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3)
제4화
4화. 입학시험(1)
장난질 한 번으로 주연인 로델린과 가까워질 기회를 날리다니.
누군가는 정말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게 올바른 판단이다.
로델린과는 무조건 멀어져야 하니까. 왜냐고?
‘로델린은 주인공 일행의 파티원 중 하나니까.’
내가 히든 보스를 공략하는 동안 주인공 일행은 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 또한 메인 보스와 필사적으로 싸워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런데 로델린이라는 우수 전력을 내가 빼앗아 간다?
‘그거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지.’
주인공 일행이 전멸이라도 했다간 바로 게임 오버다.
히든 보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음 에피소드로의 진행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평생 이곳에 갇힌 채 멸망을 바라봐야 하는 미래는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뭐, 로델린의 치마를 입에 올린 장난은 조금 반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음담패설(?)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백번 다시 생각해 봐도 내 행동은 정당했다.
즉, 나는 무죄!
“로델린 부학생회장을 눈빛만으로 울렸다는 게 바로 저놈인가?”
“어머, 부학생회장님이 그런 걸로 눈물을 보일 리 없잖아요.”
“주먹을 쓰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여자를 패? 저, 저……! 극악무도한 놈! 생긴 대로 노는군!”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목격담이 사람들 입을 몇 번 오르내리고 나자, 조금 전 있던 일이 와전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쯧, 아무리 히든 피스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고립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으로 추정됐다.
죽어 가는 사람을 구했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지 않았을까?
틀림없다. 내가 뭐, 로델린을 아주 못살게 군 것도 아니고.
히든 피스가 아니라 그냥 내가 잘못한 거면 어쩌냐고?
만약, 정말 만약 그런 거라면…….
“후후, 생각하기도 싫군요. 고단한 학교생활을 하게 될 테니.”
지금은 부학생회장이지만 1년 뒤에는 학생회장이 되는 로델린이다.
그녀를 비호하는 세력도 그에 따라 커진다는 뜻.
‘조심해야겠네.’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장난으로 캐릭터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아무리 반갑고 귀여워도 장난치지 않겠다.
단단히 마음먹던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30명씩 조를 이뤄 차례차례 입장하겠습니다! 앤우드 아카데미의 예비 학생답게 훌륭한 질서 유지 바랍니다!”
거대한 정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리더니, 군중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몇몇 아이들이 중얼거렸다.
“으으, 벌써 시작인가.”
“젠장! 인생에서 기회가 단 한 번뿐이라니. 이건 너무 가혹하다고!”
“여신님이시여! 저를 구원하소서!”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투덜거림, 그리고 간절한 기도.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함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앤우드 아카데미의 전통 중 하나.
‘입학시험’ 때문이다.
지원자 중 약 50~60%.
무려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입학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퇴소 처리당한다.
‘심지어 시험 종류도 매년 다르지.’
어떤 시험을 치르는지, 몇 차 시험까지 있는지, 합격자는 몇 명인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이런 가혹한 전통이 있는 이유?
‘제국을 이끌어 갈 인재를 찾기 위함이지.’
나태하고 능력 없는 무능한 귀족 자제의 등용을 방지함과 동시에.
우수한 평민과 천민에게는 등용문이라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피보다 실력.
제국의 힘이 갈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는 기가 막힌 제도다.
‘뭐, 덕분에 나도 입학식에 참여할 수 있는 거지만.’
이름도, 지위도, 고귀한 핏줄도 필요 없다. 필요한 건 오직 ‘나이’ 하나뿐이다.
15세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나이.
이 조건만 충족한다면 누구나 입학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실눈캐에 빙의한 내가 15세라는 증거?
‘시스템이 퀘스트랍시고 줬으니 뭐…… 맞겠지.’
설마 입학시험을 힘들게 통과했는데 검사 과정에서 ‘자네는 15살이 아니지 않나?’라고 하며 퇴출한다면.
망겜이다. 이 게임은.
‘갓겜 맞잖아? 그러니 내 신분과 나이 정도는 알아서 처리해 놨겠지.’
그러니 이런 것보다는 다른 쪽이 문제다.
“이번 시험 종목은 뭘까?”
“어쩌면 기사와의 결투일지도 몰라. 시험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은 지 무려 5년째니까.”
“종목이 뭐든 상관없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린다.”
“진짜 열심히 할 거야! 난 여기에 모든 걸 걸었다고!”
앤우드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이 악랄한 이유.
단순히 반절이 넘는 인원을 불합격시켜서도 아니고 시험 종목을 알려 주지 않아서도 아니다.
바로.
‘모든 아이들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설계라는 것.’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시스템.
때문에 모두가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다. 실력을 숨기다 탈락할 수도 있으니까.
계급제도의 존재도 한몫한다.
천민은 먹고살기 위해.
평민은 신분 상승을 위해.
작위가 낮은 귀족의 자제는 가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명문가의 자제는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
특히, 천민과 평민은 피를 토할 각오로 달려든다.
여기에 재능이 넘치는 자들까지 뛰어드니, 합격 컷이 강제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순수하게(?) 입학만을 원하는 나 같은 사람만 피해 보는 아주 나쁜 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진짜 억울하다. 난 그저 우수반 입학만을 원하는 순수한 아이일 뿐인데!
“야야, 저쪽으로 가자.”
“……응. 뭔가 기분 나쁜 생각을 하는 듯 보이네.”
“조기에 경쟁자들을 제거하려는 수작일지도 몰라.”
“모두 도망쳐!”
아이들이 슬금슬금 내 곁에서 멀어졌다.
순수한 아이를 핍박하는 못난 세상 같으니.
‘정보창.’
속으로 중얼거리니,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내 정보창이다.
[제로]Lv : 1
힘 : 10
민첩 : 10
지능 : 10
체력 : 10
마력 : 10
잠재력 : 0
보유 pt : 0
보유 스킬 : [번역S], [통역S], [정신방어S], [정보창S], [오그라드는 말투S], [불길한 기운B], [눈 뜨기F]
보유 칭호 : 없음
“후후, 역시 예상대로군요.”
그렇다. 예상대로다. 완벽히 내 예상대로다.
아카데미 입학은커녕 광속으로 탈락하며 ‘이름 모를 엑스트라1’이 되어 버릴 절망적인 스탯이란 게.
정확히 내 예상대로여서 너무나도 슬펐다.
고인물의 경험상, 앤우드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커트라인 레벨은 약 10 정도.
레벨이 오를 때마다 보너스로 10pt가 주어지니, 합격하려면 최소 100pt는 사용해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현재 내 레벨은 1이지만, 입학시험 중에도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다.
‘전투 관련 스킬이 없으니 10레벨은 무리.’
하지만 5레벨 이상은 충분히 가능할 거다.
고인물의 지식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스탯 차이는 극복할 수 있을 거고.
2, 3차 시험은 다른 방식으로 돌파할 생각이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1차 시험이 문제야.’
슬라임으로 가득한 미로의 숲을 돌파하는 시험.
기본적인 전투력과 체력, 판단력이 중요한 시험이다.
‘미로는 줄줄 꿰고 있으니 상관없어.’
슬라임을 잡고 레벨 업을 한 후 투자한 포인트의 힘으로 미로를 돌파한다.
본래라면 아주 쉬운 시험이다. 하지만.
‘당분간 스탯 포인트를 쓰면 안 된다는 게 문제야.’
스탯창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
그걸 이용하기 위한 최소 포인트는 100pt다.
소중한 포인트를 입학시험, 그것도 1차 따위에 소모할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살폈다.
음, 역시 최고다.
고인물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돌파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스킬들의 총집합이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사실상 슬라임 수준으로 무능력한 나다.
이런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되도록 아주 착한 사람으로!
“다음 조 입장해 주세요!”
정보창을 이용해 주변을 훑었지만, 이렇다 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 주변에 있는 놈들은 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젠장. 그냥 스탯 좋은 놈 찾아서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하나? 응……?’
그러던 와중 내 시야에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연분홍 머리. 양쪽으로 땋은 트윈테일, 눈꼬리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대표적인 고양이상이지만, 작은 체구 탓에 전체적인 인상은 ‘귀여운 아이’였다.
[루나]Lv : 13
힘 : 30
민첩 : 25
지능 : 15
체력 : 30
마력 : 20
잠재력 : 0
보유 스킬 : [투쟁심A], [호승심C], [검술C], [레스터 가문류E]
보유 칭호 : 복수를 갈망하는 자
(오로지 복수를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분노 조절을 힘들어하는 상태입니다. 분노할 경우,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합니다. 분노 시, 지능 –20의 페널티를 받습니다.)
‘루나?’
얘가 왜 여기서 나와?
아까 만난 로델린이 검술의 천재라면, 이 아이는 검술의 귀재.
아카데미 교수들은 그녀를 이렇게 평가했다.
시간만 있었다면 로델린을 능가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검술 하나에 한해서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루나는 로델린을 꺾지 못한다. 왜냐고?
‘그 전에 죽으니까.’
아카데미에서 모종의 사건으로 팔 한쪽을 잃고, 방황하다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루나는 조연이지.’
조연 중의 조연.
루나의 이야기를 아는 것도, 아카데미의 다섯 괴물 중 한 명과 결투를 하는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이다.
‘조연이긴 하지만, 다회차 플레이를 하면서 알게 된 루나의 비밀도 알고 있긴 해.’
잠깐 도움을 받기에는 적절한…… 아니, 최고의 상대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알기로 루나의 성격은 상당히 더럽다.
무능력한 나를 도와줄 정도로 착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캐릭터긴 하지만 지금 여기서 엮인다면 차후 스토리에 지장이 있을 수도…….
그때였다.
루나의 눈동자가 휙 움직이더니, 내게로 향했다.
“뭘 꼬나봐?”
시선뿐만 아니라, 말까지 사납다.
이런 애를 동료로 맞이하는 놈은 둘 중에 하나가 분명했다.
변태거나, 아니면 심각한 변태거나.
난 변태가 아니었으므로,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루나의 물음에 답해 줬다.
“후후, 당신을 보고 있죠. 보시다시피.”
“미친놈. 저리 꺼져, 뒈지기 싫으면.”
루나의 말은 그게 끝이었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옮긴 후 집중에 들어갔다.
아아, 저 개싸가지를 봐라. 진짜 밥 말아 먹은 싸가지다.
이제야 겨우 결심이 굳었다.
루나, 저 아이는.
내 동료로서 아주 제격인 아이였다.