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28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10)
덜컹- 끽- 끼기긱-.
제법 커다란 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성검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문이었다.
“금지구역이지만 어쩔 수 없지. 부학생회장의 권한으로 조사가 끝날 때까지만 열어 두도록 하겠네.”
열쇠 뭉치를 품에 갈무리한 로델린이 말했다.
“들어가면 함부로 손대지 않았으면 하는군. 이곳은 유적지나 마찬가지니까.”
로델린이 동료면 이런 게 편하다.
게임 플레이 시, 그녀가 동료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개구멍을 기어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체력이 무려 20% 감소하는 페널티까지 있지.’
천천히 성검의 무덤을 살폈다.
동그란 원형의 광장,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중앙을 바라보는 4개의 여신상.
그 중앙의 바닥에는 깊은 홈이 하나 파여 있었다.
‘성검이 꽂혀 있던 곳.’
게임에서 봤던 모습과 비슷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웅장함이 느껴진다.
‘유저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지. 이걸 눈으로 보게 되다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
“친구! 친구!”
“그, 그래요. 우리는 친구예요.”
앵무새가 레이몬의 어깨에서 날개를 퍼덕였다.
둘이 친구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레이몬에게는 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걸까.
루나가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말했다.
“흐, 흥! 어쩔 수 없네. 나도 친구 해 줄게.”
“…….”
앵무새가 고개를 홱 돌렸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입까지 꾹 다문다.
“야, 너 왜 시선 피하냐?”
“…….”
“내가 친구 해 준다니까!?”
“싫다!”
“이, 이게! 제로, 물 올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니까!”
루나가 앵무새를 붙잡더니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그, 그러지 마세요!”
그런 루나를 레이몬이 온몸으로 붙든다.
몸싸움을 하는 둘, 그리고 한 마리 앵무새.
한 덩어리가 된 그들이 동쪽의 여신상에 몸을 살짝 부딪쳤다.
쿵!
쨍그랑!
“…….”
여신상이 들고 있던 항아리.
그게 땅에 떨어지며 깨지고 말았다.
모두의 시선이 항아리에서 어떤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바로.
로델린이 서 있는 곳이었다.
“내가, 조심하라고, 말, 했을, 텐데?”
로델린의 말이 뚝뚝 끊어진다.
그와 동시에 표정도 악귀로 변했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미안! 미안!”
“사고란 건 항상 방심할 때 터진단 말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조심해야…….”
무릎을 꿇은 채 반성 모드에 들어간 두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새.
그리고 그들을 훈계하는 로델린.
보기 좋은 모습이다.
아공간에서 카메라를 꺼낸 후,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찰칵-.
* * *
우리는 한동안 수색에 열중했다.
하지만 악마는커녕 침식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흠, 제로 군. 우리의 추리가 틀렸나 보군.”
“다른 곳보다는 이곳이 확률이 높습니다. 조금만 더 찾아보시죠.”
“그래. 학생회에 도움을 요청해 두겠네. 매주 한 군데씩 뒤지다 보면 무언가 나오겠지. 뭐, 끝내 찾지 못해도 나쁜 건 아니야. 악마는 없다는 거니까.”
로델린은 수색에 그 누구보다 열중했다.
‘실종된 학생도 찾아야 하는데…… 큰일이군’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로델린이 학생회에 도움을 요청할 일은 없을 거다.
이곳이 악마의 편린에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실종된 아이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앵무새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앵무새가 기둥 중 한 곳 위에 올라서 날개를 퍼덕였다.
“다들 저길 보십시오. 앵무 군이 뭔가를 찾았나 봅니다.”
“음?”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앵무새가 있는 기둥 위. 그곳에 작은 레버가 튀어나와 있었다.
“레버?”
“왜 저기에 레버가…….”
그게 게임의 설정이기 때문이지.
“뭔가 장치가 되어 있는 걸까요?”
“장식에 불과할 수도 있지. 일단 조사가 필요하겠어. 그런데 저런 곳에 있어서야…….”
로델린이 기둥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중앙 쪽으로 은근슬쩍 떠밀었다.
우리가 성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밀집한 때였다.
“악마!”
내 수신호를 본 앵무새가 레버를 내렸다.
그와 동시에.
파지직-!
“마, 마법진!?”
“……이런! 빠져나가긴 늦었어! 모두 내 곁으로 와라!”
로델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법진이 발동했다.
땅이 훅 사라지며, 우리 모두가 허공에 떴다.
그렇게 우리는.
땅 밑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 * *
앵무새의 일기#3
“승자! 루터스!”
“친구야, 이겼어! 우리의 승리라고!”
“친구! 승리!”
루터스가 환호를 내지르며 달려왔다.
이크, 저기 잡히면 최소 1시간이다.
재빨리 날개를 퍼덕여 그와 거리를 벌렸다.
“친구야! 이리 와! 첫 승리를 축하해야지!”
“싫다!”
학기 초부터 계속 진행되던 팀플레이 대련.
친구가 없는 루터스가 매주 0점을 받았던 과목이기도 하다.
“선생님! 이게 말이 돼요? 짐승이랑 팀을 맺는 게 어딨어요?”
“저것도 실력이야. 너네도 부러우면 그렇게 하렴.”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들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매일 루터스를 따돌리더니. 꼴좋다.
“친구야, 사진이라도 찍자.”
“사진!”
찰칵-.
카메라가 덜덜거리며 사진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이건 봐도 봐도 참 신기한 물건이다.
생명체의 움직임과 시간을 멈춰서 물건으로 만들다니.
인간들이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 그게 분명했다.
“헤헤, 첫 승리 기념사진이야.”
루터스가 사진을 보여 줬다.
첫 승리 기념사진이라고 적힌 사진.
나는 사진이 좋았다. 언제라도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짐승을 다루다니…… 악마의 아이가 분명해.”
“그러게 말이야. 아카데미는 저런 놈 안 쫓아내고 뭐한담?”
팀플레이 미션에서 승리했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 하나의 불길한 소문이 루터스의 뒤를 따르게 됐으니까.
“괜찮아, 저런 것쯤. 혼자라면 버티기 힘들지만…… 이제 괜찮아.”
우리는 둘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고.
루터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영웅에게는 언제나 시련이 있는 법이니까.”
루터스가 웃었다.
영웅.
루터스의 꿈이자 목표다.
그는 늘 말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웃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꿈을 꾸다니.
내 친구는 정말이지 대단한 아이였다.
‘나도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친구의 꿈은 너무나도 강한 의지를 품고 있어서,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칠 때가 있었다.
아마 불가능할 거다. 나는 앵무새니까.
그러니까.
‘영웅의 친구로서 곁에 있는 것.’
그게 이제.
내 꿈이야.
* * *
“꺄아아아앙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루나와 레이몬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비명을 내질렀다.
싸울 때는 언제고. 아주 베프 납셨다.
“제로 군! 신체를 접촉하게!”
로델린의 다급한 외침.
다소 설명이 부족한 말이었지만, 손을 뻗어 루나의 팔목을 붙들었다.
그녀의 의도를 알고 있었으니까.
와락!
그런 나를 로델린이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로델린의 가슴에 내 얼굴이 묻혔다. 동시에 그녀의 목걸이가 빛났다.
“레비테이션!”
은은한 노란빛의 구가 우리 주변을 감쌌다.
동시에 낙하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부유 마법이 내장된 아티팩트의 힘 덕분이다.
‘로델린의 목걸이에는 마법이 3개나 저장되어 있으니까.’
역시 명가라 그런지 마법 아티팩트가 빵빵하다.
로델린도 빵빵…… 크흠.
쿵! 쿠쿵! 탁!
땅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부유 마법이 사라졌다.
착지에 실패한 루나와 레이몬이 신음을 흘렸다.
“다들 괜찮은가?”
일단 놔주셔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나는 공주님 안기 상태로 로델린의 품에 안겨 있는 상태.
여러 가지 의미로 숨쉬기가 힘들다.
그걸 깨달은 로델린이 나를 살포시 내려 주었다.
“후후, 덕분에 살았습니다.”
“다행이군. 그나저나…… 위로 올라갈 수는 없어 보이는걸.”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공동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벽이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기에, 시야가 어둡지는 않았다.
“환상 마법과 오브젝트 체인지 마법을 바탕으로 한 마법진인가. 내가 눈치채지 못하다니. 적어도 6서클 이상의 실력자야.”
“후후, 그 아티팩트로 올라가는 건 어떻습니까?”
“무리라네. 부유 마법은 플라이와 성질이 다르니까.”
로델린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높이.
그렇다. 현재 우리가 가진 수단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했다.
“악마! 악마!”
“너 이 자식! 너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진짜 치킨으로 만들어 버린다!”
“흐어엉! 너무 무서워요!”
루나가 푸닥거리를 시작했다.
여기에 앵무새의 비명과 레이몬의 울음까지.
진짜 총체적 난국이다.
“이곳은 레버 같은 게 보이지 않는군. 장치로 추정되는 것도 안 보이고.”
이런 와중에도 로델린은 침착했다.
주위를 조사하며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판단했다.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이용했던 건 분명해. 그렇다면…….”
“후후, 어딘가에 출구도 존재한다는 말이겠죠.”
여기서 정상인은 나와 로델린뿐이었다.
뭐, 나는 게임의 지식을 빌린 거지만.
“……안타깝지만 구조를 바라기는 힘들겠지. 앞으로 나아가며 출구를 찾는 수밖에 없겠군.”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로 군은 침착하군. 대단해. 무사히 돌아간다면 상점을 주도록 하지.”
상점 같은 건 필요 없다.
난 이곳에서 그보다 더한 걸 얻어 갈 예정이니까.
로델린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진정해라. 놀란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눈물을 흘릴 때는 더더욱 아니고.”
“훌쩍…… 하지만…….”
“우리는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 앤우드 아카데미의 학생이다. 이 정도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야.”
로델린의 분위기 장악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사기를 북돋웠다.
루나의 눈동자에 투쟁이, 레이몬의 눈동자에는 희망이 깃들었다.
“내가 반드시 지켜 주겠다. 이 로델린 드 루시드의 이름을 걸고!”
로델린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루나와 레이몬이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모았다.
저러다 로델린을 신으로 받들 기세였다.
“단! 아무거나 함부로 손대지 마라. 앵무 군, 자네도!”
로델린의 지적.
그러자 앵무새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뭐, 이 새끼야. 레버를 네가 내렸지, 내가 내렸냐?’
앵무새가 날개를 퍼덕였다. 자신은 억울하다는 것처럼.
물론, 로델린이 그의 뜻을 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앞으로 나아가지. 내가 선두에 선다.”
로델린을 필두로 길을 나섰다.
길을 헤맬 위험은 없었다. 외길이었으니까.
“오, 빛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직사각형의 공간.
정면에는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이 있었고, 오른쪽 벽면에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흠, 규칙이 있는 무늬 같은데…… 망가져 있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는군요.”
“그렇군. 퍼즐인가?”
문에 함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로델린이 문을 힘껏 밀어 보았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퍼즐을 풀어야 문이 열리는 구조인가 보군. 이거 큰일이야. 식량은커녕 물도 없는데…….”
로델린이 머리를 싸매며 끙끙거렸다.
퍼즐 형식의 구조를 보고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는 느낌이랄까.
‘뭐, 그게 이 게임의 세계관이니까.’
악마가 인간을 괴롭히는 이유는, 그들이 그 과정에서 희열을 얻기 때문이다.
퍼즐도 그중 하나다.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기 위해 악마들이 만든 장난감이라고나 할까?
뭐, 대충 이런 콘셉트의 세계관이다.
그러니 로델린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퍼즐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고.
“끙…… 처음 보는 구조로군. 사흘은 족히 걸리겠어.”
로델린의 머리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집중했다.
후배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리라.
‘귀엽긴.’
그런 로델린을 슬쩍 밀어내며 퍼즐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