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9)
제29화
29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11)
눈앞에 있는 퍼즐은 슬라이딩 퍼즐이다.
빈 공간을 이용해 퍼즐을 움직이고, 모양이나 숫자를 맞추는.
퍼즐의 순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기본 퍼즐.
빠른 속도로 퍼즐을 움직였다.
“제로 군,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네. 이럴수록 침착해야…….”
“후후, 재밌는 퍼즐 아닙니까. 이런 재밌는 걸 선배님 혼자 하게 두실 수는 없죠.”
“이건 재미로 할 수 있는 게…… 어……?”
로델린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퍼즐의 완성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90% 정도 완성한 뒤,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흠…… 저 끝부분이 문제군요. 세 문양의 순서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제로 군, 이건……!”
응답과 동시에 로델린의 손이 분주해졌다.
사실 쉽다. 세 문양을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맞춰지도록 만들어 둔 상태니까.
딸깍-.
덜커덩-.
“문이 열렸다!”
“서, 선배님 만세!”
루나와 레이몬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로델린이 멋쩍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제로 군, 미안하네. 사실 자네가 푼 문제인데…….”
“후후, 괜찮습니다. 저는 진짜 몰랐거든요.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거기서 포기했을 겁니다.”
“음, 포기하는 습관은 좋지 않지. 오늘을 기점으로 발전하도록 하게.”
훈훈한 분위기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눈앞에 또 다른 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퀴즈인가?”
문에는 악마어가 가득 쓰여 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색이 다른 3개의 레버가 있었고.
첫 번째 시련이 퍼즐이었다면, 두 번째 시련은 퀴즈.
악마어만 해석할 수 있다면 쉬운 퀴즈였다.
“푸른색, 회색, 그리고 검은색의 레버군요.”
“문에 쓰여 있는 문제는…… 잘 모르겠군. 흰색과 검은색이라는 단어가 있긴 한데…….”
악마 고고학 수업을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로델린이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곤란하군. 악마 고고학에 능통한 학자가 있어야…….”
“흰색9, 검은색1의 비율로 색을 혼합했을 시, 나오는 색의 레버를 당기시오.”
“그렇군. 그런 문제였나. 그렇다면 당연히 회색……?”
로델린이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나도 그녀 쪽으로 고개를 마주 돌렸다.
평소의 근엄한 표정과는 다른, 깜짝 놀란 표정.
귀여웠다.
“제로 군, 악마어를 알고 있나?”
“후후,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말이죠. 조금 아는 편입니다, 아주 조금.”
사실은 아주 조금이 아니라 마스터다.
[번역] 스킬은 악마어까지 해석해 주니까.뭐, 스킬이 없었어도 정답을 미리 알고 있는 나에게는 별 장애가 되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그런가. 내가 운이 좋았군.”
뭔가 이상하다는 듯 로델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색 레버를 내리자, 문이 중후한 소리를 내며 살짝 열렸다.
동시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몸을 흠칫 떨었다.
“마기……! 진짜로 악마가 있었단 말인가!”
로델린이 내 옷깃을 잡은 채 뒤로 잡아끌었다.
뭐야. 나 빼고 다 느낀 거야?
아주 왕따가 따로 없네.
“……다들 여기 있도록 해라. 내가 금방 처치하고 올 테니.”
“그런! 선배님 혼자 가시겠다는 건가요?”
“루나 양, 사실 악마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네. 내 수준이면 단 일합에 없앨 수 있지.”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로델린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같이 싸우겠어요!”
“마음은 알지만, 구조를 기다리는 게 생존의 가능성이…….”
“저희도 아카데미생이에요!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앤우드 아카데미생에게 이까짓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루나 양…….”
“저, 저도 힘낼게요!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레이몬 군…….”
얼씨구. 아주 신파가 따로 없다.
되도록 저는 빼 주시면 감사하겠…….
“다들 고맙네. 제로 군도 마음은 마찬가지겠지.”
예?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자네들도 치열한 입학시험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한, 아카데미생이란 걸.”
저기요, 제 말 안 들리시나요?
“함께 가도록 하지. 대신, 전위는 나의 몫이야.”
……음. 나한테 거부권은 없나 보다.
뭐, 이번 공략은 내가 핵심이니까 빠질 생각도 없었지만.
“레이몬의 무기는 어떻게 하죠?”
“음, 어쩔 수 없지. 내 검집이라도 쓸 수밖에.”
할머니의 1골드와 교환(?)한 레이몬.
현재 그는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다.
악마를 찾는 모험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레이몬 군, 이걸 쓰십시오.”
“응? 하, 하지만 그럼 제로가…….”
“후후, 제 무기는 따로 있습니다.”
레이몬에게 내 검을 건네준 후 품속에 손을 넣었다.
아공간. 그곳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눈이 커졌다. 심지어는 앵무새까지도.
왜냐하면…….
“대걸레……?”
“후후, 그렇습니다. 아주 크고 커다란(?) 좋은 놈이죠.”
“…….”
아무도 내 자랑에 응답해 주지 않았다.
이상한 시선을 내게 보내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릴 뿐.
왜 그러지. 이거 진짜 좋은 무기인데.
“……물어볼 필요가 있나 싶지만 예의상 물어볼게. 그걸 지금 대체 왜 꺼내는데?”
“후후, 그건 비밀입니다.”
“…….”
루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떤 말을 토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꾹 참아 냈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리라.
누군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레이몬이었다. 그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저, 저 때문에…… 희생하시는 거군요. 대, 대체 제가 뭐라고…….”
그런 거 아닌데.
이게 진짜 내 무기이자, 악마의 편린을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략법인데.
“제, 제가 꼭 지킬게요. 제로를 꼭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정말 감격했다는 듯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레이몬.
그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레이몬 군, 왼손으로 검을 드십시오.”
“예? 왜, 왜요?”
그야 넌.
왼손잡이니까.
사실 레이몬은 자신이 왼손잡이인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오른손에 검을 쥐기에 자신도 그렇게 했을 뿐.
그것도 모르면서 에피소드 중반까지 적과 아군을 농락한다.
진짜 태생이 순수악 그 자체다.
“후후, 저를 믿으십시오. 우린 베프잖습니까?”
“예, 예! 맞아요. 우린 베프니까, 죽어도 왼손으로 싸울게요!”
그렇게 모두가 싸울 준비를 마쳤다.
로델린이 전위고 나머지가 그 뒤에 선 형태였다.
‘사실, 진형도 짜 주고 싶지만…….’
퍼즐에 이어 악마어까지 풀어낸 나다.
지금은 괜찮지만, 상황이 종료된다면 로델린의 의심이 시작될 거다.
내가 새로 만들어 낸 ‘공략법’을 생각하면, 로델린의 의심은 더욱 확고해질 터.
그러니 싸우는 중간에 진형을 짜고, 전략을 공유한다.
‘눈과 머리가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어떻게든 될 거야.’
예정에 없던 레이몬까지 추가된 상태니,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그럼 가겠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쾅!
호흡을 조절하던 로델린이 문을 박차고 돌진했다.
그 뒤를 우리가 따랐다.
“좌우, 위 이상 무! 전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보고 있었다.
시야를 빼앗을 정도로 새까만 검은색 구체. 그 위에서 펄떡이는 힘줄들.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모습이다.
“……알?”
검은색 알. 그리고 그 밑바닥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교재에서 보던 침식과 유사한 모습.
“……침식!”
로델린의 발언으로 확인이 끝났다.
그와 동시에 검은색 알이 크게 격동했다.
힘줄이 찢어지며 가운데가 일자로 크게 갈라지더니,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침식의 실험을 하다 만들어진 존재.
악마의 편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 *
앵무새의 일기#3
루터스와 놀던 어느 날이었다.
“아, 맞다. 친구는 아직 거기 가 본 적 없지?”
“거기?”
“성검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용사님이 대악마와 싸우다 돌아가신 곳이지.”
용사라.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부르는 존재였다.
관심이 갔다. 루터스의 꿈이 영웅이었으니까.
“가자! 놀러! 가자!”
“히히, 친구라면 그렇게 말해 줄 줄 알았어.”
우리는 성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과연, 조금 낡긴 했지만 고귀한 기운이 느껴지는 물건이다.
용사의 물건이라 그런지 안 뽑힌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던데.
“언젠가 나도 이런 검을 들고 악마를…… 응?”
쑥-.
성검을 손에 쥔 루터스가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지금 너보다 내가 더 황당하거든?
그게…… 왜 뽑히냐?
그와 동시에.
“으아아아아아악!”
바닥이 사라지며 루터스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 *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 알.
그와 대비되는 샛노란 홍채와 세로로 길게 갈라진 검은 동공.
게임 속 악마의 편린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직접 보니 그로테스크하네.’
주기적으로 박동하는 굵은 힘줄이 그 기괴한 느낌을 더욱 커지게 했다.
로델린은 곧바로 돌진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탓도 있지만, 외형에 따라 효율적인 공격법을 강구한다.
이게 싸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알인가…… 그 주위로는 침식의 흔적이 있군. 굳이 먼저 다가갈 필요는 없겠어.”
악마로 추정되는 상대는 알의 형태를 하고 있다.
팔과 다리는커녕 구르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저쪽에서 이쪽을 공격할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투척을 하는 게 좋겠군.”
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을 때였다.
악마의 편린이 우리를 훑더니,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했더니 또다시 필멸자 놈들인가. 전이나 지금이나 네놈들의 연약함은 여전하구나.”
입이 없는 신체 구조지만, 말이 가능한 모양이다.
주위를 훑던 놈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을 때였다.
“음? 네놈은 뭐냐.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드는데…… 인간이라니. 기이하군.”
“…….”
“회복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이 필요했는데 잘됐군. 네놈은 잠시 빠져 있어라. 처분을 유예하겠다.”
로델린과 루나, 레이몬이 나를 힐끔거렸다.
모두가 느꼈기 때문일 거다.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을.’
말을 저렇게 했을 뿐, 나를 살려 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 정도의 친근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타탁-.
로델린이 자리를 조금 이동했다.
나와 악마의 편린을 동시에 견제 가능한, 그런 자리였다.
해명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말을 아꼈다. 왜냐하면.
‘처음 듣는 대사야.’
어떤 이유로 히든 피스가 발동했다는 뜻이다.
에피소드1에서 도전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도 종종 도전하는 사람은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내 특성 때문인가?’
[불길한 기운] 스킬과 실눈이라는 인상.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선사하지만, 악 성향을 가지고 있는 놈들에게는 호감을 살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해.’
온다. 고인물의 느낌이 팍팍 온다.
‘악 성향’을 가진 놈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후후, 반갑습니다. 악마의 편린이여. ‘그분’이 저를 당신께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이용해 줘야 제맛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