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27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9)
할머니의 시선은 레이몬에게 닿아 있었다.
루나에게 머리를 물어뜯기는 불쌍한 레이몬.
“예, 뭐…… 같은 반이긴 합니다만.”
“그럼 같이 데리고 다녀 주면 안 되겠는가?”
“예?”
“매일 찾아와서 여기에만 있지 뭔가. 친구가 없는 거겠지. 같이 놀아 주게나.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하지만…….”
“저러다 그 아이처럼 될 것 같아서 그래. 내 이렇게 부탁하겠네.”
할머니가 양손을 뻗더니, 내 손을 슬며시 쥐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쥐여 줬다.
차가운 금속, 하지만 나한테는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금속!
‘무게를 보니…… 골드군!’
쿠퍼도, 실버도 아닌 골드.
느그 레이몬이 우리 레이몬이 되기 충분한 금액이었다.
“후후, 저한테 맡기십시오. 오늘 하루 잊지 못할 날을 보낼 테니.”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먼. 그 착한 아이와 닮은 건 외모뿐이었어.”
크큭! 그런 실례되는 말씀을!
이래 봬도 부처님급의 완벽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란 말입니다!
“레이몬 군, 이리 오시죠.”
“으, 으……. 제로, 나 너무 아파요.”
“루나 양, 너무하시군요. 제 베스트 프렌드인 레이몬 군을 괴롭히다니!”
“……?”
팔을 뻗어 레이몬을 부축했다.
후후, 이리 오렴 1골드…… 아니, 레이몬.
우린 오늘 하루 동안.
베스트 프렌드란다.
* * *
앵무새의 일기#2
“친구야! 이것 봐 봐! 네가 좋아하는 열매 가져왔어!”
날개를 활짝 펼친 후 활강했다.
콱!
“어라?”
루터스가 텅 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의 손에 있던 열매를 너무나도 손쉽게 쟁취한 나였다.
“아, 뭐야. 오늘은 이걸 빌미로 같이 놀려고 했는데.”
루터스가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댔다. 내가 앉아 있는 나무였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 지 일주일째.
여전히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
앵무새인 나도, 그리고 인간인 루터스도.
“쟤네 같이 훈련하러 가나 봐. 부럽다.”
“…….”
“아아~ 나도 친구들이랑 팀 맺고 싶다. 팀플레이 점수는 맨날 0점만 주고. 선생님들도 너무하시다니까. 그렇지 않아?”
듣자 하니 친구를 만드는 것도 실력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이건 공감한다. 참 너무한 아카데미다.
만약, 앵무새들에게도 아카데미가 존재했다면.
‘나도 0점이었을 테니까.’
열매를 반쯤 먹었을 때였다.
루터스의 얼굴이 옆에서 불쑥 나타났다.
푸드덕!
“우왁!”
쿵!
루터스가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적어도 2m는 돼 보이는데.
대체 언제 여기까지 올라온 걸까.
“아야야…… 미안.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루터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통증 때문일 거다. 나무에서 떨어지며 땅에 등을 부딪친,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걸 거다.
“나는…… 역시 안 되는 거야? 친구를 사귈 수 없는 거야? 이렇게 생겼다는 이유로?”
루터스가 흐느꼈다.
작은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마음의 난 상처를 내가 더 키운 걸까.
잘 모르겠다.
‘떠나자.’
시간 낭비다. 그러니까 떠나야 한다.
하지만 한참을 활공한 후에 내가 도착한 건, 루터스의 눈앞이었다.
“앵무야……?”
우리는 외모가 다르다.
종족도 다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하지만.
그의 고독함을, 나의 고독함을 잠시라도 달래고 싶어졌다.
천천히 목을 부풀리며, 오랫동안 참아 왔던 단어를 내뱉는다.
“친구! 친구!”
루터스가 해맑게 웃었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친구를 하는 거다.
우리에게.
다른 친구가 생길 때까지만.
* * *
1골드로 인해 베프의 인연을 맺게 된 레이몬과 나.
하지만 이내 그 결정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베, 베프라니……. 너무 기뻐요.”
레이몬이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붉혔다.
남자애가 저런 염병을 떠니 괜스레 기분이 나쁘다.
루나에게 밟힐 때도, 로델린과 루나에게 경멸의 시선을 받을 때도.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뜰 것 같은 때가 많았지만, 이 취향은 진짜 안 된다.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검열적(?)으로도!
여러모로 끝이 나고 말 거다.
아무튼, 부끄러워하는 레이몬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것이었으니…….
“야, 쟤랑 진짜로 베프야?”
“후후, 그렇습니다.”
“왜?”
“……친구니까요?”
“나랑도 친구 아니야? 그럼 나랑도 베프겠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누가 해 준대? 지조 없는 애는 내 쪽에서 사절이거든?”
친구 사이에도 지조가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참, 놀라운 사실이로군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루나의 눈초리가 매서웠기 때문이다.
‘느낌이 좋지 않은데…….’
루나의 추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베프가 된 거야?”
“그…… 저번에 있잖아요. 루나 양이랑 헤어지고 나서…….”
“너 기숙사 들어가는 거 다 봤거든? 그 뒤로 방에서 나온 적도 없잖아.”
내가 나온 적이 없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애지중지 키우던 내 딸(?)이 알고 보니 스토커?
“쟤랑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왜 베프가 됐는지 똑바로 설명해.”
베프가 된 이유에 대해서 육하원칙으로 설명해 줘야 한다고?
그런 귀찮을 일을 내가 해 줄 리가.
“후후, 루나 양. 베프에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음이 맞으면 베프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마음이 어떻게 맞았는지 내가 궁금해하는 거잖아? 응? 대체 어떻게 맞은 걸까? 둘이 만난 적도 없는데.”
아, 그렇구나. 친구의 문제에 한해서는 능글맞게 넘어가는 것도 안 먹히는구나?
이렇게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대가가 내 목숨이라는 게 문제지만.
“뭘까? 뭘까? 이유가 뭘까~ 아?”
루나가 얼굴을 천천히 들이밀며 나를 압박할 때였다.
레이몬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며 소리쳤다.
“그, 그만하세요! 질투는 저한테 하시라고요!”
“질투?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질투를 할 리가 없잖아. 저렇게 지조 없고 더러운 애는 딱 질색이거든?”
“지, 질투 맞거든요? 추해요! 질투는 정말 추하다고요!”
“……추하다고?”
뚜둑- 뚜두두둑-.
루나의 목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꺾였다.
무섭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무섭다.
눈앞에서 한 편의 공포영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 자세히 보니 최종 보스와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히, 히익!”
레이몬이 내 뒤로 몸을 숨겼다.
루나를 최종 보스로 만들어 놓고 내 뒤로 숨다니.
역시나 느그 레이몬다웠다.
“박제…… 박제해 줄게. 작품명은 ‘베프가 되지 못한 친구’ 정도가 좋겠네. 걱정 마. 하나도 안 아파.”
박제를 하려면 가죽을 다 벗기는 게 디폴트다.
기본값이라는 뜻이다.
목을 90도에 가깝게 꺾은 채 다가오는 루나.
그녀를 향해 막 떠올린 변명을 내뱉었다.
“후후, 루나 양. 우리 사이가 굳이 베프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인데.”
멈칫-.
“베프라고 해도 비밀은 함부로 공유하는 게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그제야 루나의 목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루나가 레이몬 쪽으로 눈을 살짝 흘기며 말했다.
“우리는 여러 비밀을 공유하는 그런, 아주 은밀하고도 끈적끈적한(?) 사이지.”
아뇨, 그렇게까지는 아닌데요.
그런 내 생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듯 루나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았다.
승리의 미소.
그걸 본 레이몬이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는 귀여운 걸 좋아해요.”
“…….”
“제로, 그거 알아요? 저는 어릴 때…….”
비밀을 공유하면 자신도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레이몬이 쉬지 않고 쫑알거렸다.
심지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까지 속닥인다.
아, 피곤하다. 진짜.
“자자, 잡담은 여기까지. 다들 집중해 주겠나?”
로델린의 소집.
이제야 생각이 정리된 모양이다.
“정보를 정리해 봤다네. 20년 전에 어떤 사건이 있긴 했던 모양이야.”
성검의 분실, 학생의 실종, 악마의 흔적, 앵무새의 등장, 침식의 흔적 등.
“각자 다른 일일 수도, 아니면 모두가 하나로 엮인 일일 수도 있지. 추측이지만, 적어도 이 중에 3개 이상은 서로 연관이 있는 일일 거야.”
사실 모두가 얽히고설킨 일이지만, 로델린 입장에서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거지. 혹시 뭔가 떠오르는 사람 있나?”
로델린의 질문. 하지만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여기서 추리가 가능한 머리를 가진 건 로델린 혼자뿐이었다.
‘뭐, 나는 논외지만.’
그런 내게 기대를 걸었는지, 로델린이 내 쪽을 힐끔거렸다.
그녀의 바람대로 정답을 알려 주기로 했다.
원래 게임에서는 아카데미 곳곳을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지만, 그건 시간 낭비니까.
‘무엇보다 저 둘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아.’
루나와 레이몬의 친구 대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깎여 나가는 느낌이다.
[정신 방어]는 뭐 하나. 이런 거 안 막아 주고.아무튼,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흠…… 성검이 있던 장소는 어떻습니까?”
“성검? 하지만 그곳은…….”
“가능성이 가장 낮다고 생각하셨죠? 너무 당연하니까.”
“……!!”
로델린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찾는 건 악마의 흔적.
조금 더 정확히는, 침식의 연구실이나 연구시설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성검이 있던 장소는 제일 먼저 배제하는 게 맞다.
주인을 잃고 땅에 박혔던 흔적만 남았을 뿐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성검이 꽂혔던 자리.
신성력을 쉴 새 없이 내뿜는다.
그런데 이런 장소 근처에 악마의 연구시설을 만든다?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는 거로군.”
“예, 당시 조사관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성검이 있던 곳 주변은 열심히 수색하지 않았겠지요.”
“흐음…….”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등잔 밑이 어둡다라…….”
로델린이 내 포즈를 따라 하며 중얼거렸다.
추리력이 올라가는 자세라는 걸 깨달은 걸까?
잠시 생각하던 로델린이 말했다.
“조사해 볼 만한 가치는 있겠군. 학생들의 안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훌륭한 선택입니다.”
“아쉽게도 아카데미 측에 지원을 요청할 수는 없겠어. 아직 확실한 게 없으니…….”
중얼거리는 로델린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는 소문뿐.
물증이 없는 이상, 함부로 지원 요청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맛있는 건 혼자 먹어야 하는 법이지.’
강한 사람이 일행에 있다면 악마의 편린을 만나기 직전에 내쫓길 것이다.
어디 학생이 악마와 싸우려 하냐면서 말이다.
“가지.”
그렇게 우리는 성검의 무덤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