 루나의 사랑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굴욕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는 유리디아였다.
저 멀리 루나와 제로의 뒷모습이 보였다.
손을 꽉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 언제나 보기 좋은 커플이었다.
뭐, 제로는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사랑의 위기는 저의 힘으로 잘 극복해 낸 듯하고…… 문제는 악마네요.”
유리디아가 까치발을 들며 전장을 살폈다.
신성력과 불꽃이 맞닿는 것으로 보아 3구역에도 악마가 나타난 모양.
하지만 그곳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악마와 상극인 성직자들이 가득한 탓도 있지만…….
‘제로 군이 가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제로의 곁에는 루나와 레제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간부급에 맞먹는 우수한 전력.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스윽-.
다시 한번 까치발을 든 유리디아가 손을 이마 위에 접시처럼 올린 뒤, 4구역을 살폈다.
사람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지만, 잠잠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악마가 습격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4구역으로 가야겠네요.’
4구역은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 빅토리아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아이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우수반에 존재하는 중립파랄까?
‘보호도 보호지만, 유리디아파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뜻이죠.’
생각을 마친 유리디아가 까치발을 내렸다.
“알폰소, 부상이 없는 사람 중 다섯 명을 뽑아 주세요.”
“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4구역으로 지원을 나가야겠어요.”
“하지만…… 지휘관 없이 맡은 지역을 이탈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악마가 다시 습격할 가능성도 있고요.”
알폰소의 말대로다. 지휘관의 명령 없이 맡은 구역을 이탈하는 건 탈영이나 다름없는 일.
군법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방어전은 중간고사의 점수도 걸려 있었다.
“점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우들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뭐, 중립파에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그, 그렇긴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에는 알폰소, 당신이 있잖아요? 악마가 나타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알폰소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디아의 오른팔인 그는 테르온의 오른팔인 다이크와 비교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이렇게나 믿고 계셨다니…….’
알폰소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곳은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겠습니다.”
알폰소가 곧장 다섯 명의 우수한 마법사를 선별했고, 유리디아는 그들과 함께 4구역으로 향했다.
“유리디아?”
“지, 진홍빛 마녀!”
“대체 누가 마녀라는 거예요!”
4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알렉스와 레이몬이 반겨 주었다.
아니, 레이몬은 반겨 주는 게 아니라 모욕을 했지만…….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요. 신경 쓰는 쪽이 지는 거예요, 신경 쓰는 쪽이 지는 거…….’
때문에 유리디아는 레이몬의 볼을 양쪽으로 쭉 늘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도우러 왔죠. 악마가 나타날 것 같아서요.”
“고마워.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러 오다니. 유리디아는 역시 착하구나.”
“흐, 흥! 그깟 칭찬. 하나도 안 기쁘거든요? 귀족으로서 당연한 일을 할 뿐이에요.”
유리디아가 고개를 돌리며 코웃음쳤다.
알렉스. 묘한 분위기의 남자아이였다.
이렇게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랄까?
‘사랑…… 은 아니겠죠?’
로맨스 소설을 많이 보긴 했지만, 사랑이라는 걸 직접 느껴 본 적은 없는 유리디아다.
그래서 알렉스를 만날 때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았다.
‘응응,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루나 양을 보면 알 수 있죠.’
항상 붙어 다니고, 손을 잡고, 서로를 향해 웃어 주고, 쪽쪽(?)거리고.
실상은 물어뜯는 거였지만, 콩깍지가 낀 유리디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랑을 하는 날이 오겠죠?’
유리디아가 백마 탄 왕자를 그리던 때였다.
콰앙!!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며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날개 달린 거대한 악마였다.
“아직도 살아 있었나? 형제들이 생각보다 애먹는 모양이로군.”
쿠웅!
동시에 악마가 양손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쿠두두두두두두-!
“따, 땅이 물에 잠긴다!”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수둔(?)을!”
4구역 주변이 온통 물로 가득 찼다.
유리디아는 알 수 있었다. 저 악마는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전투 준비! 악마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의 보호를!”
“예, 알겠습니다. 유리디아 님도 조심하십시오!”
“알렉스 군과 레이몬 군은 저를 도와주세요!”
“오케이.”
“무, 물은 싫은데.”
알렉스와 레이몬은 우수반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
손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나야.’
마나가 턱없이 부족했다. 2구역에서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한 여파였다.
이동하면서 마나가 조금 회복되긴 했지만.
‘간단한 마법을 세 번…… 아니, 두 번 정도일까요?’
게다가 물을 다루는 악마라니. 자신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유리디아는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걸’ 사용하는 수밖에.”
그렇다. ‘그걸’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로운터 가문에서 금지한 두 번째 마법.
‘라그나로크 블레이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